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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59화 (259/300)

259화. 마즈

“커흠! 숨어있었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표현이 조금 이상하군.”

지배자들을 곁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피소에 함께 피신해있던 기사단장들.

개중에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현장에서 인형과 데서와 직접 맞서 싸운 이들로서는 탐탁지 않은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가장 앞으로 나온 강철 기사단의 단장 크루거는 데서를 째릿 노려보며 말했다.

“그놈은 마즈를 어지럽힌 죄인이다.”

“그래서요?”

“혹시 자네들이 죽이는 게 거북한가? 그렇다면 이리 넘겨주게. 마즈를 공격한 죄인을, 내가 직접 처형할 테니……!”

“거부하죠.”

즉답.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튀어나온 유지한의 거절에 크루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왜 그놈을 살려두려는 거냐?”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형으로 변했다가 풀려난 사람을 말하는 건가?”

“뭐, 그렇죠.”

“그렇다면……. 그들을 치료한 뒤에는 죽여도 문제가 없다는 거겠지?”

크루거는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한발 물러나는 입장을 취했다.

밖에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대피소의 창문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지켜본 그였기에 돼지국밥 용병단이 얼마나 큰 활약을 펼쳤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마즈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 기모노라는 독특한 옷을 착용한 사내가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겠지.

그러니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었다.

“이봐, 크루거! 그 말 진심인가?”

“저 더러운 죄인이 살아 움직이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다고?”

“마즈를 위해 열심히 싸워준 이들이다. 작은 배려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찌 자랑스러운 마즈의 기사라고 할 수 있겠어?”

“으음…….”

다른 기사단장들은 크루거에게 조금씩 설득되는 모양새였다.

데서에게 잠깐의 시간을 주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들끼리 뭐라는 거야?’

하지만 영웅들의 의사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건 크루거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지한은 조용히 속닥거리는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것도 싫은데요.”

“아니, 왜……!”

“데서는 우리가 고향으로 데려갈 겁니다.”

“자, 자네들이 왔다는 미개척 대륙으로?”

“거기에도 비슷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을 치료할 거예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

서로 씩씩대며 열을 올리는 기사들.

심지어는 기사들이 들고 온 무기를 꺼내 들려는 듯한 행동을 보이자.

유지한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한쪽 발로 땅을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앙!!

유지한의 발바닥으로 중심으로 커다란 균열이 퍼져나갔다.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던 균열은 기사들의 바로 앞쪽에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바람이 그들의 피부를 스쳤다.

상대의 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감각에 기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

“……!”

“허락? 내가 왜 당신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지?”

마즈를 위기로부터 구해준 것에 감사를 느끼기는커녕 요구사항만 읊어대는 기사들.

유지한은 그들에 맞서 반격의 준비를 하던 동료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쓰러져있는 데서의 몸을 단단하게 붙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안내하세요.”

“어, 어디로…….”

“어디긴 어딥니까.”

당연히 여기서 가장 높으신 분들에게 가야지.

*****

“그러니까…….”

“그놈을 자네들의 고향으로 데려가겠다?”

“맞습니다.”

완전히 구속되어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데서를 두고.

유지한은 마즈의 지배자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 일은 마즈의 역사에 평생 기록될 사건이야.”

“자네들이 양보해줄 수는 없겠나?”

“죄송하지만,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데서를 양보해달라는 지배자들의 요청은 모두 거부되었다.

도저히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그의 굳건한 태도에 지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데서의 패배로 인형들의 습격은 멈췄으나 현재 마즈 전체에 혼란이 가득해진 상황.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이번 사건이 끝났다는 걸 아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 와타나베라는 자가 지휘했다는 서쪽은 어떻지?”

“바로 연결해보죠.”

유지한은 곧장 차원 전화기를 꺼내어 와타나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와타나베.

“와타나베 님. 이곳 상황은 얼추 마무리되었습니다. 서쪽은 어떤가요?”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렇게 말하는 와타나베는 살짝 어두운 목소리였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대피소에 모여 있던 지배자들이 사라져버렸다.

“예? 그런……!”

“뭐라고?”

“지배자들이 사라져?”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사라졌다.

“……!!”

반대쪽 지역의 지배자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에.

유지한의 곁에 있던 지배자들이 입을 쩍하고 벌렸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전력을 다해 찾고 있다만, 어디로 갔는지 통 보이질 않는군.

“허……. 참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조금 더 찾아보고 별다른 결과가 없으면 그쪽으로 돌아가마.

“알겠습니다.”

통화는 아주 간략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들려온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사실상 마즈의 지배자 중 절반가량이 단번에 사라져버린 것이었으니까.

“너, 이 자식!”

“지배자 님들을 대체 어디에 숨긴 거냐!!”

“읍? 읍?!”

마즈의 기사들은 살벌한 목소리로 데서를 추궁했다.

그러나 재갈이 물린 데서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뭐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서쪽 광산들의 주인이 사라진 거잖아.’

‘그러면 서쪽 놈들이 지배하고 있던 광산을…….’

‘우리가 나눠 가질 수도 있는 건가?’

크루바를 포함한 지배자들이 서로 속닥거리는 사이.

데서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가 입에 물고 있던 재갈이 풀렸다.

“나, 난 모르는 일이야!”

“이놈이 정말로……!”

“아는 게 없다고!!”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셈이냐!”

재갈이 풀린 뒤에도 끝까지 자신의 짓이 아니라며 발뺌하는 데서.

분노한 기사들은 그를 강하게 추궁하며 위협했다.

“잠깐!”

“그만두게!”

그때 지배자들이 근엄한 목소리로 기사들을 불러들였다.

다시 조용해진 회의실에서 지배자들은 말했다.

