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잘자요, FWX
FWX는 인천 트릭스터를 얕보지 않았다.
트릭스터는 전통의 강호 중 하나다.
작년 스프링 시즌을 5위로 마감하기는 했으나, 그 다음 시즌 바로 3위로 치고
올라온 강팀.
더 과거에는 우승도 했었고.
LKL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지금.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트릭스터는 천하를 오시하고 있다.
반대로.
FWX는 몇 년 전부터 쭉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내가 알기로 최근 3년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적도 없다.
우리는 이 경기를 잡기 위해 꼼꼼하게 플레이 스타일을 정했다.
오로지 트릭스터를 공략하기 위해.
이 경기에 임하는 두 팀의 자세는 분명히 다르다.
#
“봉구야. 쫄았어?”
“아임다.”
“봉구야. 무서워?”
“아임다.”
“봉구야. 화약통 싸움 이길 수 있어?”
“아, 참말로. 할 수 있다니까 쫌. 어떻게든 신발만 뽑고 나서 잘 해보께.”
곽지운이 가벼운 말로 문봉구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냥 놀린 걸수도 있는데, 아무튼 문봉구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래서 주장인가보다.
자기보다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라인전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정말로 리그 최고 수준의 무력을 가진 선수들을 마주한 문봉구는, 고양이 앞
의 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랭크와 관계없다.
어디까지나 라인전에서의 이야기니까.
그럼 피지컬이 좋은 순서대로 순위가 결정되는가?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것도 아니다.
우리 팀원들은 빈말로도 상대에 비해서 피지컬이 우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게임은.
내가 철저하게 가야한다.
“바텀은 최대한 버틸게.”
우리는 셰나탐 조합이고 상대는 이즈유마조합이다.
하지만 우리는 FWX고 상대는 트릭스터다.
원래의 구도가 유리하건 불리하건 관계 없다.
일단 상대를 건드리지 않고 침착하게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바텀이다.
“FWX가 밀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이득을 봐야한다면 탑입니다. 여기서 얼마나 이득을 가져가면서 시간을
버느냐가 중요한 점이겠죠.”
“하지만 벌써부터 탑이 불안한데요. 갱플이 벌써부터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요.”
“트릭스터도 FWX가 공략할만한 게 탑 뿐이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죠.
탑 주변으로 시야를 잘 구성해뒀습니다.”
쉽지만은 않다.
벌써부터 밀리고 있다.
“이거, 헛무빙이다. 맞지?”
“맞아요.”
“오케이. 안 속지.”
라인전이 강하다는 것은 미드와 정글이 심리전을 걸기 편하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심리전에 넘어가지 않는다.
조심스러운 호랑이 트릭스터도 섣부른 정글 털어먹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미 나에 대한 정글 압박 전적이 결과로 나와있기 때문에.
나도 마찬가지다.
내 피지컬에 자신이 있더라도, 아무때나 들어가는 카정이 정답일 수는 없다.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
일단은 서로 선을 지킨다.
“흐미. 쏘리. 나 밀린다. 얻어 터지는 중!”
“봉구야, 괜찮아. 침착해. 형이 캐리할게!”
탑은 딱 예상한 그림이다.
문봉구는 망해가는 구도가 익숙하다.
하지만 오늘 문봉구에게 들어온 건 한 스텝 더 나아간 요구다.
반드시 상대를 탑에 묶어 놓을 것.
물론 문봉구는 상대와 실력 차이가 난다.
그나마 다행인건 상대 탑이 솔로킬을 욕심내기보다 안정적인 플레이를 통한
전체적인 이득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핸디캡을 극복할 만한 여건을 더했다.
한타를 배제하고 라인전 단계에서 아낌없이 궁을 써도 된다고.
상대 갱플과 궁 교환을 해주면 더 좋지만 탑에서 발목만 잡고 있어도 괜찮다.
- ㅌㅊㅇㅋㅋㅋㅋㅋ
- 정신을 못차리네ㅋㅋㅋㅋㅋ
- 해설진 오늘은 잘 맞아준다 이런 말 안함?ㅋㅋㅋㅋ
그럼 트릭스터는 점점 더 확신할거다.
우리가 더 세다.
그래 봤자 FWX네.
“바텀, 용 쪽 봐 줘요. 예성, 같이 미드 압박.”
“오케이.”
정글러 하나가 바뀌었다고 해서 뭐? 특별한 건 없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거다.
“빠른 용 가능성 있어요. 주목하세요.”
하지만 상황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
“예상대로 트릭스터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릭스터는 하체 쪽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쥐고 있죠. 용을 노릴 것 같은데요.”
“아, 권건 선수의 탈리아가 칼날부리 쪽으로 움직인 사이 트릭스터가 용을 쳐
보나요?”
“상당히 저레벨에 시도하는데요! 아직 6렙 전입니다.”
그러니까 차근차근.
타이밍을 찾아가면 된다.
