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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62화 (262/300)

262화. 마즈 (4)

“정상회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레론에서도 결국 참석하겠다고 하더군.”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정상회담의 개최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주던 레론은 결국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각 세력 간의 교류부터 이종족 차별 완화를 위한 발판까지도 마련된 것이었다.

유지한은 와인 한 모금을 입속에 머금으며 생각에 빠졌다.

‘요거 상단은 이제 어엿한 유명 상단이 되었네.’

카를렘에 도착한 영웅들과 도움을 주고받던 요거 상단은 레론, 마즈, 카븜을 오가며 활발한 거래를 펼치고 있었다.

마즈와 카븜에서의 적극적인 원조가 이뤄진 덕분에 상단의 이름은 전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인지도에 힘입어 실력 있는 용병들도 상단에 고용되고 있어, 이제 영웅들의 조력이 사라지더라도 상단을 유지하는 것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영웅들도 이득을 챙기는 중이고.’

민유리는 살아남은 인형사 데서에게 동생의 치료를 약속받았고.

와타나베는 마즈에서 가장 맛있게 마셨던 술의 양조방법을 배웠다.

먹는 걸 좋아하는 이미아와 칠라는 하루도 빠짐없이 각 지역에서 독특하고도 맛좋은 음식들을 제공받는 일상을 보냈다.

그 외에 많은 영웅이 카를렘이라는 세계에서 개인적으로 원하는 정보나 물건 따위를 얻어가고 있었다.

카를렘에서 각자 원하는 것들을 챙겨가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최근에는 달 때문에 많이 곤란해졌어.”

“모양이 변하질 않아서요?”

“맞네.”

보름달로 고정되어 모양이 변하지 않는 3개의 달.

카를렘 전역에서는 하루 이틀간 축제 분위기로 들떴었지만.

1주일이 훌쩍 넘도록 보름달이 사라지지 않자 되레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마법 연구에 도움이 돼서 좋긴 한데.’

유지한이 대외적인 활동에 나서는 동안 김시후를 비롯한 마법 계열의 영웅들은 카븜의 마법사들과 함께 차원 마법에 매달렸다.

카를렘에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보름달로 인해 증가한 대기의 마력은 마법사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 그리고 우리 측 마법사 중에 1명이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해.”

“마즈의 마법사들이요?”

풍부한 광석을 기반으로 완전 무장한 기사들을 육성하는 기조의 마즈.

마즈에서 소수의 마법사들은 기사단을 지원하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한 두 번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인 그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소식에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더군.”

“이상한 기분? 여자입니까?”

“남자라네.”

남자가 남자에게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니.

꺼림칙한 느낌에 유지한은 미간을 좁혔다.

“데서가 마즈를 공격했을 때 활약한 마법사이기도 해.”

“아, 마법사…….”

“마침 이 근처에 불러두었는데 한번 만나라도 보겠나?”

“예. 그러시죠.”

크루바는 하인에게 명령하여 근처에 대기 중인 마법사를 호출했다.

때마침 휴식을 취하고 있던 마법사는 크루바의 저택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 친구가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던 마법사야.”

“처, 처, 처음 뵙겠습니다! 마법사 토, 톨론입니다!”

긴장한 듯 말을 더듬는 마법사 톨론은 크루바와 유지한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이 유지한에게는 마치 호랑이를 만난 토끼와도 비슷하게 보였다.

“잡아먹지 않으니까 긴장 풀어도 됩니다.”

“아……. 넵!”

“그래서, 저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고?”

“맞습니다!”

“왜죠?”

“시, 실례지만, 잠깐 손을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딱 10초면 됩니다!”

“어,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유지한은 손을 요구하는 톨론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그 순간, 톨론은 긴장하던 얼굴에서 아주 진지한 얼굴로 바뀌더니.

그의 손바닥을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파직! 파지직!

이내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톨론의 마력이 유지한의 손바닥에 닿자.

눈에 보이는 정전기가 일어나는 것처럼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유지한이 그것을 피해 고개를 홱 돌리자, 깜짝 놀란 크루바가 말했다.

“톨론! 지금 대체 뭘 한 건가?!”

“벼, 별거 아닙니다! 잠깐 확인을 했습니다!”

“무슨 확인을 하길래 그런 위험해 보이는 것이…….”

“저주입니다.”

“저주?”

곧바로 되돌아온 질문에 톨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데서에게 조종당했던 피해자들을 치, 치료하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래. 자네가 유지한을 만났던 것도 그때였잖나?”

