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신'인 신인
“오늘 방향성 완벽했어.”
코치 박스에서 선수들을 맞은 박 감독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호넷 애들이 그냥 대응을 못하던데. 적당히 때를 노린 것도 좋았고. 바텀도
압박 잘해줬다.”
“헤인즈? 허밍? 걔넨 원래 다 제 밑이에요.”
“예성이는 매드 무비 뜨겠더라. 요즘 하, 우리 팀 매드 무비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위클리 매드 무비에 우리 팀 영상만 있으면 다른 팀에서 견제할텐데.”
“그러니까요. 이제 원딜 매드 무비 한번 딱 찍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얘들아. 우리도 SNS에 그거 하면 되지 않겠니? 이름 위에 X 표시 하는 거.”
박 감독과 곽지운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아, 손가락 아파.”
“틈만 나면 인장질하니까 그렇지.”
“내가 뭘. 우리 팀 자랑 좀 하겠다는데. 내가 FWX고, 내가 여기 원딜인데.”
“잘했다. 우리 지운이. 네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죽이 잘 맞는다.
“그리고 건이. 고맙다.”
각 선수들을 향해 칭찬을 한 마디씩 나눈 박 감독이 권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이었다.
“이번 키포인트를 아주 잘 이해해 준 것 같아.”
뒤에 이어진 말은 작은 목소리였다.
“봉구와 예성이를 잘 돌봐줘서 고맙다.”
“별 말씀을요.”
“예성이가 자신감이 좀 붙은 것 같다. 우리 미드는 캐리롤을 맡을 때 가장 행
복해하거든.”
안 그런 선수가 어디있겠냐만은.
박 감독은 어쩌면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참아준 권건이 고마웠다.
아칼린이 탑에 올라갈 때.
그 자리를 권건이 대신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보여준 실력대로라면 호넷 정도는 잘 큰 정글러 하나로도 충
분히 이길만 했겠지.
하지만 권건은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밀어줄 때는 밀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박 감독은 다시 한 번 믿어본 적도 없는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다음 밴픽말인데. 어떻게, 봉구 다시 한 번 브루저 가볼래?”
문봉구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 이제 살 떨려서 딜챔 못 드가겠어요.”
“아니야. 나, 감독은 네 플레이에 감동했다. 일부러 체력 한자리까지 내렸던
걸 알고있다.”
“감독님.. 역시 제 설계를 알고 계신거였나요.”
“그래. 좋아, 그럼?”
“그래도 안될 것 같심다.”
“오케이. 그 정도면 인정. 다른 거 하자.”
박 감독은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봉구는 돌아선 박 감독의 팔에 손을 턱 올렸다.
“우리가 준비했던 그 픽, 그걸 보여줄 때 아니겠심까.”
“아.”
둘은 마주보고 씩 웃었다.
“플랜 B! 좋아, 그걸로 가자. 우리 봉구 오늘 새콤하고 달콤하고 다 하네.”
박 감독은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 판에 아칼린으로 좋은 모습 보였으니까, 기본적으로는 밴 할거라고
봐야해. 이 다음은..”
#
우리가 준비한 플랜 B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여기 탱챔이 자신의 낭만이라고 믿는 남자가 있다.
문봉구.
“계획대로다.”
“역시 배우신 분. 진정한 탑은 앞에서 든든하게 막아줄 때 진짜가 된다.”
지극히 원딜다운 말이다.
문봉구의 플랜 B는 탑 세주아리다.
지금 메타에 딱 맞지는 않지만 나름 섬세하게 준비한 카드다.
상대가 문봉구의 오른팔인 사이언을 뺏어가면서 충분히 세주아리로 대응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조합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라인업이 결정 됩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탑 세주가 등장했는데요.”
“호넷에서는 라온 선수의 아칼린을 굉장히 의식한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전략
을 대폭 수정해왔네요.”
“탑에서는 사이언과 세주로 땀내나는 묵직한 싸움이 일어날 것 같고, 정글에
서는 호넷의 비예고를 다시 한 번 권건 선수의 리싱이 상대합니다.”
“미드는 바젤 선수의 르블란을 라온이 리산드리로. 바텀은 호넷에서 칼리, 렐
조합으로 힘을 챙기면서 세자클래스 듀오의 키이사, 노틸 조합에 맞섭니다.”
“이렇게되면 FWX의 조합이 단단하기는 하지만, 키이사의 어깨가 지나치게 무
거운 조합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죠. 딜은 누가 할래? 라고 물었을 때 손을 번쩍 들 수 있는 사람이 없거
든요.”
