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초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
영웅부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다름 아닌 유지한 파티가 그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얼마 전 정식으로 영웅부 위기대응팀의 본부장을 겸임하게 된 양지철.
그의 질문에 헤드셋을 착용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직원이 말했다.
“하, 항공기의 신호가 끊겼다고 합니다.”
“결국 폭발한 건가…….”
“아무래도…….”
이세계 진출 및 성공적인 복귀로 인해 1급 영웅처럼 국가 차원에서 엄중한 관리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유지한 파티였기에.
이번 사고 발생으로 인한 영웅부의 대응은 빠르게 이루어진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멀리 떨어진 현장에 개입하기란 어려운 일.
‘지한 씨 일행이 폭발에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법.
양지철은 일본과의 소통에 심혈을 기울이며 신속한 구조대 파견을 요청했다.
그리고 유지한 파티가 폭발로부터 모든 승객을 살려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을 때.
“어휴!”
“휴우우우…….”
위기대응팀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 봐!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니까?”
“네 이마에 맺힌 땀이나 닦고 말해.”
“일본에 다시 연락 넣어주세요.”
“네!”
비로소 마음이 놓인 양지철은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냈다.
지금까지의 경험 상 그들이 문제를 잘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있던 양지철이었다.
‘하필 유지한 파티가 탑승한 비행기에서 폭발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은 하루에도 수십편이 넘어간다.
그런 가운데 공교롭게도 능력 있는 영웅들이 탑승한 비행기에서 터진 폭발!
‘우연일까?’
위기대응팀의 일원으로서 생각하기에는 다소 좋지 못한 생각일 수 있겠지만.
영웅들이 없는 비행기를 노렸다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킬 수 있었으리라.
하이재킹을 시도했다던 테러범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최근 가장 유명한 영웅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 테러범은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흠.”
양지철은 일본측에서 보내온 라이브 영상을 보며 콧등을 긁적였다.
어쨌든 사망자나 큰 부상자가 없어서 다행으로 여기는 그였다.
띠링!
그때 그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지한 : 지금 보내드리는 사진의 얼굴은 조금 전에 발생한 일본행 비행기 폭발 사건의 단서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지한 : 사람을 풀던, 수배령을 내리던 간에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찾아주세요.]
“아, 설마……!”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양지철의 표정이 매우 진지해졌다.
그는 유지한의 능력을 일부나마 알고 있는 이들 중에 한 사람!
다른 누군가가 이런 요청을 해왔더라면 쉽사리 믿지 못하고 의심했겠지만.
[양지철 : 지금 당장 조사해보겠습니다.]
유지한의 요청인 만큼 의심 따위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재희 씨!”
“네?”
“메신저로 이번 테러와 관련된 용의자 사진 하나 보내줄 테니까 지금 당장 경찰 측에 연락해서…….”
주민등록번호로 국민을 관리하는 한국의 특성.
그리고 마공학 장치의 발달로 상당한 발전을 이룬 얼굴 인식 시스템.
거의 사진이나 다름없는 몽타주가 있으니, 절차만 잘 따른다면 유력한 용의자를 단시간에 뽑아낼 수 있었다.
“찾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빠르면 2주 정도로 예상해요.”
“그것보다 더 빠르게…….”
마법이나 영웅이 얽혀 있는 사건은 영웅부가 다른 기관으로부터 협조를 따내기가 수월하다.
어느 지방의 시골이나 지하 같은 곳에 꽁꽁 숨어다니는 게 아닌 이상, 저 그림에 그려진 얼굴은 금방 찾아낼 수 있겠지.
뚜루루!
아주 바쁘게 움직이던 도중 양지철에게 걸려온 전화.
이따금 여러 높으신 분들도 직접 전화를 해오는 탓에.
양지철은 짧게 답하고 끊기 위해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나중에 다시 연락해주시면…….”
—저 윤도하입니다.
“윤도하 씨?”
화들짝 놀란 양지철이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정말로 윤도하의 전화였다.
—유지한 파티가 탄 비행기가 터졌다면서요?
“그, 그렇지 않아도 지금 조사 중입니다.”
—그 조사, 주사위에서 돕겠습니다.
“주사위에서요?”
