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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1화 (32/326)

031화. 곧 성지가 될 글입니다

LOS를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LOS 랭킹 100위권 안에 들어간다면 슬금슬금 유명해지기 마련이지만, 정

말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수단이 필요하다.

프로게이머로서 활약을 한다던가, BJ 활동을 한다던가, 아니면 매드무비나 방

송 편집본 등으로 너튜브에서 명성을 얻는다던가.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권건은 부족한 선수였다.

아직까지는.

남동현은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현수진 해설님, 이 친구 보셨어요?”

1, 2군 경기를 모두 해설하고 있는 그는 어제 2군의 FWX의 경기를 보고나서

어질어질한 기분이었다.

와! 바텀 야라가즈 조합!

낭만 아시는구나!

2군에서는 심심치않게 특이한 픽이 나오곤 한다.

LKL에서 등장해 주목 받았던 애시 서폿이나 원딜 카시, 탑 칼리 등도 FL에서

먼저 검증을 거친 픽들이다.

메타 픽이라고 알려진 것들도 하루라도 경기를 더 빨리, 많은 팀들이 진행하

는 FL에서 먼저 쏟아진다.

일반 유저들이 하는 픽과 리그에서 나오는 픽은 다르다.

그래서 정말로 이 챔피언들이 리그 단위로 쓸만한 것인지 알기위해 해설들도

2군의 챔피언 라인업을 항상 살피고는 한다.

“어, 나도 이 선수 알아요.”

“어제 1분 45초 레드 스틸, 그거 제가 해설했잖아요.”

“어마어마하네. 나도 그거 보고 놀랬잖아. 어떻게 그렇게 간이 커? 될 사람이

야.”

“제 말이 그말이에요. 조합 진짜 재미는 있겠다 싶었는데 게임을 그런 식으로

풀어나가더라니까?”

대기실에서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은 잠시 스탭들의 이동에 대화를 멈췄다.

“권건 선수 콜업된다면서요?”

“다음 주에 1군 로스터 등록 될 것 같아요.”

“나도 좀 보긴 했는데. 어때요, 랑팡 해설님은 직관했잖아.”

“어떻냐구요?”

“응, 그러니까 1군에서도 먹힐 것 같냐는거지.”

“후.. 보통이라면 2군 선수들이 콜업되어 올라와도 잘 안풀리잖아요?”

“보통은 그렇긴 하지.. 근데, 랑팡 해설님 표정이 워낙 밝길래. 내가 잘못 생

각했나..”

“아뇨, 그런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전 권 건선수가 당장 자리를 뺏을 수

있을 것 같은 선수도 몇이나 될 거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잠깐, 잠깐. 랑팡 해설님. 멈춰!”

“앗, 제가 너무 흥분했죠.”

“네네, 그런 말을 하는 건 곤란하잖아요. 중립은 지키셔야 하니까.”

현수진 해설은 랑팡, 남동현 해설과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쓸 정도로 제법

친근한 관계였지만 그만큼 직업 의식이 투철했다.

여기서 남동현이 다른 선수들과 권건을 비교해버리면 리그의 다른 선수들에게

실례가 될거다.

물론 해설도 사람인만큼 좋아하는 포인트가 있다.

언더독, 최강, 유일, 펜타킬, 솔로킬, 역전, 포기하지 않는 선수 등 그 취향

은 다양하다.

하지만 해설가라는 직업은 그것을 어느정도 포기해야만 형평성있는 중계가 가

능한 직업이다.

아직 해설가로서의 경력이 짧은 남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오랜만에 새로운 선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뭐, 그 선수에 대

해서 알고 있는 정보 좀 있으면 공유 좀 해 주세요. 해설 할 때 참고하게.”

“저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는거죠. 후후.. 짜잔.”

남동현은 자랑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권건 선수님” 이라고 저장된 이름이 적혀있다.

“오우.”

“제가 번호를 따뒀죠. 연락만 하면 바로 받을겁니다.”

“정말요?”

“갈수록 귀해지는 번호일걸요?”

“저도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현수진이 장난스럽게 다가오자 남동현은 재빨리 도망쳤다.

“어허, 안됩니다. 안돼. 직접 얻으세요!”

#

- 동현이 형 : 안녕하세요 권건 선수?

- 나 : 안녕하세요

- 동현이 형 : 잘 있었어요?

