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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3화 (4/326)

003화. 새 팀원들

“저는 짐 가져왔어요.”

막내, 서포터 지호는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18살인 지호는 아카데미 출신인데 아카데미 리그에서 눈에 띄어 영입되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고시원에 살면서 생활했기에 영입 소식을 들었을 때 숙

소를 가장 기대했다나.

“저 짐 놓고 가도 되겠죠?”

“응. 아마 그럴걸?”

2군 주장이자 원거리 딜러인 일도가 지호의 손을 도왔다.

수납 공간에 개인 짐을 놓을 수 있는 칸이 구분되어있었다.

“건아! 여기가 우리 방.”

방 고르기에서 최악의 룸메이트로 꼽혔던 유찬이는 나와 같은 방을 쓰기로했다.

일도에게는 듣자하니 유찬이가 코를 좀 심하게 곤다고한다.

코골이는 중대 사안이지.

나도 2인실을 오래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뭐.. 무던한 편이니 괜찮지 않을까?

유찬이와 내가 동갑이기도 하고.

5픽 이유찬을 데려갔기 때문에 우리가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쓰기로 했다.

방에는 아마도 전에 있었던 선수가 썼을 싱글 침대가 잘 정돈되어있었다.

일도가 가장 작은 방을 1인실로 사용하기로 했고, 창민이와 지호가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우리가 거실에 모였을 때 즈음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풀려있었다.

“형 원딜 주챔이 뭐에요?”

“저요? 아니, 나는 이즈나 칼리같은거 좋아해.”

“아 진짜요? 나랑 잘 맞겠다. 저 노틸 완전 주챔이고 바도도 좀 치는 편!”

하체 듀오인 일도와 지호가 게임 이야기로 꽃을 피운 사이, 창민이는 유찬이

에게 비데를 소개받고 있었다.

“장난아니지? 우리 비데 온수도 되고 유산균도 나옴.”

“유산균? 와씨 개쩐다! 지금 써봐도 돼요?”

“아니 내가 똥 선.”

비데에서 유산균이 왜 나와.

진짠가?

유산균 비데가 진짜건 아니건간에, FWX가 새 시즌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다.

찬장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과 간식들이 가득했고, 에너지 음료도

종류별로 깔끔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 딩동!

약속된 시간에 딱 맞추어 초인종이 울리고, 감독님과 코치님이 찾아오셨다.

“안녕, 안녕. 여기서 보니 더 반갑다.”

FWX의 2군 감독은 양태진.

2군 감독 코치에 관한 정보는 내 기억 속에 없지만 이전 면접 때 한번 만났다.

LOS 1세대 프로게이머 출신이고 무던한 편으로, 기본기를 우선시한다.

“너희들, 나 왔다고 어색해지면 어떡해. 우리 얼굴도 봤잖아. 아이디는 모비

딕. 양감독님이라고 불러도 된다. 딕감독님이라고 부르지만 말고.”

감독님이 뒤에 있던 코치님에게 손짓해 앞으로 불렀다.

“이쪽은 구태양. 너희들의 플레이 전반과 전략 같은 것들을 많이 봐주실거야.”

“안녕, 나는 썬 코치님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해도 좋고.”

안경을 쓴 청년이 밝게 웃는다.

아이디 Ssun을 쓰는 이 코치님은 나도 아는 사람이다.

1.5세대 정도로 분류되는 선수였는데, 해외 리그에서도 오래 돌았지만 꽤 이

름이 있었다.

여기서 코치를 하고 있었구나.

“어, 감독님 코치님 오셨습니까.”

똥싸러 갔던 유찬이도 소파 끝에 앉았다.

간단하게 소개 시간을 가지고, 감독님은 우리가 앞으로 해나갈 방향성에 대해

이것저것 자료를 배부하면서 설명을 곁들였다.

리그 시작 전까지 감코진에서 기존의 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으로 적합한 솔루

션을 찾아갈 예정이라는 것이나, 스크림 일정이나, 각자의 목표같은 것들.

“너희는 이제 하나의 팀이야. 지금은 친해지는걸 먼저 생각해.”

맞는 말이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럼 오늘의 오리엔테이션은 끝. 치킨 시켜 놨으니까 다 같이 먹고, 일 이야

기는 일주일 뒤 연습실에서 다시 시작하자!”

“감독님, 저요!”

유찬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어, 그래.”

“저 문상이요!”

“아, 그거? 오케이.”

감독님이 웃고, 유찬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썹을 찡긋한다.

“팀원 데려오면 문화상품권 받기로함.”

아, 이유찬 진짜.

내가 다단계의 희생양이라니.

#

“감독님. 이번 애들 느낌은 어때요?”

“글쎄, 일단 분위기는 일도가 잘 이끌어주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코치의 물음에 감독 양태진은 떫은 표정을 지었다.

FWX가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 않고, 먼 미래를 본다는 경향성이 있는 구

단이지만 벌써 2년째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다.

한 시즌만 더를 외치며 선수들을 다양하게 기용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진현이형도 재원 좀 없냐고 그러더라.”

“아, 1군 감독님이요?”

1군 사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예전에 잠시나마 영광의 시절이 있었다지만 근 몇년간은 중위권에도 진입한

적이 없다.

“그래도, 믿어봐야지. 솔직히 건이랑 창민이 데려온 게 기적같다.”

“하긴, 주전급 선수들은 잘 안 내보내려고 하죠. 조건도 좀 빡빡하게 잡혀있

고..”

아카데미 리그나 사설 리그에서 경험이 있다고 해도, ‘진짜’ 실전 경험으로는

쳐주지 않는다.

