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의문 (3)
“저 뒤에 타면 됩니다.”
“찍! 이 몸이 올라타기엔 좁은 자동차로군.”
김건오는 몰고 온 차량에 유지한 일행을 태웠다.
다만 몸집이 큰 칠라는 고개를 숙이고서야 간신히 탑승할 수 있는 크기였다.
“이해 좀 해주세요. 이것도 상당히 어렵게 구한 거라서.”
칠라가 탈 수 있는 차량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던 김건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어찌 자동차에 탄 일행은 한 30분을 달려 어느 커다란 식당 앞에 도착했다.
김건오가 하루 전에 예약해놓은 식당이었다.
“[이, 이쪽이 칠라 님이 맞으신가요……?]”
테이머의 출입이 가능한 식당에서도 처음 마주하는 친칠라.
식당 종업원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담긴 얼굴로 칠라를 힐끗거렸다.
자리로 이동하는 동안 마주치는 손님마저 칠라를 돌아볼 정도였다.
민유리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말했다.
“여긴 한국보다 더 칠라에게 관심이 많네요.”
“교토의 회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에 칠라와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거든요.”
“아, 그래서…….”
현실에 등장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탈을 뒤집어쓴 인간도 아닌 것이 사람 말까지 하고 있으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칠라를 합성한 이미지마저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석에 앉은 일행을 반겨준 것은 하얀 요리사 복장을 한 대머리의 남성이었다.
유지한은 상당한 기백이 느껴지는 그가 평범한 종업원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분 얼굴……. 간판에 있던 거 같은데.”
간판에 자기 얼굴을 박아넣은 주방장 겸 식당의 주인이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직접 주문을 받은 그는 칠라를 향해 하얀 종이를 건넸다.
“찍? 이게 뭐냐?”
“[사인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우리 식당의 보물로 삼겠습니다!]”
기어코 칠라의 손도장을 얻어낸 뒤에야 활짝 웃는 얼굴로 사라지는 주방장.
김건오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교토에서 유지한 파티가 유명해요.”
“칠라 덕분에요?”
“네.”
“내 덕분인가! 찍!”
와타나베와 함께 카를렘을 다녀온 이후 일본에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간 유지한 파티.
거기서 일등 공신 노릇을 하고 있는 칠라였다.
잠시 후 식탁으로 각종 요리가 전달되었다.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긴 요리들의 향연!
거기서 칠라의 그릇이 2배는 크고 음식의 양도 2배라는 걸 깨달은 이미아가 불만을 토했다.
“뭐야. 치사해.”
“찍, 찍찍! 갑자기 일본이 좋아졌다!”
그렇게 점심 식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평소라면 이리저리 굴러다니거나 칠라를 놀리고 있을 실프는 유지한의 주머니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김건오는 말문이 트인 실프와 대화를 원하는 분위기였지만.
녀석은 그걸 거부하며 주머니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 뿐이었다.
‘역시 시후 어머니의 죽음이 석연치 않아.’
실프의 마음을 알고 있는 유지한은 김건오와 웃는 얼굴로 잡담을 나누면서도.
은연중에 그의 표정이나 행동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섣불리 정보를 캐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일단 그는 김시후가 신뢰하는 아버지였기에, 어디까지나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
“맞다.”
칠라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던 김건오는 민유리를 향해 말했다.
“칠라 님에게 펫톡은 먹였나요? 이번 주 안으로 전달한다고 했는데 받았나 모르겠네요.”
“펫톡?”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펫톡이 뭐냐면, 테이머와 펫을 위해 개발된 영약을 말하는 거예요.”
“……!”
일본 영웅청에서 전달해준 영약에 관해 알고 있는 김건오.
김시후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고 계세요?”
“우리 연구소에서 개발한 거니까.”
“그게 거기서 만든 거였어요?”
“맞아. 아빠가 미리 말을 못 해줘서 미안하다.”
테이머와 펫 사이에 텔레파시를 가능케 하는 영약.
그 영약의 개발에는 김건오도 관여하고 있었다.
