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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56화 (57/326)

056화. "5"

“여러분, 안녕하세요! FWX입니다!”

“시작됐다!”

송출되는 화면에는 ‘FWX 승리 라이브 파티 [수원 해머스전]’이라고 쓰여있다.

“인사해주세요,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봇 듀오는 유독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앞에는 초밥이 잔뜩 놓여있었다.

“오늘 경기 승리 축하드립니다.”

- ㅠㅠ요새 라이브 자주 보네요

- FWX 좋아

“오늘 소감 말해볼까요. 우리 주장, 세자 선수부터.”

전 시즌에서도 몇 번 없었던 라이브라서인지 진행자도 뻣뻣했다.

“이겨서 진짜 좋아요. 두 세트 다 따서 오늘 바로 문어 치킨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어 치킨이요?”

“이게 저희 숙소 근처에서 배달 되는 치킨집인데 개맛잇거든요?”

“근데 오늘 회식은 초밥이잖아요.”

“아.. 이게 지금 생각났네. 감독님, 지금이라도 시키면 안돼요? 문어 치킨도

해산물이잖아요.”

카메라는 집중력 잃은 곽지운을 떠났다.

“클래스 선수.”

“네네.”

“채팅창 그만 보고.”

“아.”

“초밥 뭐 좋아해요?”

“저는 생선 다 좋아해요. 제가 피쯔를 선호하기 때문에..”

“서폿 피쯔인가요?”

“네네. 그게 생각보다 괜찮은데..”

- 인증없으면 뭐다?

- ㅋㅋㅋㅋ 서폿 피쯔 보여줘요

- 클래스의 피쯔는 생선을 조와해

“그럼 팬시 선수, 팬시 선수는 오늘 회식 메뉴 마음에 드나요?”

“예, 매우 좋아요. 특히 장어가 좋심다.”

“느끼하진 않아요?”

“사실 맛은 없는디. 장어가 몸에 좋다고 허더라구요.”

곽지운이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최은호가 재빨리 입을 막았다.

이건 라이브다.

“근디 걱정이 좀 있는게.”

“뭔가요?”

“새우를 많이 먹으면 위에서 기생충이 자란다잖어요.”

“그런가요?”

“제가 새우도 좋아해가지고.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 쫌 아쉬워요.”

“봉구야. 너는 지금도 충분히 많이 먹고 있어.”

“그리고 왜, 새우 먹다보믄. 목구멍이 화해지면서 얼얼한 맛이 있잖어요.”

- ??

“그거가 기생충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허고 있어요. 제가 쫌 섬세하거

든요.”

- 우리 봉구 상남자네^^;

- 그거 알러지야 병원부터 가봐요ㄷㄷㄷ

- 유사과학 신봉자 + 진짜 병은 모름

- 고통을 모르는 탑ㄷㄷㄷ

진행자는 슬그머니 문봉구 앞에서 새우를 치웠다.

“라온 선수, 권건 선수.”

“...”

“D 점멸, F 점멸?”

“D.”

“F.”

D 점멸, 김예성의 눈썹이 움직였다.

“점멸이 왜 F야.”

“그건..”

- ㄷㄷㄷㄷㄷㄷㄷ

- 일촉즉발 싸움 직전ㅠㅜ

- F가 근본아님?

- D가 근본이죠

- 아직도 D 점멸 쓰는 분들이 계신가요?

- 튜토리얼 세팅이 D던데

“난 정글러잖아. 강타가 제일 중요한 고정 스펠이라 강타가 D야.”

“음.”

- 그럴듯한데ㅋㅋㅋㅋ

- 그저 빛빛건ㅋㅋㅋ

- 갓글러라 살았다

- 잘 빠져나가네ㅋㅋㅋ

- 라온 표정 편-안ㅋㅋㅋㅋㅋ

권건은 카메라가 가기 전에 작게 속삭였다.

“이런 논란은 다수가 소수를 배려해야 하는 법이죠.”

- 결국 F 점멸이 국룰이시다?

- 일단 얘도 고집 존나 쎔ㅋㅋㅋㅋ

- 잘하니까 괜찮아ㅠㅠ

- FWX 조와해.. ㅎㅇㅌ

#

“야! 피닉스 졌다!”

