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화. 라인을 밀고 튀어라
[ (LKL) 대전 FWX, 인천 트릭스터 상대로 1세트 선점 ]
ㄴ 커밍아웃합니다. 저는 FWX팬입니다. 어디가서 말도 못하던 제 진심입니다.
ㄴㄴ ㅋㅋㄹㅇFWX팬이라고 하면 겜알못취급받아서 숨겨야댐
ㄴㄴ 사실은 나도
ㄴㄴ 너두? 나도
ㄴㄴ 나는 e스포츠라고 무시 안하고 빡세게 투자해서 FWX 좋아함
ㄴㄴ 그 돈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ㄴㄴ 권건 올 때까지 탱킹 비용이었던 것
ㄴ 딱 기다려라 스톰ㅋㅋㅋ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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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수고했다.”
박 감독님은 생각보다 침착한 얼굴이었다.
선수들이 격양된 상태인 것과 정반대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작은 스트레칭을 지시했다.
“다음 세트에도 이런 전략이 통하지는 않을거야. 좀 더 이니시에 신경을 쓸테
고..”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다음 세트 전략 회의를 시작했다.
덕분에 선수들은 금세 원래의 텐션으로 돌아왔다.
다만 평소보다 자신감 넘치고, 더욱 승리를 갈망하는 표정으로.
“먼저 한 세트를 가져와서 유리해. 상대는 반드시 다음 세트를 잡으려고 할테
지만 우리 조합에 대한 데이터가..”
세트 선점은 중요하다.
LKL의 한 매치는 3판 2선승제다.
무승부는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첫 번째 세트를 패했다면 연달아 두 번을 이겨야한다.
이건 부담이다.
거기다 방금 경기처럼 차이가 크게 벌어지며 졌을 때.
패배한 팀의 머릿속은 좀 더 복잡해진다.
쟤네 잘하던데.
내가 뭘 할지 알고 있지 않을까?
저 인원만으로도 나를 잡아내지 않을까?
상대가 내게 스킬샷을 다 맞추지 않을까?
그럼 점점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의 반경이 좁아진다.
원래부터 강팀이라면 첫 세트부터 이런 위압감을 가지고 있다.
이건 전통의 강자들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 하
나다.
“얘들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겠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너넨 최고야.”
김 코치님이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내가 초등학생의 체구를 가지고 있다면, 거구의 성인 남성에게 주먹을 뻗기
어려울거다.
이런 긴장감은 게임에서도 달리 적용되는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1세트 때 눕는 조합을 했다.
눕는 조합은 결국 강해질 수 밖에 없다.
프로건 일반인이건 게임이 승리에 가까워졌을 때 내 챔피언이 강하다면.
이번 게임을 잘했다고 느끼고, 내 실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실제 KDA가 어떻든간에.
신기하지 않은가?
이 게임은 AOS 게임이지만 이런 매력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끌어들인다.
우리도 게이머다.
그러니 이 함정에 당해줄 수밖에 없다.
“맞심다. 맞아보니 별로 안 아프던데요.”
“할 만 했어요.”
“나도 생각보다는?”
솔직히 말해서.
강팀은 약팀을 상대할 때 상대를 집중 연구한 밴픽을 준비해오지는 않는다.
같은 상위권 팀들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좀 더 빨리할 뿐.
그래서 지금 트릭스터는 혼란스러울거다.
얘들이 잘하니까 좀 더 경계해야하나?
아니면..
“트릭스터는 분명 비슷한 전략으로 나올거다. 라인 주도권 잡는 조합으로.”
“저희한테 한 번 맞았는데도요?”
“그래서 더 그렇지. 우리는 트릭스터보다 약하니까. 방금은 우리가 약간 실수
했을 뿐이다, 상대를 너무 얕봤다, 그러니까 우리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할거야.”
그리고.
감독님의 확신은 맞았다.
#
“아, 트릭스터가 화가 났네요.”
“트릭스터에서 팬시 선수의 냐르를 빼앗아버렸죠. 사실 냐르는 오드 선수의
베스트 프렌드에요! LKL에서 오드 선수만큼 냐르를 잘 하는 선수는 몇 명 없
을겁니다.”
“다른 라인도 마찬가집니다. 비예고를 그대로 가져가고 나머지 포지션들을 정
말 잘하는 챔피언으로 가져갔죠. 이번 시즌에서도 개인 승률이 아주 높은 픽
들입니다.”
“미드에서는 아라를 뽑아주면서 메이킹 능력을 올리고, 레나타 선택도 괜찮았
어요. 전 세트의 이니시 부족과 한타 개입력을 확 끌어 올린 느낌이죠. 무섭
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앞 라인은 없습니다. 자신감 넘치네요.”
트릭스터는 결코 라인전에서 밀리지 않을 챔피언들을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FWX의 눕는 픽들을 전부 막았다.
