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출국 (5)
“어떻게 이 높이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비행기 안에 있을 때보다 편한데?”
비행기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은 큰 사건을 겪어 놀라기도 잠시.
처음 보는 하늘에서의 풍경에 신기해하며 아래로 추락하는 비행기를 내려다봤다.
‘시간이 됐나.’
예정된 폭발의 순간.
유지한은 시야에서 조금 작아진 비행기를 바라봤다.
곧이어 비행기의 엔진에서 빛이 점멸하며 작은 스파크와 불꽃이 일어나더니.
콰과과과과광——!!!
이윽고 커다란 폭발이 비행기를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수많은 파편들!
각 엔진을 시작으로 몸체 이곳저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폭발에 비행기는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변해갔다.
‘그 개자식이……!’
김시후는 그 폭발이 얼마 전에 받았던 택배의 폭발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
요동치는 감정을 따라 그가 펼쳐낸 마법이 조금씩 불안정해졌다.
“진정해.”
“……네.”
유지한이 개입한 뒤에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김시후였다.
뒤이어 유지한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건 스케일이 너무 커.’
비행기 폭발은 주사위 길드의 유망주에서 도망친 마법사로 신분이 변해버린 정영욱.
그가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김시후의 택배처럼 그 혼자서 꾸밀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반드시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뭘 원했는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와타나베와의 만남을 이용한 계획.
유지한은 이 계획을 꾸민 이들이 노리는 것을 알아보았다.
‘우릴 죽이거나, 욕보이려는 거겠지.’
기회가 있었음에도 테러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영웅으로서 평생 안고 가야 할 불명예.
상승세인 영웅들을 깎아내리기에는 더없이 완벽한 사고였다.
‘그런데, 왜?’
정영욱 외의 누군가가 강한 원한을 품고 있는 걸까.
유지한은 잠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신분을 숨겼던 김현태 파티에서의 일을 제외하고 김시후와 파티를 이룬 이후.
타인에게 커다란 원한을 산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단 그놈.’
청년영웅사관학교의 입학 동기였던 나이스 길드의 민주용.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그가 간절히 원했던 민유리를 유지한이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그와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다고 봐도 좋았다.
청영사 건물에서 마주칠 때마다 불편함과 적개심을 드러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파티에 민유리가 있으니 그가 이 계획을 동참했을지는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문경진.’
나이스 길드와 이름마저 비슷한 나이프 길드의 문경진.
그는 과거 유지한 파티와의 충돌에서 파티원 1명의 목숨과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은 영웅이자.
청영사 동기들을 이용하여 유지한에 대한 여론을 조작하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청영사에서 탈락하여 소식이 완전히 끊긴 지금, 의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더 있었나.’
유지한은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 IUPC.
아제시아에서 넘어온 이세계인들과 손을 잡고 한국에서 대규모의 테러를 일으켰던 조직.
그때의 사건 이후 한국의 IUPC의 회원들은 감옥에 끌려가고, IUPC 한국 지부는 문을 닫게 되었을뿐더러, 해외에 존재하는 국제 본부까지 많은 나라로부터 의심과 경계를 받았지만.
생각보다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그 연맹은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선을 그으며 끝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나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이나 좋지 않다고 했나.’
카를렘에서 복귀한 뒤에 윤도하가 넌지시 전해준 말이 있었다.
주사위 길드가 IUPC 국제 본부에 돈을 주고 심어놓은 말단 직원으로부터 캐낸 정보였다.
——IUPC 회의에서 네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고 하더라.
연맹의 영향력과 입지를 크게 떨어뜨리고 본인은 스타처럼 떠오른 유지한.
그의 이름이 그들의 회의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이야기였다.
회의에 참석할 권리가 없는 말단 직원의 귀에 그 소식이 닿을 정도이니.
IUPC의 중역들이 얼마나 유지한을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뒤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대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유지한은 어느덧 점점 가까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우, 우리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어, 어떡해! 어떡하죠?!”
구름 높이에서 푸른 바다가 보이기까지.
좌석에 쭉 앉아있던 사람들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한 1분 뒤에는 바닷속에 빠져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그때 한 남성이 소리쳤다.
“유지한! 유지한 씨!!”
“예.”
“저, 저희 좀 살려주세요!”
“살려드릴 겁니다.”
“……그런데 왜 지켜보고만 계세요?”
“바다에 들어가려고요.”
“무슨……!”
바다에 들어가겠다니!
남자를 포함한 사람들이 입을 쩍하고 벌렸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안전벨트를 풀고 의자 좌판 위로 올라가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빠, 빠진다!!”
“우아아악!!”
그리고 끝내 바닷속으로 모두가 빠지게 되었을 때.
200여 명의 사람들의 각각의 몸 위로 비눗방울처럼 보이는 얇은 막이 등장했다.
—우히히! 호들갑 떨기는!
실프가 생성한 바람의 구슬이었다.
햇살이 비추는 바닷속에서 숨을 참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안에서는 원하는 대로 숨을 쉬고 말하는 것조차 매우 자유로운 덕분이었다.
“와, 신기하다.”
“저기 좀 봐! 물고기도 있어!”
“조금 으스스한데…….”
바다라는 새로운 하늘에서 비행을 하는 느낌.
