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초대 (4)
겁에 질린 캇파의 발밑에서 초록색의 작은 새싹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아주 작은 크기로 자라났을 때 녀석은 거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취, 취엑?!”
하지만 새싹이 순식간에 자라서 얇고 기다란 줄기가 되었을 때.
거기에 발이 완전히 묶여버린 캇파는 크게 당황했다.
“취에에엑—!”
아무리 때려도, 잡아 뜯어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나무.
캇파는 주변을 향해 날 도와달라는 듯 소리쳤지만.
그보다 처지가 나쁜 녀석의 동료들은 초록색 줄기에 몸이 묶인 채 하늘 위로 떠 오르고 있었다.
“연습 중인 마법인데, 잘 먹히네?”
[숲의 속박]
줄기를 소환해낸 김시후가 마력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꺾었다.
꺾으면 꺾을수록 캇파를 묶는 줄기에 힘이 더해져만 갔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득!
캇파의 몸이 뒤틀릴 정도로 강력해진 압박!
비로소 느슨해진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캇파들은 몸을 떨며 경련했다.
한편, 유지한은 전투에 나서지 않고 주변을 훑고 있었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저놈들이 수상하다.’
IUPC 회원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속닥거리고, 표정을 와락 찌푸리기도 했다.
유지한은 그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똑같아.’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김현태가 짓던 그 지겨운 표정과 똑같았으니까.
결국, 캇파가 거의 정리되었을 즈음 그는 직접 IUPC 회원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그, 그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일본 IUPC 회원들은 손에 검을 들고 다가온 그를 잔뜩 경계했다.
온몸으로 수상함을 드러내는 그들에게 유지한은 휴대폰을 이용하여 번역기를 돌렸다.
“[날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내가 IUPC와 어떤 관계인지도?]”
“[…….]”
“[이게 너희가 벌인 짓이라면 각오해라.]”
“[힉!]”
휴대폰 스피커로 들려온 기계 음성에 겁을 집어먹는 IUPC 회원들.
한국에서 세뇌를 당했던 회원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마력을 가진 사람은 없나.’
기억을 들여다볼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는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달려와서 말했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귀에 번역기를 착용한 일본 영웅청의 직원이었다.
유지한은 그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가 코앞까지 나왔는데 왜 일반인 통제를 하지 않는 겁니까?”
“일본과 한국의 법은 조금 다릅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법이 다르다는데 어쩔 수 없겠지.
직원의 공손한 태도에 유지한은 검을 거둬들였다.
“유지한 파티, 맞으시죠?”
“예.”
“혹시 저희에게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죠?”
“영웅청의 장관님께서 여러분을 뵙고 싶어 합니다. 이번 사건에 더해 비행기 폭발로부터 저희 국민을 살려주신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일본 영웅청을 총괄하는 장관이 요청해온 만남.
유지한 파티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덕분이었다.
“저희는 지금 도쿄로 가는 중입니다만.”
“지금 바로 영상통화가 가능한 공간을 준비하겠습니다.”
*****
전투를 끝마친 유지한 파티는 영웅청의 직원을 따라 인근의 호텔로 이동했다.
“찍찍! 난 좁아서 못 들어간다.”
“아, 이런 실수를……!”
“생각이 짧은 인간이로고! 찍!”
문이 작아서 들어가지 못하는 칠라.
자신의 실수에 절망하던 영웅청의 직원은 재빨리 호텔의 프론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쪽입니다!”
그리하여 일행이 도착한 곳은 지하 주차장이었다.
다소 급하게 준비된 노트북의 화면 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등장했다.
‘뉴스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네.’
그는 한국의 뉴스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던 일본 영웅청의 장관이었다.
그와 단독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에 조금 신기함을 느끼는 유지한이었다.
—저는 영웅청의 장관인 이시오 나오시입니다.
팅!
탄력 있는 콧수염을 쓰다듬던 그가 화면에 비치는 유지한 파티를 훑어보며 말했다.
—먼저 저희 국민을 구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이번 사건은 역사에 남을 끔찍한 테러로 남았겠죠.
“별말씀을.”
—당신들은 칭찬받을 자격이 차고도 넘칩니다! 와타나베 님께서 하신 말이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어요.
언론사 인터뷰에서 유지한 파티를 두고 극찬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던 와타나베 요스케.
그걸 단순히 후배 영웅들을 격려하는 뜻으로 알아듣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영웅청의 장관은 그것이 단순한 격려나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아보았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쿠에 들리셨더군요.
“다 알고 계시네요.”
—죄송스럽게도 여러분의 행적은 전부 제 귀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비행기가 폭발한 뒤에 일본으로 입국한 한국의 영웅.
일본 전역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기에 그들의 이동 경로 또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형식적이고 잡다한 서론을 꺼내던 영웅청 장관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어흠! 그래서 여러분에게는 정부 차원에서 보상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부디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신다면야, 굳이 거부하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는데…….
영웅청 장관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손으로 깍지를 꼈다.
—혹시 유지한 파티의 모두가 일본인이 될 생각은 없으십니까?
“……!”
“……?”
국적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옮길 생각이 없냐는 제안.
유지한은 이것이 그가 만남을 요청한 진짜 목적이었음을 알아보았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미아는 물었다.
