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60화 (61/326)

060화. 그냥 10위 팀이 아니거든요

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동현이 형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요, 화이팅.

뭐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이 사람의 기대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언더독의 반란 시나리오에 깊이 감명받은 것 같다.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인데.

이런 시나리오도.

나쁘지만은 않다.

#

“용 앞 대치! 대치, 아! 포킹이 들어가긴 하지만 몸이 너무 앞으로 쏠리면 안

돼요! 분명히 트릭스터의 포킹은 강력합니다! 그런데 잘 먹히질 않아요! FWX

의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패시브와 룬이 있기 때문에 용 앞 강가 지역에서 탈리아는 상당히 날래요!

맞으면 많이 아픕니다. 거리 조절해야 해요, 트릭스터!”

“FWX가 점점 앞으로 나서나요, 나서나요? 유지력 싸움에서는 FWX가 더 유리합

니다! 셰나를 믿고 마구 들이대보는데요!”

“이쪽은 고양이가 너무 바빠요! 마나가 부족합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우린 꿀열매도 다 먹을거야! 꿀열매! 아! 너무 달

고 맛있어요, FWX! 트릭스터는 갱플 혼자만 과일 먹나요!”

“아, 네 그렇죠. 갱플은 과일을 나눠 줄 수가 없죠.”

시간은 보답한다.

“이제 카사딤도 무시할 수만은 없어요, 뒤에 서있습니다!”

“벌써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나요!”

“트릭스터! 분명히 강력한 조합입니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 대신 맞아주면서

앞라인을 잡아 줄만한 챔피언이 없거든요!”

“위기에요. 트릭스터. 위험합니다. 이거 최대의 업셋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비상, 비이이이상!”

“화약통, 화약통 빠집니다! FWX가 심리전을 아예 해주질 않았어요!”

“어떻게하죠, 트릭스터! 4용을 내주나요? 아니면 싸워보나요? 지금 구도 너무

안좋은데요!”

“먼저 들어가기도 애매합니다! 냐르, 냐르 분노 조절하는 중!”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대로 양보하기에는 상대 조합이 너무 위협적이에요! 이번 용까지 먹으면

화염 영혼입니다!”

“전투 선택권은 FWX에 있습니다! 아, FWX, 용을 먼저 치나요!”

계속되는 밀고 당기기 속에 권건이 먼저 용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냐르는 분노 부족.

카사딤은 부쉬 쪽.

이제는 꽤 든든한 탱커가 된 탐 진치와 뒤로 빠져있는 셰나.

“용, 용, 우리 용 보자. 용 포기하지마. 4용 안돼. 탈리아, 점사, 탈리아.”

트릭스터는 4용을 막으면서 추가 킬을 가져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타 싸움은 부담스럽지만 탈리아는 몸이 약하다.

존야가 있지만 점사만 된다면 충분히 끊어버릴 수 있다.

“우리 마나가 애매한데.”

포킹 시간이 꽤 길었다.

권건에게 스킬이 집중됐지만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일부 데미지 역시 셰나로 상쇄됐다.

르블란을 잡은 오미래가 입을 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싸움이 시작됐다.

먼저 용을 치기 시작한 FWX는 상대가 리콜할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돌입! 돌입! 트릭스터 일제히 돌입하면서 승부수를 던집니다!”

“갱플 궁이 잘 깔렸어요! 포탄 세례가 떨어집니다!”

“피했어요! 탈리아가 망령의 나락을 피했어요! 아, 유마 궁극기가!”

“존야, 존야! 흘려내고, 아, 탐 진치 들어와요! 지금, 순식간에, 아! 카사딤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오오오오! 탈리아를 노리고 빨려들어온 비예고가 가장 먼저 사라지고, 고

양이, 고양이도! 고양이도 결국 탈출할 수 없습니다!”

“이즈는 이미 카사딤에게 집중 마크되고 있어요! 카사딤의 더블 킬!”

“FWX가! 네 번째 용과 함께! 한타 대승을 챙겨갑니다!”

- 뭐야?

- 와

- 빨려들어갔잖아

- ? 퓨처 왜 아무것도 안하고 도망만 감??

- 한타 개잘하잖아;;

- 저거 탈리아 레고?

- FWX! FWX!

- 니네 뭐한거임???

- FWX팬입니다 저희도 모릅니다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이게, 이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요!”

