80화. FWX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게임이 개판 5분 전이라면.
“그아아아아아아앗!”
팬이 가장 화가 많이 날까?
해설진이 가장 화가 많이 날까?
“정신 차려라, 얘들아, 제발! 두 눈 똑바로 떠라!”
아니면 코치 박스 안에서 지켜보는 감코진이 가장 화가 많이 날까.
“앗, 제발, 와드 왜 안 지우고 그냥 가! 정우야, 제발! 빽! 빽! 컴백! ”
“이번 세트는 틀렸네요.”
제주 F.L.E의 이수민 코치는 침착하게 오지현 감독의 어깨를 잡았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싶다. 허우우우. 미쳐버리겠다, 정말.”
오 감독은 꽤 다혈질이었다.
그렇다고 나쁜 감독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박진현 감독이 오랫동안 그랬듯.
이 연패의 늪을 탈출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심지어 솔랭도 아니라 도망갈 곳이 없다.
승강전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니까.
물론 승강전이 남아있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였을거다.
“우리 대민이 오늘 왜 저렇게 멘붕이야. FWX 바텀이랑은 그래도 할 만 하잖아.”
“유틸폿 선픽이 좀 나았을까요. 그래도 꽤 경험치 쌓기 좋은 듀오라고 생각했는데..”
F.L.E의 이번 시즌이 사실상 끝난 만큼, 어떻게든 신인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아주고 싶어서 주간별 콜 업과 샌드 다운 제도를 성실하게 이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1군과 2군은 다른 세상이다.
권건 때문에 혹시나 했다.
우리도.. 보물 찾기 성공할 줄..
“어흑흥흐허. 서폿 선픽을 어떻게 해. 자리가 없었어. 약팀은 너무 괴롭다.”
“이상한 소리 그만 내세요.”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처참하다..”
앓는 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오 감독의 손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수준이 비슷했던 팀의 실력이 상승된 것이니까.
원래부터 강팀이었던 팀과 싸우면 전력조차 짐작할 수 없으니까.
아프지만 그래도 좀 낫다.
몇 가지 전략은 서부팀들과의 대진에서 참고하기도 좋아보였다.
지금의 FWX는 LKL 모든 팀에게 교보재가 되는 좋은 팀이다.
리그 단위의 성장 자극제.
“저.”
뒤에 가만히 앉아있던 유상준이 입을 열었다.
“2세트는.”
원래 주전 서포터 자리에 앉아있던 사이다, 유상준이다.
“그래. 가자. 준비해. 임 코치는 멘탈 지수 계속 팔로우 업하고, 이 코치는 상준이랑 다시 한 번 포인트 체크 하고 있어. 나는..”
오 감독은 옵저빙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손 끝이 덜덜 떨린다.
“..마저, 경기 피드백 진행하고 있을게.”
#
- [FLE] 야 FWX가 없었다면 권건 우리 팀 왔다 증거 있음
밥이 맛있는가? O
F로 시작하는가? O
순위가 낮은가? O
캐리해줄 맛이 나는가? O
ㄴ 오지현 감독도 똑같은 생각할 듯ㅋㅋㅋㅋㅋ
ㄴㄴ FWX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ㄴ 반박) 너네 팀 팀원들 전부 ㅇ들어감 권건은 ㄱ이라 안됨ㅋㅋㅋㅋ
ㄴㄴ 권건 당신이 우리 팀에 오기만 한다면 전부 권씨로 갈아치울테야
ㄴㄴ 하지만 그는 이미 FWX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다
ㄴㄴ ㅋㅋㅋㅋㅋㅋFWX최강아웃풋 동상 만들어줘야댐ㄹㅇ
ㄴ 그래봤자 우리가 F.L.E는 이김
ㄴㄴ 혹시 박 감독님이세요?
#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대책 없이 밀려요, F.L.E! 벌써 3용 내줍니다!”
“이거 비예고가 뭘 만들어 줄 수는 없거든요? 이미 많이 밀렸습니다. 사실, 전 라인이 다아! 다 밀리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상황이 상당히 안좋아요. 줄 건 줘를 좀 심하게 해서 거의 무료 나눔이였죠.”
“레넥튼이 먼저 들어가줘야할까요? 아니면 리산드리가 메이킹 좀 해줘야해요. 야 이거 해봐, 보자, 어! 근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래. 누가 달건데!”