“네, 네. 맞습니다.”

데서가 인형으로 만들어 조종하던 일반 시민들은 아직 마즈 전역에 남아있는 상황.

톨론을 비롯한 마즈의 마법사들은 데서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피해자들이 앓고 있는 마력 변색 증후군, 저주의 치료에 나섰다.

데서의 협력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와 같은 범죄자의 조력은 받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있었다.

만만치 않은 저주였으나 그들 또한 카를렘의 마법사로서 저주에 관해 지식을 갖고 있는 만큼 피해자들은 차근차근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톨론은 저주를 감지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유한 인재였다.

“이전에 크루바 님과 유지한 님이 저를 잠깐 스쳐 지나갔을 때, 유지한 님으로부터 저, 저주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내가 저주에 걸렸다고요?”

“저, 정확히는 언젠가 저주에 걸려있었다는 말이 맞겠군요.”

“예?”

“지금 유지한 님의 몸에는 미약한 저주의 흔적만이 남아있습니다.”

“……!”

과거의 자신이 저주에 걸렸었다는 소식에 유지한의 눈이 아주 크게 뜨였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1번 있던가?’

그나마 생각나는 거라면 딱 1번.

김현태 파티와 케로즈에서 완전히 버림받았던 그 순간에.

저주받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되었던 정도일까.

“그런데 이거 아, 아무래도 보통 저주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작은 흔적만으로 이렇게 격렬한 반발이 일어날 정도라면……. 과거에는 정말로 가, 강력한 저주였을 겁니다. 혹시 어릴 때 몸이 많이 아픈 편 아니었나요?”

“몸이 크게 아팠던 기억은 딱히 없습니다.”

지구에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몸.

어느 날 고유 스킬까지 주어진 유지한은 어린 시절을 별다른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보냈다.

그에 톨론의 표정이 몹시 진지해졌다.

“몸에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저주겠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정신적인 피해, 또는 그 이상의 무언가……!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감히 함부로 추측할 수 있는 저주가 아니라는 겁니다.”

“…….”

“유지한 님께 저주를 건 자는 아마도 저와 비,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마법사 같네요.”

유지한은 가만히 톨론의 눈을 들여다봤다.

마법 연구에 빠진 김시후와 비슷한 눈동자.

호기심과 의문들이 이리저리 뒤섞여있는 눈빛이었다.

결코 거짓말을 하는 자의 눈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당장 의심되는 건…….’

어린 시절 그가 찍힌 사진 속, 그의 목 부근에 그려져 있던 헥사그램 모양의 점.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것을 저주의 근거로 본다면 얼추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이건 제 어린 시절의 사진인데.”

바스락.

유지한은 지구에서 가져온 어린 시절의 사진을 톨론에게 내밀었다.

톨론은 그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이렇게나 정밀한 기록물이라니?! 노, 놀랍군요!”

“혹시 그 사진에 보이는 게 저주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특정한 저주의 경우 이것처럼 몸 어딘가에 기준점이 되는 표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데서가 조종했던 인형처럼 말이죠?”

“맞습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저주받았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유지한은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누가? 왜?’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고작 아기에 불과했던 내게 강력한 저주를 내렸단 말인가.

‘……떫다.’

몇 초 전까지 매우 고급스럽다고 생각했던 레드 와인의 맛이.

갑자기 그에게는 떫게만 느껴졌다.

*****

지배자가 1명으로 좁혀짐으로써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 마즈.

그 마즈에서 주도한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날.

뿌우우우——!

뿌우우우우——!

마즈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과 상인들이 오고가는 도시에.

사상 처음으로 카븜의 전통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울려퍼졌다.

그 소음과 함께 등장하는 건 카븜에서 찾아온 전사들의 행렬.

그리고 전사들이 둘러싼 원의 중앙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왕의 마차가 있었다.

“마즈는 정말 오랜만이로군.”

마차의 문이 열리며 긴바지만 착용한 카븜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상처럼 훌륭하고 탄탄한 근육에 마즈의 여성들은 모두 그를 힐끔거렸다.

그런 카븜의 왕을 맞이한 것은 유지한이었다.

“오셨습니까.”

“내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오게 하다니. 배짱 한번 좋구나.”

“다음에 2차 정상회담을 열거든 카븜에서 진행하시죠.”

“흠!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대하고 화려한 걸 보여줘야겠군.”

유지한은 카븜의 왕을 회담이 열리는 장소로 이끌었다.

