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53화 (54/326)

053화. 밴픽의 조커 카드

“FWX가 날카로운데요. 최근 해머스에서 선호하는 공격적인 정글러들을 밴해나

가고 있어요.”

“아, 그브 밴은 정말 예리했습니다.”

“하지만 해머스도 밀리지 않습니다. 친 짜오를 선픽하면서 팀의 색을 정합니다.”

해머스와의 첫 번째 세트는 A코스인 모양이다.

“팬시 선수의 주력 무기가 나오는군요. FWX에서 그라가즈와 자르반을 가져갑

니다.”

“권건 선수의 자르반은 어떨까요? 자르반이 쉽지만 어려운 픽이거든요.”

팀이 알고 있는 것처럼 해머스는 최대한 미드를 늦게 뽑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세트는 우리가 후픽이다.

“아칼린이 밴도 픽도 되지 않았는데요! 끝까지 가져가지 않나요, 해머스?”

“네, 결국 해머스는 미드 아라를 선택합니다. 선택지가 적은 느낌이었죠."

“두 번째 밴 페이즈에서 미드 라인 중심으로 밴 카드가 투자되면서 선택권이

좁아졌네요. 바슈 선수의 이번 시즌 첫 아라를 보게됐어요.”

우리는 미드 라이너를 공략했다.

아칼린을 유도하긴 했지만 아라도 고려대상이었다.

“좋았어.”

감독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FWX는 사일런트로 마무리합니다!”

“이 구도, 어떻게 보시나요?”

“아무래도 해머스가 적극적으로 교전에 나설 것 같아요. FWX는 천천히 원하는

타이밍에 싸우면서 게임을 풀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좋습니다. 해머스가 블루 진영. FWX가 레드 진영으로 밴픽 완료되었습니

다. 경기 만나보시죠!”

#

LOS 경기는 언제나 밴픽 싸움으로 시작된다.

이 대단히 멋진 전초전은 감독과 코치들의 전장이다.

박 감독과 코치진은 항상 그래왔듯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했다.

적의 선택권을 줄이는 밴.

그리고 아군이 사용할 챔피언을 고르는 픽.

잘하는 것만 골라서 가져간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적 챔피언과의 상성, 아군 챔피언과의 조합이라는 게 있으니까.

솔랭에서야 장인챔으로도 충분하지만, 리그 단위에서는 장인챔이 잘 먹히는

경우가 드물다.

당연히 상대 역시 선호 픽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 챔피언이 주인공이 되는 조합은 팀적 부담도 크기 때문이다.

밴픽은 크게 두 페이즈로 나뉜다.

뒤로 갈수록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상대가 고른 픽에 따라 특정 챔피언이 강요되기도 한다.

가령 ‘가두는’ 스킬을 가진 챔피언을 골랐다면.

“아, 권건 선수의 자르반이 기습적인 미드 갱킹! 환상적인 타이밍에요!”

“아라가 궁극기를 사용해 빠져나갑니다. FWX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교환이죠?”

상대에게 ‘빠져나가는’ 스킬을 가진 챔피언을 고르라고 강요할 수 있다.

“하, 나 궁 빠졌다. 미드에 자르반 왔어.”

“괜찮아. 로밍 안와도 되니까 미드에서 사일만 잘 묶어놔.”

“알겠어.”

상대가 이 거래를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면.

어떻게 플레이할 생각인지를 추리할 수 있다.

“정글러가 모습을 드러낸 틈을 타 탑에서는 리모 선수가 제이슨으로 압박을

시도합니다.”

“그래도 팬시 선수의 그라가즈가 탑에서 잘 버텨주고 있네요.”

밴픽은 한 수, 한 수를 주고받는 싸움이다.

한 포지션을 먼저 고르면 다른 포지션에서는 상대 픽을 보고 고를 수 있다.

그래서 선픽을 해도 무난한 카드를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팀의 흐름과 맞으면서 카운터는 없을만한.