방금 같은 상황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FWX 역시 태연하게 조합을 가져갔다.
1세트와 동일한 전략을 가져갈 생각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트릭스터는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겁먹지는 않았다.
아까는 정말 조합 때문에 진거니까.
이번에는 다를거다.
“근데 저거 뭐야. 시비루 진짜 오랜만에 보네.”
“바텀 괜찮겠어? 키이사 대 시비루 구도 어때?”
“응, 뭐. 그냥 깜짝 픽으로 뽑은 것 같은데? 내가 이겨.”
“원래 키이사가 이겨?”
“아니, 내가 하면 반대로 해도 이겨.”
“전 판 졌잖아.”
“그건 셰나가 가짜 원딜이어서 그런거고.”
“고수호 허언증있어?”
오미래와 고수호는 가볍게 농담을 나눴다.
트릭스터의 미드 라이너 오미래는 원딜 고수호와 함께 솔랭에서 우정권을 찾
곤했다.
권건은 매력적인 정글러다.
솔랭에서 만났을 때도 스킬샷과 무빙이 좋았지만 리그에서 상대해보니 더 그
랬다.
아예 집중력의 차원이 다르다.
솔직히 오미래도 어디가서 빠지는 미드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권건만 마주치면 스킬샷이 자주 빗나가는 것 같다.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스톱 무빙과 스킬 콤보.
아마 전 세트에서의 FWX 플레이 대부분은 권건의 지시하에 이뤄졌을 것이다.
원딜러인 고수호는 걱정말라고 했지만 상대가 또 다시 예상에서 벗어나는 픽
을 들고나왔다.
트릭스터를 상대로 하위권 팀들이 종종 보여주는 파격적인 챔피언 기용.
사실 그것들이 큰 위협으로 느껴진 적은 별로 없다.
그런데 왠지 오늘은 마음 속에 작은 불편함이 생긴다.
“FWX는 팬시 선수에게 삼신기 중 하나인 사이언을 쥐여줬습니다. 사실 그렇게
좋은 의미의 삼신기는 아니긴 한데, 요즘 이 선수 물이 올랐거든요!”
“맞습니다. 예전에는 가드만 올리고 있었다는 느낌이라면 요즘은 위빙을 하기
시작했죠.”
“FWX는 미드에서 아자르, 바텀에서는 시비루와 유마 조합을 완성시켰죠.”
“시비루는 오랜만에 보는 픽인데, 레나타를 보고 골랐어요.”
- 시비루 리워크 받고 떴다가 다시 심연잠수했자나
- 얘넨 대체 무슨 기준으로 픽하는거임?ㅋㅋㅋㅋ
- 뉴메타충들인거같음
- 관심받고싶어서 저러나ㅋㅋ 개꿀빨면 되는 부분?
- 또또 이런다 한판 이겼다고 또또또!!
뜻밖의 결과가 전해져 온라인 중계에도 시청자들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음.. 레나타 입장에서는 그리 기분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키이사와 함께
강하게 라인전 압박을 해보려고 했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권건 선수의 새로운 픽입니다. 뽀비.”
“이건 새롭습니다. 하지만 FWX 입장에서 뽀비가 뭘 만들어주기는 어려울 거에
요. 아무래도 변수를 만든다면 아자르 6레벨 이후가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경기 만나보시죠!”
#
FWX 쪽의 응원석은 전석 매진이었다.
팬들은 저마다 예쁘게 꾸며온 응원 피켓을 들고 있었다.
- 의지의 FWX, 할 수 있다!
- 건아 니가 고쳐야 할 건 하나밖에 없어, 내 심 장
- 오늘도 화이팅 최선을 다해요
대부분 승리를 기대하기보다는 선전을 바라는 문구들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세트를 이기자 팬들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팬이라고 해서 모두가 완벽하게 게임을 이해하고 관람하지는 않는다.
옵저버의 시선에 따라, 첫 번째 세트는 모두의 기억 속에 ‘권건이 적을 드리
블했더니 어느새 우리 팀이 최강이 되어버린’ 시나리오로 남았다.
영문 모를 승리.
그리고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시나리오가 쓰인다.
“시비루가 푸시가 너무 빨라요!”
“이러려고 텔을 든건가요? 이게 무슨!”
“오로지 푸시, 푸시만 하고 있어요. 제가 뭐에 홀린건가요? 지금 이 라인을
먹고 키이사는 집에 가야하는데! 먼저 밀고 텔로 돌아온 시비루가 바로 다시
밀어넣으면 라인 손해를 봅니다!”
“오? 초반 푸시력 차이로 부메랑 오버파밍을 하고 있어요. 이걸 막으려면 정
글러를 불러야합니다. 라인, 풀어줘야 해요.”
“그런데 이 움직임을 알고 있습니다! 과감한 와드 투자로 시야를 철저하게 잡
아 뒀죠?”