- 나 : 네 잘 있었어요

- 동현이 형 : 혹시 제가 연습 방해했나요? 답장이 빠르시네요ㅎㅎㅎ

- 나 : 지금은 괜찮아요

- 동현이 형 : 아, 식사는 하셨나요?

이 형 뭐지.

무슨 소개팅이라도 한 사람처럼 말을 건다.

좀 부담스럽네.

왜 이렇게 날 좋아하지.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가 휴대폰을 덮었다.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권건선수, 어떤 포즈 취하실건가요?”

지금 내 옆에는 FWX 소속의 PD님이 붙어있다.

컨텐츠 촬영용이라고한다.

새로운 선수 소개 영상같은데에 쓰려는 모양이다.

“그냥 팔짱 끼고 살짝 옆으로 돌아보는 포즈 하려구요.”

“좀 더 멋진 건 어때요? 턱 밑에 엄지 검지 브이같은 거.. 잘 생겼잖아요.”

나는 그냥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 시그니처 포즈는 일단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부터다.

그 전에 괜히 눈에 띄는 사진을 찍으면 놀림당한다.

“키도 크고, 피부도 좋고. 어려서 그런가? 팬분들이 엄청 좋아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새 유니폼의 뒷면에는 GwonGun이라고 곱게 새겨져있다.

FWX는 복지에서도 알 수 있지만 대기업의 자본으로 굴러가는 구단이다.

그래서 의류 스폰도 국내 대기업 브랜드로 붙은 모양이었다.

소위 ‘잘나가는 팀’의 경우에는 초대형 외국 브랜드가 붙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의류 스폰이라는 게 팀 이미지를 말해주기도 하거든.

인터넷 쇼핑몰 비슷한 브랜드가 붙은 팀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항상 질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밀어주는 의류의 양 자

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름에 반팔만 여러장 오는 것 보다는 아노락부터 모자까지 다양하게 지급되

면 좋잖아.

내가 딱히 패션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협찬은 좋은거다.

“사진 찍고 있는 모습도 촬영할게요. 긴장하지 마세요.”

가볍게 권했던 PD님은 내게 더 특별한 포즈를 강요하지 않았다.

‘무난함’에 고개를 끄덕인거다.

이것도 팀마다 다르다.

팀별로 추구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건 모기업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예전부터 느낀거지만 지금의 팀, 파이어웍스같은 경우에는 선수들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유지하려는 데에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욕설같은 것들을 자제하게 하고 정중한 태도와 겸손한 마음가짐을 중시한다.

일종의 교훈, 사훈이다.

실제로 선수들의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너튜브 등에서 공식 이미지 메이킹

을 그런 방향으로 하면 그것이 대외적 이미지가 된다.

이런 부분은 확실히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유리하다.

성남 스톰은 욕설도 재미있게 처리하면서 유쾌함, 젊음을.

인천 트릭스터는 부드러운 최강자 느낌.

대구 유니버스는 고급스러우면서도 단단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사실 좀 부정적으로 보자면 인터넷 방송 인기 BJ, 나에게만은 따뜻한 사장님,

실적 좋은 영업맨 느낌인데 어쨌든 그런 느낌들이 있다.

그래서 너튜브 썸네일도 이런 브랜딩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럼 ‘겸손한’ FWX는?

노잼 분위기다.

솔직히 성적이 좋았던 적이 없으니 겸손함 말고 가져갈 것도 없다.

그래서 너튜브 조회수도 상당히 낮은 편이고 색다른 컨텐츠도 말랐다.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 걸지도 모르겠다.

성적 탓으로만 보기에는, 의외로 순위가 낮아도 컨텐츠는 꽤 인기를 얻는 팀

도 있으니까.

대표적인 예로 부산 호넷.

성적도 동부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팀이었고 그리 전통이 깊은 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넷의 컨텐츠는 꽤 인기가 있었는데, 여성 팬이 많기로

유명하다.

‘얼굴을 보고 뽑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생긴 선수들이 많다.

꼭 잘생기진 않더라도 최소한 옷발은 잘 받는 체격의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컨텐츠도 꼭 아이돌 컨텐츠마냥 예쁘게 잘 뽑아준다.

텍스트 편집도 지상파 수준이고.

그래서 이쪽으로 이적하게된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스토리와 이미지가 정착된다.