지금 메타에서의 그라가즈같은.

“어우, 그라가 좀 세게 맞아요!”

“그래도..오오오오! 살아갑니다. 좀 아슬아슬했죠. 잘 버텼네요! 팬시 이 선

수, 안 죽는걸로는 리그 최강이에요!”

- 팬시ㅋㅋㅋㅋㅋ

- 이게 칭찬?ㅋㅋㅋ

- 탱커 특) 팀이 이길 때 : 잘 버텨내고 있다 / 질 때 : 너무 많이 맞아서 손

해가 누적되고 있다

- 엄마 나는 커서 팬시가 될래요

바텀은 항상 중요한 포지션이다.

원거리 딜러의 다른 이름은 AD Carry.

소모 자원 없이 평타만으로도 딜을 뽑아내는 이 포지션은 적 챔피언 픽에 좌

우되는 경우가 많다.

선택의 폭도 좁은 편이거니와.

오래 살아남아 한 대라도 더 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머스에서 슬슬 바텀을 찔러보나요?”

“짜오 궁 11시 반이에요! 위험할 수 있습니다! FWX, 알고 있나요?”

그러면서도 생존력을 챙겨야한다.

그래서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는 것이 서포터다.

둘은 한 묶음이다.

해머스는 쓰리쉬로 생존력을 챙겼고, FWX는 생존기가 있는 자이야로 안정감을

만들었다.

“로칸이 징크시와 쓰리쉬를 띄우면서 순간적으로 딜로스!”

“붙어요! 짜오는 자이야한테 붙어요!”

“아아아, 깃털 총공격! 자이야가 살아나가면서 살짝 역습을 노려보지만 해머

스도 당해주지 않습니다! 쓰리쉬가 친 짜오를 랜턴으로 빼냅니다!”

“무사히 흘렸습니다. 오늘 느낌 괜찮은데요, FWX?”

“자이야의 궁극기가 빠지긴 했지만 위에서는 자르반이 전령을 챙기고 있어요.

두 팀 바텀 모두 상당히 생존력이 강한 조합이기 때문에 서로 잡아내기가 쉽

지 않죠!”

“은호가 심리전에 말렸네.”

박 감독은 여느 때처럼 피드백 내용을 적고 있었다.

“상대가 감정 표현 할 때 같이 해버리면 시야 있는 거 들킨다니까.”

약간의 디테일.

이것들이 모여 좋은 팀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감코진의 피드백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선수의 챔피언 숙련도다.

카드 게임을 하더라도 상대와 어느 정도 패의 수준이 맞아야 비등한 수 싸움

을 하는 법.

A급 카드로 SSS급 카드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팀 게임에서 선수 개개인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지만, 선수가

다루는 특정 챔피언은 수치화 될 수 있다.

모 선수의 A 챔피언은 카운터 픽을 상대했을 때도 평균 KDA나 DPM이 기준치보

다 높더라.

모 선수의 B 챔피언은 킬 기여도가 몇 퍼센트더라.

감코진이 관여하는 게임은 어디까지나 밴과 픽의 세계다.

“아니, 자르반! 지금 제가 뭘 본건가요!”

“이 선수 어떡해요! 자르반까지 잘하면 어떡합니까!”

“전설을 다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1깃 2창!”

- 믿을 수 없는 그 드리블..

- 어그로삥뽕 지리네ㅋㅋㅋ

- 왜 잘하지? 왜 잘하지? 왜 잘하지?

- !!연계소문급 연계!!

- 아니 아라 숙련도는 왜 저래 바슈 기억 잃었냐? 여기서도 잘리고싶어?

- 아라 궁이 있을 때가 없노;;

- 사일한테 궁 대주기만 하네 ㄹㅈㄷ

- 설마 오늘도? 설마 오늘도? 설마 오늘도?

그런 면에서, 권건은 드디어 FWX에 주어진 조커 카드나 다를 바 없었다.