“반면 호넷은 좀 더 밸런스 잡힌 조합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번 경기는 어
떻게 진행될 지!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 노딜 아님?? 세주랑 리산으로 어캐 딜함
- 라온이 캐리 좀 했다고 손발 꽁꽁 묶은거보소ㅋㅋㅋ
-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 피닉스(처치 완) 호넷 (진행 중) 전팀 대상 복수 기원 9일차
- 기도메타 프붕이들 여기도 있었누ㅋㅋㅋ
- 딱봐라 세자가 원딜캐리해줌
- 응 뒤주 안에 갇혔어~
- (절규하는 이모티콘)
정글러는 다른 포지션과 다르다.
내가 이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정글러는 복지사고, 선봉장이며, 투자자라고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정글러가 언제나 라이너를 위해 희생해야하는 건 아니다.
그건 가끔으로 충분하다.
나는 프로게이머이기에 앞서 게이머다.
게임을 할 때는 모름지기, 내가 주인공이어야하는 법이다.
“탑에서는 땀내가 나는 신경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래도 서로 킬은
나오기 힘든 구도죠.”
“네, 아직까지 두 팀 모두 순조로운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FWX의 조합
이 코스트에 비해 리턴이 큰 조합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인데요.”
“그래도 조금씩 리싱이 비예고의 정글을 털면서 일단 안정감있어 보입니다.”
호넷은 전 판의 핵심 픽을 아칼린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밴 카드에 넣은 것은 내가 지난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헤크림.
그럼 내 리싱은?
대머리가 외면받는 세상은 너무 가혹하다.
자기 PR은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잠깐만요, 아! 비예고와 눈이 마주친 리싱이 거침없이 추격합니다!”
“세모 선수의 비예고가 쭉 밀려나고 마는데요! 굉장한 기 싸움이네요!”
우리 팀의 주인공은 키이사다.
그래.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럼 조연은 누구일까?
아마 리싱일 것이다.
근데 이런 각본은 어떨까.
“방금 전 싸움에서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비예고가 물러난 게 뼈아픈 것 같
아요. FWX에서 무사히 용을 챙깁니다!”
눈도 보이지 않는 대머리 무술인이.
“이번 턴에 FWX가 전령으로 향하나요? 호넷, 안됩니다! 드래곤에다가 바로 전
령까지 패키지로 선물하는 건 금기예요!”
“이럴 수는 없어요. FWX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 싸워볼만 하지 않나
요, 호넷?”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어요! 자리 선점은 FWX 쪽입니다!”
“각 팀 바텀까지 합류를 위해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포터들은 모두 6
레벨이 되지 않은 상황!”
“지금 르블란은 발언권이 강합니다. 팀원들이 오기 전까지 툭툭 찌를 수 있거
든요.”
자신의 힘이 세상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어우, 르블란이! 세주아리 아파요! 아직까지는 단단하지 않습니다, 스킬 콤
보 한 번이면 허리가 훅훅 꺾여요! 탱커의 길이 이렇게 험난..”
“어? 어! 어어어어!”
“아아아아앗!”
힘을 숨긴 경우.
“리이이이이이싱! 권건 선수의 리싱이 벼락같이 달려들어서 르블란을 특급 배
송 해버립니다!”
“방금 뭐죠? 순식간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어요!”
“르블란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끊겼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르블란이 시간을 끌어보려던 게 독이 된 것 같아요!”
“이건 리싱의 로망이에요! 정글러의 로망입니다! 얄미운 르블란에게 일격을
날려줬죠!”
“혹시 르블란에게 원한이 있으신지?”
“리플레이 나오나요? 다시 보니 바위게를 타고 와드 방호와 점멸까지 사용해
서 르블란이 돌아가는 위치를 노렸어요!”
“이게 설계가 가능한 플레이인가요!”
“바위게의 무빙을 컨트롤 할 수는 없으니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젠 된 바
위게를 일부러 살려둔 것 같아요! 무서운 플레이입니다! 이 짧은 순간에, 이
렇게.”
“이건 르블란이 방심했다고 보기 어렵겠는데요! 와, 사실 몇 번이나 다시 보
고 싶은 플레이에요!”
- 멀 본거지
- 저게 되냐????
- 존나 느리게 봐도 모르겠다 무술인임?
- ㅆㅂ 이게 1티어 손가락?