—내가 말이죠. 꼭 알아야겠어요.
“네?”
—도대체 어떤 새끼가, 지한이를 공격한 건지.
휴대폰 스피커 너머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지한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윤도하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이었다.
*****
“[처음 뵙겠습니다. 타무라 켄타입니다.]”
“[타무라 토시로입니다.]”
“유지한입니다.”
유지한은 타무라 형제가 건넨 2장의 명함을 읽었다.
라이쿠 공방의 로고가 적혀있는 명함에는 일본어로 적힌 그들의 이름과 공동 대표라는 직함이 적혀있었다.
그것이 가짜일 가능성은 적었다.
라이쿠의 매우 뛰어난 가공 능력을 자랑하듯, 탄성이 좋은 금속을 종이처럼 얇게 깎아서 만들어낸 특수한 명함이었으니까.
“이쪽이 타무라 토시로 씨?”
“[네.]”
코에 작은 점 따위를 제외하고는 얼굴이 똑 닮아 있는 2명의 남성.
눈앞에 있는 그들은 틀림없이 라이쿠를 대표하는 대장장이들이었다.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편으로 세간에 이름밖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고수들이기도 했다.
“저희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군요.”
“[한국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편도 티켓 값이 어마어마한 울트라 퍼스트 클래스.
라이쿠 사의 대표 쯤 되는 인물들은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으리라.
만들기만 하면 아무리 비싸도 팔릴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장비 브랜드였으니까.
“[꼭 따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동생을 살려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여러분을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후, 오늘은 정말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꿀잼이라는 길드의 유명세를 가볍게 뛰어넘는 브랜드를 보유한 타무라 형제.
저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라면 고개가 무거울 법도 하거늘.
그들은 유지한에게 먼저 고개를 깊게 숙여보였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옆에서 번역을 도와주는 이의 말을 들으며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상 참 모를 일이네.’
유지한은 꿀잼에 합류하고 처음 괴아리 사냥터에 갔던 때를 기억했다.
그곳에는 낡아빠진 장비를 착용한 그와 달리 라이쿠에서 제작한 고가의 장비를 두른 5급 영웅들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장비의 격차를 실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고급 장비들을 제작하는 공방의 대표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지한 파티. 혹시 이후에 따로 일정이 있으신가요?]”
“있었긴 한데……. 공항이 마비돼서 일정이 뒤로 밀릴 것 같네요.”
이번 폭발 사건으로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한국과 일본의 항공편은 모조리 취소되었다.
다른 비행기에도 폭발물이나 마법이 심어져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덕분에 와타나베와 만나고자 도쿄로 갈 예정이었던 유지한 파티의 일정은 꼬여버렸다.
“지한 씨. 제가 전철이나 버스라도 알아볼까요?”
“예. 지금은 그게 최선이겠죠.”
도쿄로 갈 다른 방법을 궁리하던 그때.
타무라 형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라이쿠에 잠깐 들려보시는 건 어떤가요?]”
“저희를요?”
“[켄타의 목숨을 구해주신 의미로 공방에 초대하여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후 원하신다면 목적지까지 바래다드릴 수도 있습니다.]”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선물을 주겠다는 타무라 형제.
심지어는 친절하게도 도쿄까지 데려가주겠다는 그들이었다.
라이쿠의 본사가 멀지 않은 덕분에 거리낄 게 없었던 유지한 파티는 그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아아, 들리십니까?”
“예. 잘 들립니다.”
고가의 번역기까지 착용한 뒤에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타무라 형제는 이내 라이쿠의 로고가 박힌 검은색 직육면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타시죠.”
“이게 설마 자동차인가요?”
“저희가 개발중인 마력 자동차입니다.”
“찍찍?! 입구가 엄청나게 커졌다!”
“후후! 칠라 님처럼 몸이 커다란 분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탈 수 있죠.”
기름이나 전기, 그리고 바퀴 없이 마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장비뿐만 아니라 미래 자동차 산업에도 야심을 드러내는 라이쿠였다.
“주인아! 이 자동차 좋다! 찍!”
“조금 탐나네…….”
민유리가 신기한 눈으로 자동차를 살펴보는 한편.
