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더블 스쿼드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LKL 스프링 2번째 라운드! 이번 시즌 일흔 다섯 번째 경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대전 FWX와 제주 F.L.E의 경기.
관객석은 FWX의 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최근 FWX의 인기를 말해주듯 F.L.E의 진영까지 침범한 팬들.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경기장이 좁은 LOS 리그의 특성상, 인기 많은 팀의 경기 티케팅은 언제나 치열하다.
FWX를 상대로 이런 천지개벽이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 세자야 왜 맨날 같은 티야? 큐티
- 팬시야 왜 맨날 같은 티야? 팬티
- 자, 따라해보세요 “한타가 좋아”
- 한타가 좋아 #FWX #WIN
- 권건 안 옴? 자리에 빛 뿐인뎅ㅋ
- 우승은 언제 하나요, FWX? 이러다가 저.. 군대에 가버려요?
팬들은 미리 그려온 그림과 최선을 다해 꾸민 응원 피켓을 들고 열심히 흔들었다.
“으아아아아아! FWX! 믿고 있었다구!”
선수들이 나와서 인사하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온다.
“보여줘! FWX!”
“학원 째고 왔어요!”
금요일 오후 5시.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FWX를 응원했다.
선수들은 자리에서 기기를 체크하며 가벼운 잡담을 나눴다.
“사람이 이렇게 많았었구나.”
“오늘 많이 오셨네.”
“이기니까 좋다, 관객석도 볼 수 있고. 그쟈.”
“야. 짠내나는 소리 그만 좀 하고 마지막 테스트하자. 하나 둘 셋. 서포터 클래스입니다.”
“많고 많은! 마법사들 중! 내가 제일 잘났지. 나는 세자, 세자, 들리면 응답하라.”
#
“밴픽 모두 마무리 됐습니다!”
“사실 굉장히 평이하게 진행된 밴픽입니다. 솔직히 많은 분들이 기대한, 어떤 시즌 말미의 세기말적 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이 쏙 빠진 채로 밴픽이 완료됐죠.”
“그렇습니다. 뭐랄까. FWX에서는 사이언, 친 짜오, 르블란, 칼리와 탐치.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히 기울어지지 않고 적당히 주도권을 가지고 있고, 이니시와 앞라인을 또 적당히 가지고 있는 정말 적당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조합을 들고 나왔구요.”
“F.L.E에서는 레넥, 비예고, 리산, 이즈와 레오니 조합을 가져가면서 이 쪽도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아마, 리산드리로는 이전에 라온 선수가 보여줬던 압도적인 플레이를 막아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밴픽이 모두 끝나자 해설진은 두 팀의 조합에 대해서 평가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데요.”
“그러게말이다.”
그리고 밴픽을 마치고 코치박스로 돌아온 감코진 역시 오늘의 놀라웠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준비를 하기도 했는데. 다르다 달라.”
“애들이 들떴을 때까지만 해도 잘 못느끼고 침착하라고 말했었는데, 확실히..”
최수철 코치는 예상 리스트업이 잔뜩 적혀있었던 노트를 들었다 놨다 했다.
“상대가 한참 고민하는 게 느껴지더라.”
밴의 방향.
제주 F.L.E는 OP를 밴해야만 했다.
상대가 블루 진영 시작이기 때문에.
그리고 FWX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 픽들을 잘라야했다.
그 픽들을 다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에.
끝내 밴하지 못한 것들은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나눠먹자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FWX가 해야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바짝 얼어있는 것도 느껴지던데요.”
밴픽의 속도.
수도 없이 밴픽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코치진이라면 공감하는 이야기다.
이 ’속도’는 바둑이나 장기에서 다음 수를 두는 것과 같다.
종종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조절하는 경우도 있지만.
되려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상대를 흔드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일부러라고 우겨봐도 데이터를 들고 싸우는 전장에서는 상대가 고민하고 있는 순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허, 참. 우리는 좀 늦게 오나봐요. 우리가.. 강해졌다는 느낌이.”
“제가 F.L.E 코치인 수민이랑 동기인데요, 좀 봐달라더라구요?”
“와우. 대리만족 죽인다.”
“예전에 우리를 상대하던 강팀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랬겠죠?”
“여기서 더 강해지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그럼 우리 다 그만두고 애들끼리 밴픽해도 이기겠다.”
“설마. 안돼. 그건. 나 이 자리 이제 행복해지려고 한단 말이야.”
“크큭, 그럼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두 명 자르고 남은 한 사람한테 몰아주기 할까요.”
선수들을 경기장에 올려놓고 돌아온 코치 박스.
세 사람은 격세지감을 느끼며 싱글벙글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저기요. 저 있는데요, 감독님, 코치님들.”
“아.”
“죄송합니다.”
“아저씨들의 못난 입방정이었습니다.”
