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2화 (23/326)

022화. 천연기념물

LOS는 온라인 게임이다.

그래서 그 접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이, 성별, 장소에 관계없이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

어느 순간부터 민속놀이가 되어버린 LOS는 이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더라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지세현은 LOS와 함께 자랐다.

LOS를 플레이 할 수 없는 나이부터 몰래 즐겼고, 한창 공부를 해야할 나이에

도 LOS에 전념했다.

해도해도 질리지 않는 이 게임은 출시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늘 짜릿

하고 새로웠다.

LOS를 할 때만큼은 몸이 아프지도, 집중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때문에 어쩌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게임에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그의 티어는 브론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이제 지세현은 자신이 에이징 커브를 맞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는 이제야 스무살에 불과했지만 아무래도 좋다.

지세현의 생각에 이렇게까지 LOS를 열심히 하는 자신이 게임을 못하는 이유는

그것 밖에 없었다.

운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여태까지 해온 판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에게 남은 마지막 양심이다.

- LOS 천연기념물로 지정 가능함?

ㄴ 천연기념물같은 소리하네;

ㄴ 근데 진짜 모를 일 아님?

ㄴㄴ 나도 이 게임을 10년 넘게 붙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ㄴㄴ 그것이 ‘역사’다

ㄴㄴ 한 10년 뒤엔 명절에 다 같이 피방가서 할수도? 그럼 그게 천연기념물이지

ㄴ 다들 천연기념물이 뭔지 모르시나요?

지세현은 플레이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고향처럼 편하다.

그런데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종류의 글들이 있다.

- 스톰이 정배다

- 유니버스가 트릭스터에게 [선고]한다

- 속보) 어.우.빅

- 캐좌 템좌 헤으응 해설 모먼트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뮤니티를 한 두해 해온 것이 아니기에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LOS의 한국 리그인 LKL 이야기다.

커뮤니티는 LOS만 즐기는 사람과 LOS 리그만 즐기는 사람, 그 두가지를 동시

에 즐기는 사람.

이렇게 대충 세 부류로 나뉜다.

“에이. 또 점령당하겠네.”

지세현은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페이지를 몇개 넘겨봤다.

확실히 일반글의 리젠이 떨어졌다.

지세현은 LOS만 즐겼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리그 관련 짤들에는 흥미가 없었다.

매 해 똑같은 상위권 팀 이름만 반복되고.

매번 보던 선수들의 베스트 플레이니 뭐니.

역시 누구니, 역시 누구가~, 누구누구였으면~.

꼭 매드무비같았다.

어차피 매드무비란게 완전 우연히 나오는 거 아닌가?

잘한 장면만 모아서 짜깁기하고 멋진 EDM이나 좀 깔면 짜잔.

항상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평소 실력인 것 처럼 거들먹거리는 영상같은

건 불편하다.

지세현이 보기엔 프로리그 짤이랍시고 올라오는 것들도 다 그랬다.

“기만자들.”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다가 낯선 단어를 봤다.

2군.

왠지 2군이라는 단어는 만만해보인다.

‘2군의 흔한 한타.gif’.

엉망진창 한타를 놀리는 영상일 줄 알았는데 영상 속에서는 킨드리드가 궁극

기로 아군을 구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오.”

제법 볼만한 장면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건 킨드리드 궁 속에서 살아남은 아군들은 어리둥절해보

인다는 점이다.

죠이는 초시계도 썼고.

“2군도 프로 리그 맞나? 지역 대회인가?”

왠지 저 정도로 잘해주는 킨드가 같은 편에 있다면 자기가 저것보다는 잘 할

것 같다.

한 명이 캐리하고, 나머지는 수준 차이가 난다고?

이건 또 좀 재미있는 부분이다.

지세현은 살짝 흥미가 생겨 게시글을 올린 사람의 다른 글들을 찾아보았지만

다른 것들은 찾지 못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지세현은 마침 켜져있던 스트리밍 사이트 추천에 2군 경기가

뜨는 것을 별 생각 없이 눌렀다.

그리고 비어버린 잔에 콜라를 채우러 잠시 자리를 떴다.

#

오늘도 스크림을 마치고 피드백 회의를 진행했다.

