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68화 (268/300)

268화. 죽음의 섬 (6)

“갑자기 뭐야?”

섬에 도착한 뒤에 벌떡 일어나서 하는 말이 멈추라는 거라니.

검을 든 박재경은 데서를 잔뜩 경계하는 얼굴이었다.

허튼수작을 보인다면 당장이라도 그를 베어버릴 기세.

하지만 그때 데서가 말했다.

“이 섬 전체에서 저주가 느껴진다.”

“뭐라고?”

“이제야 조금은 알겠군. 왜 이곳이 죽음의 섬이라고 불렸는지…….”

읊조리는 듯한 데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천천히 마력을 흩뿌리며 상세한 조사를 거친 결과.

“……진짜네?”

“정말로 카를렘의 마법사들이 가르쳐준 저주 같은 게 있어.”

“그것도 일부가 아니에요. 섬 전체에서 저주가 느껴진다고요!”

배가 정착한 지면에 가득한 모래와 흙, 각종 풀과 나무들까지.

현재 유지한의 시야에 담기는 섬의 모든 물체는 저주로 물들어있었다.

데서를 무시하고 배에서 뛰어내리려던 몇몇 영웅들은 그 즉시 발을 거두었다.

그에 유지한이 말했다.

“섬으로 내려갈 수 없는 건가?”

“저기 저 모래가 보이나?”

“보여.”

“저기에 맨살이 닿으면 해당 부위에 심한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을 느낄 거다.”

“……!”

영웅들이 배에서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렸다면.

그 모래가 몸으로 튀면서 데서가 말한 저주에 걸렸으리라.

“그뿐만이 아니야. 저 나무에는 가까이 다가가면 환각을 보여주는 저주가 걸려있다.”

“환각?”

“나무 옆에 자라난 풀도 조심해라. 시력과 청력을 앗아가는 저주가 있는 것 같으니.”

“뭐, 뭐 그딴 섬이 다 있어…….”

“이 섬은 이상할 정도로 저주의 농도가 짙다. 카를렘에서 본 저주가 전부 이곳에 모여있는 것만 같군.”

유지한은 데서가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하는 저주를 전해 들으며 침음을 흘렸다.

차원 마법을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가 몹쓸 저주가 가득한 장소라니.

“저주를 풀 수는 없고?”

“내 남은 인생을 전부 투자해도 이 섬 전체를 정화시키지는 못할 거다.”

“안 된다는 거네.”

그런데 그때 윤도하가 나섰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

“드디어 일할 시간이다, 무무!”

“음므믐!”

쿠구구구구구!

윤도하가 섬을 향해 손을 뻗자 무무의 몸에서 황색빛이 발생하더니.

배가 정착한 주변 일대에서 작은 지진이 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땅속에서 잔뜩 젖어있는 모래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대,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데서는 튀어나온 모래를 보며 경악했다.

어떻게든 옷에 가려진 팔을 휘저어서 모래가 자신의 몸에 닿지 않도록 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저주받은 모래는 단 한 알조차 배를 향해 튀지 않았다.

우수수수!

땅밑에서 튀어 오른 젖은 모래들이 땅을 뒤덮어갔다.

기존에 지면에 가득하던 저주받은 땅을 한 겹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까 20m 이상의 땅속 깊은 곳까지는 저주가 닿지 않았어. 문제없는 흙을 퍼 올려서 우리가 밟을 땅을 다 덮어버리면 당분간 행동에 제약은 없겠지.”

“따, 땅속에서 그런 걸 구분할 수 있다고?”

“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내 힘을 써본 놈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장난기 가득한 말투의 윤도하와 눈을 마주친 데서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윤도하의 힘을 고스란히 빼앗아 사용했음에도 그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지였다.

*****

윤도하가 땅속에서 퍼 올린 모래로 섬의 일부를 덮어버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새로워진 땅에서 저주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몇 번씩이나 확인한 영웅들은 모두 배에서 내렸다.

김시후는 주변의 마법사들을 모으며 말했다.

“마법진을 그릴 장소를 찾아볼게요.”

“나도 같이 갈까?”

“지한이 형은 미아 누나랑 잠깐 쉬고 계세요.”

“왜?”

“오면서 고생하셨잖아요.”

