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너네 나 못 잡아
정글러는 다른 포지션과 다르다.
특별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포지션들은 배당된 ‘라인’이 있다면 정글러는 ‘정글’이니까.
사회에서도 돌아다니는 직업군들이 있다.
선원이나 승무원이 그럴 것이며, 집배원이나 배달원 또한 그렇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이 뭘까.
대상을 그 위치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 될 수도,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정글러도 그렇다.
정글러는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가장 많은 정보를 팀원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라인마다 적절하게 밥차나 갱킹을 배급한다.
가끔은 앞에 나서서 무언가 만들어내어 아군을 키워내기까지 해야한다.
이 얼마나 이타적인 포지션이란 말인가?
정글러야말로 협곡의 복지사요, 선봉장이며.
진정한 투자자라고 할 수 있겠다.
너무 편협한 거 아니냐고?
그야 어쩔 수 없다.
내가 정글러니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돋보이지 않더라도 그렇다.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게임이 나 혼자의 매드 무비로 돌아가는 건 악수다.
그런 면에서 아칼린은 오늘의 기대주다.
블루 진영의 선픽을 투자한만큼 분명히 이익을 뽑아줘야한다.
그걸 위해서 나도 힘차게 밀어줘야 하는 거고.
하지만 상대도 그걸 모르지 않을거다.
그래서 아직까지 김예성의 아칼린은 침묵하고 있다.
“예성아 천천히 해.”
“안우진 걔 블루 먹었냐?”
“먹었던데?”
“권건 실망이다.”
“깍지야. 좀 닥쳐.”
“나는 이즈하는게 너무 귀찮아. 말이라도 해야 돼. 손 아파.”
“그럼 졔리할래? 잘하던데.”
“그건 좀.”
“곧 편해지실거예요.”
나는 김예성에게 생각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
물론 우리가 이득을 보고 있는 건 탑과 바텀이다.
이 성과는 상대를 이끌어내서 아칼린에게 킬을 먹이기 전에 부수적으로 얻은
것 뿐이다.
이 게임을 끝낼 진짜 핵심은 미드다.
지난 번 녹턴부터 시작해서 김예성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예성아. 전령 후 반 박자 뒤에 상대 탑 온다. 짜오는 궁 없고, 케낸은 궁 있
어. 적 바텀은 합류 못해. 빅터르한테 포골 뜯기더라도 탑 쪽 보면 킬 낼 만
해. 그때 은호형이 살짝 미드 봐줄 수 있으면 더 좋고. 예성이는 전령 쪽에서
리콜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탑에 합류해줘.”
“엥. 진짜? 오려나? 일단 조금 먼저 귀환했다가 살짝 미드 볼게.”
“알겠어. 탑으로.”
김예성은 생각보다 나를 빨리 인정했다.
팀원들 중 가장 내 말을 잘 믿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김예성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바로 납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수동적인 성향인 것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점점 더 신뢰는 올라가고 있으니까.
“야, 냄새 난다 이거. 온다. 오는 것 같은디. 케낸 무빙 봐라. 냄시가 솔솔
올라온다.”
“봉구형, 조심.”
나와 바텀이 귀환 후 다시 복귀 해갈 때 쯤 상황이 벌어졌다.
문봉구는 케낸 무빙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상대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보는 무빙과 모르고 보는 무빙은 많은 차이가
난다.
내 주문을 듣고 난 뒤에 보는 케낸의 움직임은 가정을 확신으로 만든다.
“야, 케낸! 임마, 니 하나 가지고는 안돼. 더 와야 된다. 야. 야야. 나도 우
리 편 있다.”
“조금만 더 빨아들여봐요.”
“오케. 야. 너 친구 데려 와. 짜오 나오라고 해.”
말을 하면 적이 나오나?
여전히 연기인지 미스일지 알 수 없을 무빙으로 문봉구의 그윈이 케낸의 스킬
을 맞고 기절까지 연계된다.
순간, 숨죽였던 친 짜오가 모습을 드러내고 접근해온다.
“나에게는! 아, 그면상이, 있단, 말이여!”
문봉구가 힘겹게 둘을 상대하며 뒤로 빠진다.
그래도 입은 여전히 살아있다.
“너네 가지고는 나 못 잡아, 어? 내가! 철벽의 문봉구라고, 어! 무빙! 무빙!”
“봉구야. 너를 철벽이라고 말하는 건 그 분께 너무 실례인 것 같다.”
“깍지형, 아. 진짜로.”
문봉구가 궁극기를 던지며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그윈의 안개가 마지막 틱이다.
