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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95화 (295/300)

295화. 그루디아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이미아는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지금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온 두 남자의 정체는 라이쿠의 공동대표인 타무라 켄타와 타무라 토시로.

실제로 마주치기 전까지 얼굴은 잘 몰랐지만, 이미아도 업계에서 이름을 자주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대장장이였다.

제작하는 물건에는 초고가의 프리미엄이 붙고, 오로지 그들의 물건을 사기 위해 아주 먼 나라에서 일본까지 찾아오는 유명인이 넘칠 정도.

“스승님!”

“스승!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그런데 그 2명의 대장장이가 남호열을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가 라이쿠를 떠난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남호열이 조금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그만하다니!”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분명 교육을 위해서 데려왔거늘, 반대로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다니.

—쟤네 갑자기 왜 저래?

인간이 아닌 실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광경.

결국, 유지한은 솟아난 의문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호열 씨는 정말 대단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도 대지 못하던 소재들의 사용법을 알아냈다고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거친 목소리.

타무라 형제는 라이쿠에서 남호열이 보여준 비범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잘한 노하우는 알려줬을지 몰라도 소재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호열 씨가 최고입니다.”

“창고에서 썩어가던 소재가 단 하루 만에 상당한 값어치를 지닌 장비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런 인재를 독점하고 있는 길드라니……. 참으로 부럽군요.”

타무라 형제가 특히 칭찬하는 건 남호열이 소재를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처음 만져보는 소재라도 어떤 식으로 가공하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지, 그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호열은 너무 과분한 칭찬이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고의 대장장이로 손꼽히는 타무라 형제의 말이라면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찍찍! 우리 대장장이는 생각보다 굉장한 놈이었군?”

“스승, 이건 제 명함입니다. 혹시 꿀잼에서 쫓겨나면 연락 주세요!”

“라이쿠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있습니다!”

“저기요? 길드장 앞에서 그런 말씀은 좀…….”

“어이쿠, 실례.”

김시후의 지적에 타무라 형제는 흥분을 낮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이건 교육을 수료한 의미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니, 이건……!”

남호열은 타무라 켄타가 건넨 물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빛을 받아 반짝이는 투명한 결정.

남호열이 이번에 가공법을 알아낸 특수한 금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금속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만.”

“저희는 이걸 남호열 씨의 이름을 따서 나모(Namo)로 부를 예정입니다.”

“그, 그런 부끄러운 짓을?!”

“절대로! 작명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금속의 이름을 나모라고 부르겠다는 타무라 형제.

그들의 뜻을 꺾지 못한 남호열은 끝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지한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군요.”

“전부 다 지한 씨 덕분이죠…….”

*****

유지한 일행이 볼일을 마친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전 테러가 발생한 탓인지 일본 공항 내부에서 이뤄지는 보안 검사가 훨씬 더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이럴 수가!]”

“[무슨 일이야?]”

“[뉴스에 나온 그분들이야!]”

일행의 신분이 알려지자마자 복잡한 과정을 가볍게 뛰어넘어 출국할 수 있었다.

얼굴이 잘 알려져 있는 한국에서의 입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예? 어디요?”

“일전에 발생한 테러를 막아주신 것에 감사드리고자…….”

찰칵! 찰칵! 찰칵!

공항에서 기다리던 대사관 직원들과는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오늘 입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침부터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유지한 씨! 잠시만요!”

“이미아 님! 김현태 파티가 돌아오지 못하는 현재 심정이 어떠신지……!”

그 이후 뒤로 달라붙는 기자들을 피해 달아나길 약 5분.

공항에 준비해둔 차량에 함께 탑승한 남호열은 숨을 몰아쉬었다.

“여러분은 항상 이런 걸 겪으시는 거예요?”

“요즘에는 거의 그렇네요.”

“영웅도 참, 편한 직업은 아니네요…….”

유지한 파티의 옆에서 함께 사진이 찍혔던 남호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김시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열 씨는 저희에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닌데요.”

“왜요?”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

“……어?”

