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96화 (296/300)

296화. 그루디아 (2)

“오늘 유지한이 온다는 게 진짜예요?”

“진짜라니까? 너 아까 예약자 명단 못 봤어?”

“이름만 같은 사람인 줄 알았지.”

“대박…….”

하얀색 유니폼을 착용한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한데 모여 조용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오늘 VIP 명단에 윤도하와 유지한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안내하면 안 될까요?”

“너 사진 찍어 달라고 할 거지?”

“식사 끝날 때쯤에 1장 정도는 괜찮지 않나…….”

근래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두 영웅의 방문.

그 어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방문해도 그러려니 하는 직원들도 오늘만큼은 마음이 들떠 있었다.

“입단속 철저히 해. 괜히 시끄러워지면 다시는 오지 않으실 테니까.”

“특히 너, 혜지야!”

“네?!”

“SNS에 정보 흘리기만 해봐! 그 즉시 유니폼 반납이야.”

“저, 저를 뭘로 보고!”

지적을 받고 뜨끔했던 직원은 휴대폰을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을 때.

“왔다.”

“……!”

앞머리를 올려 이마를 드러낸 시원시원한 인상의 미남과.

그 이상으로 자꾸만 눈길이 가는 넓은 어깨를 보유한 남성.

윤도하와 유지한이 식당의 입구로 들어왔다.

틀림없이 뉴스에서 연일 이름이 언급되는 그 영웅들이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두 분 모두 어서 오십시오. 저희 식당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한과 윤도하는 직원을 따라 기다란 복도를 걸었다.

모든 칸에 방음처리가 된 것인지 조용한 식당이었다.

“어?”

“헛?!”

길을 걷던 도중에 유지한과 눈을 마주치는 이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특정한 성별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 저……!”

심지어는 제자리에 돌처럼 굳어서 말문이 막혀버리는 사람까지!

유지한이 멀리서 그에게 손을 들어주자 숨을 집어삼킨 그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저거 아는 사람이야?”

“전혀요.”

“휘유, 역시 인기 많네!”

식당 내부의 분위기를 감지한 윤도하는 휘파람을 불었다.

언제 어딜 가든지 무리에서 가장 튀고 주목받는 사람이었던 윤도하.

그런데 지금만큼은 달랐다.

많은 사람의 주목을 유지한에게 빼앗기는 것이었다.

“그거 알아? 나 다른 사람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런 취급받는 건 처음이야.”

“어…….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그냥 즐겨.”

고개를 내젓는 윤도하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아주 재밌다는 얼굴을 했다.

그만큼 그가 눈여겨봤던 영웅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일이었으니까.

과거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는 것이었다.

“음식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아뇨. 한 15분 뒤에 주세요.”

“아, 네!”

예약한 방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히! 잘 있었냐?

“음믐믐! 당연하지.”

실프의 인사에 화답하는 무무.

유지한은 빈 컵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엄청 바쁘시던데요.”

“밀려있던 일은 거의 다 끝났어. 나보다 재경이가 엄청 고생했지.”

길드장의 부재로 쭉 밀려있던 주사위의 업무들.

윤도하는 부길드장인 박재경에게 자신의 권한을 일부 넘겨주고 업무를 해치웠다.

“일본은 어땠어? 대형 사고가 터질 뻔한 걸 막아냈잖아.”

“영웅청 장관도 보고, 카산드라 님도 만나고. 꽤 재밌는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라이쿠도 다녀왔다며? 벌써 소문이 자자해.”

“일주일간 남호열 씨의 교육을 맡겼는데, 타무라 대표분들이 호열 씨를 스승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뭐? 푸하하하! 역시 골때리는 양반들이야!”

탁!

타무라 형제와 안면이 있던 윤도하는 무릎을 내려치며 웃었다.

“호열 씨도 보통이 아닌가 봐. 생각보다 눈도 높고 깐깐한 인간들인데.”

“본인은 운이 좋았다네요.”

“운 없는 사람들은 섭섭해서 어쩌나. ……그건 그렇고.”