“경기에 집중 좀 하시죠.”
윤도형의 싸늘한 채찍질에 모두 경기에 몰두했다.
#
“오우..”
“이것이.. 나의 힘?”
오늘따라 유독 신나있는 건 바텀 듀오다.
꽤 공격적인 픽을 한 것도 있지만, 상대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모래주머니 훈련 효과같은 건가?”
최은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우리는 상대적 강팀들을 연달아 상대했으니까.
꾸준히 스크림을 하기는 해도.
스크림은 어디까지나 테스트라, 리그 경기와는 많이 다르다.
스크림은 연습실에서 진행하다보니 동시에 밴픽 시뮬레이터를 돌리면서도 진행할 수 있다.
때문에 시뮬레이터의 조언과 팀의 협의에 따라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테스트 해보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날은 아예 조합을 정해놓고 들어오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만난 상대가 현재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구분은 쉽지 않다.
거기에 게임을 끝까지 진행하지 않을 때도 많으니까.
가장 견제하고 싶은 상대에게 자신의 비밀 병기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어쨌든 전자기기를 들고 들어갈 수 없는 무대와는 전혀 달라지거든.
“바텀, 완전 괜찮아. 그냥 주도권 다 잡았어.”
“근데 오늘은 상대 서폿 다른 애 나왔네?”
“얘 요즘 가끔 교체 기용하더라. 2군에서 올린 애. 밤볼라?”
“유틸폿이 강점이라고 읽은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이렇게 밀려주나.”
“시즌 말이라고 키우려고 하나보다.”
일부러 다른 스쿼드로 스크림을 잡거나.
심지어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는 스크림에서 일부러 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해외 팀들.
“미드도 괜찮아.”
스크림도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종종 멈출 수 없는 힘이 흘러나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힘의 2할은 숨기라고 하지 않나.
스크림의 소문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각 팀마다 숨기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말 하는 거 좀 우스울수도 있는디..”
설렁설렁하지는 않되,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으며.
상대에게서 무언가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스크림의 기본 요령이다.
내가 오기 전의 FWX에 그럴 여유따위는 없었지만.
“거, 내가 원래부터도 저 짝의 탑보다는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감?”
뭐, 원래부터 F.L.E는 FWX만큼이나 약팀 중 하나다.
나까지 오면서 강화된 우리와 견주기는.. 글쎄.
문봉구까지 자신감 충전인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보여줄게..”
김예성마저도.
“완전히 달라진 나.”
저러고 있으니까.
#
“상당히 많이 달라졌죠, 2라운드의 FWX?”
“네, 그렇습니다. 권건 선수를 중심으로 팀이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이번 시즌을 딛고 다음 시즌에 얼마나 강팀이 될 지 벌써 기대가 되죠.”
“반면 F.L.E는 농사를 아주 열심히 짓고 있는 팀입니다. 오늘도 사이다 선수 대신 밤볼라 선수가 주전으로 기용되었는데요.”
“네, F.L.E 퓨처스가 상당히 강력하기로 소문이 났거든요. 그래서 한 경기 한 경기씩 밤볼라 선수의 경험을 쌓아주고 있습니다.”
“그렇죠. 사실 유틸 쪽에 강점이 있는 선수인데 FWX가 넉넉하게 밴을 해주면서 결국 레오니를 손에 들었죠. 아마 이즈와 잘 어울리는 유마나 칼마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게 신인들이 항상 겪는 일이긴 하죠. 당연하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는게, 결국 경기를 승리해야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밤볼라 선수 입장에서도 이렇게 FWX 예방 주사를 맞아 본다는 건 큰 도움이 되는 거겠죠?”
- 여기서도 백신 취급ㅋㅋㅋㅋ
- 야 근데 그래도 트릭스터나 스톰한테 맞는 것 보다는 FWX가 낫지 않냐
- 몰?루 시발 난 아직도 FWX를 모르겠다ㅋㅋㅋㅋ
- 근데 픽 너무 노잼이야..
- 개같이 평범해서 아무런 이변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그렇습니다. 근데 무엇보다도 지금 FWX 입장에서는 겸상하기 조금, 껄끄러운 부분이 있어요.”
“겸상이요?”
“다들 잊으셨나본데 권건 선수도 얼마 전에야 콜업된 선수예요.”
“아차.”
- 깜빡했다 시발ㅋㅋㅋㅋ
- 존나 4년 쯤 LKL 구르고 중국에 북미 한번 핥은 다음 점 찍고 돌아온건 줄ㅋㅋㅋ
- 미안한데 우리 건이 머리에 피바라기도 안말랐어요ㅋㅋㅋㅋ
- 저런 선수를 2군에 처박아뒀던 스톰
- 을 이겨버린 권건
- 을 2군에서 올린 FWX
- 를 상대해야하는 2군에 돈 제일 많이 쓰고있는 F.L.E
- 존나 피눈물난다ㅋㅋㅋ 니 정글이 우리 정글이었어야해
- 애가 바뀌었어요..! 걔가 제 자식이에요!