유지한과 이미아를 떼어놓은 김시후는 윤도하 외 다른 영웅들과 섬 안쪽으로 향했다.

자리에 남은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바다를 바라봤다.

거대 문어가 쓰러진 뒤의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데서.”

“뭐냐.”

“저주에 그렇게 해박해 보이는 놈이 왜 그렇게 타락한 거냐?”

“…….”

“굳이 레론의 왕실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네 자리는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데서는 유지한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실프가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야! 지한이 물었잖아. 빨리 대답 안 해?

“답변을 거부하지.”

—거부를 거부한다!

퍼버버벅!

실프는 바람을 일으켜 데서의 뺨따귀를 때렸다.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던 데서는 실프를 무섭게 노려봤다.

반면 실프는 시원한 웃음을 토했다.

—우히히힉! 한 번쯤은 널 이렇게 때려보고 싶었지!

“이놈! 감히 인간도 아닌 하등한 존재 주제에……!”

—뭐? 하등해?

퍼버버벅!

“커억! 이, 이놈이 정말로……!”

퍼버버벅!

퍼버버버버벅!

실프의 바람이 데서의 뺨을 연속으로 때렸다.

뺨이 아니라 목의 관절에서 통증을 느껴질 정도로 고개가 꺾인 데서는 기겁했다.

“그, 그만!”

—하등한 존재는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거기까지만 해.”

유지한은 데서를 놀리며 더 공격하려는 실프를 말렸다.

—아직 얘한테 쌓인 분이 안 풀렸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서 필요한 놈이야.”

—흐음……. 넌 지한이 덕분에 운 좋게 산 줄 알아.

데서를 향한 실프의 화풀이가 끝나고.

유지한은 근처에 있던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윤도하가 저주받지 않은 모래로 뒤덮은 건 오직 지면뿐.

나무를 비롯한 다른 사물들은 여전히 저주가 가득했다.

‘어째서 여기에 이런 섬이 존재하는 걸까.’

카를렘에 저주라는 것이 마법의 한 종류로 존재한다고 한들.

완전히 저주로 가득 찬 섬이 존재하는 건 조금 이상했다.

더 이상한 건 뱃사람이나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각 세력의 최고 지도층 또한 이 섬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

‘연구를 위해서였을지도.’

저주의 실험과 연구를 위해 과거의 마법사들이 일부러 섬을 더럽혔다는 가정.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얼추 말은 되는 이야기였다.

“흠.”

유지한은 마력을 실은 발바닥으로 땅을 세게 밟았다.

퉁!

발바닥에서 시작된 마력이 곧 지면 아래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러자 지면과 닿은 발바닥을 타고 유지한에게 각종 정보가 전해졌다.

‘엄청 높이 쌓았네.’

윤도하가 지면 위로 새로운 모래층을 얼마나 두껍게 쌓았는지.

그리고 그 밑에 존재하는 저주받은 땅까지도 그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땅의 정령과 맺었던 임시 계약을 파기한 뒤에 그의 몸에 남은 잔재였다.

‘다른 속성의 정령과 임시 계약을 맺으면,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해당 속성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다.’

실프가 아니라 유지한의 마력에 녹아 들은 무무의 마력.

무무가 직접 도움을 줄 때와 비교하면 미약한 힘이었지만.

윤도하가 사용하는 능력의 일부를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런 내용은 지구의 정령 연구자들도 밝혀내지 못한 내용이리라.

‘하긴, 이미 정령이 존재하는 계약자에게 굳이 다중 계약을 요구하는 정령은 없겠지.’

이번도 특수한 사정에 의한 임시 계약이었을 뿐.

일반적으로 2마리의 정령과 계약을 맺는 일은 없으니까.

“음?”

그런데 유지한이 시험 삼아 땅속으로 퍼트리던 마력에 무언가가 잡혔다.

윤도하가 땅을 퍼올린 높이보다 훨씬 더 낮은 곳에서 발견된 물건.

저주받은 물체 따위는 아니었으나 거기서 뚜렷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유지한은 눈을 질끈 감고 집중하며, 자신의 마력으로 그것의 표면을 감쌌다.

‘종이?’

A4용지 크기 정도의 아주 얇은 종이.

거기에 담겨 있는 마력은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왜 익숙하지?’