은퇴 후 스트리머로서의 관리 계약도 잘 구축되어있는 편이라 선수들 사이에

서도 은근히 인기가 있는 편이다.

부산 호넷에서는 항상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나에게 열렬한 러브콜을 보

내곤 했는데..

[ 프로게이머가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

‘그게 다 인기로 연결된단다. 성적이 제일 크지만, 구단 운영이라는 건 모기

업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는 거니까.’

[ 그런가, 그래도 너는 잘 생겼잖아. ]

‘...’

왠지 좀 민망해져서 나는 그냥 촬영에 집중했다.

터지는 플래시가 눈부시다.

촬영이 끝나고나면 연습이나 해야겠다.

프로게이머는 결국 실력인걸.

#

지세현은 글을 썼다.

- FWX 갤 망했냐?

꽤 활성화되어있는 커뮤니티 포털인데도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지난 이슈 이후 5분에 한 번정도 글이 올라오는 데, 지세현 생각에 이건 죽은

커뮤니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시즌 중에 5초도 아니고 5분?

말 다했다.

그래도 댓글은 달린다.

ㄴ (울고있는 동물콘)

ㄴ 버스 떠나기 전에 가세요 멀리 안나갑니다

ㄴ 시발.. LOS에도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해라 꼴등이라도 하게

ㄴㄴ 선수 데려온다고 해결 될 게 아님 이건 LOS가 팀빨 ㅈ되는 게임이라

ㄴㄴ 지명되면 다 군대가서 국방 문제 해결될듯

ㄴㄴ 우리라고 좋은 선수 없었냐? 예성이 있잖아

ㄴㄴ 예성이 FWX 오고나서 조짐 아무래도 요양하러 온 듯 보험 좋다대

다들 패배감에 물들어있다.

그렇긴 하겠지.

지세현은 1군 경기를 라이브로 챙겨보진 않았지만 하이라이트정도는 봤다.

지는 경기밖에 없다보니 다른 팀 하이라이트만 잔뜩이었는데, 여기에도 다른

의미로 양학이 있었다.

문제는 모든 팀이 FWX를 상대로 양학을 한다는 것.

대체 권건을 콜업하지 않고 뭘 하는걸까?

내가 감독해도 되겠다.

ㄴ 정글러 올리면 해결되지 않음?

ㄴㄴ 권건? 걔도 예성이 꼴 난다

ㄴㄴ 잘하긴 잘하더라 ㄹㅇ 근데 2군 수준에서 잘하는거고 시발 이건 팀게임

이잖아ㅋㅋㅋㅋ

ㄴㄴ 걔가 1군을 왜 옴? 중국이 업어가겠지 FWX는 ‘페어웰, 권건’ 이딴거 기

사내고

ㄴㄴ 파잘알;

댓글을 달자 꾸준히 권건의 영상을 올린 보람이 있는지, 제법 권건을 아는 사

람들이 대댓글을 단다.

하지만 2군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막 입문한 지세현은 잘 몰랐지만 FWX는 다년간 여러가지 시도를 해왔다.

2군 선수들을 꽤 많이 콜업해보기도 했고, 샌드다운으로 선수들의 잃어버린

감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콜업된 선수는 망하고, 샌드다운 된 선수들은 2군에서 현지화 된 것 같았다.

심지어 샌드다운된 선수들이 있어도 2군에서의 순위가 하위권이어서 자신감을

찾기보다 자신감만 잃고 돌아왔다.

보는 입장에서 팬들이 1군과 2군 선수의 차이를 눈으로만 아는 건 쉽지 않지

만, 콜업된 선수들이 망하는 꼴을 수도 없이 봤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

람은 많지 않았다.

ㄴㄴ 예성이 누구임?

ㄴㄴ 미드 라온

자꾸만 예성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어 찾아보니 1군 미드라이너 이름인 모양이

었다.

나름 타 팀에서 리그 2위 성적을 낸 적이 있는 선수였는데 꽤 인기가 있다.

FWX에 와서는 폭망했지만.

지세현조차 포스트 아포칼립스같은 갤러리의 분위기에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

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대단한 안목을 믿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갈겼다.

알게뭐야?

어차피 커뮤니티인데.

- [예언글] FWX의 미래

감독 정신 차리고,

권건 콜업되고, 꼴리 밀어내고 주전 됨

그때부터 상승세 ㅈ됨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될 것

이 글은 성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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