어떤 픽을 해도 보통 이상.

아직까지 리그에서의 증명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코치진은 판단을 내렸다.

아니, 오히려 증명이 덜 되었기에 더 좋다.

“아아아! 해머스 입장에서는 자르반의 창을 부러뜨려버리고 싶을 거예요!”

“해머스의 친 짜오도 창을 들고 있거든요! 그런데 품질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단 자르반과 친 짜오의 창이 같은 대장간에서 나온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건 된다.

이제는 밴픽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

상대 친 짜오 픽 이후 시간을 끌지 않고 자르반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럼 아군의 다른 픽을 뒤로 미룰 수 있다.

동시에 상대 미드 아칼린 혹은 아라를 강요할 수 있다.

데이터가 알려준 상대 미드의 아라 숙련도는 높지 않다.

“아니, 왜 이렇게 다른가요!”

“똑같이 스킬 쓰는 건데 자르반의 창은 적을 여럿 띄우잖아요! 짜오는 한 명

씩밖에 못 띄우는데! 이럴 수가!”

- ㄷㄷㄷ 대 황 건

- 황 건 적

- 매혹을 왜 그라가즈한테 맞추고 있누

- 미드 CS 차이 ㅈ대네

- ㅁㄷㅊㅇ

- 사이드 CS 계속 타는데;; 왜 자꾸 합류하는거임??

- 궁 없는 아라 사이드 어캐 보냄;;

뚜렷한 전략이다.

밴픽으로 상대의 미드를 묶어버린다.

상대 미드가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도록.

감독과 코치들이 최선을 다해 전략의 기반을 닦는다.

이후에는 코치 박스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자르반이 모습을 보일 때마다 친 짜오도 알뜰살뜰 카정을 돌아보려하는데!”

“아, 들켰어요. 팬시가 냄새 맡았어요! 클래스 선수의 로칸이 발빠르게 합류

중!”

“애초에 강가 시야를 장악했기 때문에 눈치 챌 수 있었던 좋은 플레이였죠.

FWX의 눈이 되어줄 와드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해머스의 아자부 선수가 간신히 살아서 빠져나갑니다!”

이제 바통을 건네받은 FWX 선수들이 플레이로 보여줄 때다.

- 아 설마 진짜로 FWX한테 진다고?

- 왜 약자멸시 발동 안하냐고!!!

- FWX가 약자가 아니기 때문www

- 우리가 무려 “수문장”인데?

- 수문장 헤임달의 최후를 잊었는가..

“이번 용을 먹으면 벌써 4용인데요, 아, 해머스에서 대응을 하지 않나요? 이

걸 이대로 내준다구요?”

“일부러 4용을 내준 건 아닐까요? 장로를 소환해서 한 방을 노리는 거죠! 지

금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극복할 방법이 없어요!”

“오, 그것도 일종의 전략이 될 수 있나요?”

“사실 대형 오브젝트에 줄 건 줘 개념은 없습니다. 그냥 주면 망하는 거예요.

스펠 차이가 너무 나서 들어갈 수가 없었죠. 지금 바로 망하냐, 나중에 망하

냐의 차이죠.”

- 아ㅋㅋㅋ 그럼 왜 말했는데

- 줄 건 줘

- 넥서스도 줘

- 그냥 다 줘 ㅅㅂ

- 미드 2렙차네;; 도대체 왜 아라를 뽑은거임 할 줄도 모르면서??

- 해머스 드가자~

“아, 해머스! 부쉬에 숨어서 뭔가 액션을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손해만 봤어요! 매혹을 맞추지 못한 아라가 바로 잘리면서!”

“아아아아! 생각이 너무 많았나요?”

“징크시가 몇 대 못 때렸어요, 몇 대 못 때리고 죽었어요!”

“FWX의 작전이 기가 막혔습니다!”

“바로 밀어붙입니다, FWX!”

