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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93화 (293/300)

293화. 의문 (4)

팔짱을 낀 유지한이 눈앞에 놓인 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커다란 원형 화분에 홀로 뿌리를 딛고 자라난 갈색의 나무.

높이는 그의 키와 비슷하고, 일자로 자라난 나무줄기의 두께는 평범한 인간의 허리 굵기와 비슷했다.

‘이게 플로른의 원형인가.’

그가 플로른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건 김시후와의 면접을 진행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가공되지 않은 플로른을 실제로 구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플로른 수목장을 보유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철통 보안을 유지하기 때문에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으니까.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나 영상조차 유출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재배한 플로른이라고요?”

“그래.”

아주 조금도 휘지 않고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자라난 나무.

이것을 관리한 엘프의 솜씨가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뛰어난 품질의 플로른이었다.

—어째서 에르나의 나무가 여기에…….

실프는 눈앞의 나무에 전 계약자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재배한 나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시후도 실프와 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한국에서만 활동했잖아요.”

“딱 1그루, 남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기르던 게 있었지. 그게 이거란다.”

“왜 그게 몬스터 연구소에 있어요?”

“왜겠어?”

냉기 탓인지 코가 살짝 붉어진 김건오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에 뭔가를 깨달은 김시후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플로른이 몬스터로 변했다?”

“정답.”

“무슨 말도 안 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는 김시후.

단풍나무, 소나무 따위가 몬스터로 변하면 괴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이건 아티팩트의 최상급 재료로 여겨지는 나무가 몬스터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1급 몬스터다!’

김시후는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눈앞의 괴무가 중대 재해에 가까운 1급 몬스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고작 이 연구소가 부서지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일본 전체로 퍼져나갈 위기가 발생하리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아빠.”

그러한 사실을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시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의 낌새를 눈치챈 김건오는 말했다.

“진정해. 지금은 안전하니까.”

살아있는 플로른의 약점은 온도.

구조상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들과 다르게 플로른은 맞춤형 온도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엘프들의 세심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금방 말라 죽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 탓인지 이곳의 플로른은 마치 평범한 나무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죽지도 않았다.

“어떻게 이 차가운 온도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가…….”

“난 이걸 잠들어있다고 표현하기로 했다.”

“아니!”

흡족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건오.

그러자 김시후가 살짝 목청을 높였다.

“이걸 왜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사고가 터질 줄 알고?”

“조금만 주의하면 사고는 터지지 않아. 설령 교토 전체에 전기가 끊기더라도 보조 전원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이곳은 1년 이상 멀쩡할 거다. 이곳의 연구원들은 대부분 전직 영웅 출신이고, 연구소 건물 자체도 그 어떤 지진과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설계로…….”

김건오는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이곳이 얼마나 안전하고, 또 이 플로른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멘트인 듯 강한 설득력이 느껴지는 정보.

하지만 여전히 지팡이를 쥐고 있는 김시후는 플로른을 노려보았다.

“한국에서 빼돌린 거죠?”

“그런 셈이지.”

“한국에서는 이런 연구에 허가 따위, 절대로 나오지 않을 테니까.”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그 당시에는 법이 없었으니까 불법은 아니었다.”

“설마……. 일본으로 넘어온 것도 이 나무 때문이었어요?!”

“꼭 그것만은 아니야.”

김시후가 날카로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의 대답을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걸 왜 이제 와서 저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네가 아니라 ‘유지한 파티’에게 보여주는 거다.”

“그게 뭐가 다르다고.”

“아들. 과거의 네게 지금 같은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해?”

“…….”

김시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국 최초로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

동시에 해외에서 알아볼 정도로 이름값이 높아진 파티가 소속된 꿀잼의 길드장.

전세계에서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엇도 이렇게까지 인상적인 활동을 펼치고 유명세를 얻은 사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에르나 하스의 아들일 뿐이었던 과거의 김시후와, 뛰어난 마법사로 인정받는 지금의 김시후는 처지가 너무나도 달라진 것이었다.

“여러분의 감상은 어떻습니까?”

김건오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감상을 물었다.

부자의 말다툼을 듣고 있던 일행은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신기해요. 처음 보는 거라서.”

“나도 비슷한 감정이야.”

“찍! 한번 싸워보고 싶군!”

“넌 왜 쓸데없는 소리를…….”

굳이 유지한 파티가 아니라도 누구나 뱉을 수 있는 평범한 감상.

주변을 돌아보던 김건오의 시선은 아직 입을 열지 않은 유지한을 향했다.

유지한은 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뭘 기대하는 거지?’

어쩐지 기대감이 가득해 보이는 김건오의 얼굴.

유지한은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실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추측하자면 후자에 가까우리라.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전 계약자가 재배한 나무를 미끼로 삼았다고 한들.

실프는 김건오의 앞으로 나올 생각이 없었다.

녀석도 김건오의 의도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무척 단단해 보이는 나무네요.”

“그리고요?”

“그 외에는 저도 시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입니다.”

“…….”

기대하던 답변과는 조금 달랐던 것일까.

김건오의 얼굴에서 살짝 실망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들, 오늘의 비밀은 지켜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야죠.”

“이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면 온갖 곳에서 항의가 들어올 거예요.”

1급으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고도 넘치는 나무.

