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화. 팀 FWX
복권은 합법 도박이다.
복권을 살 때 1등이 당첨될 것을 기대하고 산다면 대개는 큰 실망을 하고 만다.
그저 한 주를 보낼만한 작은 희망과 소액의 당첨금이라도 얻어냈을 때의 기쁨
정도가 복권에 기대할만한 결과다.
하지만 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기대감은 이것보다 크다.
이번만큼은 다르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복권 산업을 유지시킨다.
신인 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신인, 혹은 그에 준하는 선수들은 복권이라고 불린다.
환경에 따라 그 결과가 바뀔 수도 있으며, 개화 시기가 언제인지도 알 수 없
지만.
그 때가 우리 팀에 들어 왔을 때이기를 바란다.
모든 구단과 팬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 복권 1등 당첨됐다.fwx
ㄴ 관전방에서 보던 그 감동, 그대로.
ㄴㄴ 관전방 링크 좀
ㄴ 뽀보스 선정 “최고의 경기”
ㄴㄴ 아! 어제 경기 보셨구나!
ㄴㄴ ㄹㅇ 깝치다가 피닉스가 개쳐맞는거ㅋㅋㅋㅋ
ㄴㄴ “500 세트 당 한 번 터지는 뽀록”
ㄴㄴ 꿀잼 경기라고 소문이 났더군요 보지는 않았습니다^^7
ㄴㄴ 타팀팬인데 재밌긴 했음ㅋㅋㅋㅋ
ㄴㄴ 필립새기 픽 너무 개같이해서 진거임
ㄴㄴ 그래서 결국 지셨다구요? 아ㅋㅋㅋㅋ
ㄴ 권건 진짜 너무 잘하더라
ㄴㄴ 릴리야 대 헤크림이 그렇게되는 구도인가?
ㄴㄴ 걔가 잘한거
ㄴ 이대로만 가자 FWX!
ㄴㄴ 솔직히 좋아보이긴 하더라 FWX가 가능성이 없는 팀은 아니니까
ㄴㄴ FWX가 2라운드 전승하는거 아님?
ㄴㄴ 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 좀
박진현 감독은 오랜만에 커뮤니티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덮었다.
질 때는 애써 보지 않으려던 사이트다.
기분이 남달랐다.
“이겨버렸어.”
경기 피드백을 모두 마친 뒤 감코진은 간단하게 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고작해야 한번의 승리였지만 그들에게는 의미가 컸다.
“우리가 신인 선수로, 시즌 첫 승리를 챙겼다고.”
“이게 뭐라고. 고작해야 한 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어려웠을까요.”
“마음 고생 많았다. 모두들.”
박 감독은 최수철과 김한빛 코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진짜 터널같았는데..”
“연패할수록 뭘 해야할 지 알 수 없게 되니까. 우리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
겠고. 게임이랑 똑같지 뭐.”
김 코치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 감독님.”
“한빛이. 왜 그래.”
“사실, 저는. 또. 순우처럼 될까봐. 그게, 그게 너무 걱정이 됐어요.”
“순우..”
박순우는 몇 해 전 그들에게 왔던 ‘복권’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FWX에 다가왔던 스무살의 유망주 박순우는 리그에 적
응하지 못했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첫 경기 후, 입스에 우울증이 겹쳤다.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하고 붙임성 있었던 성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예
민하고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코치진은 물론 심리상담사, 정신과까지 동원해 최
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박순우의 부모님이 직접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과정 중에 박진현 감독은 뺨을 맞기까지 했다.
이건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탓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선수를 복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2군이라는 요람에서 선수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이는.. 정말.”
“눈물나게 고맙지. 그냥. 다. 우리 모두 다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정신 차리자구요.”
“우리가 선수들을 실망시키면 안될테니까.”
“다시 한번, FWX. 파이팅!”
“파이팅!”
#
“와우.”
휴식 시간에 이유찬과 정일도, 이지호를 만났다.
“1군 선수가 되면 잘생겨지는건가?”
“지호야. 건이 형은 원래부터 잘생겼었어. 너랑 다르게.”
“일도 형 말하는 싸가지 좀 봐. 차니 형!”