“라이쿠의 공동대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스승이라 부르는 인물!”

“아니, 그건 장난일 뿐인데!”

“조만간 저희만큼이나 귀찮아지겠죠.”

“그, 그런가?”

“그때는 제가 경호원이라도 붙여드릴게요.”

“경호원까지…….”

집과 공방을 오가며 망치만 휘두른 탓에 밖에 나올 일이 드물었지만.

새삼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남호열이었다.

그때 유지한에게 윤도하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지한! 무사하지?

“예.”

—굿! 오늘 밤 8시에 만나자.

“오늘 밤이요?”

뚝!

통화 시작 단 8초 만에 끊어진 전화.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봐요.”

“넵!”

파티원들을 1명씩 집까지 내려다 준 뒤.

짐을 집안에 넣은 유지한은 영웅부로 향했다.

그의 곁에는 이미아도 함께였다.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까.”

“심심해서.”

심심하다는 이유로 유지한을 따라가겠다는 이미아.

영웅부에서는 미리 연락을 나눴던 양지철이 그들을 맞이했다.

“언제쯤이면 그루디아로 갈 수 있어요?”

“이르면 내일이라도 가능합니다.”

“파티장의 사인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네. 서류 6장에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루디아로 향하기 위한 절차는 거진 마무리된 상황.

주변에 듣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유지한은 말했다.

“요전에 몽타주를 보내드렸던 건…….”

“아, 그 건은 주사위에서 맡아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주사위에서요?”

“윤도하 님께서 지한 씨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엄청 화가 나셔서.”

김시후에게 휴대폰을 빌렸던 여인을 주사위 길드에서 찾고 있다는 소식.

윤도하가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리라.

“볼펜 여기 있습니다.”

“예.”

유지한은 준비된 서류에 사인을 적어나갔다.

이미아는 그 곁에서 가만히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벌컥!

갑자기 닫혀있던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지철 씨! 지철 씨!”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차, 차원 전화기가 반응했습니다!”

“뭐라고요?!”

일본으로 떠나기 전 김시후의 시도 이후.

아무런 변화조차 없던 차원 전화기가 반응했다는 소식이었다.

양지철은 다급해진 얼굴로 말했다.

“어떤 차원과 연결된 전화기인가요?”

“그루디아!”

“……!”

하필이면 연결된 전화기는 그루디아 원정대와 연결된 것.

유지한과 이미아는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해주세요.”

헐레벌떡 달려가는 남성을 따라 전화기가 보관된 방에 도착했다.

지직! 지지지직!

그의 말대로 차원 전화기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들리세요? 들리십니까?”

“목소리는 전달되지 않는 듯합니다.”

“계속 시도해봐요.”

유지한은 불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노이즈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3분쯤 흘렀을까.

—거기 아무도 없어요?!

노이즈가 조금씩 걷히며 스피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지한은 그 소리만으로 그녀가 외국인인 것을 눈치챘다.

번역기를 거치는 한국어는 늘 어눌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씨발! 이거 전화기라며! 전화기라고 했잖아!

—누구라도 좋으니까 대답 좀 해줘, 제발!

—끄으으……!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

가쁘게 숨을 내쉬는 그녀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이리 주세요.”

“아, 네!”

유지한은 영웅부 직원으로부터 차원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실제로 다른 차원을 다녀왔던 만큼, 차원 전화기를 사용하는 감각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이렇게 했던 거 같은데…….’

차원 전화기를 작동시키는 에너지원은 전기가 아닌 마력.

유지한은 기억을 되살리며 전화기에 마력을 조금 불어넣었다.

“아아, 들립니까?”

—……어?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면 대답하세요.”

—들려! 들린다고!

스피커에서 대답이 들려오자 영웅부 직원들은 토끼 눈을 떴다.

안간힘을 써도 먹통이던 전화기가 겨우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하다니!

유지한은 주위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저는 꿀잼의 유지한입니다.”