“몇 대 몇임?”

“2 대 0!”

“그럼 우리 이제 꼴찌 탈출 했심까?”

한 주간의 일정을 마친 후 주어지는 잠시간의 휴식.

하지만 모두가 연습실 옆 휴게소에 모여있었다.

이기고나니 더 연습을 하고싶다나.

“맞아! 우리 9위! 잘하면 8위도 갈 듯!”

팀원들은 아직도 목이 쉬어있었다.

어제 경기 후 신이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던 탓이다.

“건이 쟤 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 좀 봐.”

“저러고 있으면 무섭더라. 넌 안 좋아?”

곽지운과 최은호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있다.

“아니에요. 좋아요.”

대답은 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이 팀원들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계산이 안선다.

당장 다음 경기가 트릭스터 전이다.

트릭스터는 내가 몸담았던 팀 중 하나이기도 하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다.

지금 순위가 1위이기도 하고.

이 팀원들로 이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꼭 이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지쳐서 쉬려고 이 곳에 왔다.

분명히 그랬다.

트릭스터에 있었을 때도 실패했던 월챔 우승이다.

그런데 여기서 트릭스터를 어떻게 이길지를 고민한다고?

“이거 너도 먹어라.”

곽지운이 나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챙겨줬다.

“고맙습니다.”

여긴 부족하다.

미드를 빼면 선수들의 재능도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해머스도 원래 그리 강한 팀이 아니다.

하지만 트릭스터와 그 뒤에 연달아 올 스톰은 다르다.

당장 다음 경기에서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지면?

다들 좌절하겠지?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야.”

우리 팀 기존 정글러.

폴리, 윤도형이다.

윤도형은 여러 팀을 거치며 꽤 오랫동안 활동했다.

FWX에서는 곽지운, 최은호와 함께 선배 라인이었고.

“너 지금 시간 돼?”

얼굴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눈이 퀭하다.

“네.”

사실 나는 윤도형과 대화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게 아니고서야.

경기나 스크림에서도 피드백거리가 많지는 않았고 윤도형은 육체파 정글러였

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피드백룸 가자.”

나는 군말없이 따라나섰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주먹질을 하지는 않겠지?

1군 주전 자리는 꽤 예민한 문제다.

주먹질을 당한 적은 없지만 욕을 먹은 적은 있다.

내가 자기 자리를 뺏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그 선수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

팀 내 불화는 항상 골치아픈 일이다.

오늘로 깔끔하게 끝났으면 좋겠는데.

“야, 그.. 권건아.”

“네.”

윤도형은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경기 잘 봤어.”

“감사합니다.”

“하..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주먹질을 할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쉬는 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

윤도형에게는 마지막 패배 후 며칠간 휴식이 주어졌다.

완전히 멘탈이 나갔었기 때문이다.

“나, 사실 마지막 경기 때 이런 생각하면서 했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여

기서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윤도형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근데. 그래도 게임은 지더라.”

“그래도 한 세트 따냈잖아요.”

“그랬지. 그 때 알았어. 감독님이 집중해라, 집중해라 하던 게 뭔지. 나는 그

말이 게임을 열심히 하라는 뜻인 줄 알았거든. 근데 내가 몰랐던거야.”

점점 윤도형의 말이 빨라졌다.

“이 제어 와드는 누구의 몇 번째 와드일까. 서폿? 정글? 여기 남아있는 와드

시체는 뭘 뜻할까. 상대가 이걸 빼먹고 똥신으로 움직였을 때 언제쯤 우리 바

텀에 도착할까. 그 모든 것들. 우리가 몇 년씩 게임에 인생을 털어넣으면서..

배운 것들.”

이제 눈이 새빨갛다.

“다 생각하면서, 매번 다른 챔피언으로 정글 돌면서. 계속 완벽하게 해야하는

거였어. 이걸 지금 알았다고 말하는게 존나 웃기다는 것도 알아. 나는 패치노

트도 기억 못하는 쓰레기니까.”

“그렇게까지는..”

“근데.”

윤도형은 퍼즈 이슈가 떠오르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상대를 보다보니 나만 완벽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겠더라. 모든 사람

이, 모든 선수가 항상 완벽하게 살지는 못해. 정말 특별한 몇을 빼면 나머지

는 다 일반인보다는 게임에 재능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야. 그냥 노력하면서

올라가는거지.”

