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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91화 (291/300)

291화. 의문 (2)

카산드라만이 보유한 고유 스킬, 예언.

예언은 단편적인 미래의 정보를 읽어 들이는 능력이었다.

주로 추상적인 정보를 볼 수 있지만, 그녀만을 위해 제작된 아티팩트의 힘이 더해지면 정보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때로는 소리를, 때로는 이미지를, 때로는 영상을.

심지어는 후각과 촉각마저 느낄 수 있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 또한 존재했다.

“카산드라. 내가 기억하기로 그건……!”

와타나베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카산드라의 예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조만간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에게 해당하는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다시 사용해보는 걸 추천하지.”

“……이미 2번 사용했어요.”

“뭐라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요.”

믿기지 않는 결과에 재차 스킬을 사용했던 카산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예언을 사용할 경우 최소 2달의 간격을 두지 않으면 항상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 때문에 그녀는 평소 고객을 받을 때도 마지막으로 점을 친지 3달 이상 지난 고객만을 받는 편이었다.

“왜 이런 거지? 한국에서 봤을 때는 분명……. 아니야. 그것도 시간이 꽤 지난 일이니까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건 너무 큰 변화인데……. 고리가 반대로 회전하는 것도 분명 어떤 이유가…….”

카산드라는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너무 심각한 분위기에 주위에서 함부로 건들기가 무서워질 정도였다.

그때 김시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저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되나요?”

“이건 조만간 죽는 분들에게 나타나는 미래예요.”

“……!”

“주로 위독한 환자들과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90대 노인분들에게 많이……. 앗.”

아차!

넋 놓고 설명을 이어가던 카산드라가 손바닥으로 입술을 가렸다.

고객에게 예언의 결과를 들려줄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설명을 해야만 하는데.

조심성 없게 머릿속에 든 생각을 그대로 뱉어버렸다.

“방금, 뭐라고요?”

이미아가 카산드라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굳게 다문 입술과 평소보다 가늘게 좁혀진 눈동자.

조금 화가 난듯한 얼굴이었다.

“지한이가 죽는다고요?”

“……확실한 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단지 돌아가신 사례가 많았을 뿐이죠. 물론, 거기에도 예외는 있었어요. 1명뿐이지만.”

그녀가 예언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인간들은 단 1명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단, 그 예외마저도 언젠가 죽을 위기에 처했었던 적이 있었다.

내진 설계가 미흡한 건물의 지하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

사망자가 100명이 넘는 사고에서 생존자가 1명뿐인 사례였다.

“찍찍! 안타깝지만, 살아있는 생명은 언젠가 죽는다고 배웠다!”

“저 말이 맞아요.”

칠라의 말에 민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무리 튼튼한 육체와 마력을 가졌다고 한들 남들보다 조금 오래 산다는 것뿐이지.

종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제가 본 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요.”

그러나 카산드라가 예언으로 본 것은 아무리 멀어도 1년 내로 벌어지는 미래.

그 말은 1년 내로 유지한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리라.

‘마음에 안 들어.’

이미아는 불만이 가득 담긴 눈초리를 했다.

눈앞의 인물이 1급 영웅이고,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유지한의 죽음을 논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유지한이 말했다.

“예외가 있다고 하셨죠.”

“아, 네.”

“그럼 간단하네요.”

“네?”

“제가 2번째 예외가 되면 되니까.”

“……!”

담담하게 대답하는 유지한을 보며 카산드라가 눈을 크게 떴다.

“예전에 저보고 다사다난한 운명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랬죠.”

“이번에도 크게 다를 거 없습니다.”

카산드라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세상 모든 유명인을 고객으로 뒀다고 해도 무방한 영웅.

자존심이 매우 높은 1급 영웅들마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찾아오는 예언가, 카산드라.

과거 유지한의 미래를 점쳤던 그녀의 말처럼.

유지한과 그의 파티는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쯤 되면 예언이라는 게 장난이 아니라는 건 뼈저리게 알고 있으리라.

“숲이라는 건 아마 그루디아겠지? 거기 공기가 되게 맑나 보네.”

—고럼! 그루디아의 공기는 지구와 비교가 안 되지!

하지만 그는 마치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되레 기대감을 내비치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아이가 떠오를 정도.

—야! 구슬아!

“구슬? 저요?”

실프에게 구슬이라고 불린 카산드라가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티팩트를 보고 구슬이라 부르는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에게 실프가 말했다.

—내 미래도 볼 수 있어?

“정령은 무리예요.”

일반적인 생명과 다른 정령의 미래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일본의 정령사와 수차례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우히히! 이거 완전 허접이구만?

“허, 허접…….”

최근 5년간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한 적이 없던 카산드라!

일본의 총리마저 매번 안부 전화를 걸어오는 그녀이거늘.

—나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지한은 걱정 마셔.

실프의 말에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

유지한 외의 다른 파티원의 예언은 모두 숲을 가리켰다.

숲의 비율이 높은 그루디아를 뜻하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 전체를 써도 된다고요?”