—유지한이라면……. 나와는 다른 이세계로 갔을 텐데?! 다, 당신 대체 어떻게 돌아간 거야!

“먼저 그쪽의 이름과 소속을 말씀해주세요.”

—블랙 하츠의 그레이스 볼프!

“블랙 하츠?”

블랙 하츠는 미국의 길드 중 하나.

꿀잼은 과거 경매장에서 돌연변이 괴아리, 몬치킨의 사체를 블랙 하츠에 팔아넘긴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하여 고마움을 느꼈던 길드이기도 했다.

“그레이스. 당신을 돕고 싶으니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원정은 망했어.

“망했다고요?”

—빌어먹을! 우리가 처음 도착한 지역은 다크 엘프의 거주지였다고!

그레이스의 앙칼진 외침에 유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이된 장소가 하필이면 다크 엘프의 거주지라니.

그루디아에서 넘어온 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절대로 환대를 받지는 못했으리라.

—다짜고짜 공격을 해오는 녀석들을 피해 달아날 수밖에 없었어.

“다크 엘프들의 수준이 그렇게나 높던가요?”

—공격력만 놓고 보면 우리 쪽이 더 우세했지만, 엘프의 수가 너무 많았다고!

“대화는 당연히 통하지 않았겠군요.”

—말보다 마법과 활이 앞서는 놈들이야…….

그루디아에 도착하자마자 다크 엘프에게 공격받는 신세가 된 원정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영웅들은 다 함께 어딘가로 도망쳤고.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영미권 국가의 영웅들도 한데 모여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뒤쫓아오는 적들을 교란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째 당신 옆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전부 뿔뿔이 흩어졌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지.

“차원 전화기를 지급받은 건 그레이스, 당신이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에 받은 건 내 오빠인 로버트 볼프야. 움직일 때 거슬린다고 해서 내가 대신 들고 있던 거고.

유지한은 확인 차 고개를 돌렸다.

그루디아 원정대의 명단을 보고 있던 영웅부 직원은 그녀의 말을 확인해주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다른 것보다 대장장이! 대장장이가 필요해!

“대장장이?”

—얼마 전에 로버트가 말했어. 차원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세계수의 힘이 필요하다고! 그걸 얻으려면 반드시 뛰어난 대장장이가 있어야 해.

“조금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당신 지금 위치가 어디에요? 로버트는 어디로 갔고요?”

—몰라!

“원정대의 지휘를 맡은 시안 피어스는 또 어디에…….”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젠장! 장비는 죄다 망가졌고, 추적대는 며칠째 끊이지 않고 찾아와. 우리 보고 백강천을 찾아달라고? 당장 살아남기도 힘든데 뭘 찾으란 말이야?!

격앙된 말투로 혼잣말을 이어나가는 그레이스.

낯선 세계에 홀로 남은 그녀의 심리 상태는 매우 불안정했다.

유지한이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계속해서 말을 걸던 찰나.

—여기 숨어 있었구나!

—꺄악!

그레이스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더니.

스피커 너머에서 비명과 함께 커다란 충격음이 전달되었다.

—후! 반항이 거친 인간이군.

—어디서 이런 놈들이 단체로 나타난 건지…….

—어서 이 인간을 감옥으로 데려가.

—잠깐만. 이건 또 뭐지?

지지직!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시 먹통이 되어버린 차원 전화기.

재연결을 시도하던 유지한은 결국 전화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

“…….”

“…….”

차원 전화기의 주위로 숨이 멎을 듯한 정적이 깔렸다.

모두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유지한은 이미아와 가만히 시선을 교환했다.

“지철 씨.”

“……네.”

“정확히 이틀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그루디아 원정대의 목표는 그루디아로 전이된 1급 영웅 백강천을 구해내는 것.

하지만 뿔뿔이 흩어진 그들은 현재 제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도 힘들다.

산불을 막기 위해 산에 갔다가 되레 불이 더 번져버린 느낌이랄까.

‘내가 찾아낼 때까지 죽지만 마라.’

지금부터는 불을 끄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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