“왜요?”
—여러분과 같은 특별한 영웅을 모셔오는 것에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국가에 강한 영웅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해당 국가는 자존심이 상승하는 것과 더불어 국력이 강해졌다는 취급을 받는다.
언젠가 나라에 큰 위기가 도래했을 때 얼마나 강한 영웅들이 국가를 위해 나서줄 수 있는가.
그것이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여러분을 위한 충분한 조건을 준비해두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일본인으로서 개설하는 첫 통장에 100억씩 입금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특별히 원하시는 지역에 거대한 저택을 1개씩 지급하거나 또는 새롭게 지어드릴 수 있습니다.
“돈은 별로 안 끌립니다만.”
—후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굳게 닫힌 영웅청의 창고를 열겠습니다! 수년간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잠들어있는 아티팩트와 각종 보고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죠.
“호오, 얼마나 주실 건데요?”
—20개는 어떻습니까?
“……!”
—참고로 품목의 제한은 없습니다.
영웅청의 창고에서 무려 20개의 물건을 챙겨갈 권리!
한국 영웅부의 창고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 존재할 테니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이건 아무에게나 건네는 제안이 아니었다.
오로지 영웅청 내부에서 인정한 소수의 파티에게만 준비할 수 있는 것.
—여러분의 가족분들도 함께 국적 변경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원하시는 조건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제힘이 닿는 곳까지는 뭐든 들어드릴 테니까.
자신감이 넘치는 영웅청 장관의 목소리.
그의 신분이 신분인 만큼 허세로 건네는 말은 아니었다.
이미 내부에서 수많은 계산 끝에 내놓은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자, 어서 대답해라!’
영웅청 장관은 여유를 갖고 유지한 파티의 대답을 기다렸다.
태어난 국가를 바꾼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그는 이미 옆 나라 한국에서 재능 있는 영웅들을 여러 명 꼬드겨 일본으로 데려온 전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한국은 일본의 행동을 비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괜히 영웅의 국적 변경을 막는 법 따위로 제약을 걸었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쉬이 건들 수도 없었다.
‘둘 중 하나만 넘어오면 될 거 같단 말이지.’
파티장인 유지한이나 길드장 김시후.
꿀잼이라는 길드의 기둥으로 취급되는 두 남자.
그들 중 한 사람만 흔들려도 기회가 생길 터였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유지한의 단호한 거절에 영웅청 장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 남자는 이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대단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유지한 씨? 왜 거절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감사한 제안이긴 한데. 그다지 장점이 없는 것 같아서요.”
—제가 이미 말했듯,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바라는 게 없습니다만.”
—……!
무언가를 깨달은 영웅청 장관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미 한국에서 많은 인지도를 쌓아 올린 유지한 파티.
밑에서 보고받은 내용으로는 돈이나 물적인 것에도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는 집단.
저들의 수준이 단순히 잠재력이 있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수차례 활약을 펼친 지금이기에, 충분한 명성과 돈을 보유한 그들이 굳이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얻어갈 메리트가 없다는 뜻이리라.
‘더 일찍 접근했어야만 했는데!’
유지한 파티에게 조금 더 일찍이 다가가지 않았던 것을 자책하는 그였다.
솔직히 예전에는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들을 얕잡아 본 면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지한? 에이, 그 친구 별로예요.
——거품이 잔뜩 끼었다고 보면 됩니다.
유지한이 7년간 몸을 담갔던 길드인 케로즈의 길드장 박중섭.
김현태 파티에게도 접촉했던 일본이 그를 통해 여러 번 정보를 캐냈을 때, 단 한 번도 유지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들린 적이 없었다.
일본의 국가 인재 영입 사업에서 파티장의 평가 점수가 낮은 파티는 우선순위가 극도로 떨어지는 구조!
그러한 평가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즈음에는 이미 그들의 체급은 너무 커져 있었다.
한국 영웅부에서 쉽사리 접촉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차차! 제가 영웅청 창고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군요. 거기에 어떤 것들이 보관되어 있냐면…….
“드리미움도 있습니까?”
—드, 드리미움이요?
드리미움.
아쉽게도 일본 영웅청에 드리미움은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예전부터 한국이 가진 드리미움을 구매하려고 애를 썼던 기억만 있을 뿐.
영웅청 장관이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자 유지한이 물었다.
“없죠?”
—……네.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금속이라면!
“그게 드리미움은 아니잖아요.”
—크윽!
“영웅부에서는 드리미움을 줬는데.”
영웅청 장관은 저들이 드리미움을 차지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전세계에 5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꿈의 금속!
영웅청에는 그 금속과 동등하거나 그걸 뛰어넘는 물건까지는 없었다.
‘조두진, 이놈!’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은 영웅부 장관 조두진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필 드리미움 같은 최고 등급의 보물을 민간 영웅에게 냅다 넘겨버리다니!
상황이 이쯤 되니, 아무리 좋은 보물을 제시한다고 한들 저들에게 통할지 의문이었다.
—모든 방면에서 한국보다 더 나은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저희에게 더 내세울 게 없다는 뜻이네요, 그거.”
—…….
정곡을 찌르는 유지한의 대답에 영웅청 장관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