“데서. 정말로 네가 벌인 짓이 아니더냐?”

“난 정말로 모르는 일이다.”

“흐음…….”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참으로 안타깝고 우연한 ‘사고’로군.”

“사고라뇨? 이건……!”

“어허! 자네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

한 지배자는 기사들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반발을 잠재웠다.

이 대화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였다.

“지배자가 사라지면 많은 광산들이 곤란해지겠어.”

“어쩔 수 없구나! 우리가 대신 나서야지.”

“암,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지배자들은 주인이 사라진 광산을 서로 나눠 갖기 위한 작은 논의를 시작했다.

그제야 이 대화의 분위기를 눈치챈 기사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이걸로 됐나.’

그리고 유지한은 그 사이에서.

가만히 지배자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

열띤 논의를 이어가는 지배자들에게서 떨어져나온 유지한 파티는 박재경과 2팀이 머무는 대피소로 이동했다.

“이봐, 여기도 좀 보지 그래?”

“…….”

윤도하의 부름에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데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데서는 여전히 유지한이 붙들고 있었다.

임자가 사라진 광산을 차지하는 것이 화두에 오르자 마즈의 지배자들은 데서에게 관심이 부쩍 줄어든 덕분이었다.

“어? 2번째 보름달이 떴네요?”

“벌써?”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창문 밖 하늘에는.

붉은 달에 이어 노란 달이 완전하게 차올라 있었다.

‘너무 빠르지 않나?’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차오른 노란 달.

김시후가 나무 거인을 2번이나 소환하고도 완전히 쓰러지지 않았던 이유는.

보름달로 인해 대기에 충만해진 마력 덕분이기도 했다.

‘낮에 멸망의 징조도 그대로였고.’

데서를 붙잡고도 태양으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던 멸망의 징조.

기묘한 카를렘의 환경에 의문을 느끼는 유지한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저 사람들을 치료해라.”

“…….”

“거부하거나 못한다는 선택지는 없어. 반드시 해야만 할 거야.”

마력 변색 증후군으로 인해 누워서 의식만 간신히 유지하는 윤도하.

의식조차 잃어버린 채 숨만 쉬고 있는 2팀의 영웅들.

유지한이 손으로 그들을 가리켰으나 데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유지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만 묻지.”

“말해.”

“네가 벌인 짓이냐?”

“뭘?”

“서쪽의 지배자들을 사라지게 한 거.”

“……글쎄.”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데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처구니없는 놈이었군.”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할까.”

“뭐가 목적이지? 마즈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얌전히 치료나 해라.”

빡!

유지한은 데서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마력 변색 증후군의 치료를 재차 요구했다.

‘눈치가 꽤 빨라.’

데서의 예상대로 지배자들을 사라지게 한 건 유지한이 꾸민 계획이었다.

와타나베는 단지 그 계획에 따라 행동했고, 조작된 통화를 나눴을 뿐.

유지한이 김시후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이종족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길드장의 요청이니까.’

굳이 그런 연극을 벌인 이유는 마즈에 거주하는 드워프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싶다는 김시후의 의견 때문이었다.

아직 처우 개선을 위한 과정은 남아있지만.

서로 치고받는 지배자들의 숫자를 줄인 건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제 안면이 있는 지배자들만 잘 구슬리면 되니까 말이다.

사라진 지배자들이 다시 등장할 즈음, 그들의 자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리라.

“그래서 치료는 어떻게 하는 거죠?”

데서에게 질문하는 민유리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시각, 대피소의 그 누구보다 잔뜩 긴장하고, 기대하고 있는 그녀였다.

“치료라……. 너희는 아까부터 저걸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얘기하는군.”

“네?”

“저건 병이 아니라 저주다.”

“저주, 라고요?”

데서는 지구에서 치료법을 찾아내지 못한 병을 두고 저주라고 불렀다.

그러자 김시후가 대화가 끼어들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질병과 저주는 완전히 다른 단어가 맞죠?”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지?”

김시후는 데서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를렘의 언어 체계에서 ‘질병’과 ‘저주’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는 건 아니었다.

“설마 모르는 건가? 저주가 마법의 한 종류라는 걸.”

“저희 세계에는 그런 마법이 없는데요.”

“그렇게나 강력한 마법을 다루면서 모르는 것도 많군.”

“……알면 좀 가르쳐 주시던가요.”

“…….”

잠깐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데서가 윤도하에게 걸어갔다.

바닥에 누워있는 윤도하는 데서를 올려다보며 히죽이고 있었다.

“위, 위대한 존재여. 나와 하나만 약속해라.”

“어떤 거?”

“저주에서 풀려난 뒤 날 죽이지 않겠다고.”

“뭐, 그 정도야…….”

설렁설렁 대답하는 윤도하를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데서.

그는 자신이 윤도하의 손에 죽어도 별다른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몇 초 후에 죽을지도 모르겠군.’

어차피 일생일대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윤도하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른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는 순간.

꿈틀!

윤도하의 손바닥이 검게 물들기가 무섭게.

힘없이 늘어져 있던 그의 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움직인다?!”

손과 손목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움직임을 되찾는 윤도하의 몸.

데서가 손으로 불어넣는 마력이 서서히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윤도하의 양쪽 다리까지 움직임을 되찾았을 때.

검게 변했던 그의 피부는 완전한 살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캬! 이게 몸을 움직인다는 감각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윤도하는 뜻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를 매우 신기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앗.”

우연히 창문 너머를 보게 된 이미아의 시야에 밤하늘에 뜬 푸른 달이 보였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왜 저래?’

3개의 달 중에서 유일하게 반달에 가까웠던 푸른 달은.

보름달이 되기까지 남은 절반가량이 실시간으로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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