- 이제 레오니 이야기는 하지도 않음ㅋㅋㅋ
- 시발 저것도 프로라고ㅋㅋㅋ 내가 해도 잘하겠다
- 우리 존나 거울치료 중이다 과거의 FWX를 보는 것 같다ㅋㅋㅋㅋ
- 야ㅋㅋㅋ 이게 ‘강팀’의 맛이냐? 공기 달달하네ㅋㅋㅋ
-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분하다, 아주 분해요! 주먹이 울고 있습니다, F.L.E! 지금 20분이 안됐는데 돈 차이가 만 골 가까이 나요!”
“그래도 한 방 싸움은 볼 수 있거든요? 열심히 자원을 몰아 줬습니다. 다들 굶으면서도 어떻게든 이즈를 키웠어요!”
“여기서 딱, 딱 이즈리안이 죽지만 않고 3인분 이상 해준다면?”
“3인분이요?”
게임은 사실 끝났다.
“아, 좋다. 나이스, 나이스!”
“잘 하고 있다, 이대로 돌려.”
“지금 골드 좀 많이 차이 날 것 같은데?”
많이 정도가 아니다.
이제 한두명쯤은 자리를 비워도 이긴다.
승리에는 관성이 있어서.
이기고 있다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운영따위가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물흐르듯이 진행된다.
사실 뭐, 이기고 있다면 약간 정도의 실수따위는 용인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F.L.E는 우리 팀원들의 실수를 캐치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안좋기도 하고.
“나 뭔가 실감난다. 강팀 감성 돌았다.. 진짜 너무 좋다.”
최은호는 이런 감정에 아주 약한 편인 것 같다.
종종 생각하는 건데.
사람마다 느끼는 기쁨의 총량은 위아래로 큰 편차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승리를 달고살았던 나 역시 이기고 있는 이 순간은 즐겁다.
이런 감정마저 없었다면 시간을 버텨내지 못했을테니까.
이럴 때는 부계정으로 양학을 하는 못난 놈들의 감정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쨌든 손쉽게 들어오는 승리도 승리긴 하니까.
물론 이곳은 공인 리그.
상황은 전혀 다르다.
“그냥 이대로 밀어버릴까.”
“바론 먹을까?”
“장로까지 먹고 끝낼까?”
팀에는 여유가 넘친다.
“바로 끝내죠.”
“오케이!”
“승상께서 빨리 끝내자신다!”
“가자고, 어서!”
시작 10분만에 손 위에 올려놓은 승리.
그리고 그것을 집어 삼키는 것은 너무 쉽다.
“다아아아아아! 다! 밀어버립니다! FWX가 그냥 너무 강해요! 이 팀 대체 뭐하는 팀인가요! 권건을 앞세워 들고 일어난 신흥 군벌 세력인가요! 너무나 잔인합니다! 이건 대학살극입니다!”
“아예 데미지가 들어가질 않습니다. 사이언의 체력바가 거의 바코드네요. 언제 이렇게 성장했죠? 그냥 들이받으면 트럭에 치인 기분이겠는데요.”
“다같이 이세계로 갑니다! F.L.E! 으아아아아아!”
- 결국.. 이세카이 엔딩인가
- 거기서는 행복해라
- 사이다, 나와!
- 8, 9위 두 팀이맞냐? 그 사이에 대체 무슨 크레바스가 있는거임
- 이게 바로 하위팀.. 아아..
- 니네도 하위팀이라고 ㅠㅠㅠㅠㅠ
- 그런 [가짜 숫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FWX가 1세트를.. 아, 마지막까지 마무리 짓나요? 살 수 있나요, 레오니?”
“아잇! 레오니까지! 마무리되면서! 이대로 넥서스가..!”
“터집니다! GG!”
“이거, 거의 서렌 시간 정도였어요. 너무. 너무 강합니다.”
“으아아아! 정말 강팀이에요! 압도적인 경기력! FWX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
“수고했다.”
박 감독과 코치들은 평소보다 유독 진지한 표정으로 팀을 맞이했다.
뒤에서 윤도형의 눈초리가 따갑다.
“일단, 너무너무 잘했다.”
전략이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다.
밴픽적으로 크게 지고 들어가는 부분도 없었고, 경기력에서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상대가 스스로 넘어지는 부분을 잘 캐치해서 받아먹었다.
이런 경기는 어떻게 보면 얻을 것이 아주 많지는 않다.
이것이 약팀이 스크림을 잡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다음 경기도 확실하게 잡고 가자.”
박 감독은 선수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여기서 살짝 아쉬웠던 점은..”
평소와 달리 아주 간단한 피드백도 진행했다.
시간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오늘 응원와주신 분들이 무척 많아.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네!”
#
두 번째 세트, 제주 F.L.E는 서포터를 교체 기용했다.
