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친정팀?
“...그렇게 이겨버렸죠. 완전 압살.”
“와우. 진짜 게임 할 맛 나겠는데.”
FWX 1군의 감독 박진현이 입을 쩍 벌렸다.
“그냥, 분석팀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죠. 건이가 콜도, 플레이도 잘해줬고.”
양태진 감독의 무던한 대답에 박진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러면 우리가 뭐가 되냐. 우리 애들은 뭐가 되냐고.”
박진현 감독이 팀의 승리를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1군의 첫 주차 경기는 이미 2패.
세트 하나 따내지 못하고 시원하게 패배했다.
승리는 기세를 몰고 오고, 패배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꺾어놓는다.
연패를 하기 시작하면 그 늪에서 빠져나가기란 어렵다.
분명 스크림에서는 괜찮아서 이번 시즌은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시즌 시작부터 연패라니 마음이 무거운 기분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혹시 우승을 할까봐 무섭네요.”
양태진이 벙긋벙긋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기분이 너무 좋다.
“와.. 너 진짜, 양태진 너 진짜..”
1군이건 2군이건 팀적으로도 이기는게 좋긴 한데, 이상하게 얄미운 기분이 들
었다.
“하하하하하, 형님. 앞으로 승 수 더 많은 사람이 형님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
요?”
“죽고싶어?”
“하하하하, 아뇨.”
“그만 웃어!”
“하하하하, 기분이 좋아서요.”
분명 좋은 일인데, 왜 자꾸 화가 나지.
박진현은 이 얄미운 녀석의 주둥아리를 때려주고싶은 기분이었다.
“콜 업 간다.”
“아니, 형님네 정글러 있잖아요!”
“잘하면 일단 올리고보는거지, 그런게 어딨어?”
“그런 적 없으면서!”
두 사람은 잠시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농담조였다.
선수의 콜업과 샌드다운은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스크림을 진행하긴 했지만 정규 경기는 고작 3경기를 치뤘을 뿐이었
고, 1군에는 윤도형이라는 정글러가 버티고 있다.
윤도형은 다른 선수들과 좀 더 긴 시간 호흡을 맞추어왔으니 이번 비시즌의
훈련도 역시 현재의 5인 체제를 타겟으로 진행해왔다.
그리고 윤도형은 팬덤도 단단하다.
“어휴. 그냥 좋아 보이는 조각들만 모아서 팀이 완벽해지면 오죽 좋겠어?”
아무리 잘하는 선수를 데려와도 그 선수와 다른 선수들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음. 그건 그렇죠.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좀 더 숙성시켜볼게요.”
“숙성은 무슨. 이미 완성된 것 처럼 보이던데.”
양태진의 말에 박진현이 고개를 저었다.
양태진도 동의의 의미로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한번 보러 갈게.”
“아, 데이터가 아니구요?”
“음. 직접 한번 가보는게 좋겠다.”
1군 LKL과 2군 FL은 엄연히 분리되어 운영된다.
실제로 구단이 하나라고 하더라도 1군 감독이 2군 모니터링 룸에 함부로 들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기상조라도 직접 가서도 보이는 게 있는 거니까.”
박진현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로 마음 먹었다.
#
우리팀, FWX 퓨처스는 3승 0패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현재 리그 순위는 1위.
그리고 오늘의 상대는 우리와 동률인 대구 유니버스.
지난 시즌을 3위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한 체급 좋은 팀이다.
“꼭 이겨야하는데.”
창민이가 손톱을 물어뜯고으면서 중얼거렸다.
“솔직히 내가 더 잘하는데, 유니버스가 뭘 모른다니까?”
대구 유니버스에서 FWX로 적을 옮긴 창민이는 종종 유니버스에 대해 공격적인
말을 하곤 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정글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건이형, 박기준 좀 밟아줘. 정글 차이 소리 듣게. 닉네임 터틀.”
“난 항상 정글 차이 내는데?”
어깨를 으쓱하자 창민이가 말문이 막힌 듯 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 어쩔건데.
“어우, 후. 우리 정글이라 참는다.”
“왜? 뭐 안좋은 일 있었어?”
“그 새끼가 나 자르라고 팀에 꼰지르고 은근히 플레이 이상하게 하잖아. 진짜
완전 교묘하게.”
“그래?”
창민이는 그 때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지 씩씩거렸다.
“오늘은 우리 꼭 이겨야돼. 형, 알지?”
친정 팀과 좋은 이별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좋은 이별이었건 아니건 친정 팀과 만날 때 전투력이 올라가는 선수들
도 많다.
보여주고싶겠지.
너네가 이렇게 잘하는 나를 놓쳤으니까 후회해라! 같은 거다.
하지만 나는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지금의 대구 유니버스 미드라이너는 김흥민이라는 선수로, 1군에 꽤 오래 있
었던 선수다.
그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출전 기회를 얻었을 때 상당히 많은 실수를 했고, 으레 그렇듯 이번
시즌에 유니버스 2군쪽으로 샌드다운 되면서 경험을 쌓기로 한 모양이다.
전후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유니버스 2군에서도 창민이가
서브로 밀려날만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쪽에서는 사이가 안좋아서 불편한 상태였지만 여기 와서 주전이 됐
잖아.
그럼 잘 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뭐.
창민이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상대인가보다.
“그래. 열심히 해야지. 너도 집중해.”
“어어~ 나 일도랑도 대화 좀 해야겠다.”
창민이는 냉큼 달려가버렸다.