사실상 권고에 가까운 선수 리빌딩 제안에 양태진 역시 더 이상 전의 선수들

로 팀을 꾸려가기 힘들었고, 여기저기 손을 벌려가며 간신히 팀을 완성했다.

“어휴. 후보 선수는 진짜 먼 이야기같다. 유찬이가 큰 일 했지.”

“그 녀석, 진짜 골때리는데 할 땐 하더라니까요.”

“걔도 참 난처한 녀석이야. 정말 조금만 더하면 만개할 것 같은데.”

이유찬은 감독과 코치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분명히 솔로 랭크에서는 1군 선수들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데.

팀 게임만 들어가면 던지거나 병풍이 된다.

노력 끝에 그나마 기용할 수 있을 정도의 틀은 갖춰놨지만 여전히 불쑥 튀어

나오는 버릇들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프로게이머로서의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넓은 챔피언 폭과

감각만큼은 다시 찾기 힘들 정도이기에 포기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새로 왔다는 건이가 고등학교 동창이라면서. 좀 잘 맞으면 좋겠다.”

“네, 권건 선수는 꽤 클래식한 타입의 정글인 것 같더라구요. 좋은 억제재가

되어줄겁니다.”

잠시 데이터를 들여다본 구태양 코치가 양태진에게 요구르트를 건넸다.

지난 시즌의 권건의 데이터는 나쁘지 않았다.

2군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성남 스톰 출신이었는데, FWX와 성적을 비교하

자면 낯이 뜨거울 정도다.

왜 이적을 택했는지 의문이지만, 그는 면접 때 이유찬과 플레이를 해보고싶었

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이적을 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스카우트 팀과 감코진

입장에서는 뜻밖의 호재였다.

무엇보다도 권건은 키워볼만한 선수다.

당장 완성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기본기가 탄탄했고 판단력도 뛰어났으며, 포

지션 이해도가 높았다.

소위 말하는 ‘소액형 복권’이다.

작은 행운이 찾아온 기분에 양태진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맞아. 대화를 해보니 조금 어른스러운 스타일인 것 같던데.”

“오, 저도 수줍음이나 긴장감이 없어서 좀 놀랐어요. 보통 그 나이대 선수들

의 반응이란게 그렇잖아요.”

그들은 잠시 권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대해보자고. 그리고.. 창민이. 그, 미드라이너말이야.”

“예. 대구 유니버스 출신이라서 걱정이신거죠?”

“음. 사실 그쪽 코치 통해서 말 들어봤을 때는 애한테 크게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적응 이슈가 있었다고 하니까..”

“저도 오프더레코드로 알아봤는데, 정글러랑 성격이 많이 안맞았나보더라구요.”

흔한 사연이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팀 내 불화는 상상 할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최악이다.

“역시 건이가 중요하겠어.”

“감독님, 애들 훈련도 시작 안했는데 또건이는 너무하지 않나요.”

“크크, 그렇네. 우리가 잘해야지. 내가 더 신경쓸게.”

“이번 시즌도 화이팅 해봐야죠. 복권은 긁어봐야 알 수 있는거니까요.”

가볍게 웃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요구르트병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

나는 짐을 챙기기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프로 선수들 중 나만큼 짐을 많이 싸 본 사람도 드물거다.

어차피 기본 물품들이 준비되어있는 것을 확인했고, 지금 집에 있는 옷가지들

중 내 마음에 차는 것은 거의 없으니 새로 사면 된다.

그리고 대부분 유니폼과 팀복을 입게 될거다.

가족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방에 들어왔다.

내 손에 들려있는 딸기 한 접시를 보고 릴리가 환호했다.

[ 딸기! ]

“이제 딸기 먹기 쉽지 않을걸요.”

[ 어? 네가 사오면 되잖아. ]

“에이, 합숙 생활을 하는데 어떻게 과일을 쉽게 구해요. 못해요, 못해.”

못 구할 건 없지만 조금 귀찮긴 하지.

릴리는 과일을 좋아했다.

집에서 머무는 동안 어머니께서 주시는 과일 대부분은 릴리의 가방 속으로 들

어갔다.

릴리는 항상 메고다니는 가방을 통해서만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가방은 정말 손바닥만했다.

[ 그럼 이제 딸기를 못먹는다고? 봄에는? 여름에는? ]

처음에는 초콜렛이나 사탕 같은걸 줬는데, 과일을 맛보고 난 다음부터 다른

것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외형으로는 8살 정도 되어보이는 릴리가 조그마한 손으로 딸기를 하나씩 먹고

있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여름에는 딸기 보기 힘들죠. 대신 정말 다양한 과일들이 있어요.”

[ 여름에는 무슨 과일이 있는데? ]

“자두, 살구, 복숭아, 수박.. 뭐 그런 것들?”

릴리는 침을 꼴깍 삼켰다.

[ 나 다 먹어보고싶어.. ]

나에게 늦둥이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어림도 없죠. 과일이 얼마나 비싼데요.”

사실 과일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지만, 내 작은 복수다.

[ 과일이? 비싸다고? 하긴.. 이렇게 맛있으니까. ]

릴리는 쉽게 납득하는가 싶더니,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 그럼 돈을 더 많이 받는 계약을 하면 되겠네? ]

아차, 또 시작이다.

딸기를 모두 먹어치운 릴리가 컴퓨터를 가리켰다.

[ 게임을 해라! 연습을 해! 돈을 많이 벌어와서 나에게 과일을 바쳐! ]

제발.

이제 곧 합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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