FWX는 항상 스크림에서 ‘기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고?

게임을 지니까.

자꾸 지는데 무슨 새로운 전략과 픽을 한단 말인가?

‘못하는 팀’에게 그런건 탈락이 확정되고 시즌이 끝나갈 때나 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뭐, 종종 시즌 극초반에도 여러가지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지만 그건 메타와

장인픽이 잘 맞아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

몇가지 예외는 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어쨌든 우리의 최근 경기 결과와 스크림은 그렇지 않았다.

스크림 패왕.

뭘 잡아도 승리한다.

패배하더라도 충분히 간단한 피드백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고.

그래서 다양한 픽을 테스트해 볼 만한 여유가 생겼다.

“게임의 질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은.”

“계획을 세우면 그게 상상대로 될 줄은.”

감독님과 코치님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팀 분위기가 좋다.

미드 창민이의 강력한 요청으로 우리는 유틸성 미드를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괜찮다.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부분이다.

쟤는 그냥 자기가 할 줄 아는 거라도 하게 두는게 낫다.

유찬이는 결국 스크림에서라도 탑 마오차이를 했다.

물론 우리는 스크림 패왕답게 이겼다.

“묘목 진짜 쓸모없어. 버섯이 낫겠다. 마붕이 개같이 멸망..”

하지만 유찬이는 ‘탑에서는 졌다’ 라며 마오를 포기한 모양이다.

탑에서는 졌다는게 뭐지?

의외로 순순하게 포기하는데.

“지호야. 나는 그건 좀..”

“형, 형형 들어봐봐. 템트리를 이렇게 타면..”

바텀 듀오는 열심히 새로운 트리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룬을 생명의 샘으로 찍는게 아니면 그런 트리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게 왜, 어떻게.. 아!”

나도 한마디 던져줬다.

한참을 생각하던 일도와 지호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절대 안되겠다!”

“해볼만 하겠는데!”

둘은 각자 생각하는 게 아주 다른 것 같았지만 어쨌든 신나보인다.

룬과 특성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찍는다.

주로 사용하는 룬이나 특성이 정해져있어서 많이 간과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특이한 것들이 많아서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거나 스킬이 변경될 때 다시 한

번 잘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성에 의해 플레이하다가는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같은 실력이라면 꾸준한 연구가 도움이 된다.

“형, 형은 그런거 어떻게 알았어?”

지호는 나를 졸졸 따라오며 선망에 찬 눈초리를 보내온다.

“이것저것 읽어봐. 패치 노트 놓치지 말고.”

내가 피식 웃자 지호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 나도 읽는데.. 그거랑 그거랑 연결이 잘 안되잖아.”

그건 맞다.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금방금방 나오는 건 아니다.

이런 부분은 AOS게임이지만 TCG같은 부분이 있어서, 카드 게임 하듯이 독립된

가치들을 재조합 하는 게 필요하다.

조합들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리그 단위에서 유의미하게

활용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내가 말해준 건 꽤 도움이 될거다.

스스로 공부만 더 한다면.

“일도랑 같이 연구해봐. 일도가 그런 부분 잘하더라.”

같이 따라와서 캡슐 커피를 내리고 있던 일도가 감동받은 눈초리로 바라본다.

“형은 이제 뭐할거야?”

“내일 경기 준비해야지.”

“평소처럼 일찍 수면?”

“아니. 오늘은 솔랭.”

“우와. 왠일이야. 아니, 아니 형은 솔랭 안돌려도 엄청 잘하니까. 점수 관심

없는 줄 알고. 아니, 그게 나쁜 뜻이 아니라.”

나는 그냥 웃었다.

확실히 솔랭 점수가 선수의 순수한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평가 기준 중 한 부분은 맞다.

그러나 이번 생의 나는 솔랭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일단 솔랭을 플레이하는 것은 어느 순간에도 피로감을 유발하기 마련이고, 이

팀은 솔랭을 무작정 강요하는 팀이 아니다.

선수들에게 압박을 적게 한다고 해야할까?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갔다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연습실로 나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유찬이가 연습하고 있다.

얘는 매일 이렇다.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 간다.

