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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61화 (261/300)

261화. 마즈 (3)

5년 전, 마즈의 선대 지배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후대 지배자가 되었던 크루바.

가난이나 고난 따위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원하는 대부분의 물건은 시간과 돈을 들여 사들일 수 있었다.

언제나 사회의 최상층에서 살아온 탄탄대로의 인생.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불편했던 건 그와 같은 위치에 놓여있던 지배자들뿐이었다.

하지만…….

‘싸늘하다.’

가슴에 단검이 날아와 꽂히는 기분.

크루바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자네들도 같은 생각인가?”

“네.”

“지한이의 뜻이 곧 저희의 뜻입니다.”

보는 사람에게 부담이 느껴질 만큼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윤도하.

주변의 반응을 살피며 한참을 생각하던 크루바는 결국 바짝 마른 입술을 열며 말했다.

“크루거! 집사에게 가서 지금 당장 준비해둔 식사를 가져오라고 해.”

“네? 하지만…….”

“다른 지배자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저택의 사용인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으라고 전하고. 기껏 준비해둔 걸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기사단장 크루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에서 맴도는 분위기는 그 또한 눈치챘지만, 달리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금방 다른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크루거 자네도 식당에서 나가 있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이들과 아주 중요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아. 자네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는 게 좋겠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이자들은 너무 위험합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네, 크루거.”

“……!”

“내가 이런다고 자네를 미워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실망하진 말고.”

크루바의 명령에 크루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이내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 식당을 떠나고.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이 하나씩 식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식사 후에 하겠나?”

“좋습니다.”

크루바와 식탁에 앉은 영웅들은 각자 식사를 즐겼다.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부터 아삭아삭함이 살아있는 샐러드.

두꺼우면서도 입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와 바다에서 방금 건져온 듯 신선한 해산물 등.

“어머, 여기 와서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네요?”

“찍찍찍!! 여긴 천국인가?!”

“오호, 요리사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맛이야.”

“……길드장 님, 그거 칭찬 맞죠?”

카븜에서 제공된 것과 수준이 비슷한 정도의 음식들이 원하는 만큼 주어졌다.

한동안 데서에게 붙잡혀 맹물과 딱딱한 빵밖에 먹지 못했던 윤도하는 거기에 퍽 만족하는 모양새였다.

‘이것도 꽤 좋은 경험이네.’

유지한 또한 상당히 만족하는 식사는 약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무리 디저트로 따뜻한 커피와 간단한 다과 따위가 준비됐을 때.

크루바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다 됐네.”

“그렇습니까.”

“이제 말해주게. 다른 지배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

“설마……. 죽인 건가?”

꿀꺽!

크루바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지한에 귀에도 닿았다.

그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살아있죠. 어딘가에.”

“어딘가에?”

“예. 어딘가에.”

명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대답.

크루바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그들이 있는 위치까지는 물어보지 말라는 뜻이라고.

“서쪽의 지배자들이 사라진 것도 자네들의 짓이겠군.”

“어차피 다른 지배자들은 당신의 경쟁자 아니었습니까? 처음에 우리를 고용하려던 것도 지배자들 사이의 경쟁을 위해서였고요.”

“그건 맞는 말이지만…….”

“결국, 다른 지배자가 사라진 상황에 가장 큰 이득을 챙기는 건 당신이겠죠.”

“지배자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그전에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주인을 잃어버린 기사단을 전부 인수하세요. 돌아온 지배자들의 처분은 알아서 하시고요.”

지배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에 홀로 남은 마즈의 지배자, 크루바.

다른 지배자가 오랜 기간 제자리에 복귀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다른 모든 광산은 그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크루바로서는 최고의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게 스스로 쟁취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이유가 필요합니까?”

“나는 아무리 값싼 물건일지언정,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보는 주의라네.”

크루바는 두 눈을 번뜩였다.

그것은 그가 다른 상단과의 대화에서 철광석 거래 단가를 논할 때의 눈과 닮아있었다.

‘좋은 태도로군. 지한이가 사람을 잘 골랐어.’

크루바와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인 윤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했다.

거래 상대로서 적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역시 돈인가? 대체 내게 어느 정도의 거금을 원하길래…….”

“전에도 말했었지만, 돈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명예를 원하는가? 마즈와 마즈의 지배자를 위기로부터 구해냈다는, 역사에 널리 기록될 위대한 명예를?”

“전혀요.”

“그럼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바라는 건 딱 2가지입니다.”

와삭!

유지한은 과자 하나를 베어 물며 말했다.

“하나는 마즈에 거주하는 드워프 및 이종족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

“……?!”

전혀 예상치도 못한 요구사항에 크루바는 미간을 찌푸렸다.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본인들과 전혀 상관도 없는 이종족의 처우 개선을 원하다니.

“우리는 그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랍니다.”

“정말로 그걸 원하는가?”

“예. 앞으로 종족을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지 말고 인간과 평등한 대우를 받게 해주세요.”

“……노력해보겠네.”

“고작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확실한 계획을 세워서 그들에게 지급되는 적은 임금부터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머리에 깊게 박혀버린 인식까지! 전부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허, 터무니없이 어려운 조건이로군.”