언뜻 신인 밤볼라가 코치 박스로 향하는 도중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요오오오른?”
“네, 블루 진영을 가져간 F.L.E가 요른을 가져갑니다!”
“선픽 요른이라니, 그만큼 팬시 선수를 의식한걸까요!”
상대가 만만했던만큼, 우리는 좀 더 상대를 충분히 눌러버릴만한 조합을 짰고.
“FWX에서 졔리와 유마를 바로 완성시켜버립니다!”
“앞 세트에서 POM을 받았던 세자 선수의 오늘 플레이! 정말 인상적이었죠?”
“뭐가 나오더라도 상대해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F.L.E의 셰나와 빅터르! FWX는 미드 아라! 미드 구도는 두 팀 다 할 말이 있는 엄대엄!”
선택과 금지.
한 장 한 장 가진 패를 까는 엄숙한 싸움은 천천히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고.
서로의 조합이 드러난다.
“이야! 팬시 선수의 그윈! 자신감! 요른의 수염을 깎아버릴 셈인가요? 팬시 이 선수, 사실 숨겨진 무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호오, 그랬나요? 어디에서 나온 정보죠?”
“바로 전 세트까지는 그랬었죠. 힘이 아주 셌습니다.”
“그럴 듯하네요. 인정합니다.”
“어..어?”
하지만 잠시 다른 픽들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제주 F.L.E 역시 나름대로 풀어낸 ‘강팀’을 상대하는 방법을 들고 나왔다.
“아아아아? 이거, 오오?”
“F.L.E가 제이슨과 벨배스로 조합을 완성시켜버립니다!”
“아주 매콤해집니다? 그렇군요, 맞습니다! 사이다 선수의 교체 출전! 아까 살짝 언급됐던 대로 탑 요른이 아니라 서폿 요른이었군요! 이 선수의 서포터 풀이 굉장히 넓죠!”
“물론 그게 여태까지 아주 성공적이었냐고 물으면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서포터로 인기가 있는 챔피언들은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요.”
“이야, 그리고 벨배스도 컸을 때 답이 없는 챔피언이긴 해요. 성장하는 과정이 문제가 될 뿐이죠.”
“하지만 커서 안좋은 챔피언이 어디있겠어요? 아마 성장할 사람 누구야, 나와! 하면 기억 저 편에 있는 챔피언들도 손을 번쩍 들겁니다. 벌써 몇 명 생각나네요.”
“크큭, 그건 그렇습니다.”
“어쨌든 최근의 메타에서 인기가 아주 높은 정글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F.L.E는 허물을 벗고 만타 가오리가 되어주길 기도하고 있을 것 같네요.”
“F.L.E 입장에서 도박수입니다. 벨배스가 나오면 목표는 명확해져요. 한번에 일어나서 타워를 미는 게임을 하겠다는겁니다. 주도권을 잘 쥐어야 할텐데요. 다만, 주도권을 잡아도 권건 선수를 상대로 굴릴 수 있을지.”
- 어림도 없는 소리하시네ㅋㅋㅋ
- 그저 고무고무 가오리ㅋㅋㅋㅋ 쉽게 타워 한번 호로록 해보려는 심산?
- 나는 믿어 건건 믿어
- 사파 픽은 항상 한계가 있는 법이다ㅡㅡ
- FWX가 하면 우리도 한다! FWX가 하면 우리도 한다!
“아무튼 오늘 색달라요. 좋아요. 벨배스에 셰나 요른, 이건 귀합니다.”
“세기말 감성이 드디어 묻어나기 시작하나요!”
셰나를 보는 순간, 요른이 탑이 아닐 수 있다는 건 팀에서도 예측했다.
하지만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운, 은호. 바텀 괜찮겠어?”
팀이 원했던 것은 초중반부터 힘을 충분히 자랑할 수 있는 공격형 조합.
첫 번째 세트 결과를 받아 본 뒤, F.L.E를 상대로 이런 조합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장기적으로나 선수의 감을 잃지 않는 데에서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
“네. 괜찮아요. 이길 자신 있어요.”
최은호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니까 건이 그브 해. 괜찮아.”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을 보여주며 마지막 픽으로 직접 그브를 락인한다.
“FWX는 마지막으로 그브를 가져갑니다! 잠깐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좋습니다, 지금부터 경기 만나보시죠!”
그래.
분명히 그랬었는데.
“어어?”
“어어어어!”
“죽을 때까지 때리면? 때리면? 어어어어!”
“여기서! 끊깁니다! 3분도 되지 않은 타이밍! 퍼블! 제주 F.L.E에서 퍼블을 가져갑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저주를 건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