꿀꺽!

컵에 담긴 물을 원샷한 윤도하가 땅바닥에 손을 뻗었다.

드드드드!

땅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체는 갈색 종이봉투.

그는 그것을 유지한에게 건넸다.

“네가 얼굴을 보내준 여자의 자료야.”

“감사합니다.”

유지한은 봉투에 들어있는 서류들을 꺼냈다.

맨 앞장에는 실프가 그려준 그림과 똑같이 생긴 여자의 사진이 출력되어 있었다.

“이름은 지예인. 나이는 33살. 한 중소기업에서 경리로 근무 중인 미혼의 여성.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초등학교 교사이고 가족 대대로 무교. 학창 시절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는지 주변에 친구는 별로 없고, 취미는 등산. 그리고…….”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조사해도 됩니까?”

유지한은 서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여성의 이름과 나이, 학력, 인간관계 등 그녀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가 서류에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축약되어 있다고 봐도 될 정도.

“원하던 거 아니야?”

“그 사람이 좋아하는 색깔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뭐든지 다다익선이지.”

“이럴 때 써도 되는 말인가요, 그거?”

“비행기 소식 듣고 빡쳐서 힘 좀 썼다. 내일쯤에는 정식으로 구속될 거야.”

윤도하는 길드가 보유한 모든 정보원들을 닦달하여 정보를 캐냈다.

마법사 정영욱처럼 작정하고 숨어버린 게 아닌 이상, 거대 길드의 포위망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1장 뒤로 넘겨봐.”

펄럭!

유지한은 글자가 빼곡한 서류를 1장 넘겼다.

다음 장에서 유독 굵은 글씨로 적힌 단어가 눈에 들어오자 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IUPC 회원이었군요.”

“그래. IUPC 한국 지부가 사라진 이후 뚜렷한 활동은 없었지만.”

여성의 정체는 현재 한국에서 사라진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의 회원.

윤도하는 그 점을 가장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정영욱의 배후에 있는 게 IUPC인가?’

비행기를 폭발시킨 마법을 제공한 건 정영욱.

그런 그를 숨겨주고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건 IUPC.

골때리는 놈들이 서로 뭉쳤다는 하나의 가정이었다.

기분 나쁘게 어울려 보이는 조합이기도 했다.

“정영욱은 몇 년 전에 내가 직접 영입했던 길드원이었지. 그놈까지 엮인 문제를 가만두고 볼 수는 없어.”

“이해했습니다.”

“네가 그루디아로 떠난 뒤에는 다시 IUPC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거야. 정부까지 직접 뛰어드는 대규모 조사가 될 거고.”

“만약 그놈들이 배후에 있었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전쟁이지. 다음에는 한국이 아니라 지구에서 사라질 차례다.”

IUPC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생을 겪었던 윤도하는 웃는 낯으로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과거의 언젠가 부정한 억압에 저항하여 단신으로 3개가 넘는 길드를 부숴버리고 악동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던 그때처럼.

그는 자신의 적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도와줄 거지?”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죠.”

“그러면?”

“앞장서겠습니다.”

유지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

유지한 파티가 그루디아로 출발하기 전날 밤.

남호열은 자신의 아내이자 뱀파이어인 시리오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닥 차니까 어서 일어나.”

“응.”

아내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남호열.

그런 그의 태도에 시리오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가기로 해놓고 왜 그래?”

“그래도 미안하니까…….”

전보다 불룩해진 시리오딘의 배를 바라보는 남호열의 얼굴에서는 매우 착잡한 감정이 드러났다.

——호열 씨가 필요합니다.

그루디아에서 위기에 처해 있던 여성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그루디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대장장이가 필요했다.

어째서 대장장이가 필요한 것인지, 가서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가주시죠.

유지한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대장장이 남호열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따라서 남호열도 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그루디아로 이동하게 된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여전히 카를렘을 제외한 9개 이세계에서 돌아온 영웅은 없었다.

그야말로 미지의 위험을 감수하며 뛰어드는 작전.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듯한 남호열은 말했다.