“FWX는 트릭스터가 돌입하면서 탈리아를 일점사 할 것 이라는 걸 알고 있었

죠. 천천히 보시면, 바닥에 탈리아가 대지의 파동을 남기고.”

“이렇게. 몸을 틀어서 비예고의 기절을 피하면서, 비예고만 레고를 밟고 기절

했어요! 스킬을 대단히 자연스럽게 사용했죠! 아까부터 플레이가 너무 완벽해

요, 권건!”

“바로 유마의 대단원이 쓰여지긴 했는데 존야로 흡수, 그리고 탐 진치와 카사

딤이 합류! 비예고가 공략당하면서..”

“주요 스킬이 다 빠진 상태의 트릭스터가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트릭스터의 주요 딜러진의 마나 상황도 그렇게 좋지 않았죠.”

“포킹 조합이라는게 정말 강하면서도 난이도가 있는 조합이거든요, 사실 포킹

에서 유의미하게 이득을 가지지 못한 채로 시작한 싸움이 됐습니다. 화염 영

혼 앞에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 있죠.”

“이제 카사딤은 괴물이 됐어요. 이즈 제압골을 전부 먹었습니다.”

“바텀 CS차이가 제법 많이 났었죠. 값을 많이 쳐준 것 같습니다.”

기세는 더할나위 없이 기울었다.

“좋았어!”

코칭 박스의 박진현 감독과 코치진은 환호를 질렀다.

“거의 다 됐다! 진짜 이걸 해냈어!”

“진짜. 애들도 진짜 열심히 했는데, 건이가.. 도대체 쟤는.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잘하죠?”

“봉구도, 예성이도, 지운이도, 은호도..”

“여태까지 봉구를 쓰면서 항상 패전 처리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확 살아날 수가 있다니. 인플레이 경험이 애들을 성장시키는 것 같아

요. 특히나 봉구는 그런 타입이었고.”

“이겨봐야 아는 것들. 그래, 위닝 멘탈리티.”

“맞아요.”

“이 경기, 잡자! 얘들아, 할 수 있다!”

이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 처럼 FWX도 기세를 탔다.

“자꾸 탭 키 누르고 싶다.”

FWX 선수들은 엔돌핀이 쏟아져나온다는 표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여태까지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상대에게 이기고 있다.

손 끝에 피가 돌고 목 뒤가 저려왔다.

관자놀이도 욱신거린다.

“와, 이거 봐.”

최은호의 탐 진치가 혓바닥을 내밀자 상대가 물러난다.

“천하의 무사가.. 내 혓바닥이 무서워서 도망을..?”

“뒤에 건이 있어서 그런 거임.”

“이거 세이브했다가 담에 또 불러오기하면 안되나?”

“RPG 하러 가라.”

분위기는 유쾌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하면 되겠다. 거의 다 왔어. 집중하자 얘들아!”

최은호는 소리높여 말했다.

과거에도 종종 강팀을 상대로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낸 적은 있다.

하지만 강팀이 괜히 강팀인게 아니다.

그런 게임들 대부분이 허무하게 뒤집어지고 말았다.

끝까지 집중해야한다.

그래도.

“하던대로. 천천히 하세요.”

우리 정글이 권건이다.

#

“어, 아!”

“잠깐, 잠깐 내렸던 케비 선수의 유마가!”

“탈리아의 지각 변동! 순식간에 빨려들어오면서 사라졌습니다! 권건 선수가

앞에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어요!”

“안일했죠! 이렇게 되면 르블란의 포킹도 아까보다는 덜 위협적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경기는 다 넘어왔다.

이 말은 내가 기동성을 이용해 온 협곡을 누비고 다니며.

탑, 미드, 바텀을 돌보던 보모 노릇을 슬슬 그만 둘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한 건 오랜만이다.

이건 내가 제안했다.

이기고 싶다길래.

라이너들이 타워 안으로 콕 처박히면 가장 위험한 건 튀어나온 정글러다.

모두들 뜯어말렸지만 그래도 하겠다고 했다.

“아, 탈리아가 사방에!”

“언제 어디서나 출격 대기 상태로 지켜보고있습니다!”

“기동성이 너무 좋아요, 지금 한 번 걸리면 살살 녹아내립니다! 조심해야해

요, 트릭스터!”

“이 선수는 도대체 뭔가요? 여태까지 스킬이 빗나간 적이 있나요! 말 그대로

저승사자입니다!”