“우리 뭐 먹을거임? 시켰어?”
셋은 부쩍 친해진 모양이다.
“우리가 돈 모아서 이거 사왔어. 첫 승리 축하해.”
일도가 작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안에 든 건 작은 여우 얼굴 패치가 붙어있는 가디건이다.
“고마워. 연습하느라 바빴을텐데.”
“일도 형이 알아서 했어. 저런 거 좀 안대. 집 잘 사나봐. 나였으면 갓수한다.”
"그런 거 아니래도."
일도가?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방귀쟁이 이유찬이나 자취생이었던 이지호가 고를만한 선물은 아니다.
우리는 식사 겸 시킨 메뉴들을 늘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2군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창민은 유니버스 아카데미 시절, 유스 팀 아이들에게 해코지한 일들이 조금
씩 양태진 감독님의 귀에 들어갔는데 그 내용을 전면부정하면서 갈등이 있었
다고 한다.
FWX는 고전적인 스포츠맨십을 중시한다.
이걸 계기로 새로운 아카데미 출신 미드 라이너가 추가 영입됐고, 다행히 이
친구가 신인 정글러 장한울과 꽤 죽이 잘 맞는 사이라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1위였던 순위는 점차 떨어져 3위에 있었지만 상위권을 굳히는 것은 어렵지않
아보였다.
그 중심에는 위닝 멘탈리티를 품은 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형,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내가 고민 상담 해줄게."
“지호야. 너나 잘하는 게 먼저 아닐까?”
“일도 형은 진짜 꼰.”
"프레임. 곤란."
한참 수다를 떨던 지호와 일도는 먼저 자리를 떴다.
“건아.”
“왜.”
“나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
“난 언젠가 너와 자리를 다투고 말거야.”
응?
정글러로 포지션 변경을 하려고?
이유찬이 정글을 돈다면 아마 그건 내가 본 최악의 정글이 될거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갈 때까지.”
도대체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그래.”
LOS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유찬이다.
멍청이같으니라고.
그래도 눈빛만큼은 진짜다.
뭐, 썩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다.
#
이번 리그의 중간 패치가 적용됐다.
이전까지 완전히 원거리 딜러 중심이었던 리그의 메타가 변했다.
리그에는 실제 서버보다 조금 느리게 패치 버전이 적용되는데, 이번 버전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AP 암살자 효율 극대화.
이전까지 미드 라이너들의 픽이 지겨울만큼 오리안느, 빅터르를 비롯해 죠이,
신드리 정도나 간간히 나오던 걸 생각하면 팬들이 환호 할 만한 메타다.
강력한 딜과 놀라운 피지컬의 매드무비는 LOS 리그의 재미니까.
그렇다고 원딜 캐리 메타가 약화된 건 아니어서.
일종의 총력전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칼 대 칼의 싸움.
이런 메타 변화가 있는 사이.
2라운드 첫 번째 경기의 주전은 윤도형으로 결정됐다.
별로 불만은 없다.
사실 이번 선발 결정도 다소 급하게 정해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도 첫 세트에만 내보낼 생각이었을 것 같은데 경기가 잘 풀리다보니.
내 플레이 스타일과 챔프 폭을 팀원들과 맞추는 조율 기간 역시 필요했다.
이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라운드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예전보다 LOS 리그가 커져 다양한 서브 리그로
일정이 빡빡해지다보니 같은 주에 경기가 진행된다.
피닉스전에서 보여줬던 내 모습은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한 모습.
그리고 윤도형은 수비적인 스타일이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시간도 벌 겸 더블 스쿼드의 가능성을 내비치고자 했다.
언제 조커 카드를 등장시킬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타 팀에게 주겠다는 전략인데.
믿어 줄 팀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경기 결과가 너무 차이가 나서.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윤도형에게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내부적으로 이미 스크림은 나에게 몰리고 있었으니까.
“잘 할 수 있겠어?”
“아마도요..”
윤도형은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다음 경기를 윤도형과 함께 뛸 것이라는 말에.
“아이고. 도형이랑 하믄 내가 또 든든하게 가주야지.”
