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화. 베를린 장벽
“갱, 다시 갱, 또 다시 갱. 지금 친 짜오가 협곡 두목이나 다를 바 없어요.”
“간부 중 한명은 주정뱅이 떡대고 한명은 묘령의 암살자죠? 친 짜오 뒤로 도
열한 사천왕같네요.”
사실 첫 번째 전령에서 게임은 이미 넘어왔다.
상대는 위축됐다.
어쩌면 조합 구성상 좀 더 시간을 끌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감히 정글 선픽을 해?
정식 코스고 나발이고 밥상을 뒤집어버려야한다.
거기다 헤크림을 골라?
내 앞에서 ‘우리 팀 정글은 다르다’, 뭐 이런 말은 안먹힌다.
“지금 FWX 자이야는 철거반이에요. 여기저기 철거하러 다니고 있거든요?”
“예. 아.. 이거 정말 해머스 큰일났는데요.. 자이야가 철거 경력직입니다. 바
텀에서 한 번 싹 밀고, 탑 와서 밀고, 이제 미드까지 가나요.”
“이거 게임이 벌써 좀 가는데요?”
게임은 지고 있을 때 이기는 것 보다 이기고 있을 때 이기는 게 더 쉽다.
당연하다.
지고 있을 때는 두 배의 힘이 필요하다면 이기고 있을 때는 현상 유지만 해도
되니까.
라인전을 더 오래 해도 괜찮겠지만 시간상 지금 가장 이득이 날만한 선택을
이어나가면 된다.
“얘네 여기 있다.”
든든한 그라가즈로 사이드를 봐주던 문봉구가 착실하게 콜을 알린다.
“여기. 여기 징크시 본다!”
“궁 온, 나 궁 온!”
김예성은 최은호와 함께 돌아다니며 킬을 캐치한다.
“바다용 23초 전.”
이렇게 되면 게임이 좀 쉬워진다.
하지만 분명 적이 한번 더 잽을 때리러 올거다.
아마도 헤크림과 사일런트를 이용한 한타 휩쓸기.
“여기! 여기!”
“쉣. 미안, 쏘리. 내가 너 죽였네. 아.”
“아냐아냐. 아직 용 타임 괜찮아. 나 죽은 김에 와드 채워서 바로 합류할게.”
“사일한테 레오니 궁 안뺏겨서 오히려 좋은듯?”
“그건 에바야. 일단 사일 플 빠졌고.”
우리 팀에 허점이 없는 건 아니다.
동선을 예상한다 해도 내가 맵핵을 쓰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항상 완벽할 수는
없고, 팀원들의 스킬샷이나 스펠 실수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도 못 쓸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원딜이 포지셔닝 실수를 저질렀을 때 서포터가 대신 죽어주거나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건 괜찮은 팀플레이다.
팀원들은 이게 감정적으로도 훈련이 잘 되어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만큼은 다른 팀들보다 나은 부분이 있을지도?
예전, 다른 팀에서 FWX를 상대했을 때.
이 선수들은 지금보다 훨씬 실수가 많았다.
꼭 대단히 위축된 것 같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
“어? 뭐죠? 용 앞 전투를 앞두고 갑자기 탐 진치의 초시계가 빠졌어요!”
“멀린 선수의 실수가 나온 것 같죠?”
그래.
지금 상대하는 해머스처럼.
“예, 아주 종종 나오는 장면인데요. 서포터 선수들이 와드를 설치하다보면..”
- ?
- 우리 서폿 생배임?
- 아;; 다음 한타 탐치때매 졌네
- 레오니 잡을 때 썼다 치자ㅠㅠ
- ㅈㄱㅊㅇ
“서로 시야를 차지하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데요. 지금 FWX에는 레오니
가 없는 상태거든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자이야가 이번 턴에 점멸이 없기 때문에 전혀 대응을 못
할 수도 있거든요? 용 스택을 끊어야해요. 싸움은 5:4입니다, 해머스!”
“이 용은 주지 않을까요?”
“네, 지금 탑 웨이브가 들어가고 있으니 FWX도 큰 손해는 아닙니다. 용 근처
에서 시간을 끌어보려는 것 같아요.”
“용 양보해?”
김예성이 묻는다.
이 선수는 기량이 뛰어나지만 수동적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대답해 줄 필요가 있다.