다른 방법도 있었다.

나한테 자원을 몰아달라고.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하기 싫었다.

내 자식들을 때린 애들을 직접 찾아가서 대신 패주는 것 보다는.

“셰나! 이제 셰나도 너무 강해요! 순간적으로 이즈와 1.5코어가 차이났었죠!

이게 단식했던 셰나가 맞나요!”

“카사딤이 1 대 2를 이겨냅니다! 완벽한 배분! 키운 보람이 있는 장학생이에요!”

직접 팰 기회를 주는 게 더 교육에 좋으니까.

아닌가?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대충 릴리가 맞고 와도 그렇지 않을까?

“냐르, 냐르! 냐르 쪽으로 트릭스터가 인원을 투자합니다! 순식간에 네 명!

이건 어떻게서든 꼭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에요! 사이드를 계속 밀어대는 게

너무 거슬리잖아요!”

“갱플 궁까지 떨어집니다, 냐르!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이 정도면 죽어주는 게 예의긴 하죠.”

“결국 끊기고 맙니다!”

어쨌든 애들이란 게 가끔은 사고도 치고.

그런 거 아닐까.

“복수를 해줘야겠죠! FWX 어벤져스가 출동합니다! 니네가 우리 냐르 괴롭혔어?!”

어차피 게임은 이제 내 손 안에 있으니까.

“아아아아! 도망, 도망가야 해요 갱플! 지금 밸류로 보면 제일 괜찮은 게 오

드 선수의 갱플랑크거든요, 절대 끊기면 안됩니다! 작전상 퇴각! 퇴각하라!”

“텔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아나갑니다!”

우리가 픽한 챔피언들은 강해지기까지 오래 걸린다.

하지만 힘을 기른 이상 다르다.

“괴물이에요, 지금 FWX 괴물입니다. 너무 무서워요. 더 무서운게 뭔지 아세요?”

“뭡니까?”

“이 괴물이. 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냉철하게 차근차근, 천천히 인간

의 목을 조르고 있어요. 소오오름끼치는 경기력입니다, FWX!”

“아.. 이렇게 되면 트릭스터에겐 슈퍼 플레이가 강요됩니다. 라인전 스노우볼

에 실패한데다 상대는 왕귀형이에요. 냉정하게 말해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

습니다.”

“FWX, 오늘 느낌 좋습니다. 집중력 좋아요!”

“마지막 장로 싸움인가요! 이미 너무 많이 기울었습니다. 무사 선수가 장로

스틸을 위해 목숨을 바쳐 들어가보지만!”

“FWX! 장로! 획득! 비예고까지 잡아내면서, 넥서스를 향해 진격합니다!”

- 어?

- 진짜 FWX가 이기는거임?

- 정배충들아이제정신이들어?이제정신이들어?

- 딜찍누 이기는 법 : 딜로 찍어 누름

- 트릭애들이 던진거야?

- 그냥 잘 하는데? 뭐지?

- 앞으로 남은 경기 다 져도 그냥 오늘 경기 존나 좋아;

- FWX!FWX!FWX!FWX!FWX!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얘들아, 이즈 죽여! 죽여!”

“미친거 아니냐? 너무 좋아, 우리가 이기는거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한 입만!”

“넥서스 넥서스 넥서스! 넥서스 쳐! 넥서스!”

“빨리 깨, 빨리 깨!”

“뭐야! 우리가!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 한거야!”

“권건 개잘해!”

“씨.. 존나 좋아.. 어떡해..”

“하..”

“와..”

그래, 결국 우리가 이렇게 발버둥친 건.

넥서스를 깨고, 눈 앞에 뜨는 푸른 색의 ‘승리’를 보기 위함이다.

“지금 FWX는 그냥 10위 팀이 아니거든요!”

“그럼 뭔가요?”

“9위입니다. 그리고 지금! LKL 스프링 2라운드, 최고의 빌런이에요!”

“이거, 앞으로 상위권 팀들도 신경을 안 쓸수 없겠는데요. 당장 다음 세트도

트릭스터가 단단히 벼르고 있겠군요!”

“승점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 순간, FWX가 상위권 싸움에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국, 1세트를 FWX가 힘차게 물어뜯으면서! 승리를! 가져갑니다!”

“역사의 FWX! 그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GG!”

자.

이제 누가 골리앗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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