“이대로 밀고 들어가면? 밀고 들어가면? 막을 수 있나요? 우르르쾅쾅! 문 열

어! 문! 마구 으르렁거리고 있죠!”

“아, 결국 마무리됩니다!”

“FWX가 동부의 수문장에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첫 번째 세트에서 승

리를 따냅니다!”

“GG!”

#

“굿 잡. 이번 경기 좋았다. 특히 상대 블루 쪽 드리블로 스펠 뺀 게 좋았던

것 같아.”

박 감독님은 꽤 즐거워보였다.

이제서야 자기가 하던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인 것 같았다.

여태까지는 욕받이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을 테니까.

“다음 경기에서 B코스로 들어올까요?”

“아니, A코스 다시 갈 것 같다. 미드 픽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그럼 자르반은 밴 될 것 같고..”

김 코치님은 상대의 예상 픽을 하나하나 꼽았다.

들고 있는 노트에 적힌 피드백거리가 보였지만 세트 사이에는 아쉬웠던 플레

이에 대한 피드백을 하지 않는 편이다.

“아라 다시 한 번 유도할 수는 없는거죠?”

“아무래도 그렇지.”

김예성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충분히 보완해서 올거다. 해머스가 만만한 팀은 아니야. 다들 긴장해.”

확실히 상대의 아라 플레이는 아쉬웠다.

해머스 팬들 중에는 실망감에 응원 피켓을 내린 사람들도 있었다.

“잘 하고 있어. 봉구도 몸 잘 사려줬고.”

여기서 탑이 공격적인 픽까지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아예 해머스 정도는 상대로 고려하지도 않았을거다.

음.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따라오는 걸지도.

FWX, 상대할 때는 정말 엉망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들 열심히 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다시 경기 구역으로 향했다.

상대가 블루 진영을 선택했기에 또 다시 우리는 후픽을 가져간다.

- 박진현 감독 정신 좀 차렸냐? 오늘 느낌 좋다

- 잘하면 애들이 잘하는거지 감독이 박수치는거 말고 하는게 더 있냐?

- ;; 지면 밴픽 탓하고 이기면 선수 덕임?

- 아니 우린 평등한데? 져도 선수 탓임

- 하긴

- 하긴은 시발 감독 탓이지

- 니들끼리 의견 좀 통일하고 와라ㅋㅋㅋㅋ

감독은 종종 팀의 토템이 된다.

부스 안에 갇혀서 경기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LOS에서는 더욱 그렇다.

믿을 수 없는 픽이 등장했을 때.

이것이 설혹 선수들의 강력한 요청이었다 해도 팬들이 그 진상을 알 수는 없다.

“자르반이랑 리싱 밴이라.”

“건이 견제하네요. 좀 놀랐나보지?”

“그럼 이번에도 정글 선픽 가져갈 것 같다. 아마 헤크림 뺏고 싶겠지.”

선픽을 할 수 있는 블루 진영이 좀 더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꽤 맞는 말이다.

밴되지 않은 카드 중 한 개를 선점할 수 있다는 건 꽤 유용한 일이니까.

상대가 할 것 같은 픽을 먼저 가져올 수도 있고.

해머스는 예상대로 헤크림을 가져갔다.

“닐랴랑 자이야 살았네. 그리고 그라가즈. 어때?”

“자이야로 갈게요.

“좋심다.”

무난한 카드다.

탑 픽 카드가 적긴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위협적이지 않은데다 모두 다 밴을

할 수는 없으니 아예 밴이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요즘들어 우리 탑은 타 팀들에게서 눈치가 빨라진것 같다는 평가를 듣고있다.

최근에 점점 더 상체 쪽 정보 교류를 강화하고 있어서 그렇다.

처음에는 구체적으로 콜을 줘야했지만 이제는 핑만 찍어도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빼라, 들어가라, 먹어도 된다.

어쨌든 많이 맞아본 놈이 잘 맞는다는 말이 확실히 옳다.

그래.

이제야 팀이 좀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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