“저번에 한국에서 칠라의 털을 가져간 거 기억하죠? 제품 개발 과정에서 그 털도 샘플로 종종 사용했으니 부작용 걱정은 없다고 봐도 돼요.”
“아, 그렇구나.”
“유지한 파티에게 영약을 선물하자고 한 것도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찍! 마음에 든다, 똑똑한 인간! 내 주인도 좋아하고 있다!”
“시끄러. 함부로 생각 읽지 마.”
“읽히는 걸 어떡하냐! 찍찍!”
쿡!
아직 텔레파시를 나누는데 미숙한 민유리가 손으로 칠라의 옆구리를 찔렀다.
뒤이어 한동안 영약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던 김건오는 식사 중인 이미아를 향해 말했다.
“이미아 씨는 김현태 파티에 계실 때부터 한 번쯤 뵙고 싶었어요.”
“영광입니다, 선배님.”
“미식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은요.”
“그래서 오늘 저녁 식사로 몬스터 레스토랑에 가볼까 해요. 양도 정말 푸짐하고 아마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식사가 될 겁니다.”
“오호……. 거기 이름이 뭐예요?”
김건오의 말에 슬쩍 흥미를 드러내는 이미아.
어느새 유지한 파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는 이후로도 즐겁게 대화를 이어갔다.
‘참 호감 가는 인물이야.’
유능하고 뛰어난 몬스터 연구원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가 신뢰하는 가족.
거기에 전직 3급 영웅으로 활동했던 화려한 이력까지!
성격마저 쌀쌀맞지 않고 친절한 김시후의 자상한 아버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유지한이 미워하려야 미워하기 힘든 부류였다.
“우리 건배할까요?”
“건배!”
“건배!”
그렇기에 유지한은 실프가 갖고 있는 감정을 되새기면서.
더더욱 김건오를 경계하고 있었다.
*****
식사를 끝마친 김건오는 다시 자동차에 유지한 파티를 태웠다.
숙소로 가기 전에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어라? 여긴…….”
김시후가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직진하는 방향에 보이는 은색의 네모난 건물.
어쩐지 익숙한 그 건물은 평소 김건오가 근무하는 교토몬스터연구소였다.
“아빠. 지금 연구소로 가는 거예요?”
“응.”
“왜요? 어렵게 휴가까지 냈잖아요. 아직 처리할 게 남았어요?”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연구소 한 번 구경시켜주려고.”
“저희가 가도 되는 거예요?”
“당연히 허가는 받아뒀지.”
원래대로라면 보안 정책상 관계자 외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연구소.
다만 유지한 파티가 드물게도 교토에 방문한다는 소식에.
연구소의 고위 관계자들도 입장을 허용할 만큼 관심을 드러냈다.
치이익! 치이익!
입구의 자동문을 넘어서자 나온 것은 연구소의 소독실.
알싸한 알콜 향이 느껴지는 하얀 안개가 모든 일행을 향해 분사되었다.
그러면서도 몸이 젖거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이.
제법 신경을 쓴 시스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케다 씨.]”
“[건오 씨? 옆에 계신 분들은…….]”
“[유지한 파티예요.]”
“[에? 헤에에에?!]”
“[뭐? 누가 왔다고?]”
여기저기서 김건오를 알아본 연구원들이 1층 입구로 몰려들었다.
조명처럼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는 대부분 칠라를 향하고 있었다.
“[영상으로만 보던 친칠라가 눈앞에……!]”
“[아주 근사한 털이다!]”
“찍찍? 스바라시? 저게 무슨 뜻이냐?”
“아무튼 좋다는 거겠지.”
몬스터연구소답게 영웅보다도 몬스터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
다만 민폐를 끼치는 걸 걱정하는 것인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시선만 보내올 뿐이었다.
김건오는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유지한 파티를 자신의 일터로 데려갔다.
‘굉장하네.’
하얀 탁자 위에 가득 놓인 비커와 그 안에 담긴 형형색색의 액체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의 가죽이나 살점으로 보이는 샘플들도 적잖게 있었다.
