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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72화 (272/300)

272화. 인연

체력이 큰 폭으로 떨어진 민소연의 저주를 풀어내는 순간.

그녀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말하는 데서.

“약초를 더 먹여보면 어때요? 아니면 영약이라도.”

“무리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정도의 영약이 아니라면 그만두는 편이 좋아.”

“제길…….”

뛰어난 카븜의 약초와 현존하는 영약으로도 환자의 수명을 늘릴 수만 있을 뿐.

해주가 가능한 몸 상태로 회복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민유리는 이 자리에서 동생을 치료하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도 네 동생의 쾌유를 바라마.”

“…….”

“그래야 지구에서 이 몸, 데서라는 인간의 가치가 올라갈 테니까.”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끝으로.

데서는 다시금 영웅부 관계자들에 의해 영웅부로 끌려갔다.

이전에 제리가 갇혀있던 지하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다.

양지철은 병원을 떠나기 전 로비에서 유지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만간 다른 환자들과도 데서와의 만남을 계획해볼 예정입니다.”

“좋은 소식 생기면 저희에게도 전해주세요.”

“네! 지한 씨도 혹여나 다시 데서가 필요하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모든 치료에 있어서 이 병원에 계신 민소연 씨를 항상 1순위로 두고 움직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양지철이 병원의 정문을 빠져나갔다.

가만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지한은 유리문에 달라붙는 칠라를 발견했다.

“찍찍! 대장! 어떻게 됐나?”

“당장은 치료가 어렵다나 봐.”

“어째 분위기가 무겁더라니. 찍…….”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칠라의 꼬리와 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주인은 어떻지? 찍?”

“아직 병실일 거야.”

해주 불가 판정이 내려진 직후.

민유리는 사람들이 병실을 나서기 전까지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찍! 그거 아나? 내가 대장과 만나기 한참 전부터 주인은 동생의 치료를 꿈꿨다!”

“알고 있어.”

민소연이 괴냥이에게 공격받았다는 목격자의 증언 하나만으로.

몇 년간 괴냥이에게 집착하며 괴냥이만 사냥하는 영웅으로 활동한 민유리였다.

그런 그녀와 매번 함께였던 칠라는 동생을 향한 민유리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때려눕힌 고양이만 수 만 마리다. 찍. 하지만 아무런 단서조차 얻지 못했다.”

“…….”

“하지만 대장과 만난 이후로는 많은 게 달라졌다.”

민유리는 집착에 가까웠던 괴냥이 사냥을 그만두고.

꿀잼에 합류하여 동생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오늘은 그녀가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낸 날이었다.

“찍찍! 나는 조만간 주인의 동생이 깨어날 거라 믿는다!”

“내가 꼭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줄게.”

“그렇다면 대장! 지금은 다시 병실로 돌아가라. 찍. 주인에게는 대장이 필요하다.”

유지한을 향해 팔을 휘저으며 병실로 돌아가라는 칠라.

계속되는 요구에 못 이긴 유지한은 몸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민소연이 입원한 층에 도착하자 소파에 앉아있는 김시후와 이미아가 보였다.

“오셨어요, 형.”

“지한. 우리도 그만 갈까?”

이미아는 굳게 닫혀 있는 병실의 문을 힐끔거렸다.

민유리를 배려하여 병원에서 조용히 떠나주려는 것이었다.

“내가 인사만 하고 올게.”

유지한은 닫힌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섰다.

병실에 홀로 남아 있던 민유리는 문을 등진 채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 씨.”

“네.”

“좀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잔뜩 흥분했던 몇 분 전과 다르게 평상시의 톤으로 돌아온 목소리.

유지한은 그녀의 등을 보며 말했다.

“많이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미안합니다.”

“지한 씨가 저한테 사과할 건 아니예요.”

“그래도요.”

“뭐가 됐건 전보다 가능성이 더 높아진 거잖아요? 소연이가 회복될 수도 있다는.”

“…….”

“체력 회복에 탁월한 영약을 구할 수 있다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있잖아요. 지한 씨가 처음에 저한테 말해주셨던 병풀이 몬스터로 변한다든지…….”