창민이는 짐을 챙기러 왔었는지 나랑 눈을 마주치자 움찔하더니 고개를 꾸벅

하고 도망간다.

그 날 이후로 나를 무서워하는 느낌이다.

뭐, 상관 없지.

게임만 안 던지면 된다.

“뭐야, 갱플도 할 줄 알아?”

“내가 못하는 게 어딨어. 잘 봐라. 내가 가르쳐 드림.”

유찬이는 집중한 상태로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줬다.

“화약통 잘 쓰네.”

“이거 술통 아님?”

여전히 스킬 설명에는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옆 자리에 앉아 큐를 돌리며 잠시 플레이를 지켜봤다.

나름의 박자와 요령이 필요한 챔피언인데 꽤 잘한다.

“그 템 먼저 가는 거 아닌데. 상위템 먼저 올려버리면 하위템 효과가 너무 빨

리 사라지잖아.”

툭 던져보지만 집중했는지 대답이 없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위기였기 때문이다.

저, 저 호들갑.

솔로킬 당할 위기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응?

이걸 사네.

크리티컬이 터져서 뜻밖의 역킬각이 잡혔다.

이러면 아까 아이템 선택이 괜찮은게 된건가?

“운이 좋았네. 죽는다더니.”

“적이 죽는다는 뜻.”

귀환을 눌러놓고 코를 쓱 비빈 유찬이가 나를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렇게 좋을까.”

“뭐, LOS?”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생각이 나왔나보다.

그 새 유찬이의 화면에는 승리 메시지가 떠 있었다.

적들이 이른 타이밍에 항복을 한 모양이다.

“그럼. 좋지. LOS 때문에 사는데.”

점수가 또 올랐나보다.

저 정도면 50위권 안에는 들지 않을까?

“너는 LOS가 재미 없어?”

“아니, 재밌지.”

“근데 가끔은 너무 일처럼 하는 것 같아.”

“일이잖아.”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LOS가 일이라거나 프로라거나 하는 것들.”

유찬이는 조금 진지해보였다.

“그냥 게임 열심히 하다보니까 이렇게 됐는데. 이기는 게, 이기는 게 너무 좋

아서.”

그래, 그래보인다.

이유찬은 다른 걸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아마 오늘 티셔츠를 거꾸로 뒤집어 입고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일거다.

“그래서 계속 이기고 싶다. 솔랭에서도 리그에서도. 우승컵도 따고. 그러면

좋겠다. 진짜 기분 좋겠지?”

이유찬은 상상만 해도 좋다는 것 처럼 히죽히죽 웃고있었다.

“좋겠지.”

그 모습에 웃음이 좀 나온다.

나도 예전에, 그래, 아마 악마에게 소원을 빌기 전에는 저런 모습이었을까.

“그러니까 잘 해보자. 너 진짜 잘하더라.. 너랑 하면 그냥 놀고만 있으면 돼.”

그전까지 그래도 뭘 해보려고는 했던 모양이다.

그게 잘 안되다보니 솔로 킬도, 고립 데스도 1위였겠지.

유찬이는 좀 민망해진 듯 머리를 긁었다.

“근데 얼마 전 부터 느낀건데, 프로가 그냥 놀기만 한다고 프로는 아닌 것 같

다..”

점점 말 끝이 늘어진다.

뭔가를 느꼈는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건아, 나 LOS 좀 가르쳐주라.”

“내가 뭘 가르쳐. 넌 챌이고 난 그마라며.”

“나는 점수가 다 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 같다.”

이유찬에 대해서 내가 알았던 사실은 세가지다.

나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점.

솔로 랭크 50위권 안을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네임드라는 점.

하지만 1군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

“더 잘하고 싶다. 더 이기고 싶다. 건아. 나, 우승하고 싶다.”

진지한 눈빛에 강한 열정이 느껴진다.

릴리가 여기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코나 골지마. 너때문에 내가 일찍 잘 수 밖에 없잖아.”

“그게 나 때문이었음? 드르렁.”

단순한 반응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구나.

나만 이기고싶은 게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이기고 싶어 하는 괜찮은 놈들이 많다.

이겨야 할 이유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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