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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64화 (65/326)

064화. 하드코어

개인 연습 시간.

솔랭을 돌리던 중.

원딜 포지션이 걸렸다.

종종 라인이 꼬이는 일이 생긴다.

나는 대체로 가리지 않고 가긴 하는데 오늘은 제법 많이 꼬인 모양이다.

탑에 가고 싶은 사람이 셋이다.

탑이 이렇게나 인기가 많은 포지션이다.

- 신선한사이다 : 혹시

- 신선한사이다 : 탑 좀?

- 코알라몬 : ㅈㅅ

- Techen : 님 주포 서폿이잖아여 왠 탑

- Techen : 저 탑 가능?

- 코알라몬 : ㅈㅅ

- 신선한사이다 : 아

- 신선한사이다 : 그럼 이렐 서폿

- 신선한사이다 : 진심픽

- 삼DA수 : ?

- 삼DA수 : 여기 티어 어디냐

- 삼DA수 : 내가 이세계로 왔나?

신선한사이다는 내가 아는 프로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제주 F.L.E의 서포터 Cider.

사이다라는 의미로 지었지만 정작 리그에서는 게임을 답답하게 해서 씨다, 시

다, 쓰다.. 뭐 안좋은 방향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것 정도는 알고있다.

리그에서는 대부분 평범하게 플레이하지만 솔랭에서 탑 챔피언을 선호하는 서

포터.

딜포터를 한다는건 딜, 탱, 아군 보호 중 많은 것을 꽤 오랜 시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포지션에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회악이라느니, 트롤이라느니.

그래도 잘 풀리면 게임이 꽤 재밌어지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폿 이렐리야는.. 그래.

아주 예전에, 리그에서도 나온 적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이게 절대로 이렐 서폿이 좋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

유행에 뒤처졌거나, 아니면 유행을 너무너무 앞서가고 있는거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이 사람의 취향인가보다.

세상에는 다양성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뭐.

확실히 플레이하는 사람은 재밌는 픽일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내가 원딜에 걸렸을 때?

이렇게되면 이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가 된다.

뭔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음..

하지만 나는 닷지를 모르는 남자.

이런 작은 고난에 굴하지 않는다.

내 한계를 시험해볼 좋은 기회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랜만에 초특급 하드코어 게임을 맛봤다.

#

“저걸 이겼어?”

“그러게 말여. 돌았네.”

“쟤는 뭘 먹고 저렇게 잘할까?”

“음.”

윤도형의 질문에 문봉구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게요잉. 뭘 먹고 저리도 잘할까..”

“아무래도 재능, 그리고 시간과 노력이겠지?”

문봉구는 윤도형을 가만히 바라봤다.

윤도형은 밀려났다.

문봉구는 이 팀에서 자리를 비킨다면 자신이 가장 먼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다.

수비 원툴.

라인전 능력 부족.

메이킹 능력 부족.

몇몇 팀을 상대로는 문봉구도 우위를 점할 수 있긴 하지만, 자기보다 더 잘하

는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함 뿐이다.

경기는 결국 상대적이니까.

이렇게 있다가 소리소문 없이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권건이 올라오면서 그 시간이 유예됐다.

“도형이 형.”

윤도형은 놀기 좋아하는 선수였다.

일이지만 즐겁게 할 수 있으면 좋다, 세상에 도움이 안되는 픽은 없다 따위가

그의 모토였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를 읽는 것을 제법 힘들어하는 타입.

흔한 케이스였다.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른 법이니까.

대신 엉덩이가 무겁고 체력이 좋아 연습 시간 자체는 긴 편이었고, 팀에서는

그것 역시 하나의 장점임을 알고 있었다.

“왜.”

음료수를 가지러 간 윤도형을 따라나온 문봉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뭐시냐. 저짝에..”

문봉구가 말없이 인중을 긁고 있자 윤도형이 피식 웃었다.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다.

“괜찮냐고?”

“어엉.”