홀로 활동하는 민유리를 꿀잼으로 영입하기 위해서 꺼냈던 말들.

유지한은 그때를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때 제가 했던 약속도 기억하시죠?”

“네.”

——유리 씨에게 드린 영입 제안에서 제가 한 가지 특별한 조건을 추가하겠습니다.

——유리 씨가 꿀잼에 들어온다면, 길드 전체가 민소연 씨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는 것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민유리도 마찬가지로 그 당시 유지한의 약속을 기억했다.

원래대로라면 죽을 뻔했던 데서를 살려온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말했듯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한 씨.”

“예?”

“저 내일부터 휴가 써도 돼요? 일주일 정도는 가족들이랑 시간 좀 보내고 올게요.”

“예. 얼마든지 쉬고 오세요.”

“다들 개인 일정도 있을 텐데…….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돼요.”

마지막까지 등을 보이며 유지한을 내보내려는 민유리.

그에 유지한이 말했다.

“그 전에 잠깐 이쪽 좀 봐요.”

“……안 돼요.”

“왜요?”

“…….”

“그럼 내가 앞으로 갑니다.”

유지한은 저벅저벅 걸어서 민유리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녀는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저,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떻게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태연하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 이거 놔요.”

유지한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어내자.

그녀의 젖은 눈동자에서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유지한은 볼을 타고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며 말했다.

“슬플 땐 울어도 됩니다.”

“흐, 흑……!”

민유리는 눈을 꽉 감고 소리 죽여 울었다.

몇 년째 깨어나지 못하는 동생의 앞에서, 2번째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지금껏 생사를 함께 했는데, 그 정도는 받아줄 수 있는 사이잖아요. 우리.”

유지한은 그런 그녀의 몸을 가볍게 껴안아 주었다.

터져버린 그녀의 눈물샘이 완전히 말라버릴 때까지.

*****

[<영웅칼럼> 악동이 살아서 돌아오다.]

[카를렘으로부터 지구로 복귀한 영웅들!]

[프랑스, 돌아온 영웅들을 위해 성대한 퍼레이드를 벌여…….]

[영웅들이 도달한 10개의 이세계에 관하여.]

…….

…….

유지한 파티가 카를렘으로 출발했던 때는 겨울.

그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때는 추위가 조금 수그러든 초봄이었다.

그리고 초봄부터 영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시도하면 쏟아지는 여러 기사들은.

대부분이 이세계에서 지구로 복귀한 영웅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 진짜로 이세계에 다녀온 거야?”

“와, 다른 세계는 어땠을까? 진짜 궁금하다.”

“난 에어컨 없으면 못 사는데.”

“거기도 선풍기는 있겠지.”

우주 비행사에게 쏟아지는 관심만큼이나 그들을 향한 시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한국에서 자국으로 돌아간 해외의 영웅 중에는 큰 규모의 환영식을 받는 이들도 존재할 정도였다.

거기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단연코 1급 영웅들.

그리고…….

[와타나베 요스케, 영웅 유지한을 극찬하다.]

[주사위의 윤도하..“유지한 파티가 아니었다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

[꿀잼—소규모의 길드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다.]

[최초로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 꿀잼…….]

1급 영웅들이 직접 입으로 언급하는 유지한의 이름.

그리고 그의 파티와 소속인 꿀잼의 이름 또한 언론과 미디어를 타고 널리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했던 영웅들도 하나같이 쟁쟁한 이들뿐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유지한만큼이나 높은 주목을 받는 사람은 한국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임 씨.”

“하, 하하……. 어떻게든 해냈습니다.”

유지한 파티가 부재중일 때 길드의 각종 잡무를 처리했던 건 장사임이었다.

그가 설립한 몬스터 처리 업체 몽땅이 꿀잼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외부에 알려진 직후.

그는 몬스터 처리와 더불어 유지한이 고용해둔 직원들과 함께 각종 문의에 대응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걸 다 어떡하죠?”

유지한 파티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이후 차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 버린 문의량.

장사임은 잔뜩 쌓여있는 메일과 끊이지 않는 전화에 크게 난감해했다.

“하나하나 대응하다가는 밤을 새워야 할 겁니다.”