“아! 방향을 전환한 탈리아와 카사딤이 바로 르블란을 밀어내면서 용 쪽으로
가고 있어요! 르블란, 상당히 많이 맞았습니다!”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였던 FWX의 바텀 듀오도 슬그머니 올라오고 있거든요?”
“이거 잘못하면 위험해요, 트릭스터! 포위될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양보하나요? 네! 빠지면서! FWX가 첫 용을 차지합니다!”
팀 FWX가 가진 인상.
그리고 우리 픽이 드러내는 컨셉.
“저레벨 때는 용이 상당히 강합니다! 트릭스터가 게임을 빠르게 굴려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게 픽으로만 보면 하체는 트릭스터가 유리했고, 라인전에서도 마찬가지였
는데.”
“트릭스터 입장에서는 권건 선수가 칼날부리 쪽으로 들어가니까 아예 첫 번째
용을 포기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처음 말씀드
렸던대로 눕는 조합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만 합니다.”
“그런데 FWX가 정확히 타이밍을 읽어내면서 오히려 드래곤을 넘겨받았죠?”
이걸 이용한다.
사실은 누구보다 이기고 싶지만.
꼭 무서워서 도망가는 픽을 한 것처럼.
트릭스터 입장에서 봤을 땐, 우리가 마치 우연히 오브젝트를 차지한 것처럼.
“시야가 없었을텐데 눈치가 빨랐습니다. FWX가 먼저 이득을 챙깁니다!”
픽이나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강한 타이밍은 반드시 있다.
그 순간이 많냐, 적냐가 강팀과 약팀의 차이다.
“여전히 트릭스터가 힘이 좋긴 하거든요. 하지만 비예고에 발맞춰 기동성 좋
은 탈리아가 합류해주고 있습니다. 셰나탐이 한 번에 터지지만 않으면 유지력
이 좋아요. 잘 버텨냅니다.”
하지만 FWX에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아는 내가 있다.
“하지만 라인전에서 강한 챔피언으로 조합을 구성한 트릭스터에는 CC기가 부
족합니다. 이게 만약 꼬이게 된다면 반대로 뒤집으려고 할 때 손을 들 만한
챔피언이 없죠.”
“봉구 형. 탑 조심.”
“오케이.”
문봉구는 잠복했던 비예고의 칼 끝이 보이자마자 스킬 한 번 던져보지 않고
바로 점멸을 썼다.
- ???
- 반응을 한거냐 그냥 놀라서 누른거냐??
- 평소 하던거 생각하면 걍 쫄플 아님?ㅋㅋㅋ
- 심신미약 탑ㅋㅋㅋ
“형이 방금 예성이 한 번 살렸어요.”
“탑. 캐리.”
상대의 턴을 뺀다.
시간을 버는 것은 문봉구와 내 역할이다.
적을 조바심나게 만들어야한다.
잡을 수 있을 것같은데, 닿일듯 말듯.
“팬시 선수가 이렇게까지 감이 좋은 선수였나요? 점점 더 회피 능력이 올라가
는 것 같습니다!”
“거의 빛과 같은 속도의 점멸이었죠?”
“권건 선수의 동선도 정말 화려한데요?”
“비예고, 집 타이밍! 권건 선수가 상체 쪽으로 자연스럽게 카운터 정글링을
들어가고 있습니다! 캠프를 꽤 착실하게 챙겼죠.”
“아까 미드를 찌를 때 르블란의 점멸을 뺐던 게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
보다 카사딤도 무난하게 성장하고 있어요. 역시 라온 선수답습니다.”
“벌어지고 있던 골드 차이가 어느 순간 멈췄어요. 이거 분위기가 이상한데요?”
“분명히 트릭스터가 라인전 구도도 유리하고, 체급도 더 높은데 FWX가 싸워주
질 않아요! 욕심도 안부립니다!”
“이렇게 되면 트릭스터가 좀 답답하거든요? 트릭스터가 분명히 강한 조합은
맞지만, 뚜렷한 이니시가 없어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아요.”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좋은 타이밍을 노려 또다시 용을 가져가는 FWX! 그 사이 팬시 선수가 전사하
고 맙니다!”
“대각선의 법칙이죠? 이렇게되면 트릭스터가 전령을 챙길텐데요.”
“트릭스터는 FWX가 무한정 누워있게 두지 않을거거든요. 그러기위해서 빨리
타워를 깨야합니다.”
“아, 바텀에서 킬 교환!”
“미드에서도 교전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손실을 최소화하면 된다.
조금씩, 조금씩.
숨을 죽이고.
적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시간을 벌어준다.
“탈리아, 탈리아! 아아아아! 오우! 권건 선수! 위험할 뻔 했지만 무사히 빠져
나갑니다! 놀라운 드리블!”
그러면 조금이라도 팀원들이 누워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각 정글러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교전! 한 대씩 주고 받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때려 잡았다.
골리앗은 스스로의 덩치와 힘을 믿고 자신만만했고.
다윗은 이런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타워 상황은 FWX가 좋지 않습니다만, 각 팀의 정글러들은 상당히
잘 컸습니다!”