문제는 그것이 왜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유지한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그 문제는 과거 지구에서 카를렘으로 넘어간 사람이 있었다는 점과 겹쳐 그의 흥미를 끌어냈다.

잠깐이나마 고민하던 그는 땅에 묻힌 종이를 마력으로 감싼 뒤 천천히 위로 끌어당겼다.

—지한! 뭐해?

“아, 이것 좀 도와줘.”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찢겨버릴 것처럼 얇디얇은 종이.

깊은 땅속에 묻힌 그 종이를 오직 마력만 사용하여 끌어올리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프의 조력까지 더해지자 몇 배는 더 빠르게 종이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나왔다!

“……!”

유지한은 마침내 땅에서 뽑혀 나온 종이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 깊은 곳에 묻혀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종이가 너무나도 하얗고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보존 마법이 걸려있던 건가.’

종이를 보호하는 마법이 걸려있던 거라면 괜한 조심을 한 것이리라.

역시 보통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 유지한이 천천히 종이를 살폈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데?

“그러게.”

실프의 말마따나 그것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순백의 종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여전히 종이에서 익숙한 마력을 느꼈다.

벅벅.

그리고 그가 갑자기 가려워진 목을 손톱으로 긁을 때였다.

가만히 앉아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데서가 숨을 집어삼켰다.

“허어업!!”

“어?”

“너, 너 이 자식! 그건 대체 뭐야!”

“뭐가 뭐야.”

“네 목의 그 검은색 문양 말이다!”

“……!”

데서의 지적을 받은 유지한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황급히 잔잔한 바다로 달려간 그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목을 살폈다.

‘……이거 농담이지?’

어릴 적 사진에서만 존재했었던 독특한 모양의 점이.

그의 목에 아주 흐릿하게나마 보여지고 있었다.

당장 며칠 전 몸을 씻을 때만 하더라도 없었던 그 점은 손톱으로 벅벅 긁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얼마나 끔찍한 저주인지! 이깟 섬에 걸린 것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해!”

“…….”

“어떻게 이리 멀쩡히 살아있는 거냐!”

온몸에 소름이 돋은 듯 팔뚝을 쓸어내리는 데서.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마즈의 마법사가 경고했던 것처럼.

목에 있는 점은 특정한 저주의 표식이 맞는 모양이었다.

‘이 종이 때문이구나.’

당장 점이 생겨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방금 땅에서 건져 올린 종이뿐.

유지한은 미간을 좁히고 다시금 종이를 꼼꼼히 살폈다.

‘보인다!’

이주 흐릿한 점의 생김새만큼이나 흐릿하게 종이 위로 떠 오른 글씨들.

유지한은 그곳에 적혀 있는 것들을 속으로 읽어내렸다.

[카를렘]

[무력 : 5점 / 마법 : 7점 / 사회 안정성 : 5점 / 평화 : 4점 / 발전 가능성 : 3점…….]

[총평 : 초월의 경지에 이른 건 기껏해야 3명쯤. 아주 나쁜 수치는 아니어도…….]

[안타깝지만 이번 차원 또한 정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원격으로 이 기록을 확인한 여행자들은 즉시 후퇴해도 좋다.]

마치 누군가가 카를렘이라는 차원을 두고 평가를 매긴 듯한 글귀.

유지한은 그 글을 적은 자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발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곳이 필요해.]

[예로 들자면 초월의 경지에 닿았거나, 앞으로 닿을 인물이 최소 10명 이상 존재하는 사회.]

[신분이나 종족, 계급 따위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나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터무니없는 조건이라도 어쩔 수 없다. 그 정도는 돼야 우리가 긴 방황을 끝낼 수 있을 테니.]

[—여행자 Y로부터.]

“초월, 방황. 그리고 여행자…….”

그리고 유지한이 종이에 적힌 단어들을 중얼거리던 그때였다.

실프가 그의 얼굴 옆으로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지한! 그 종이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이거 안 보여?”

—보여! 하지만 나 그거 하나도 못 읽겠는데.

“엇.”

유지한은 실프의 대답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그 종이에 적힌 언어가 한국어도, 영어도, 그리고 카를렘의 공용어도 아니라는 것을.

‘왜 이게 읽히는 건데?’

난생처음 보는 글자를 자신의 모국어처럼 해석해낸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