살짝 거리를 유지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던 케낸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소용돌이를 뿜어낸다.
“야야, 이머전씨! 이머전씨!”
그윈이 두 번째 바느질을 맞췄더라면 좀 더 여유로웠겠지만, 어쨌든 이제 교
대 타임.
“들어갈게.”
김예성의 아칼린이 측면에서 진입한다.
이게 진짜다.
어쨌든 문봉구가 어느정도 비벼놨던 상태다.
텔이 없어 합류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칼린의 등장에 상대는 당황했다.
그리고, 김예성은 오랜만에 매드 무비를 보여줬다.
#
“와.. 이걸!”
리플레이가 나오고 있었다.
“정말 예리했어요. 의표를 찔렀습니다. 싹, 싸악! 잘 먹고갑니다! 그윈이 반
만 썰어둔 식사를 아칼린이 냉큼 먹어버렸습니다!”
“네, 와. 여기서 표창을 미리 맞춰놓고 궁극기 활용까지. 아주 깔끔한 배분입
니다! 라온 선수, 역시 육성 명문 FWX의 미드 라이너!”
- ?
- 육성 명문 (트레이드)
- 육성된 건 꼴붕이들 밖에 없구연^^
- 5년은 육성만 한 것 같은데 이쯤되면 애를 키워도 유치원을 다녔겠다
“호넷 입장에서는 케낸이나 짜오 둘 다 궁극기가 없는 타이밍이긴 했지만, 그
래도 충분히 그윈을 찌를 만 했거든요.”
“네. 최소한 스펠을 모두 빼거나 그윈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데 옵저버님께 감쪽같이 속았죠!”
옵저버는 라이브를 호넷의 시야로 송출했다.
시청자와 해설진 모두 갑자기 등장한 아칼린의 등장에 놀랐다.
그리고 그 등장이 깔끔하게 더블킬로 이어지기까지.
문봉구의 그윈은 쓸 수 있는 모든 것이 빠졌지만 또 다시 살아 나갔다.
리플레이가 끝나자 선수 캠 화면이 나왔다.
화면을 가득 메운 것은 득점한 김예성이 아니라 살아서 도망친 문봉구였다.
문봉구는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주먹을 흔들고 있었다.
“으하학! 너네 나 못 잡어! 이 녀석덜아! 나는 무적이다! 권건은 신이고!”
그리고 신나게 웃는 문봉구의 팀 보이스가 라이브로 송출됐다.
“와우.”
“하하. 팬시 선수가 상당히.. 대단하네요.”
“이번에 살아간 것도 좋았죠?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
운찬 FWX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완전히 흐름을 탄 것 같네요!”
- 저 새낀 뭔데 왜 맨날 피 1로 살아가는데ㅋㅋㅋ
- 존나 많이 맞아봐서 그럼 ㅋㅋㅋㅋ 권능임ㅋㅋㅋㅋ
- 주먹을 뻗지는 못하는데 죽기 직전까지 맞는 건 잘함ㅋㅋㅋ
- 한 건 없지만 일단 나 못잡아 ㅇㅈㄹㅋㅋㅋㅋㅋ
- 킬 낸 건 라온인데 왜 건건신ㅋㅋㅋㅋ
- 웃음벨이네 문방구ㅋㅋㅋㅋㅋ
- 명예 원스 소속 팬시ㅋㅋㅋ 말투 구수허다ㅋㅋㅋㅋ
“어쨌든 방금 리플레이에서 알 수 있었던 건, 아칼린이 귀환을 연기하던 순간
이쪽에 있던 와드가 딱 사라지는 시점이라는 겁니다! 저희도 감쪽같이 속았죠!”
“어떻게 이 타이밍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한 거라면 아주 교묘했죠. 누구
의 판단인지 궁금하네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걸지도요! 호넷에서 바텀에 배팅을 했던 것처럼 FWX
도 탑 쪽에 배팅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번 투자는 확실히 성공입니다!”
“그렇군요! 이제 전황은 FWX 쪽으로 유리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네! 가장 중요한 점은 아칼린이 킬을 먹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냥 아칼린과 킬을 먹은 아칼린은 아예 다른 챔피언이라고 하죠. 그런데 지
금. 데스도 없이 더블킬을 먹은 아칼린? 이거 못 막습니다.”
“확실히 많이 굴러간 느낌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던 글로벌 골드도 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묵직한데요!”
FWX는 미드 타워에 전령을 사용하며 착실하게 운영 게임을 시작했다.
“아직 라인전을 끝내고 싶지 않았던 바텀인데요, 아! 아쉽게 포탑을 내주고
맙니다!”