“서로 용과 전령을 나눠먹고 있죠. 각 팀의 방향이 확실합니다.”
아무도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압도적인 스펙 차이.
“냐르, 냐르가 사이드에서 쫓깁니다!”
“비예고가 너무 강해요!”
“곧 분노 풀려요, 조심해야합니다 팬시!”
하지만 승부를 걸 최고의 적기는.
상대가 자신의 힘을 믿고 방심하는 순간이다.
“어!”
“탈리아! 탈리아! 탈리아가 옵니다! 빨라요! 빨라요!”
“탈리아의 궁극기 드리프트으으!”
멀리서 함성의 진동이 전해져온다.
“바위술사의 벽! 즉시! 냐르의 궁극기가 연계됩니다!”
“오우!”
“데미지를 입긴 했습니다만 상당히 잘 컸습니다, 비예고! 비예고! 비예고가
빠져나갈 수 있나요?”
안개가 펼쳐진다.
거인같았던 비예고의 모습이 사라진다.
“난 빠진다, 빠진다, 빠진다! 죽것다, 죽것다!”
“오케이.”
“셰나 궁 지원 돼! 왼쪽? 오른쪽?”
“역주행. 왼쪽.”
안개 속에서 전해져오는 승리의 감각.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뚜렷하다.
#
- 느낌 쎄하다
ㄴ 왜 헤매고 있냐? 걍 타워치고 끝내지
ㄴㄴ 이니시가 없음
ㄴㄴ 패배각 날카롭다ㅋㅋㅋㅋ
ㄴㄴ 억까 자제좀ㅋ
ㄴ 아무리 그래도 바텀 CS차이가 있으니까 ㄱㅊ
ㄴㄴ 그렇긴한데 셰나 존나 불편해
ㄴㄴ 약팀한테 셰나 왜 줌? 굳이
ㄴ 지금쯤 게임 끝나있을 줄 알았는데
ㄴㄴ 글게; 왜 안 터졌지
ㄴ 카사딤 왜 안뒤졌어 다이브 안함??
ㄴㄴ 카사딤 존나 눈치 빠름 개 쌉고수인듯ㅋㅋㅋ
ㄴㄴ 라온 좀 하네
ㄴㄴ 유마 말고 노틸하지
#
FWX가 만들어낸 뜻밖의 장면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여태껏 받아치기만 하던 FWX가 고개를 들었다.
권건의 탈리아가 만들어낸 지형지물, 그리고 문봉구의 연계.
“아아아아아아!”
“셰나가 궁극기까지 얹어주면서! 탈리아가 끝까지 비예고를 추격! 잡아냅니
다! 제압골!”
“어후! 냐르는 또 살았어요!”
“대단히 좋은 플레이! 냐르와 탈리아의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공기가 바뀌었다.
“어느새 이렇게 됐죠? 지금 잘 큰 탈리아가 딜이 살벌한데요?”
“너무 무서워요, 눈 마주치면 안돼요. 한 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호로록
잡아먹힙니다!”
“라인전만 봤을 때 손실이 꽤 컸는데 그 부분이 점점 메워지고 있어요.”
뭔가 잘못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라인전에서 고개를 숙이고 맞기만 하던 냐르가 손끝에 박힌 가시같다.
라인을 버리더라도 로밍을 갔어야했나?
“서부의 지배자, 트릭스터! 흔들립니다. 점점 위협이 다가오고 있어요!”
“탈리아가 꼭 라이너같은데요. 지금 사실상 탈리아가 본대입니다!”
카사딤과 셰나가 불편하다.
설마, 혹시.
패배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스친다.
“아.”
트릭스터의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딜 너무 센데?”
“탈리아 배제하고 싸움 볼 수 있게 노력하자.”
“궁 뺄 수 있겠어?”
“사이드 압박 해보면 될 것도 같은데. 이제 냐르도 템 좀 나와서 불편하네.”
“카사딤 저거 완전 농사꾼아니야. 강제 한타 고?”
“아냐. 그거 아닌 것 같아. 우리 이니시가 없어서 계속 거리 유지하면서 포킹
해.”
“교전 만들어봐. 나 궁 지원돼.”
“엄청 안 싸워줘. 궁 아껴두는 게 낫지 않을까? 쟤네 게임 존나 치사하게 한다.”
“탈리아 잘하네..”
“수호 너 조심해. 이즈 노릴거야.”
“오키오키. 쟤네 곧 4용이다. 초시계 사올게.”
아까까지 말랑말랑했던 상대가 어느새 꽤 단단해졌다.
동시에 잘 큰 탈리아를 앞세워 찌르고 들어오는 공격이 꽤 아프다.
트릭스터는 FWX를 라인전에서 빠르게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아마 첫 용을 넘겨줬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FWX는 정말 필요한 게 아니고서야 안전 지역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끊어먹을 만한 거라곤 탈리아뿐인데 따라가다 보면 드리블 당하기 일쑤.
점점 게임의 맛이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