“마음껏 써라.”

유지한 파티는 와타나베가 마련해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파티원 모두에게 1개씩 배정해준 방은 너무 넓어서 혼자서 사용하기가 미안해질 정도.

인근에 있는 온천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온 호텔.

넓은 방에서 홀로 심심해진 김시후는 유지한의 방에 계속 들락거렸다.

“형. 아까 카산드라 님의 말씀은…….”

“신경 쓰여?”

“조금은요.”

그저 그런 점쟁이가 아닌 카산드라의 예언.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거짓말이었다.

그에 실프가 말했다.

—걔 은근 허접이야.

“그분을 그렇게 부르는 건 세상에 너밖에 없을걸.”

—우히! 허접은 허접이라고 불러야지!

김시후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실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유지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이지 않는 미래라…….’

주로 죽은 자들에게서 보여졌다는 미래.

그런데 지금, 차원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들린 여인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너는 절망하고 절망한 끝에 자신의 손으로 네 생을 마감할 것이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유지한을 원망하고 저주하던 여인.

그녀는 분명 그의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다시 차원을 넘어갈 때 듣게 되는 건가.’

꿈에서조차 들을 수 없는 여인의 목소리.

오직 차원의 경계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때에만 그걸 접할 수 있었다.

조만간 그루디아로 가는 김에 그것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리고 다음 날.

와타나베와 다시 만난 유지한은 말했다.

“혹시 저희와 함께 그루디아로 가시겠습니까?”

유지한은 그루디아에 얽힌 간략한 사정을 설명하며 와타나베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카를렘에서 그 누구보다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와타나베.

마즈에서 데서를 노리고 펼쳤던 작전조차 그가 다른 지역을 맡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

따라서 유지한은 파티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등을 맡겨야 한다면.

와타나베나 윤도하 같은 인물에게 맡기고 싶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요청을 하는지는 알겠다.”

“저희의 힘이 닿는 한까지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느하하하, 나로서는 반갑고 또 고마운 제안이다! ……하지만 조금 어렵겠구나.”

와타나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하고 싶지만,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와타나베의 가족과 친구들, 그의 길드.

그리고 일본 영웅청과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제지까지!

카를렘 원정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이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너무 많으므로.

와타나베는 신변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일본을 떠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나를 포함한 일본의 영웅은 당분간 이세계로 갈 수 없을 거다.”

“그렇군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유지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이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윤도하는 가지 못하는 건가?”

“그쪽도 자리를 비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1급 영웅 윤도하.

그가 자리를 비운 기간에 주사위 길드에는 많은 일이 쌓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에 1급 영웅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걱정하는 영웅부에서도 그를 막아설 테니.

윤도하를 그루디아로 데려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데려갈 만한 사람이 없네.’

새삼 자신의 부족한 인맥을 아쉬워하는 유지한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케로즈의 김현태 파티가 떠올랐지만.

그들마저도 이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도움도 안 되는 놈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도쿄에서의 시간이 흘러갔다.

*****

“며칠 동안 감사했습니다.”

“벌써 간다니 아쉽군.”

약 4일간 도쿄에서 휴식을 취한 유지한 파티는 와타나베와 이별 인사를 나눴다.

이미아는 조금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

“도쿄, 제법 나쁘지 않았어.”

“그 손에 들린 건 뭔데.”

“…….”

이미아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등 뒤로 감췄다.

각종 먹거리를 쓸어 담듯 구매한 그녀의 가방과 캐리어는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빵빵했다.

“찍!”

커다란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칠라의 가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와타나베와 함께 마중을 나온 카산드라는 살며시 민유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제 연애운 결과는 마음에 드셨어요?”

“……정말로 그게 맞을까요?”

“후훗. 두고 보세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 민유리.

카산드라는 그녀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두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잠시 후 유지한 파티를 태운 차량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다음 일정인 김시후의 아버지, 김건오가 있는 교토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저건!”

“우와……!”

“……!”

영웅 전용으로 준비된 고속철도에 올라타자 이목이 쏠렸다.

자리에 착석할 때까지 눈치를 살피거나 떨어지지 않는 시선들.

시끌벅적하던 지하철에 조용한 정적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자꾸 눈치를 보네.’

메이와쿠라고 불리는 일본의 문화 때문일까.

말을 걸고 싶은데 민폐가 될까 봐 그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길 약 2시간.

교토에 도착한 유지한 파티는 빠르게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앞장서서 길 안내를 맡은 건 아버지를 따라 교토에 와본 적이 있던 김시후였다.

“이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댔는데…….”

김시후는 어느 건물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멀리서 달려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빠!”

“아들!”

오늘 만남을 약속했던 김건오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김시후를 가볍게 껴안았다.

“한국에 못 가서 미안해.”

카를렘에서 김시후가 돌아온 이후 첫 만남.

아들의 머리칼을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모습은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

몸을 작게 줄이고 유지한의 주머니 속에 숨은 실프는.

아무 말 없이 김건오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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