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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87화 (287/300)

287화. 초대 (2)

남호열이 홀로 작업 중인 공방.

땅! 땅! 땅!

적막함이 맴돌던 공방이 잠시 후 쇠를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메트로놈을 틀어놓은 듯 균일하고도 깨끗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두드림.

굳이 손으로 쇠를 두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한 기계들이 옆에 준비되어 있었으나 남호열은 그쪽에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평범한 장비를 뛰어넘는 아티팩트는 오로지 대장장이의 손길을 거쳐야만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됐나.”

망치를 내려놓고 이마의 땀을 훔친 남호열이 모루 위에 올려놓은 결과물을 살폈다.

직사각형 모양 철판 위에 덧대어진 얇고 하얀 막.

유지한 파티가 카를렘에서 가져온 거대 문어의 껍질을 얇게 펴서 늘린 것이었다.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졌다는 문어이니만큼 녀석의 사체를 이용한 장비는 분명 아티팩트로 탄생할 수 있을 터.

지금은 그에 앞서 소재의 특징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신축성 좋고, 다른 소재와의 결합도 문제없고, 강도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재생력이 뛰어난 걸 생각해보면…….”

스스스슥!

작업대 위에 놓인 하얀 메모지에서 남호열의 볼펜이 춤을 췄다.

지금껏 알아낸 소재의 정보를 정리해놓은 자료였다.

“써먹을 곳이 아주 많겠어.”

탁!

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볼펜을 내려놓았다.

거대 문어를 드리미움과 같은 최상급의 소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소재와의 호환성이 아주 뛰어난 덕분에 그 어떤 제작에도 투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후, 후후후!”

대체 어떤 물건부터 만들어볼까?

선택지는 다양했다.

길드에 새로 합류한 프란 페이저의 장비도 만들어야 하고.

유지한 파티의 기존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겠고.

아예 새로운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마갑 친칠라도 그리 머지않았다.’

유지한의 개인적인 소망이라는 마갑(魔甲) 친칠라에도 가까워지는 느낌.

조만간 탄생할 결과물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망치를 내려놓은 남호열의 손이 자꾸만 근질거렸다.

‘그런데……. 이게 최선일까?’

잔뜩 들떠있던 그의 마음이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

언젠가부터 머릿속에서 생긴 의문 때문이었다.

과거 그가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의 반열에 오른 것은 무척 기쁜 일이었다.

처음에는 운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의 남호열은 운이 아닌 실력으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 하나.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대장장이를 자처하고 있지만, 뛰어난 스승의 밑에서 대장간 일을 배워본 적은 없다.

습득하는 정보의 출처는 대부분 인터넷에 올라온 해외 자료.

IT 회사에서 근무했었던 덕분인지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솜씨는 뛰어났지만.

어디까지나 독학으로 길러온 능력이니만큼,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그였다.

‘다른 대장장이들과의 만남은 꽤 좋았지.’

IUPC로 인해 남호열이 유지한 파티와 함께 뛰어들었던 지방 원정.

거기에서 남호열은 다른 길드의 대장장이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교류는 그에게 분명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때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종종 연락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호열 씨의 방문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윗분들께서 기술 유출을 걱정하셔서요.

——죄송합니다. 이게 꽤 민감한 문제라서…….

남호열은 아티팩트를 제작할 수 있는 외부에 공방에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아티팩트와 관련된 질문과 답변들도 상당한 제약이 많았다.

외부인에게 고급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한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남호열은 아쉬움을 드러낼 뿐이었다.

“역시 이건 혼자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지.”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고민하고 터득하는 방법뿐.

찹찹!

남호열은 잡생각을 날리기 위해 볼때기를 두드렸다.

그리고 팔을 걷어붙인 그가 다시금 망치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뚜르르르르!!

작업 중에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 볼륨으로 설정해둔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으로 발신인을 확인한 남호열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지한 씨다!”

지금쯤 일본에 있을 유지한의 연락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한 씨! 몸은 괜찮으세요?!”

—벌써 소식 나왔어요?

“지금 비행기 터진 거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요.”

유지한 파티가 폭발한 비행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남호열은 그들을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고작 그걸로 죽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뭐, 그건 그렇고. 호열 씨.

“네?”

—지금 바빠요?

“아뇨. 쉬고 있습니다.”

—마침 잘됐네. 망치 잠깐 내려놓고 일본으로 오세요.

“……에?”

남호열은 입에서 얼빠진 소리를 냈다.

갑자기 한국에 있는 사람보고 일본으로 오라니.

그게 망치를 잠깐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일이던가.

“지, 지금은 비행기가 하늘에 못 뜨잖아요?”

—그래서 택시 불러뒀어요.

“택시?”

—비행형 펫을 보유한 테이머가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그거 타고 오세요.

“에에엑?!”

펄럭! 펄럭!

그때 꿀잼의 공방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남호열이 헐레벌떡 밖으로 달려가자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땅으로 내려오는 새가 보였다.

그 회색 새의 등에는 한 남자가 탑승하고 있었다.

‘저건 주사위의 영웅이잖아!’

거대 길드에 소속된 테이머.

그쯤되면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했을 때 관련 뉴스나 게시물이 나올법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두고 감히 택시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지, 진짜로 왔어요! 하지만 저 여권이 없는데?”

—여권은 없어도 돼요. 도착해서 저한테 연락만 해주시면 통과될 겁니다.