“일단 전부 무시하세요!”

“네? 이, 이걸 전부 다요?”

“조만간 사람을 더 뽑을 거라서요. 그때 처리할 겁니다.”

“아, 그건 참 다행이군요.”

인력을 늘리겠다는 김시후의 대답에 장사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아! 현재 씨와는 연락됐어?”

“5시에 만나고 올게.”

“필요하면 나도 불러. 시간 맞춰서 갈 테니까.”

이미아는 케로즈 매니지먼트 부서의 이현재와 만남 약속을 잡았다.

그는 유지한이 카를렘으로 출발하기 전에도 영입 제안을 건넸던 인물.

뛰어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니 그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곧장 데려올 작정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밀린 업무 따위를 소화하던 유지한은 김시후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청영사도 많이 조용해졌네.”

무료로 임대하여 잘 사용 중인 청년영웅사관학교의 사무실.

유지한은 그 청영사 내부가 이전보다 훨씬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탈락자들이 꽤 나왔나 봐요.”

“그래?”

청영사에 합격 후 조기 졸업에 성공한 유지한 파티와 달리.

그들과 함께 입교했던 파티 중에서는 낮은 평가로 인해 탈락한 곳이 나왔다.

관계자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었던 김시후는 넌지시 말했다.

“그 있잖아요, 형한테 맨날 시비 걸던 놈.”

“나이프 길드의 문경진?”

“듣기로는 문경진 파티가 최하점으로 탈락했다던데요? 어느 시점부터 아예 수업 참여를 안 했대요.”

“흠…….”

문경진이 청영사를 관뒀다는 말에 유지한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묘하게 자존심이 강한 놈이라서 졸업까지는 할 것 같았는데.

“반대로 레이디스의 고미나 파티는 관계자 평가가 아주 좋더라고요. 아마 수석 졸업도 가능할 듯.”

“미나 씨는 그럴 줄 알았어.”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으면서까지 훈련을 거듭한 고미나 파티.

원래 청영사에서 좋은 취급을 받았던 제임스 강 파티와 함께 홍보 영상에 얼굴을 자주 비출 정도로.

최근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그녀들인 모양이었다.

“민주용 파티는? 유리 씨한테 달라붙던 그 사람 말이야.”

“아, 거기도 탈락했대요.”

“거기도?”

“아마 문경진 파티랑 비슷한 시기일 거예요.”

자주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의 파티가 거의 동시에 청영사를 그만뒀다, 라.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별로 궁금하진 않고.’

하지만 그들과 관련된 생각은 짧게 끝냈다.

이제 서로 비교하기에는 영향력이나 체급 차이가 크게 벌어졌으니까.

‘그것보단 어서 엔젤스 가든과 연락을 취해보고 싶은데.’

영국의 길드, 엔젤스 가든의 보물고에 있다는 절대로 찢어지지 않는 종이.

유지한은 그것을 면밀히 살펴보고 싶었다.

‘보물 취급을 받는 물건이니 쉽게 내주지 않겠지. 그렇다면…….’

엔젤스 가든과 인연이 있는 윤도하를 통해 접근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혹은 두루두루 발이 넓은 와타나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터.

유지한이 그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몇 시간 뒤에 만남을 약속했던 대장장이 남호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세요?”

—지한 씨! 혹시 이따가 만날 때 제 와이프가 자리에 함께해도 될까요?

“아! 저희야 환영이죠. 그렇지 않아도 한번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그, 그러면 미리 말해둬야 할 게 있습니다만…….

“어떤 거요?”

—제 와이프는 사실 인간이 아닙니다.

“예?”

—뱀파이어에요.

“……진짜로?”

남호열과 결혼했던 아내가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였다는 말에.

유지한은 물론이고 통화를 함께 듣고 있던 김시후마저 놀란 얼굴을 했다.

“실례지만 아내분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36입니다.

“그 나잇대라면……. 혹시 카지미르라는 이름을 아세요?”

—어? 그 사람, 와이프와 같은 세계에서 넘어왔다던 뱀파이어일 텐데?

“역시나.”

아는 사람들이 건너건너 서로 엮여있다니.

유지한은 한국이 참 좁은 나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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