“시리오딘. 만약에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설마 그분들을 못 믿는 거야?”

“당연히 믿고 있어!”

“그러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아이한테 멋진 아빠가 되라고.”

“시, 시리오딘……!”

자신보다 당찬 시리오딘의 태도에 남호열은 조금씩 울먹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청영사에서 대여한 꿀잼의 사무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길드의 인재 영입을 담당하는 이현재와 몽땅의 장사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현재 씨가 꿀잼의 대표 대행을 맡아주세요.”

“많이 부족하지만 해보겠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과는 다르게 케로즈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현재라면 능히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을 터.

김시후와 이현재가 대화하는 동안 유지한은 장사임을 향해 말했다.

“사임 씨는 당분간 현재 씨를 보조해주시면 됩니다.”

“네!”

“백종언 씨는 어떻게 됐어요?”

“근무하던 식당은 관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종언 씨는 길드원인 프란 페이저의 식사를 맡아주셔야 합니다. 그걸 시작으로 앞으로 길드의 식단을 꾸려갈 거예요. 몬스터를 요리 재료로 사용할 일이 많을 테니 준비해두라고 전해주세요.”

“오! 종언이가 좋아하겠어요.”

백종언이 듣는다면 환호성을 지를만한 소식.

자신의 오랜 친구가 꿈에 가까워지는 것에 기뻐하는 장사임이었다.

“몽땅은 당분간 쉬어가겠군요.”

반면 꿀잼에서 유지한 파티가 빠지면 몬스터를 사냥할 영웅은 존재하지 않기에.

장사임은 잠시 동안 몬스터 처리라는 본업을 내려놓았다.

“신입들이 들어오면 예전보다 훨씬 바빠질 겁니다.”

“흐흐!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장사임이 존경 어린 눈으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이세계에 관련된 괴담이 떠돌고 있었다.

한 번 이세계로 가면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둥 온통 불길한 괴담들.

하지만 눈앞의 남자에게는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되레 다시 돌아온 뒤의 미래를 그리는 모습만 보일 뿐.

‘난 참 운도 좋아.’

그 어떤 고객과도 거래를 트지 못했을 때.

용기를 내어 괴아리 사냥터에서 영업을 뛰지 않았다면 이런 대단한 인물들과 함께할 기회는 없었겠지.

그때를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장사임이었다.

*****

“유지한 파티는 내일 출발하는 건가?”

“네! 블랙 하츠의 그레이스 볼프에게서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차원 마법을 조정했으며 처음과 같은 사태는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다크 엘프라는 적대적인 종족이 가득한 지역으로 전이되어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

영웅부 장관 조두진은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레드홀은 어떻지?”

“나서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대한민국 최고의 마법사이자 레드홀의 길드장인 백강천의 실종.

그를 찾아내기 위해서 레드홀의 2급 파티 다수가 그루디아 원정에 뛰어들었지만 뚜렷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그런 영웅이 아니라 길드를 이끌어가던 인재들을 한 무더기로 잃어버린 레드홀과 그 외 다른 길드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추가 인력 투입을 거부했다.

결국, 이번 작전에 뛰어드는 건 유지한 파티뿐.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이라도 유지한 파티를 막아서는 게 국가의 인재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백강천, 시안 피어스 등 거물급 영웅들조차 돌아오지 못한 차원이다.

아무리 윤도하를 구출해온 이력을 가진 유지한 파티라도 성공 가능성을 크게 쳐줄 수 없다는 게 직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두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하네.”

“어째서입니까?”

“그 파티는, 특히나 파티장 쪽은 묘하게 사람을 기대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조두진은 자신의 경호원이었던 젊은 시절의 한서인을 떠올렸다.

마력이 없는 군인임에도 매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녀.

그런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직접 훈련을 시켰다는 조카가 바로 유지한이다.

당돌하게도 드리미움을 보상으로 가져가서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든 영웅!

거기에 더해 그 옆에 있는 파티원들도 하나 같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도박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

비록 낮은 확률의 도박이더라도.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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