그리고 레론에서도 왕가에 소속된 귀족을 보내온 끝에, 정상회담의 준비가 완료되었다.

“다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원형 탁자에 앉은 건 마즈의 지배자인 크루바, 카븜의 왕, 그리고 레론의 후작.

레론의 후작은 벽에 서 있는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기사도 아닌 외부인이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내가 허락했다.”

“……!”

카븜의 왕이 대답하자 후작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카븜의 왕이 매우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너야말로 왜 이 자리에 있는 거냐?”

“저는 레론의 대표로서…….”

“레론을 대표할 거면 레론의 왕이 직접 찾아왔어야지! 고작 어린 딸을 왕가에 시집 보낸 후작 따위를 보내와?”

“아니……!”

“레론으로 돌아가거든 너의 왕에게 전해라. 카븜은 반드시 이번 일을 기억할 것이라고.”

카븜의 왕은 회담의 시작부터 살벌한 목소리로 후작의 기강을 잡았다.

잔뜩 움츠러든 후작은 그의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크루바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이번 정상회담은 최근 많은 변화를 겪은 저희 마즈에서 3개 세력 간의 화합을 이뤄보고자 계획한 것입니다. 이 회담이 다른 분란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노력해보지.”

“우선 여러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 마즈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여러분께 공유드리겠습니다.”

크루바는 마즈에서 벌어졌던 데서의 공격과 지배자들의 실종 등.

한 세력이 완전히 격변할 정도로 큰 사건의 경과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카븜의 왕은 그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레론의 전 왕실마법사가 벌인 짓이니 레론에서도 책임을 져야겠군.”

“그건……!”

“저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토론을 나눠보고 싶군요.”

크루바와 카븜의 왕이 은근한 압박을 가하자 후작은 땀을 삐질 흘렸다.

데서가 레론의 왕실마법사였다는 이유로 레론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한다면.

대체 어느 정도의 보상을 책정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 더불어 여러분들과 한 가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는…….”

크루바는 유지한을 힐끗 바라본 뒤에 말했다.

“이종족의 차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

2시간가량 진행된 정상회담이 마무리되고.

유지한은 회담이 열렸던 장소를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이동한 뒤.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떠셨어요?”

“뭐야. 알고 있었네?”

슈우욱!

땅밑에서 윤도하가 솟아올랐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챈 유지한에게 놀랐다는 얼굴이었다.

“음믐믐. 안녕.”

유지한과의 임시 계약을 해제하고 윤도하와 재계약을 맺은 땅의 정령 무무.

하지만 유지한은 계약이 해제된 뒤에도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알아챌 정도의 기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히히히! 지한은 내꺼야!

정령으로서 다시금 유지한을 홀로 독점하게 된 실프는 연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회담 내용은 만족하세요?”

“아아……. 훌륭했어.”

“다행이네요.”

드워프들의 처우를 완전히 개선시킨 크루바.

그보다 앞서 이종족 차별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던 카븜의 왕.

아직 레론이 남아있지만, 레론이 그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면 언젠가 이종족들의 단체 이주가 이뤄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카를렘이라는 땅에 변화의 씨앗이 심어진 거겠지.”

윤도하는 모든 지도층의 입장을 확인한 회담의 결과에 상당히 만족했다.

드워프를 이유로 그가 마즈를 부숴버리고자 했던 마음은 부쩍 사그라든 상태였다.

“한국에서도 이런 결과에 도달할 수 있으려나…….”

“글쎄요…….”

“어쨌든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지한!”

“어느 정도 만족하셨으면 슬슬 박재경 씨도 챙겨주세요.”

“뭐? 재경이를?”

“도하 씨가 맨날 드워프만 만나고 다니셔서 많이 삐진 것 같던데.”

“허어! 재경이가 한 번 삐지면 진짜 골치 아픈데.”

머리를 벅벅 긁어대던 윤도하는 이내 땅속으로 사라졌다.

유지한의 말마따나 주사위 길드의 부길드장인 박재경에게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행동을 보고 피식 웃은 유지한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응?”

그가 습관적으로 올려다본 태양에서.

멸망의 징조가 점점 줄어드는 게 보였다.

‘사라진다?’

왜 하필 지금이라는 생각을 들기도 잠시.

흠칫 놀란 유지한은 깨닫고야 말았다.

‘만약, 근미래에 마즈가 멸망했다면…….’

그건 반드시 윤도하 때문이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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