“그으렇긴하네요. 똑같이 신인 신고식 밴픽으로 한번 맞았는데, 도리어 카운터 펀치를 날려버렸죠. 와. 기억 납니다.”
경기는 해설진들이 크게 말할 일이 없을만큼 조용히 FWX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F.L.E의 더블 스쿼드 전략은 뭐, 나쁘지는 않긴 한데요.”
“네, 네.”
“근데 이게 쉽지가 않은 전략이거든요. 사실 강팀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전략입니다. 둘을 교체 기용한다고 해서 팀적인 시너지가 있다던가 하는 건 아니라서요. 대체로 최강의 5인으로 가는 게 보통이죠.”
“여러모로 호흡을 맞추는 쪽이 좋다, 이거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해설도, 시청자들도 모두 예상하는 것처럼.
“아! 지금 비예고가 과감한 미드 갱킹을 시도했는데요.”
“라온 선수가 우아하게 드리블했죠. 아직 리산의 힘이 나오기는 좀 먼 것 같습니다.”
“그 사이 바텀 상황!”
“어어, F.L.E, 이걸 못 알아챘었나요? 간단하게 친 짜오가 스윽 나타나서 스펠을 다 빼주고 갔죠?”
“이득, 크게 봤습니다. 가뜩이나 주도권이 없었는데 이제 잘못하면 다이브까지 당할 수 있어요. 다이브 보나요?”
“위험한 시도는 하지 않네요. 용을 가져갑니다!”
첫 번째 오브젝트도.
“탑에서는 서로 딜 교환을 해주고 있는데요. 어. 쳐봐, 안 아파. 긁어봐. 어, 시원하네. 너도 한 대 맞아볼래? 영차.”
“네엡! 탑 상황, 사이언과 레넥은 아아주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중입니다. 아무도 쳐다보질 않아요! 야, 심심한데 우리 딜량 뻥튀기나 좀 나눠 먹자."
“전령 보나요? 네, 갑니다. 어어? F.L.E. 이걸 그냥 내주나요?”
“싸워보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죠?”
“그으을쎄요? 이건 너무, 그러니까 너무 답답해요! 한 번 싸워봤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시간이라도 좀 끌었으면 좋았을텐데요. F.L.E, 이렇게 하면 안돼요!”
두 번째 오브젝트도 FWX가 손쉽게 가져간다.
하지만 F.L.E의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걸 먼저 건다구요?!”
“어.. 혹시 웨이브라도 지워보려다가 탐 진치에게 칼이 꽂힌 건가요?”
“지금 탐 진치가 너어어어무 단단해요! 이거, 상대를 잘 못 골랐어요! F.L.E! 레오니가 갑옷 입어서 단단해 보이지만! 지금은 성장 차이! 레벨 차이! 다 난단 말이에요! 칼은 함부로 뽑는 게 아니에요! 스킬 좀 대충 쓰지 마요, 밤볼라!”
- 극.대.노
- 이게 보통의 '신인'
- 권건 저 새끼가 신인 붐 불러일으킴ㅡㅡ
- 응 너네도 해봐^^ 찾아봐^^보물찾기해^^
- 쓸데없는 바람만 들어가지고..
- 그냥 사이다 출전시켜^^발들아
- 문제는 걔도 고만고만하기 때문에..풉킥ㅋㅋㅋ
“아, 이거 욕심 좀 많이 낸 것 같은데요. 욕심 내야할 때는 포기하고, 이상한 곳에서 욕심을 내고 있는 건가요, F.L.E?”
“옵니다, 옵니다, 친 짜오 바로 합류 가능해요!”
“아!”
권건까지 상대의 약점인 바텀을 파기 시작하면서.
“으아아아! 세자!”
“창, 창, 창! 너도 한 대, 너도 한 대! 뽑으면! 뽑으면!”
“더블 킬! 세자 선수의 칼리스터가 더블 킬을 가져갑니다! 이제는 동체원이라는 말로 나를 포장할 수는 없다! 서체원이라고 불러라!”
“아주 꾸준히 잘 해주고 있는 선수죠, 개인적으로는 FWX의 든든한 대들보같은 선수입니다.”
“지금 칼리스터 괴물이에요. 세자 선수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러면 용도 또 넘어갑니다!”
“아니, 아니 이러면 F.L.E가 이미 패대기 쳐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땅속에 매립됐어요! 머리카락도 안 보여요! 위, 아래, 사방이 다 터집니다!”
게임은 점점 더 손쉽게 기울어진다.
불과 몇 주 전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