- 리싱 마렵다;;
- 바위게는 최강이다 권건은 신이고ㅋㅋㅋㅋㅋㅋ
- 얼음땡 콤비ㅋㅋㅋ ㄹㅇ 도망갈수가 없자너 세주 리산ㅋㅋㅋ
“결국 호넷이 물러납니다. 이건 퍼블로 끝날 득점이 아니에요!”
“무사히 전령을 마무리한 FWX! 리싱의 슈퍼플레이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이
건 정말 심상치 않아요!”
조합이 항상 원하는 대로 풀리는 건 아니다.
이번 게임도 그렇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우리 조합 중 상당수가 궁극기를 누르면 되는 조합이라는 거다.
“이번 용 턴은 FWX가 양보하네요. 현명한 선택이에요.”
“세모 선수의 비예고가 라온 선수를 위협해봅니다만 무사히 빠져나갑니다!”
“미드는 어지간하면 사고가 날만한 구도가 아니라서요. 이제는 르블란도 쉽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상대는 리산드리에요!”
“슬슬 굴러가는데요? 처음에 용과 전령을 모두 줘버린 게 아쉽습니다. FWX의
빨간색 시야가 앞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아! 렐, 들켰어요!”
“음..파! 음파가 들어가면서 렐의 스펠이 모두 빠집니다! 이러면 한타 부담감
이 가중되죠!”
리싱은 정글 클래식이다.
하지만 리싱에는 재즈 힙스터같은 맛도 있다.
“곳곳에서 발생한 교전에서 패전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호넷!”
클래식과 힙스터의 조합이라니.
얼마나 완벽한 챔피언인가?
“그래도 호넷이 들어가는 이니시에서는 훨씬 강점이 있는 조합이에요! 장점을
살려야합니다! 점점 더 압박이 커질 수 있어요!”
“하지만 상대는 들어가기에는 무서운 조합이에요. 일단 들어간 사람은 절대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아주 지옥같은 조합이죠!”
“아, 네! 지옥이요! 호넷 선수들이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 눈치를
보고 있네요. 그래도 주먹 꽉 쥐고! 다시 싸워야합니다. 용을 이대로 내줄 수
는 없어요. 이걸 먹게 되면 벌써 3용 째입니다!”
“호넷! 살짝 겁을 먹은 것 같은 움직임인데요, 아!”
“용 앞 싸움에서 리싱이 엇박자로 음파를 맞추면서 싸움을 겁니다!”
리싱이 특유의 리듬감을 한번 타기 시작하면.
상대의 호흡을 빼앗아올 수 있다.
바로 이 맛이다.
“아아아아아! 리싱 킥! 완벽한 에어본이에요! 사이언을 앞세우던 호넷의 딜러
진이 허공에 뜨고 맙니다!”
“리산드리와 세주아리가 그대로 묶습니다! 여기가 아이스링크장인가요!”
“궁극기로 따라붙은 키이사가 뚜루루루루루! 평타! 이건 너무 치사하잖아요!
칼리스터는 한 번에 한 발씩 밖에 못 때리는데! 마무리에 완벽한 원딜러입니다!”
“이니시는 누가 해! 리싱이 합니다! 어그로는 누가 끌어! 리싱이 합니다! 딜
은 누가 해! 리싱이 합니다!”
“우리 팀에 딜이 없어?! 그럼 상대 딜러를 죽여버리면 돼! 호넷의 딜러진이
물리면서 시작하면 결국 호넷에도 남는 건 사이언 뿐이거든요!”
“우리가 리싱 매드 무비를 보고있는건가요!”
“이러면 템포가 확 빨라집니다! 너어어무너무! 무서운 조합이에요, FWX!”
- 아까까지는 똥망 조합이라고 말하던 사람들
- 코스트가 어쩌고~ 딜은 누가 어쩌고~
- 리싱이 존나 만능 열쇠네ㅋㅋㅋㅋ시발
- ㄹㅇ 겨울왕국 조합 개사기ㅋㅋㅋㅋㅋ
- 얘네 꼴픽만 하는거같은데 좋아보임 ㅋㅋㅋㅋㅋ
- Hoxy.. 상위권 팀들한테도···?
- 말 조심해라 기대컨 들어간다
- 호넷 캇!
“권건! 권건 선수가 상대의 박자를 완벽하게 뺏어갔습니다! 이제는 이 선수,
신인이라고 부르면 안돼요! 그냥 신이에요,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