이곳에 이런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누군가가 욕심을 갖고 접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보가 알려짐으로써 발생할 부작용이 너무나도 컸다.

김건오는 그런 위험성을 알고도 일행을 데려온 것이었다.

“전 도무지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다 세계를 위한 일이야.”

“이게요?”

“이 플로른으로 아티팩트를 만든다고 생각해봐. 하나같이 엄청난 물건들이 탄생할 테지! 영웅들의 수준을 적어도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리고도 남을 거야. 그런데 이놈을 안전하게 양산할 수만 있다면?”

김건오가 던진 질문에 김시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최상급의 아티팩트로 제작되던 플로른이다.

나무의 품질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깃든 소재.

그런 플로른이 몬스터로 변하고, 심지어 평범한 나무처럼 양산되기까지 한다면…….

“……우리 사회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겠죠.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을 넘어서 전세계에 그 여파가 퍼질 거예요. 언젠가는 초보 영웅들에게 플로른이 필수 지참 장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거고.”

“역시 내 아들! 이해가 빨라서 좋다.”

김건오가 손바닥으로 김시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김시후는 마지막까지 뚱한 시선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

유지한은 김건오를 따라 몬스터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추운 곳에 있었던 탓인지 연구소의 공기는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온기를 느끼고 있으려니 주변이 너무 조용해진 것을 알아보았다.

“…….”

“…….”

김건오의 바로 뒤에서 걷고 있는 김시후가 너무 조용해졌기 때문이었다.

안에서 마주했던 어머니의 플로른이 그에게는 꽤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점심 식사 때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어라? 건오 씨?]”

“[오늘 휴가인데 왜 여기에 있어요?]”

연구소 탐방이 거의 끝나가던 즈음.

한 무리의 연구원들이 김건오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만요.”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김건오.

—저 사람! 저 사람이야!

지이이잉!

그때 귓속에서 실프의 외침이 울렸다.

유지한은 주위에 들리지 않게끔 대답했다.

“뭐가.”

—죽은 에르나에게 찾아왔던 사람!

“……!”

유지한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저 여자가?”

김건오와 대화를 나누는 연구원 중 한 사람.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처럼 생긴 여성으로 평소 김건오와 안면이 있는 동료 연구원처럼 보였다.

—마법으로 에르나의 피를 뽑아간 놈이야.

실프의 기억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으니 정말로 에르나 하스의 병실로 찾아갔던 인물이겠지.

유지한은 그 여인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2번, 3번씩 머리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다시 곁으로 돌아온 김건오와 연구소를 떠나기 직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유지한은 일행과 잠시 떨어져서 화장실로 향했다.

철컥!

양변기가 설치된 칸에 들어와 문을 틀어 잠갔다.

변기에 걸터앉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작은 모래알 같은 물체가 잡혔다.

김건오의 연구실에서 가져온 마석 파편이었다.

‘최대한 빨리 사용해야 해.’

연구를 위해 잘게 빻아낸 마석 속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마력의 잔재.

시간이 흐르면 그 희미한 마력마저 허공으로 전부 날아가 버릴 것이었다.

유지한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그것을 실프에게 들이밀었다.

“자.”

—이건 간에 기별도 안 가겠네.

“네가 간은 있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은 실프가 얼마 안 되는 양의 마석을 꿀꺽 집어삼켰다.

—으음? 으으음?

“역시 마력이 모자라나?”

—잠깐만 기다려.

핑그르르!

몸을 시계방향으로 굴려 가며 진동하는 실프.

마치 마석의 맛을 음미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1분가량을 기다렸을까.

—이건 김건오가 아니라 다른 연구원의 마력이야.

결과는 아쉽게도 찾아낸 마석이 다른 연구원의 마력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때 실프는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뭐가?”

—직접 봐.

두근!

심장 박동이 한 차례 크게 들려옴과 동시에 유지한의 시야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귀로 들려오던 화장실 물소리와 외부의 소음은 점점 멀어져갔다.

단,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 뒤에도 어둠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마력의 양이 모자란 것이 그 원인이리라.

‘연구실이다.’

하늘에 떠 있는 그가 내려다보는 건 김건오의 연구실.

모든 사물이 어둠에 가려져 흐릿하긴 했으나 분명 아까 전 마석을 주웠던 공간이 틀림없었다.

‘저건 방금 본 여자인가.’

김건오는 조금 전 마주쳤던 여자와 연구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능숙한 한국어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예상대로 그녀 또한 한국인이리라.

—건오 씨~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조금 뜻밖이었다.

여자 연구원이 김건오를 껴안고 그의 볼에 입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키스는 아니었지만, 오랜 연인이라고 생각될 만큼 아주 진한 뽀뽀였다.

‘그래……. 연애는 할 수 있지.’

김시후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부인이었던 에르나 하스는 이미 죽었다.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하는 건 절대로 그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었다.

괜히 다른 이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 같아 꺼림칙한 기분을 맛보는 유지한이었다.

그런데.

—하프 엘프는 언제 들어와요?

—내일.

—한국을 구해내고 이세계에 진출한 영웅이라! ……참 성공한 인생을 보내는 실험체네요.

아무리 봐도 김시후를 가리키는 듯한 대화에.

유지한의 표정이 돌연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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