- 비예고가 시비루 등 긁어주고가는데?
- 올인 한무 푸시ㅋㅋㅋ
- 존나 얄밉게 하는데ㅋㅋㅋ
- 한타 가서 두고보자
- 개 쓸모없을듯ㅋㅋㅋ
“근데 시비루가 텔을 들어버리면 상당히 리스크가 큰 거거든요. 파격적인 선
택입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줄다리기에요! 그만큼 반대급부를 챙겨가야 하
는데요!”
“미끄러지면 끝이라구요, 끝! 왜 이렇게 무섭게 게임을 하나요, FWX!”
“아아아! 그 사이 권건 선수의 뽀비! 뽀비가 비예고의 정글을 털어먹고 있어요!”
“이런 식인가요, FWX? 비예고의 동선을 강제했죠?”
의문스러웠던 픽은 점점 정체를 드러내고.
“계속 들어옵니다. 계속, 이러면 정글이 말릴 수도 있는데요. 차이가 벌어지
고 있습니다.”
“어, 아! 레드 방향, 레드 방향! 뽀비! 뽀비!”
“비예고가!”
“권건의 어시스트로 아자르가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이게, 계속 압박을 하니까 비예고가 자기 집에서 먹을 게 없거든요! 아니,
먹고 갔으면 하나는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결국 상대 정글로 들어갈 수 밖에 없죠. 이 움직임을 잘 노렸습니다. 뽀비의
드리블이 좋았어요. 도망치는 척 하다가, 왁!”
정글부터 천천히.
“시비루는 아예 싸워줄 생각이 없어요. 달리기 선수예요. 심지어 유마를 달고
뛰고 있습니다. 점프를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날랩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를 하면서 그냥 ‘노력은 인정해주지.’ 한마디 날리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잖
아요!”
“시쳇말로 푸시 원툴이라고도 불리던 원딜이죠. 미드에서 아자르가 잘 해주고
있고, 바텀에서는 CS만 잘 챙기면 됩니다. 비예고는 지금 상당히 말렸어요.
정신이 없습니다.”
“또 텔 타고 와서 타워를 툭, 투욱. 지금 벨튀해요! 잡아라! 저거 잡아라!”
“뽀비도! 또 털어먹고 가요! 잡아라! 도둑이다!”
점점 더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뭔가 만들어야합니다. 근데 또 만드려고 뭘 시도하는 것 자체가 턴이에요.
지금, FWX가 갑자기 들고나온 새로운 패턴에 트릭스터가 당황했어요!”
“이거 게임 이상합니다?”
반드시 이번 세트를 잡고, 세 번째 세트까지 이겨야하는 트릭스터.
그리고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기회가 있는 FWX.
둘은 입장이 다르다.
“휘둘립니다. 휘둘립니다, 트릭스터! 전령을 내줍니다!”
“어어, 이상하다. 우리가 주도해야하는데. 분명히 우리가 라인전에서 더 센
데. 근데 라인전이 아니에요. 이건.”
“지금와서 픽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키이사가 아니라 칼리스터였으면
어땠을까요?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했는데.”
트릭스터 팬들이 화를 내고 있는 반면 FWX 팬들은 당황했다.
믿을 수가 없다.
그냥 문봉구의 방송이 재밌어서.
권건이 잘해서.
이적한 김예성을 따라서.
곽지운과 최은호의 케미를 응원하고 싶어서.
가능성 있어보여서.
이 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그 중에 ‘강팀이기 때문에’라는 이
유는 없었다.
“탑은 역시 안티 캐리의 오드 선수답게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
데 팬시 선수도 ‘안티’ 캐리거든요.”
“그렇죠. 캐리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대신 아주 잘 버텨주는 선수죠. 미드는
라온 선수와 퓨처 선수가 호각을 이루지만 지금 문제는 정글이에요!”
“비예고의 목줄을 꽉 쥐고 있습니다. 이게, 상체 차이로 어떻게 뚫어보려고해
도 아까 바텀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어요!”
“거기다 FWX는 유마도 순조롭게 잘 키우고 있습니다. 유마가 밸류가 꽤 괜찮
은데요. 이거.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정말로 뭔가 해야 해요. 아까와 양상
이 다르지만 분명 큰 거 옵니다, 이거.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요, 트릭스터!”
- ㄹㅇ 최고 수혜자 고영이ㅋㅋㅋ
- 탑승감 존나 편-안ㅋㅋㅋㅋ
- 내려서 맞아줄 필요도 없어ㅋㅋㅋ
- 응 라인전 안해~
“결국 어떻게든 싸움을 열어볼 수 밖에 없습니다! 용 앞, 길 뚫어보나요?”
“트릭스터, 용 앞 좁은 길목! 진격, 진격해야합니다! 이제 싸움밖에 답이 없
어요! 계속 맞다보면 정신을 잃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