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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77화 (277/300)

277화. 악연

아버지의 지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유지한은 양지철에게 연락을 걸어 데서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의 부름에 불려 나온 데서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는 날 마치 필요할 때 빌려 쓰는 도구처럼 취급하는군.”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까.”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묘하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 데서.

유지한은 그를 데리고 서울 송파구의 대형 병원을 찾았다.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라고 알려진 60대 남성은 그곳에 입원해 있었다.

“이쪽입니다.”

일행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병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서인이 조사했던 인물과 만났는데…….

데서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이 병원의 의사들은 실력이 상당한가 봐.”

“…….”

“잘도 ‘저런걸’ 살려놓다니 말이야.”

“저분의 가족들 앞에서는 그딴 말 하지 마라.”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살아있는 자의 것이 아닌 듯 생기 없고 거뭇거뭇한 피부.

폭삭 마르다 못해 뼈와 가죽이 완전히 달라붙은 몸.

어린아이들이 본다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릴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의 가족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유지한이 생각하기에도 이 환자는 당장 먼 곳으로 떠나더라도 이상함이 없을 정도로 몰골이 처참했다.

‘유리 씨의 동생보다 더 심각하다.’

마력 변색 증후군에 더해 각종 합병증에 걸렸다더니.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의료기기가 그의 침대 옆에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기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 환자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최첨단 마공학 기술까지 동원된 모양이었다.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는 가족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까지 연명 치료는 불가능했겠지.

“멀리서 봐도 저주가 확실하군.”

“그렇겠지.”

“미리 말하지만 해주는 불가능하다. 저번에 본 젊은 여자보다 훨씬 더 심각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데려온 데서였지만.

그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보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치료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이 사람이 어떤 저주에 걸렸는지만 확인해줘.”

“그 정도야.”

짧게 대답한 데서가 침대로 다가간 뒤 남자의 손목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까닥했다가는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았기에 나름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

그런데 신체 접촉 이후 전달되는 모든 정보로부터.

데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

“무슨 일인데?”

“이 남자가 걸린 저주는 죽음의 섬에 있을 때 네게서 느꼈던 저주와 거의 똑같다.”

“……!”

“이리도 끔찍한 저주가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이쯤 되면 저주를 건 마법사가 누군지 참 궁금해질 정도다. 예상컨대 보통 미친놈은 아니겠지. 이만큼 강력한 저주는 그 사용자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가져오니까…….”

유지한은 데서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누워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어쩌면 같은 저주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지인.

아버지에 관련된 정보나 이 저주에 관한 것까지, 그는 전부 알고 있으리라.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전혀 떠오르는 기억 따위는 없지만.

유지한은 아직 말도 못 하던 시절의 자신이 이 남자를 만났으리라고 확신했다.

“바로 투여하겠습니다.”

병실에 함께 들어온 간호사는 환자에게 카븜의 약초로 제작된 수액을 투여했다.

가족들의 동의가 있었던 덕분에 별다른 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1분, 2분, 3분.

시간이 흐를 때마다 환자의 혈색은 눈에 띄게 좋아져 갔다.

“허어! 이렇게나 빠른 변화가…….”

“저런 효과를 보여주면서도 전혀 부작용이 없다고?”

“우, 우리 병원의 영약이랑 기술이 전부 허접하게 느껴지네.”

이세계에서 가져온 영약의 효과를 보며 감탄하는 의료진들.

허나 유지한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기껏해야 며칠 뒤 꺾이기 직전인 목숨줄을 조금이나마 늘려놓은 것에 불과했기에.

‘다시 방문할 때까지 죽지 마세요.’

수액의 효과로 소란스러워진 병실에서, 유지한은 다짐했다.

다음에 여길 찾아오게 되거든 반드시 가족들에 대해서 듣고야 말겠다고.

****

유지한이 가족과 관련된 조사로 바쁘게 움직이던 시각.

김시후는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하던 일들에 시간을 투자했다.

“마법사 김시후 님이시죠?”

“네, 들어오세요!”

“먼저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청소 아주 깔끔하게 해주시면 몇 장이든 드릴게요!”

청소 업체를 고용하여 비어있던 집에 대청소를 벌이고.

“호열 씨! 그때 말한 허리 부분 절개 좀 해주세요.”

“소재도 생겼겠다, 그냥 이참에 새로 제작하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좋죠! 대신 디자인은 이런 방식으로…….”

카를렘에서 사용하며 조금씩 불편함을 느낀 장비들을 두고 남호열과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곧 파티원들과 일본으로 떠날 일정이 잡힌 만큼.

한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영욱이는 못 찾았나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김시후는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자신의 옛친구.

정영욱의 행방을 조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를 찾아내기 위해서 영웅 출신의 전문 탐정을 고용할 정도였다.

—가족, 친척, 친구, 주사위 길드의 영웅들과 영웅 학원 시절의 지인들까지……. 정영욱이라는 인물이 밟아온 발자취를 따라가며 모든 걸 조사해봤지만, 그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

영웅부의 치료실에서 목격된 것으로 끝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 정영욱.

의뢰 성공률이 91%에 달하는 유능한 탐정조차도 그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고객님! 추가금은 전혀 필요 없으니, 부디 저희 업체를 더 믿고 기다려주신다면……!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탐정 업체와의 통화를 마친 김시후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정영욱은 이미 한국을 떠난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이 드는 시점이었다.