[ 흐음~ ]
‘왜?’
[ 박기준이라는 사람은 김창민을 자르라고 한 적이 없어. ]
‘근데 왜 저래?’
[ 글쎄? 싸우긴 하던데. ]
릴리가 샐쭉 웃는다.
오, 방금은 좀 악마같은데.
‘흐음.’
무슨 오해가 있었나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건 아니지.
지금 문제는 김창민과 상대 정글러 박기준이 뭘 어쨌다가 아니다.
아직 경기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유찬이가 탑 마오를 잡은 것 마냥 신나있
다는게 문제지.
“군도의 빛을!”
지금도 뭘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돌아다닌다.
아, 머리 아파.
설마 진짜 탑 마오를 봐줘야하는건아니지?
#
“여기는 X-스페이스! 오늘도 함께해주시는 가족분들,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이번 경기는 1위 결정전입니다! 대구 유니버스와 대
전 FWX! 놀라운 기세를 이어나가고 있는 두 팀인데요, 이제 2주차이지만 여기
서 이기는 팀이 1위로 달려나가게 됩니다.”
“초반부터 4승을 찍고 시작하면 포스트 시즌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겠죠?”
“그렇죠! 게다가 두 팀 모두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무력이
대단해요!”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FWX! 오늘도 승리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요?”
“솔직한 제 마음으로는, 많은 팀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참 즐겁습니
다! 여전히 대구 유니버스에 비해서 약하다고 평가받는 대전 FWX지만 지난 시
즌 1위였던 F.L.E를 이겼잖아요? 그래서 FWX의 경기력에 기대되는 부분이 있
네요!”
하위 팀의 약진.
리그의 흥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팀이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언더독의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오늘의 홈 팀, 대구 유니버스부터 밴픽을 시작합니다!”
밴픽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밴 된 것은 킨드리드.
“보란듯이 밴하네, 건이를 의식하나본데.”
그리고 연이어 정글 3밴까지 이뤄졌다.
“흠, 그럼 이렇게 가자.”
상대의 밴 카드는 정글에 집중됐다.
그래서 무난한 픽이 이어졌고, 상대가 오리안느를 가져갔다.
“저 죠이 할게요.”
“어제 조금 아쉬웠는데. 괜찮겠어?”
김창민의 강한 어필에 양태진 감독은 조금 망설였다.
어제 김창민의 죠이는 그리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다소 흥분한 듯 침착하지 못한 스킬샷이 불안정해보였다.
하지만 양태진은 김창민이 죠이에 자신감을 보이고, 또 썩 괜찮은 플레이를
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죽여놓을게요. 진짜.”
“그래. 믿을게.”
이어진 픽에서 권건의 손에는 그레이브스.
마지막 픽으로는 상대 탑 냐르에 맞서 이유찬에게 사일런트가 쥐여졌다.
밴픽이 마무리되자 플레이에서의 주의점을 한번 더 강조한 양태진 감독이 걱
정스러운 얼굴로 한마디를 더했다.
“창민아, 너무 흥분하지 마라.”
“걱정 마세요. 보여드릴게요!”
“그게 아니라..”
불안감을 감춘 양태진은 고개를 저었다.
김창민은 아직도 상대 정글은 자신을 밀어냈고, 상대 미드는 자신의 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알 길은 없지만.
“천천히 해라. 천천히.”
권건과 눈을 마주친 양태진은 고개를 끄덕하고는 무대에서 물러났다.
곧이어 짧은 로딩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야, 여기. 여기. 여기 와봐.”
“왜?”
이유찬이 강력하게 탑으로 팀원들을 모았다.
“냐르 100% 여기로 온다. 진짜. 내가 습관 다 암.”
“한번 가보자.”
“오케.”
잠시 FWX 팀원들이 탑의 작은 부쉬 안에 오밀조밀 모여 숨을 죽이고, 상대 냐
르가 다가온다.
“지금!”
순진한 냐르의 모습에 사일런트를 필두로 급작스러운 습격.
하지만 냐르의 플레이 스타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는지 상대 서폿 역시 백업
을 왔고 노림수는 상대의 점멸 스펠을 뽑는 데에 그쳤다.
“굿굿. 노플.”
“이제 탑 죽여 놔!”
“아니, 바로는 안되고 13분 이후부터.”
“13분에 뭐 있어?”
“건이가 탑에 전령 풀어주고 내가 포블 먹고. 그럼 캐리.”
“아니? 건이형이 전령은 미드에 풀어주기로 했는데?”
“아닌데? 탑에 풀기로 했는데?”
기세가 오른 김창민과 이유찬이 투닥거렸다.
“냐르의 점멸을 빼면서 기분좋게 시작합니다!”
“냐르가 살짝 안일했죠?”
“네, 맞습니다. 사일런트가 조금 편해질 수 있겠네요!”
“탑 일찍 가볼게.”
“콜.”
첫 기세를 가져오면서, FWX의 게임이 부드럽게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이른 타이밍인데요. 그레이브스가 탑을 노립니다.”
“냐르가! 아직! 점멸이 없거든요!”
“뒤쪽에서 둘러싸고 냐르를 노립니다! 오리안느가 커버 텔을 타보지만!”
“아, 순간이동으로 도착했는데 앞이 안보여요! 안보여요! 그 사이 FWX의 탑과
정글이 퍼블을 먹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빠져나갑니다!”
“한 끗 차이거든요! 차-니!”
“정말 차니 선수, 냐르 전문가네요!”
“너무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FWX가 앞서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