탑인 문봉구는 다시 탱커를 연습했고.
“...”
김예성은 별 말도, 표정 변화도 없이 그냥 무난한 정석 AP 챔피언을 연습을
이어갔으며.
“나 진으로 꿀 빠니까 개좋던데. 야, 도형아. 너도 캐리챔 좀 해서 나 버스
태워주면 안되냐?”
“깍지 넌 좀 닥쳐. 도형아. 천천히 짜보자. 건아. 나 뭐 연습해둘까? 형한테
말만 해줄래?”
바텀 듀오인 곽지운과 최은호는 사람을 비사회, 사회적으로 나눠둔 것 같았다.
“FWX, 화이팅!”
“할 수 있다!”
“윤도형, 화이팅!”
#
[ 1라운드 전패 마감을 간신히 면한 “FWX”, 또다시 "도돌이표"? ]
2라운드가 갓 시작한 지금, LKL에서 가장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팀이
있다.
바로 FWX.
1라운드를 전패할 뻔 했지만 ‘화제의 신인’을 등장시켜 간신히 이를 막았다.
하지만 새로운 라운드 첫 경기는 원래의 FWX로 돌아갔고 또 다시 패배로 출발
했다.
.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새로움과 도전적인 면모를 기대하는 팬들이 있다.
FWX의 과감성만이 그들 스스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
“음. 다음 주 경기 집중하도록 하자.”
마지막 확인을 마친 팀은 차라리 후련했다.
권건과 윤도형, 어떤 정글러를 선택할 것인가.
둘은 경력 차이도 났지만 투자한 연봉에서도 차이가 났다.
그래서 윤도형에게 기대값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박 감독은 선수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봉구야.”
박 감독은 앞에 앉아있는 문봉구를 바라봤다.
마지막 면담자였다.
“어때?”
문봉구는 박 감독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좋심다. 약간.. 신기해요.”
“뭐가 신기하니?”
“저도요. 랭크에선 여포였거든여. 근디 리그 가서 하나도 안 먹히는 거 보고
아, 내는 틀렸나보다. 이거 가짜 랭크였나부다. 이랬는데.”
“그랬는데?”
“요새 스크림도 너무너무 좋심다. 맨날맨날 탑에서 쳐맞다가 뒤에서 뿔피리만
불어싸코 그랬는데. 저, 진짜 백년만에 카뮐로 캐리했잖어요.”
“그치. 비공식 솔로킬 최강 문봉구?”
“아입니다. 전혀. 그런거는 아이고.."
문봉구는 볼을 긁었다.
"재밌었어요. 게임. 재밌드란말입니다. 건이랑 게임하모 재밌어요."
박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선수가 오더 없이도 완벽한 플레이를 할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그걸로 최고가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게임이 1:1, 3:3도 아닌 5:5이기 때문이다.
권건의 오더는 이걸 1:1에 가깝게 만들어준다.
라이너는 자신의 라인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머리 아픈 부분이 적을 수록 게임은 재밌어진다.
"재미.. 재미라."
베테랑 정글러가 선호되는 이유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맥을 대신 짚어줘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로든, 오더로든.
그런데 권건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한다.
"그렇구나. 봉구, 시간 내줘서 고마워."
"감독님. 저. 근데."
"응?"
"예성이 있잖아요. 예성이가 요즘 많이 행복해보임다. 첨부터 감독님 보고 따
라온 아였잖아요. 걔 여기서 고생만 많다가.. 건이랑 하면은 엄청 기분 좋아
하드라구요."
하고 싶은 말을 다 마친 문봉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예성이가?"
박 감독도 무표정한 김예성의 표정은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요즘 톤이 올라갔
다는 건 느꼈다.
김예성은 꽤 잘나가던 미드다.
우승 경력은 없지만 준우승 경험이 있다.
김예성의 폼도 같이 올라올 수 있다면 호재가 될것이다.
"좋아."
자리를 정리하던 박 감독은 자신의 손이 기대감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팀 전체를 감싸왔던 어둠이 걷혀나가는 것 같았다.
"건이. FWX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건.. 건이였어."
박 감독은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