‘정영욱.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지방 원정 당시, 김시후를 배신하고 이세계인의 미끼로 사용되었던 정영욱.

김시후는 그와 다시 친해질 생각 따위는 없었다.

단지 그동안 왜 가식을 내보이며 솔직하게 행동하지 않았었는지 묻고 싶었을 뿐.

“쯧.”

김시후는 점점 복잡해지는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청소 덕분에 깨끗해진 거실에서 팔다리를 뻗어 대자로 누웠다.

그런데 그가 휴식을 즐기던 그때였다.

띵동!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그가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현관문을 열자 한 택배기사가 작은 박스 하나를 넘겨주었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자였다.

“어디서 보낸 거지?”

김시후는 상자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살폈다.

그리고…….

[보내는 이 : 정영욱]

스티커에서 정영욱의 이름을 발견한 그의 눈이 아주 낮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실종된 사람이 택배를 보낸단 말인가.

‘누가 장난치는 건가.’

실종 전의 정영욱조차 김시후의 집 주소를 알지는 못했다.

어쩌면 최근에 탐정에게 의뢰를 맡겼다는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간 것이리라.

누군가의 유명세가 커질수록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도 함께 늘어나는 법이었으니까.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둬.”

김시후는 상자를 내려놓고 지팡이를 잡았다.

그에게 손을 쓰지 않고 상자를 여는 것 따위는 아주 간단한 일.

찌직! 찌지직!

섬세한 마력 제어로 택배 상자의 테이프는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뜯겨나갔다.

그런데 상자가 열리기 직전.

“……!!”

김시후는 상자 안쪽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마력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지팡이를 흔들었다.

[실드]

[실드]

[실드]

[실드]

…….

…….

여러 방어 마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시전 속도가 빠른 실드.

총 10겹의 실드가 상자를 감싸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2초였다.

쩌저저저적!!

하지만 상자의 중심에서 시작된 폭발은 김시후의 마법을 가볍게 깨뜨렸다.

1겹, 2겹, 3겹, 4겹을 뛰어넘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는 실드를 보며 김시후는 당황했다.

단순히 마법의 위력으로 밀리는 게 아니라.

상자 속 마법이 자신의 마법을 완전히 꿰뚫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흠칫 놀란 그는 그 폭발에 맞서듯 쉬지 않고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고도 폭발을 완전히 잠재우기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이건 뚫린다!’

이를 악문 김시후는 마지막 한 꺼풀 남은 실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상자를 들고 거실 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쨍그랑!

투명한 창문이 깨지며 유리 파편이 튀었다.

[에어 슈트]

8층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김시후가 마법으로 체공 시간을 늘렸다.

뒤이어 허공에다 상자를 던지고는, 마지막 실드가 깨지기 직전 거인을 소환했다.

[거신병의 약속]

다소 급하게 생성된 거인의 출입구는 매우 비좁았다.

하지만 당장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막아줘!”

슈와아아아악!

거인의 새끼손가락을 이루는 오밀조밀한 나무들 사이에 상자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이 안으로 접힘과 동시에.

쿠웅——!!

상자가 빨려 들어간 부위로부터 커다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충격에 의해 인근 차량과 건물들의 창문이 모조리 깨져나갔다.

삐용! 삐용! 삐용!

수많은 자동차의 경고음과 사이렌으로 뒤덮이며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길가.

고작 택배 상자를 연 것치고는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저건 오로지 날 죽이기 위한 마법이다!’

평소의 김시후가 어떤 방식으로 마력을 다루는지 모두 간파하고서 준비한 듯한 마법.

피부를 떨리게 하는 마력 폭발보다도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김시후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가, 갑자기 뭐야!”

“저 커다란 기둥은 뭐지?”

“어머! 오빠 차 유리 깨진 것 좀 봐!”

“어디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갑작스러운 사태에 길가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혼란에 빠지고.

맨발로 바닥에 착지하는 데 성공한 김시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상자의 파편을 바라봤다.

‘저건……?’

어떻게 그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것인지.

떨어지는 물체 중에는 작은 종잇조각이 섞여 있었다.

김시후는 그것을 손을 낚아챘다.

아주 작은 크기로 글자가 적혀있는 쪽지였다.

[기억해라 김시후.]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난 언제나 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마법사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내용.

하지만 김시후는 알 수 있었다.

‘너구나.’

이 자만심 가득한 쪽지를 작성한 사람이.

그가 기억하는 정영욱이라는 걸.

“미쳤구나, 너.”

같은 푸른 달 영웅 학원 출신인 정영욱.

그가 가진 열등감은 김시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실상 김시후만 없었다면 학원의 1등은 그의 차지였을 테니 그걸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래도 겉으로나마 친절함을 연기했던 정영욱이었기에 김시후도 나름 친분을 유지했거늘…….

이제는 단순히 절교로만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콱!

싸늘한 얼굴을 한 김시후가 쪽지를 와락 구겨버렸다.

뒤이어 그의 손안에서 구겨진 쪽지가 마력의 불꽃에 의해 활활 타올랐다.

차가워진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푸르디푸른 불꽃이었다.

‘너는 선을 세게 넘었어……!’

그는 다짐했다.

다음에 그 자식을 만나게 되거든.

내 주변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죽여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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