“머리가 말을 못 따라가겠는데요……!”

—그럴 땐 일단 움직이면 됩니다. 요새 고민이 있으셨잖아요?

“고민이라면…….”

—그거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

커다란 괴둘기의 등에 앉아있는 테이머는 일본으로 간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

“윤도하 길드장 님께서 아주 정성껏 모시라고 했습니다! ”

“아, 네.”

“이야! 저도 덕분에 특별 휴가받아서 해외로 떠나네요! 특히 이 날개 달린 친구와 함께 해외로 가는 건 처음이에요. 몬스터를 데리고 출국하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릴 수밖에…….”

테이머의 뒤에 앉아있는 남호열은 꽤 말이 많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옆을 내려다봤다.

땅이 아닌 푸른 바다가 무척이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곧 도착합니다.”

공항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했을 때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둘러쌌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매우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테이머가 제출한 서류와 유지한의 연락 덕분에 빠르게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남호열 씨?”

“헛! 네!”

“유지한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를 데리러 온 건 커다란 덩치의 남성들이었다.

조금 겁을 집어먹은 남호열은 특이하게 생긴 차량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꾸벅꾸벅 졸면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호열 씨!”

“아, 시후 씨…….”

남호열은 자신을 맞이하는 김시후를 만났다.

차에서 내리고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독 공기가 뜨겁고 쇠 냄새가 진하게 나는 장소였다.

“여긴 대체……?”

“라이쿠의 공방이에요.”

“라, 라이쿠라고요?!”

일본의 여러 장비 브랜드 중에서도 명품으로 손꼽히는 라이쿠.

그곳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잠이 확 달아난 남호열이 눈을 번쩍 떴다.

“일단 절 따라오세요.”

남호열은 김시후의 손에 이끌려 걸작 보관소 앞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유지한을 비롯해 라이쿠의 공동대표인 타무라 형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이 사람입니까?”

“예. 저희 길드의 대장장이인 남호열입니다.”

마치 사람을 평가하는듯한 타무라 형제의 시선.

남호열은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그들 앞에서 뻣뻣하게 차렷 자세를 했다.

“유지한 씨.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걸작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어쩌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행운일 수도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기회 대신 이 대장장이의 수련을 원하세요?”

“예.”

짧게 대답한 유지한은 남호열을 바라봤다.

그는 눈앞에 있는 이들의 정체를 파악했는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보관소에 진열된 것들은 확실히 좋아.’

라이쿠의 걸작품은 전부 성능과 품질이 뛰어난 물건뿐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유지한의 마음에 차는 건 없었다.

심지어 고를 수 있는 것도 단 1개뿐!

그렇기에 그는 생각했다.

‘호열 씨가 걸작을 만들면 되지.’

길드의 대장장이인 남호열이 걸작을 만들면 된다고.

따라서 그가 라이쿠의 걸작품을 포기하는 대신 요청한 것은 남호열이 라이쿠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

항상 혼자서만 활동해온 길드의 대장장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려는 것이었다.

유지한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타무라 켄타는 그런 그가 조금 답답한 듯 말했다.

“본인이 직접 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장장이는 지극히 소수입니다. 라이쿠에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한들 그런 능력을 얻는 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

“저기, 저기요?”

“네?”

“저, 만들 수는 있습니다. 아티팩트.”

“……!”

남호열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타무라 형제의 표정이 변했다.

미리 듣지 못한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정말입니까?”

“이 검을 만든 사람이 남호열 씨입니다.”

유지한은 그제야 큐디를 꺼내어 타무라 형제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쌍둥이 형인 타무라 토시로는 큐디의 소재를 알아보고서 경악했다.

“세, 세상에! 내가 이걸 이제서야 알아보다니!”

“형! 왜 그래?”

“이건 드리미움이야!”

“뭐?!”

과거 미국으로부터 은밀하게 드리미움 가공을 요청받았던 타무라 토시로.

당시 아무리 열을 가하고 두들겨도 변함이 없던 꿈의 금속을 그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활용한 무기가 지금 눈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아니, 드리미움을 다루는 대장장이에게 대체 어떤 가르침이 필요합니까?”

“아티팩트 제작 작업의 노하우나 경험을 공유해주시면 좋겠네요.”

“으음……. 경력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고 하셨죠.”

홀로 활동했다던 대장장이에게 가르칠만한 노하우는 분명 많이 존재하는 편이었다.

작업 현장에 오래 있다 보면 혼자서 깨닫기 힘든 것들도 많았으니까.

그에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타무라 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요청,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가 일주일 동안 남호열 씨를 직접 가르치도록 하죠.”

“라이쿠에서 짧게나마 외부인을 제자로 들이는 건 처음입니다만…….”

“가르치는 보람이 꽤 있겠네요.”

재능 넘치는 원석을 발견한 타무라 형제가 눈을 빛냈다.

슬며시 유지한의 옆으로 다가간 남호열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들 라이쿠의 공동대표 맞죠?”

“예.”

“어우, 역시나! 제가 정말 여기서 일을 배워도 되는 건가요?”

“교육이 끝날 즈음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이거 너무 부담되는데요……. ”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귀빈으로 대접받는 최고 수준의 대장장이들!

유지한 덕분에 졸지에 그들을 스승으로 삼게 된 남호열은 이마에서 땀을 삐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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