윤도형은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그래도 네 덕분에 은퇴하기 전에 내가 뭐가 부족한지 알았어. 고맙다. 넌 대

단해.”

여긴 피드백룸이다.

불투명한 유리벽이 있지만 방음이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윤도형은 목소리를 죽였다.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나 때문에 불편했을텐데. 미안하다.”

“아닙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좀 놀랐다.

안 좋은 일을 겪었다고는 하나 윤도형도 에고가 강한 프로게이머다.

LOS에서만큼은 하늘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도달한 랭커이고, 위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존심이 없는 프로게이머는 있을 수 없다.

나는 구간 반복을 했을 뿐 ‘진짜’ 20대 후반, 30대 이상의 삶을 살아본 게 아

니라서.

어른스러운 삶이 뭔지 정확히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회귀를 하지않은 나라도 해야할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떨떠름한 소리가 나왔다.

“어. 불편했을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 괜찮으면 형이라고 불러주고. 나 먼

저 일어날게. 세수 좀 해야겠다.”

나가려던 윤도형이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나, 아직 포기한 거 아니니까 계속 열심히 해보자.”

문이 닫히고 나는 텅 빈 피드백룸에 혼자 앉아있었다.

윤도형은 분명히 패배했는데도 좌절하지 않았다.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노력, 열정.

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팀원들은 가지지 못했을거라고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누구보다 완벽할 수 있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어느 순간 텅 비게 느껴졌던 나.

[ 인간은 참 불완전한 존재야. ]

릴리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구슬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있었다.

#

- 정글맘에안드네 : 탑 안주면 서폿 누누 박음

- TRT Gogumi : ;

- 퓨릭스터 트처 : 정인이 형이네

- 퓨릭스터 트처 : ㅋㅋ 안주지 내가 탑할건뎅?

솔랭에서 오랜만에 만난 트릭스터 사람들과.

- 정글맘에안드네 : ㅇㅇ

진짜 누누를 박아버리는 유니버스 탑, 최정인이다.

- 퓨릭스터 트처 : ;;그냥 한 소리였는데;;

- 정글맘에안드네 : 어쩌라고

- TRT Gogumi : ;; 양보 좀 하지

- 퓨릭스터 트처 : 내가 서폿할게 형 걍 탑 누누라도 해

- 정글맘에안드네 : ㅇㅇ

- 퓨릭스터 트처 : 어차피 우정권임ㅎ

- 정글맘에안드네 : 아

문득 생각났다.

지난 번 방송할 때 최정인이 나에게 친추를 걸었었다.

나는 그걸 무시했고.

- 정글맘에안드네 : ㄱㄱㅎㅇ

그래도 어지간히 내가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이 무뚝뚝하고 까탈스러운 선수는 자기 중심적인 게임을 선호하는 탑솔러다.

챔피언 자유도도 높은 편이고.

하지만 챔피언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종종 개복치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격도 똑같다.

- FWX GwonGun : 안녕하세요

- TRT Gogumi : 헐 건건 말한다!

- 퓨릭스터 트처 : 와 정인이 형 대단하다

- 정글맘에안드네 : ㅎ

단순한 면도 있고.

“친해?”

같은 게임에 걸린 김예성이 물었다.

친하냐고?

친했던 거라고 말해야할까.

“그냥 좀.”

김예성은 주포지션인 미드다.

그래도 탑으로 걸렸던 오미래가 서폿이었던 최정인과 자리를 바꿔줘서 어느정

도 정상적인 위치를 찾아 들어갔다.

- TRT Gogumi(코구모) : 하체 게임 부탁드립니다

- 퓨릭스터 트처(럭스) : 생각해봄

- TRT Gogumi(코구모) : 넌 CS나 처먹지마

- 퓨릭스터 트처(럭스) : 님도 미니언 치셈 돈오름

- 정글맘에안드네(누누) : ㅌㅅ

- 정글맘에안드네(누누) : 대답?

- 정글맘에안드네(누누) : 5

- 퓨릭스터 트처(럭스) : 조용히 있자 저 형 또 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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