“아니, 싸우자.”
“알겠어.”
“먼저 걸게. 바로 따라 들어와.”
“나도 따라간다잉.”
“형은 자이야 옆.”
우리는 한 명이 부족한 상태.
“맞네.”
“일단 상대가..아아아아아! 친 짜오, 물린.. 아니, 역으로 들어갑니다! 또 한
번 어그로를 흡수하면서 적을 반으로 갈라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진영을 흔들어놓을 스킬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
이런 진영 파괴는 만들어낸 쪽이 훨씬 유리하다.
타이밍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더욱.
“갑자기! 갑자기! 상상하지도 못한 순간 갑자기 전투가 시작됐어요! 천지가
개벽해요! 해머스의 진영이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아라가 혼령 질주로 함께 파고 들면서 메이킹! 해머스,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 위로 그라가즈의 술통이 폭발합니다! 진영이 뒤바뀌어버렸어요!”
“탐 진치가 먹어줘야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아, 징크시 살려야합니다! 살려
야합니다! 거리 유지, 거리 유지! 안돼요! 탐 진치가 멀어요, 멀어요! 아아아
아아!”
“자이야는 프리딜! 프리딜! 프리디이이일! 징크시가 제일 먼저 사라집니다!”
“등을 돌린 사일런트를, 아! 이게 뭔가요! 친 짜오가 너무 강해요! 벗어날 수
가 없어요! 궁극기를 뺏어서 써보지만 순식간에!”
- 캬;;;
- 너무 어지러워서 잘 안보여ㄷㄷ
- 짜오 장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 차가 식기 전에 적 미드의 머리를 따서 돌아오겟소
- 이걸 4:5 싸움을 걸어??? 존나 낭만이네;;
- 창 휙 휘둘러서 제치고 “다음”
- 저 새기들 겜 끝나고 부검 조져야된다ㅋㅋㅋㅋㅋ
- 어;; 뭐야;; 한타 잘하네?;;;
“네 명으로 시작한 한타지만 FWX가 뒤집어버립니다!”
도망가는 적을 처치하는 것은 쉽다.
헤크림을 놓쳤지만 뒤를 그라가즈가 쫓고 있다.
잡지 못해도, 잡아도 상관 없다.
어차피 한참을 도망다니면 타이밍이 꼬일테니까.
“한 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역으로 노렸어요! 마치 한 몸같았습니다! 소름이
끼쳐요!”
“해머스는 처음부터 진영이 붕괴되면서 한타가 시작했고! 거기에 그라가즈 궁
까지 더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있을 수가 없었어요!”
“믿을 수 없는 한타력! 이게, 이게 FWX입니다!”
“어. 싸움 다 끝났네.”
“응. 너 없어도 됨.”
“야, 원딜이..”
“구라띠.”
“근데 건이 딜이 암살자 딜인디?”
“암살자 메타인 줄 알았는데 권건 메타였구연.”
“너무 잘하고.”
“야. 깍지. 근데 우리 해머스 이기나봐.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
“이게 우리 팀인거지.”
#
해설자들은 거의 끝나가는 경기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꽤 오랜만에 일어난 업셋이었다.
특히 이번 경기 해설 로테이션이었던 남동현은 도저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
았다.
“지난 시즌에, 아니 1라운드에 비해서 FWX가 훨씬 움직임이 깔끔해진것 같아
요. 뭘해야하는지도 알고있고 목표도 뚜렷합니다. 근데 가장 대단한 건 전략
적 밴픽과 플레이 그 자체에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호평이었죠, 요즘의 FWX.”
“오늘은 한타까지 완벽했어요. 점점 더 손발이 맞아가는 느낌이 들죠. 권건
선수가 이적한지 이제 4주 정도 됐나요? 마치 4개월은 손발을 맞춘 팀 같이
느껴집니다! 정말, FWX의 시즌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팀입니다!”
FWX는 상대 쌍둥이 타워 앞에서 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권건 선수의 플레이도 그랬죠. 친 짜오를 하다보면 스킬이 상당히 직선형이
기 때문에 터널 시야가 되기 쉽거든요. 근데 역할 배분, 해야할 플레이. 전부
다 기가 막혔습니다! 꼭 신인 선수가 아닌 것 같은 노련함이 보여요!”