정말로 연구소라는 분위기에 걸맞은 장소였다.
“이게 다 뭐예요?”
“그건…….”
그리고 평소 김건오의 업무량이 매우 많다는 걸 증명하듯.
그의 자리는 그 어떤 연구원의 자리보다도 훨씬 더러웠다.
주변에 널려있는 쓰레기 하며 미처 치우지 못한 간식들까지!
바닥에 있는 쓰레기통이 그보다 더 깨끗해 보였다.
‘의자의 쿠션이 다 꺼졌군.’
과로를 하더라도 쓰러지는 일이 드문 영웅들.
장시간 연구를 하기에 걸맞은 육체를 보유했다고 볼 수 있었다.
김건오가 상당히 빠른 기간 내에 팀장이 되었다는 건 그 덕분이리라.
그런데 그때였다.
사사사삭!
몸을 개미만큼 작게 줄인 실프가 유지한의 옷 사이로 기어 올라가더니.
남몰래 그의 귓구멍으로 들어갔다.
‘뭐야.’
유지한은 녀석이 갑자기 뭘 하는 건지 궁금해했다.
이내 그의 고막 가까이로 이동한 실프는 조용하게 말했다.
—지한. 대답하지 말고 들어.
“……?”
—앞에 저거 보여? 탁자에 놓인 거 말이야.
김건오가 한창 연구실을 소개해주는 순간.
유지한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실프가 말하는 물건을 찾아다녔다.
‘저건가?’
어지럽게 진열된 비커와 현미경으로 보이는 물체 사이.
작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정답을 찾아내어 고개를 멈추자 실프가 말했다
—지금 보고 있는 그거. 마석이야.
“……!”
—정확히는 마석을 빻은 가루.
마석이라는 말에 유지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실상 없다시피 한 양이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실프는 아주 미세한 마력마저 잡아낸 것이었다.
—저 정도면 기억을 읽을 수 있어.
실프는 탁자에 놓은 마석의 파편을 원했다.
김건오가 가진 기억을 읽어 들이기 위함이었다.
공개적으로 김건오의 마력을 뽑아낼 수는 없겠지만.
몰래 챙기는 건 들키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을 터.
“흠.”
타이밍을 재던 유지한은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초록색 액체가 담긴 비커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죄송한데 이건 뭐예요?”
“아, 그건 저번에 일본에서 발견된 돌연변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주는 김건오.
유지한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하며 탁자로 뻗었던 손을 회수했다.
그의 손끝에는 실프가 바라던 마석의 파편이 달라붙어 있었다.
*****
주머니에 마석 파편을 챙긴 유지한은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뒤이어 김건오가 안내한 곳은 연구소에서도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문.
띡! 띡! 띡!
지문 인식 및 홍채 인식, 마력 인식까지 더해진 3중 보안.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극적인 냄새가 모두의 코를 찔렀다.
‘포르말린인가.’
차가운 온도, 그리고 스산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공간.
몬스터 처리 업체의 창고에서나 봤던 몬스터용 냉동고가 한쪽 벽 전체에 깔려있었다.
이 장소가 연구용 몬스터 사체를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부인에게 쉽게 공개할만한 곳은 아니었기에, 유지한은 말했다.
“저희에게 여길 보여주시는 이유는…….”
“음! 여러분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몬스터가 있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김건오의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마치 그가 일행을 연구소로 데려온 목적이 이것이었던 것처럼.
“따라오시죠.”
유지한은 김건오를 따라 안쪽으로 걸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실내 온도는 조금씩 떨어져 갔다.
벽에 낀 서리를 보면 굳이 냉동고를 별도로 준비해 놓은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그리고 숨을 내뱉을 때마다 허연 입김이 나올 정도가 돼서야 김건오는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이겁니다.”
자리에 멈춰선 그의 앞에는.
사람 키만 한 높이의 나무 1그루가 놓여 있었다.
“아빠. 이건…….”
“네 엄마가 마지막으로 재배한 플로른이다.”
“……!”
그것은 에르나 하스의 마지막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