게임이 쉬워졌다.
“권건 이 선수가 리싱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었죠?”
“맞습니다. 아까부터 정말 날랜데요..”
해설진들이 약간 소강 상태로 접어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
호넷의 선수들은 밀리는 것을 느꼈지만 괜찮은 텐션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
었다.
“홀리 쓋. 갈 데가 없는데. 오늘 이상하게 말리네.”
“침착하게.. 침착이 안되네. 침착 들걸.”
“와. 아칼린 밴 할 걸. 마크 될 줄 알았는데.”
“지운이 형 때려줘야되는데. 아, 바텀 조합도 때려주는 거 했어야 했다.”
“나도 그럼. 왠지 지운이 형만 보면 좀 때려주고 싶지 않아?”
“완전 인정. 지금 이즈 무빙하는 것 좀 봐. 패면 패는 대로 다 맞아줄 것 같음.”
“낚시하는 거 아니냐?”
“쟤는 원래 좀 그래. 원래 까불어.”
대부분 곽지운과 친한 호넷의 선수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반쯤 포기하면서 다음 세트 전략을 짜는 선수들도 있었다.
일단 이번 메타에서 아칼린이 크기 시작한 이상 악몽이나 다를 바 없다.
이미 넘어간 게임에 너무 매달리게 되면 다음 세트를 버틸 정신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조금 내려놓고 다음 세트와 그 다음 세트를 연달아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 계획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지만, 생각이라도 해야했다.
“더 못 다가오게 살짝만 들어갈게.”
탐 진치가 앞장서며 견제를 시도했다.
그리고 잠수했던 탐 진치가 다시 올라오기도 전에.
징크시는 탐 진치보다 훨씬 앞쪽으로 튕겨나가 있었다.
반드시 지켰어야 할 호넷의 원딜이 FWX 선수들 방향으로 예쁘게 배달된다.
뒤에서 나타난 것은 여태까지 숨을 죽이며 충실하게 팀 중심으로 플레이했던
권건의 리싱이었다.
“어!”
“아, 이거 뭐야! 벌써 뒤에 왔었네! 여기 우리 집인데!”
찰나였다.
징크시를 재빨리 탐 진치가 삼켜주며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
은 탐 진치 뿐이었다.
“야발. 띵똥, 배달의 주문.”
“쉣. 리싱 장인이었구연.”
바텀 듀오인 목해인과 허민기는 가볍게 투덜거렸다.
1차 타워가 밀리긴 했지만 미드에 서있었던 그들이었기에 방심했다.
나름 시야를 잡아뒀지만, 방금 상대 칼마가 렌즈로 훑고 지나갈 때 바로 사각
에 붙어 들어온 모양이다.
맞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미드를 지키던 원딜이 죽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그리고 서포터 허민기가 입을 연 순간.
“아.”
번개같이 나타난 아칼린에게 탐 진치 역시 사라졌다.
“저런. 역시 의리 듀오.”
이후는 암살자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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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경기 보고 계신 분들 계신가요?
ㄴ 찌세 어르신 오셨습니까
ㄴㄴ ㅈ목 밴
ㄴㄴ 다죽어가는 게시판 살려놓은 형인데 이 정도는 이해 좀 해주자
ㄴㄴ 여기는.. 갬성이 다릅니다..
ㄴㄴ 유입인가봄ㅋㅋㅋㅋ 여기 활동하는 사람이 워낙 없었어서ㅋㅋㅋ ip추적
쌉가능ㅋㅋㅋ
ㄴㄴ 강제 친목 ㅈ대네;
ㄴ 오늘부터 권건은 행운 토템 해주기로 했다
ㄴㄴ 나오는 경기마다 잘 풀리누;;
ㄴㄴ 오늘은 좀 순한 맛이던데ㅋㅋ 라온한테 버스탄듯??
ㄴㄴ 겜알못 어서오고ㅋㅋ
ㄴㄴ 담 판에 “해 줘”!
ㄴ 우리 방구 행복LOS하는거 봄?
ㄴㄴ ㅋㅋㅋ개쪼갬ㅋㅋㅋ
ㄴㄴ 나는 무적이다ㅇㅈㄹ
ㄴㄴ 썩은 얼굴로 처맞다가ㅋㅋㅋ 권건오면 꼬리흔들고ㅋㅋ
ㄴㄴ 보기 좋더라
ㄴㄴ 그러게.. 나도.. 그랬는데..
ㄴㄴ 우리도 사실은 행복하고 싶었어..
ㄴㄴ 방구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