문봉구는 악플로 괴로워하던 윤도형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패배로 인한 악플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타 팀 팬에게서까지 쏟아지는 악플은

문봉구가 보기에도 제법 수위 높은 것들이었다.

정말로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지 않으면 어쩔거야.”

“뭐..”

“배워야지.”

하지만 놀라운 건 달라진 윤도형의 태도였다.

트릭스터 전에서의 권건의 활약을 본 후, 윤도형의 표정은 완전히 풀렸다.

그 전까지 어떤 한 조각의 미련따위가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후련해보였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 쟤가 하는 걸 봐. 거의 강의야.”

“와. 그거 정말 사업..”

문봉구는 말을 멈췄다.

“사업 아이템 개꿀?”

“그게 아이고. 아따, 참말로.”

“너 붕어빵 장사하는 게 꿈이었다면서.”

“아임다, 진짜로. 그거는 그냥 농담. 저스트 조크.”

“그치. 이제 그런 말 하기 싫지?”

윤도형이 웃었다.

종종 하던 말이었다.

이거 하면 돈 많이 벌겠다.

프로게이머 그만 두고 이거 하면 될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는 말들.

“존나 입 밖으로 안 떨어진다니까? 쟤 보고 있으면 그냥 게임하고 싶어.”

“그건 맞다. 이렐 서폿은 좀 심했지만서도.”

“프레 서포터? 걘 진짜 취향이 낫닝겐.”

“크큭. 나 대신 서폿이 칼챔? 아, 요건 애매한디. 스왑 심리전하기에는 좋을

라나?”

“야. 봉구야. 근데 그거 알아?”

윤도형이 목소리를 낮췄다.

“먼데.”

“종종 권건 싫다는 사람도 있더라구.”

“아, 진짜로?”

“그럼 씨발 세상에 나는 얼마나 싫어하는 걸까.”

“미칫네.”

한참 웃은 두 사람은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로 가볍게 건배했다.

“그래서 부럽다.”

“누가?”

“니가. 너. 봉구야. 너.”

“나?”

“그래. 나도 다른 포지션 할 걸 그랬다. 괜히 정글 했어.”

“맞어. 솔직히 형 좀 별로잖어.”

“문봉구.. 존나 건방져졌는데? 많이 컸다?”

가벼워진 분위기.

그래도 문봉구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윤도형이 부럽다고 말한 이유를.

게임 속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인플레이에서도 순간순간 깨달음이 오지만.

경기를 끝내고나면 박 감독이 권건의 오더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해주면서 그것

들을 머릿 속에 각인시켜준다.

여기서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것을 힌트로 상대의 위치를 추적했는지.

그 내용들은 분명히 감코진이 주입했던 것들에 있었으나.

경기를 하면서 적용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권건의 오더가 기억 어딘가에 저장되어있던 습관들을 인게임으로 불러

와준다.

그래서 최근 리플레이를 보면 저게 우리 팀이 맞나 싶다.

“형도 같이 뛸 수 있으믄 좋을텐디.”

“말이 되냐.”

윤도형은 먼저 연습실을 향해 일어났다.

“야. 가자, 아직 연습 시간이다.”

“엉.”

문봉구도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빨리 연습을 하고 싶다.

배운 것들이 날아가지 않게 꼭 잡아두고 싶다.

“너 제대로 안하면 내가 탑 라인 뺏어버린다.”

“미안헌디 탑에서는 내가 한 손으로 해도 형은 이겨.”

“니 자리 걸고 한 판 뜰래?”

“양손으루?”

“한 손으로 한다며?”

“아, 행님. 정정당당함은 죽었는가배.”

“너 내가 고통을 겪으면서 선동과 날조의 초고수가 됐다는 건 아냐?”

“잘못했심다. 용서구다사이.”

“알면 다음 경기도 이기고 오던가.”

두 사람은 연습실로 향했다.

#

“게임, 끝났어? 이번 라이브 패치에서 피흡 감소된 걸 보완하기 위해서 지배

룬 쪽으로 가는 게 옳은 선택일까? 아니면 아이템 선택을 바꾸는 게 나을까?”