몸에 물이 닿지도 않으니, 모두가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구경할 뿐이었다.
심지어는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대로 일본까지 갑시다.”
딱!
유지한이 손가락을 튕기자 사람들을 태운 모든 비눗방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래 비행기로 이동 중이었던 일본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어디지?”
“고마츠 공항이라는 곳이 있네요.”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향하던 도중.
수면 위로 다가오는 커다란 배 1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배에 올라탄 유지한은 제복을 입은 일본인의 악수를 받았다.
“[한국의 저명한 영웅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거 반갑다고 하는 거 맞지?”
“아마도요?”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 중 한국어가 가능한 일본인 승객이 말해주기를.
이들은 일본의 해안보안청에서 파견된 구조대였다.
“[어떻게 폭발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거지?]”
“[믿을 수가 없어.]”
“[다들 몸이 젖지도 않았잖아.]”
구조대원들은 별다른 상처나 도움 없이 배에 올라탄 사람들을 보며 무척 놀라워했다.
근래 그들이 출동했던 사건 중에서 이렇게 규모가 크고도 사상자가 1명조차 나오지 않은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내 그들은 유지한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저 영웅들이 이곳 모두를 살렸다고 해.]”
“[나 또한 영웅이었지만, 정말 차원이 다른 능력이야.]”
“[저만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우리 중에도 있었다면…….]”
유지한 파티의 능력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구조대원들.
그들 중에도 영웅 출신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2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바닷속을 걸어 다닐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갖춘 이들은 없었다.
한편 유지한은 김시후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후야. 너 다른 사람한테 휴대폰 빌려준 적 있어?”
“어……. 갑자기 그건 왜요?”
유지한은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와타나베 요스케의 전화번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보았다.
진짜 와타나베의 전화번호는 스팸 번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주 교묘하다.’
사람들은 평소에 자주 접하지 않는 번호라면 일반적으로 주소록에 저장된 이름으로 그 번호로 구별한다.
와타나베와는 평소 연락할 일이 드문 만큼 김시후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처음에 도착한 항공권은 와타나베 님이 보낸 게 아니었어.’
와타나베가 보냈다고 생각했던 항공권은 사실 다른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아마도 정영욱이나 그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들이겠지.
항공권과 함께 개인 일정 때문에 연락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도착한 건, 사실 그쪽에서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지금은 해당 번호로 통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에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잠깐 빌려준 적은 있어요. 너무 다급한 표정으로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그때 바뀐 거겠네. 어떤 사람인지 기억해?”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알아볼 방법은 있죠.”
김시후는 품에서 최하급 마석 하나를 꺼내어 자신의 마력을 담았다.
그 뜻을 이해한 유지한은 곧장 샘플링으로 그의 기억을 들여보았다.
—으흑! 제발 휴대폰 좀 빌려주시면 안 돼요……?
‘저 사람인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며 휴대폰을 빌려 가는 여성.
김시후는 스쳐 지나갔던 그녀를 금방 잊어버렸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지한은 그녀의 옆에서 가만히 김시후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손이 엄청 빠르다.’
타다다다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주소록에서 와타나베의 번호를 교체하는 여성.
그 뒤에는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어 울먹거리는 연기를 하기까지!
훈련받은 전문 배우를 고용한 듯 빠르고도 정확한 몸짓이었다.
“실프. 이 여자 얼굴을 그릴 수 있겠어?”
—그건…….
“안 돼?”
—아주 쉽지! 우히히!
다시 현실로 돌아온 실프는 하얀 종이 위에 여자의 몽타주를 그렸다.
사진을 출력한 듯 완벽하게 그려진 여성의 얼굴을 보며 김시후는 소리쳤다.
“이, 이 사람 맞아요!”
“찾아야겠어.”
일행이 탑승한 배가 인근 해안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유지한은 여성의 사진과 함께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덧 일본에 도달한 유지한 파티는 해안가에 정착한 배에서 내렸다.
뒤이어 살아남은 승객들은 모두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평생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미소 짓는 민유리와는 다르게.
칠라는 유명한 가수가 된 것처럼 한 손을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찍찍! 내 이름이 뭐라고?”
“칠라!”
“안 들린다! 다시 한번! 찍!”
“칠라—!!”
“찍, 찍찍! 훌륭하다!”
많은 환호를 받으며 거만하게 콧수염을 쓰다듬는 칠라.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는 상황이 녀석에게는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예지야!”
“엄마! 엄마!”
이윽고 해안가 근처로 수십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오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비행기 승객들의 가족이나 지인들이었다.
“[켄타! 켄타!]”
무척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을 입은 일본인 1명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왔다.
이내 그가 품에 안은 사람은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이었다.
“[나는 네가 죽는 줄 알았어……!]”
“[형. 나 안 죽었으니까 진정해.]”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곧 김시후를 향해 걸어갔다.
“[꿀잼의 김시후 씨?]”
“네?”
김시후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들을 바라봤다.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희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품속에서 비슷하게 생긴 명함을 꺼내는 두 남자.
조심스럽게 그 명함을 받은 김시후가 눈을 크게 떴다.
“라이쿠?!”
그 두 사람의 정체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 공방.
라이쿠 사의 쌍둥이 대표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