“정말, 이렇게, 이렇게 되나요? 수원 해머스가 만만한 팀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늘 라온 선수도 원래의 실력을 제대로 찾았습니다. 탑 팬시 선수,
바텀 세자 클래스 듀오도 굉장한 저력을 보여줬어요!”
“이거 하나하나 선수들의 장점이 드러나고 있어요. 감코진이 정말 뿌듯하겠는
데요!”
드디어 넥서스가 무너지고.
관중석에서 거센 함성이 터져나온다.
“기쁨과 환희가 느껴지는 함성이네요! 저까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아요.”
“FWX.. 드디어 이겨냈네요. 오늘 정말 중요했어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첫
기회였거든요!”
“그렇습니다. FWX 팬 여러분들께는 정말 기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 [FWX] 지금 최은호 울기 일보직전
ㄴ #역사적 #순간 #장벽 #허물어짐
ㄴㄴ ;;;6위가 베를린 장벽이누
ㄴㄴ 우리한텐 그래
ㄴㄴ 동부와 서부의 “장벽”
ㄴ 나도 좀 눈물날거같은데;;
ㄴㄴ 존나 어이없는데 나도 그럼ㅋㅋㅋ
ㄴㄴ 몇 년 동안 쟤네한테 세트 승도 거의 못해봤어..
ㄴㄴ 쟤들 너무 좋아하니까 좀 짠하다..
ㄴㄴ 이게 뭐라고 시바.. 걍 게임인데ㅠㅠ
ㄴㄴ 여태까지 가짜 게임을 했던듯.. 걍 다르더라..
“2년만에! FWX가! 수원 해머스를 상대로! 매치승을 가져갑니다! GG!”
“정말 동부의 새로운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것 같은 FWX가 울부짖습니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한동규 감독님.”
해머스의 한동규 감독이 찾아왔다.
박진현 감독은 뻔한 속셈이 보여 슬쩍 웃으며 대기실 문을 가렸다.
“어유, 아니. 뭐. 그냥. 인사나 드리러 왔습니다.”
“건이 인성 문제 없고, 저희 애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 스크림은 분석팀 쪽
으로 문의해주세요.”
한 감독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냥 뭐. 인사차 왔습니다. 사실은 좀 궁금했던 건 맞습니다.”
그래도 한 감독은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혹시 비밀 무기같은 거나. 아니면 좋은 한약같은 거라도 있는지.”
한 감독의 뉘앙스가 썩 소탈해서 박 감독은 그냥 웃었다.
악의를 가진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건 없습니다. 다 애들이 잘 해서 그렇죠.”
“그렇긴 한데요.”
“제가 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어어. 박 감독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저희는 뭐가 됩니까.”
한 감독은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였다.
“감독도 여러 종류의 감독이 있다지만, 뭐. 어쨌든 애들이 잘할 수 있는 환경
을 만들어 주는 것도 우리 역할 아닙니까? 리그 최고로 날고긴다 하는 애들만
모으면 무조건 1등할 것 같아요?”
“2등은 하겠죠.”
“아니 그건 맞긴 한데.. 어쨌든 너무 기 죽어있지 말고. 기운 좀 내요.”
“허헛.”
“참나. 진 건 저흰데. 뭐, 어쨌든 앞으로 자주 뵐 것 같네요.”
한 감독은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고 작게 속삭였다.
“스톰 2군 감독이 권건 선수 욕을 좀 하고다니는 모양이더라구요. 조심하세요.”
멀어지는 한 감독의 뒷모습을 보며 박 감독은 생각에 잠겼다.
스크림이 어느정도 무기와 전략을 감추고 싸우는 암투라면 리그 경기는 진짜
전쟁이다.
오늘 경기를 해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다.
FWX는 수원 해머스보다 강하다.
그리고 그 전쟁에, 박 감독 역시 분명히 한명의 병사로서 참여했다.
“기 죽어보인다고.”
박 감독은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가야지.”
그는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일단 하석준 그 새끼부터.”
그리고 생각보다 무서운 면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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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내심’의 박진현 감독 과감한 밴픽 전략, 업셋을 이루어내다. ]
[ (LKL 스프링) 반란은 지금부터다. FWX의 역습. ]
[ 다음 창 끝은 어디? 현 ‘1위’ 인천 트릭스터를 노리는 동부의 신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