단순히 돈이나 명예 따위를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

상세 조건을 전해 들은 크루바가 식탁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때 타이밍을 재고 있던 김시후가 낮게 속삭였다.

“크루바. 이건 저희가 당신을 진정한 마즈의 지배자로 만들어드리는 조건입니다.”

“진정한 마즈의 지배자……?”

“세상에 오직 단 1명밖에 앉을 수 없는 자리죠. 언젠가 마즈의 모든 시민은 물론이고, 모든 드워프들도 하나같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열광할 거예요.”

“그건……. 꽤 끌리는군.”

종족에 구분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칭송받는 위업을 이뤄낼 수 있는 기회!

김시후가 준비한 달콤한 속삭임에 크루바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2번째 요구사항은 뭔가?”

“정상회담의 개최입니다.”

“정상회담?”

“카를렘의 3대 세력인 마즈, 레론, 카븜의 모든 지도층이 참가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세요.”

유지한은 크루바에게 정상회담의 개최를 요구했다.

카를렘의 지도층이 모인 자리에서 이종족의 차별을 주제로 올림으로써.

김시후가 바라는 이종족의 처우 개선을 마즈뿐만이 아니라 카를렘 전체로 퍼트리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어려운 요구야. 레론이라면 몰라도 카븜의 왕은 어지간해선 그런 일에 잘 협조하지 않는 인간이니까.”

“카븜은 저희가 설득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카븜의 왕은 자네들과 연이 있었지?”

“마즈와 카븜의 지도층이 모이는 이상, 레론도 참석할 수밖에 없겠죠.”

“……혹시 이런 부분까지 다 생각하고서 카븜에 다녀왔던 건가?”

“설마요.”

크루바가 던진 질문에 유지한은 칼같이 부정했지만.

크루바는 그에게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눈앞의 이들이라면 상황이 지금처럼 연결되는 걸 생각하고서 행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군.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그런 거 말이네.”

“저희가 악마는 아니지만요.”

코앞에서 악마로 취급당한 유지한은 쓰게 웃었다.

*****

“호외요, 호외!”

펄럭! 펄럭!

마즈를 노린 데서의 공격과 마즈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실종.

도시와 광산 곳곳에 그 소식이 적힌 신문이 널리 퍼져나갔다.

[나, 크루바는 이번 일에 참담함을 금치 못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은 지배자는 크루바뿐.

그는 직접 작성한 자신의 입장문을 신문에 실어 자신의 건재함을 널리 알렸다.

[혼란스러운 마즈에 내가 안정을 되찾아올 것이다!]

크루바는 주인이 사라진 광산을 자신이 거두어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마즈의 지배 구도가 격변하는 것이었다.

주인을 잃은 광산의 관계자들은 상황을 지켜보며 버티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그에게 넙죽 엎드렸다.

혼란스러워진 광산이 제대로 가동하려면 그들을 이끄는 자의 존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크루바는 생각보다 더 짧은 시일 내에 여러 광산의 소유권을 흡수할 수 있었다.

“새로운 주인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

“충성!!”

다른 지배자를 따르고 있던 기사단마저도 크루바에게 소속되길 원했다.

아예 마즈를 떠나 다른 세력으로 이주한 기사들도 있었지만.

평생을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광산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이었다.

“앞으로 자네들, 드워프에게는 정당한 대우를 약속하지. 예전처럼 누군가가 중간에 돈을 떼어먹는 일은 없을 거고,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한 업무도 없을 걸세.”

“그게 정말입니까?”

어지간해서는 드워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던 지배자 크루바는.

광산에서 드워프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향해서 선언했다.

“17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도 좋아.”

“저, 정말요?”

“작업자들에게 매일 지급되는 식사도 싹 바꿔주겠네! 기존에 먹던 그 돌덩이 같은 빵은 전부 갖다버리라고 했어.”

“……!!”

“쯧쯧……. 어떻게 그런 걸 먹고 하루를 버텼던 겐가? 내가 시험 삼아 먹어봤는데 이빨이 깨지는 줄 알았어.”

노동에 따른 정당한 보상과 딱딱한 빵이 아닌 따뜻한 식사.

과도한 업무는 사라지고 예외 없이 광산으로 끌려왔던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되돌아갔다.

현장 관리자들의 폭언이나 폭행이 발생하면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하기까지!

단 며칠 사이에 마즈에서 드워프들이 받는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졌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드워프한테 이렇게까지 해줘야 해?’

‘괜히 우리한테 귀찮은 일만 늘었잖아!’

‘이건 원래 드워프가 하던 일인데…….’

물론, 그걸 탐탁지 않은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드워프들이 편해질수록 그 주변의 인간들이 조금 더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지배자 님의 명령을 어기는 놈들은 각오하도록!”

“거기 너! 방금 그 드워프를 때리려던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변명은 필요 없다!”

하지만 강경한 처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르는 분위기였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드워프들의 지지까지 얻어낸 크루바는 점차 마즈의 온전한 지배자가 되어갔다.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내 인생 최고의 결정으로 남을지도 모르겠군.”

짠!

앞으로 내밀어진 와인잔에 유지한이 같은 와인잔을 가볍게 부딪혀 건배했다.

그리고 마즈에 오직 하나뿐인 지배자가 전하는 감사 인사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배자로 기록되실 겁니다.”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유지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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