윤도형은 내가 쉬고 있을 때 종종 질문을 건넸다.

혹시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을까 했는데.

“패치 직후 과도기 상태일 때는 룬을 바꾸기보다는 아이템을 유동적으로 가져

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상대가 패치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천천히

연구해보세요.”

“땡큐. 연습 모드로도 돌려볼게.”

덕분에 자연스럽게 팀 내에서도 학구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없었던 피지컬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전달하는 자료만 받는 것과 스스로 연구를 해보

는 건 다르다.

프로게이머의 소양같은 건데.

자기 주도 학습, 뭐 이런 것 처럼.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배정되어있는 개인 자유 연습 시간은 보통 하루에 4시간

정도다.

대체로 더 오래하긴 하지만.

그 시간에 솔랭만 돌리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큐 잡는 시간이 있다보니 그 시간을 모두 유용하게 쓸 수는 없다.

4시간 중 1시간은 비어있다고 보면 된다.

분명히 붕 뜨는 시간이 있다.

그 사이사이를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

쉴 수도 있고, 스트레칭을 할 수도, 간식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를 연구로 채운다면.

시간의 밀도가 달라지게 된다.

다른 일에서도 그렇다.

쉬는 시간에 복습을 한다거나, 퇴근하고 자기계발을 한다거나.

말이 쉽지.

사실 정말 힘든거다.

레전드로 불렸던 은퇴한 프로들에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경기의 짜릿함을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연습 시간을 떠올리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재밌어서 게임을 하는 것과 쉬고 싶어도 해야하는 건 다르니까.

나도 그렇다.

이 시간만큼은 확실히 지옥이다.

그래서 내가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었던 거고.

근데 요새는 내가 큐를 돌리고 있으면 질문이 무더기로 날아온다.

무슨 유행이라도 돌고 있는 건지.

“건아, 혹시 시간 돼?”

질문 러쉬로 심심할 틈이 없다.

“내가 강준윤 선수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번에는 김예성이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예성은 작년에 준우승을 했던 빅스 출신의 미드 라이너다.

어딘가 약간 따로 노는 느낌은 있지만 경기에는 항상 충실하다.

별 생각 없이 FWX로 왔던 거지만.

1군에 올라와서도 미드 라이너의 스펙이 김창민 급이었다면 나는 정말 지옥

속에 갇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드는 대단한 포지션이다.

괜히 황족이 아니다.

최근의 우리 모든 전략이 김예성이 체급만큼은 서부 미드라이너였기에 가능했

던 거다.

그나마 코어를 잡아 주기 때문에.

“나한테 투자를 많이 받아야겠지.”

김예성은 대번에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성남 스톰의 미드 라이너는 팀에서 메이킹을 담당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김예성의 플레이 스타일은 라인전에 강점을 둔 성장형 캐리다.

쉽게 말해 강준윤은 로밍형, 최근의 김예성은 자기 성장과 라인전에 힘을 쏟

다가 한타를 보는 타입이다.

결국 둘은 섞이기 마련이지만 선수의 성향 이야기다.

선수의 레벨이 비슷하다고 했을 때 어느 선수가 더 나은가에 대한 평가는 불

필요하다.

좋은 로밍을 가더라도 다른 라인에서 호응을 해주지 않으면 그만이고.

성장을 잘 하더라도 자기만 컸다면 의미가 적어지니까.

지금 스톰이 강한 것은 무력의 탑과 로밍형 미드가 썩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팬들은 항상 LKL 최고의 미드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이런 논쟁과 상관없이.

결국엔 우승하는 ‘팀’이 최고가 되기 마련이다.

“이기고 싶어?”

“당연하지.”

“흠.”

하지만 라인전에서라면.

“좋은 거 하나 알려줄게.”

조금 정도는 근육이 생길지도 모른다.

꽤 괜찮은 선수니까.

물론..

스톰 전에서의 핵심은 따로 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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