일행이 탑승한 자동차는 인근의 도로를 30분가량 질주했다.
창문 밖을 내다보던 이미아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커다란 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진으로 본 거랑 똑같구나.”
붉은 화산을 연상케하는 커다란 삼각형의 건물 위에 새겨진 라이쿠의 로고.
세계의 특이한 건축물 순위에도 이름을 올려놓은 공방이었다.
‘공기가 뜨거워진다.’
화산처럼 생긴 건물 속으로 차량이 진입했다.
유지한은 점차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망치 어디갔어?!”
“오늘 작품은 무조건 걸작이다!”
“으라차차!”
땅! 땅! 땅! 땅!
상하좌우 구분하지 않고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와 거친 함성들!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일본의 대장장이들은 전부 장비를 제작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공방 전체에 가득했지만.
대장장이들의 열정은 그 열기보다도 훨씬 더 뜨거워보였다.
“저희가 사실은 의뢰인이 아닌 외부인을 공방으로 데려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최근 1년 중에 외부인의 방문은 오늘이 처음이군요.”
“아,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타무라 형제가 모는 차량은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섰다.
지문 인식에 더해 아주 복잡하게 생긴 잠금장치가 3중으로 걸려있는 커다란 문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차에서 내린 쌍둥이 형 타무라 토시로가 잠금장치를 풀어내자.
두께가 30cm에 달하는 두꺼운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동생 타무라 켄타는 아주 느릿한 속도로 열리는 문을 보며 말했다.
“여긴 라이쿠의 걸작 보관소입니다.”
“걸작 보관소?”
“라이쿠는 공방에서 제작한 장비에 엄중한 검수를 거쳐 자체적으로 등급을 매깁니다. 등급은 총 4단계로 나뉘며 순서대로 평작, 수작, 명작, 그리고 걸작으로 부르죠.”
“그렇다면 이 보관소는 가장 좋은 장비가 존재하는 곳이군요.”
“맞습니다.”
가장 품질이 뛰어난 걸작품들이 보관된 보관소.
주로 라이쿠의 공동 대표인 타무라 형제가 직접 제작한 장비가 이곳에 보관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걸작을 선물하기 위해 유지한 파티를 데려온 것이었다.
“원하시는 물품으로 1개씩 고르셔도 됩니다.”
“참고로 여기에 보관된 물건 중 95%가 아티팩트입니다.”
“9, 95%요?”
“그리고 대부분의 아티팩트가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효과를 갖고 있죠.”
“엄청나네요…….”
“자신있게 말하건데, 모두 최상품입니다.”
문으로 입장한 유지한은 보관소에 진열된 장비들을 바라봤다.
벽을 아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갑옷과 각종 무기들.
30개가 넘어가는 영웅 파티를 전부 무장시키고도 남을 법한 양이었다.
‘역시 대단하다.’
심지어 저 중 95%가 아티팩트라니!
신체 능력을 높여주는 아티팩트라면 시장에서 수요가 너무 많아서 언제나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부류.
라이쿠가 괜히 일본을 대표하는 공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지한이었다.
스릉!
유지한은 눈에 띄는 검 하나를 뽑아서 살폈다.
멀리서 보던 것처럼 만듦새가 매우 뛰어난 무기였다.
검을 사용하는 검사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법한 장비가 틀림없다.
당장 시장에 내놓는다면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라이쿠의 장비인 만큼 아무리 못해도 10억은 받아내겠지.
“음…….”
하지만 이때 남호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단순히 그와의 친분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장 그가 제작한 큐디는 걸작 보관소의 검과 비교하더라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투입된 소재가 드리미움인 만큼 훨씬 앞선다고 봐야 했다.
‘하나같이 괜찮은 장비지만…….’
유지한이 특별히 원하는 건 여기에 없었다.
그렇기에 한동안 눈으로 장비를 구경하던 그가 말했다.
“타무라 대표님.”
“네.”
“저는 이곳에 진열된 장비 말고 다른 걸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 진심입니까?”
“……우리의 걸작을 거부하겠다고요?”
라이쿠의 걸작을 포기하면서까지 원하는 게 대체 무엇인지.
기분이 조금 상한 타무라 형제는 유지한의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