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전면전 (3)
각 지역에서 기사들이 치열하게 가짜 윤도하들을 막아서는 때.
유지한은 카를렘에 도착한 이래 맨몸으로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발을 놀렸다.
김시후는 그 뒤를 최대한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내 실수야…….
자신의 실수라며 자책하는 실프.
출발 직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형들이 대피소 근처에서 발견된 탓이었다.
데서와 인형의 추적만큼은 자신이 담당하겠다며 자신했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네 잘못 아니야.”
침울해진 실프를 두고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진실의 실은 대부분 마즈의 광산이나 도시에서도 외곽에 집중되어 있었다.
데서가 모은 인형들이 바깥에서부터 사람들의 거주지로 침범해오는 구도.
그에 맞춰 준비를 했던 유지한이었지만.
‘도시 내부에 숨겨둔 인형이 있었다.’
데서는 또 다른 윤도하의 인형을 도시에 숨겨둔 모양이었다.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인형을 늘릴 수 있다는 게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
“지한이 형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끄응…….
유지한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인형이 늘어나는 건 이미 경험했던 바이기에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수는 그리 많지 않아.’
대피소 가까이에 있는 인형은 민유리와 이미아만으로도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팅! 팅! 티잉!
요란하게 흔들리고 진동하는 진실의 실 사이에서 유독 고요하고 잔잔한 실 한 가닥.
너무나도 수상한 개체 하나를 특정해낸 것이었다.
어쩌면 데서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
—에잇! 일단 따라와!
후웅!
정신을 차린 실프는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유지한과 김시후를 안내했다.
어차피 데서를 잡으면 그가 조종하는 인형들은 모두 힘을 잃는다.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5개인가.’
진실의 실이 5개 겹쳐있는 위치.
그것은 가짜 윤도하가 한곳에 5명 존재한다는 뜻과 같았다.
그런데 유지한과 김시후가 점점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갈수록.
빛나는 실의 개수는 점점 늘어나갔다.
‘……11개?’
5개에서 6개, 6개에서 8개, 그리고 8개에서 11개로.
세포가 분열하듯 늘어나는 실의 수를 보며 유지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거기 있었구나.’
그와 동시에 강한 확신이 생겼다.
줄곧 만나고 싶었던 목표물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형. 지금 상황 어때요?”
“최소 11개 이상의 인형이 모였어.”
“11개…….”
데서가 코앞에서 조종하는 윤도하의 인형이 무려 11개.
그것들이 동시에 사용한 마법으로 단단한 땅이 잘게 부서지는 걸 몸으로 직접 겪었던 김시후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할 수 있지?”
“그거야 당연하죠.”
하지만 이어지는 유지한의 질문에.
김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여유가 느껴지는 대답은 덤이었다.
“1급 영웅? 그래 봤자 인형일 뿐이잖아요.”
“옳지. 좋은 마인드다.”
“윤도하 씨도 알고 보면 사실 별거 아니라니까요!”
“쓰읍, 그건 좀…….”
“아, 이건 좀 그런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실을 따라 이동했다.
데서로 추정되는 것과의 거리는 이제 800m도 안팎까지 좁혀진 상황.
“스톱.”
“……!”
유지한은 오른팔을 뻗어 뒤에서 따라오던 김시후를 멈추게 했다.
쿠구구궁!
쿠구구구궁!!
땅이 흔들리며 땅 밑에 사람 1명이 오갈 수 있을 법한 굴이 뚫렸다.
뒤이어 그 옆에서 비슷한 크기의 땅굴이 10개 이상 생성되었다.
거기서 튀어나온 건 모두 가짜 윤도하였다.
‘징그럽군.’
땅굴 1개당 1명씩 등장하는 윤도하의 인형들.
본체의 얼굴을 똑 닮은 가짜들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유지한과 김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이는 마네킹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불쾌해지는 기분.
가만히 그들을 응시하던 유지한이 김시후에게 말했다.
“몇 분 필요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1분 30초요.”
“움직이면?”
“최소 5분 이상, 중간에 집중이 깨지면 10분 이상.”
“그러면…….”
스릉!
유지한은 검집에서 부드럽게 큐디를 꺼내들었다.
“거기서 가만히 보고 있어.”
[윈드 밤]
퍼엉—!
작은 점으로 모여든 바람이 단번에 해방되며 유지한의 몸을 앞으로 강하게 떠밀었다.
대포처럼 발사된 유지한의 몸은 순식간에 한 인형의 몸 앞에 도달했다.
퍼석!
인형을 향해 큐디를 휘두르자 바닥에서 솟아오른 흙더미가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무릎을 노렸으나 공격은 허벅지를 살짝 베는 선에서 그쳤다.
‘왼쪽 엉덩이?’
큐디가 알려준 약점은 왼쪽 엉덩이였다.
해당 인형의 몸에 문양이 새겨진 위치가 엉덩이라는 뜻이리라.
‘취향도 참…….’
무슨 지구의 타투이스트도 아니고.
다 큰 남자가 전혀 모르는 남자의 엉덩이에 문양을 새겨넣는 장면을 상상하자 속이 메스꺼워졌다.
쿠구구구궁!
“이크!”
유지한의 주위를 높고 단단한 흙벽이 에워쌌다.
이어서 그의 발밑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준비를 했다.
다른 인형들이 합심하여 그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 공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츠즈즈즈즈—!
짧은 찰나, 샘플링이 발동된 유지한의 눈앞으로 본인의 흐릿한 잔상 2개가 펼쳐졌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정답 중 2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상처를 입는군.’
그중에서 한 잔상은 팔뚝에 작은 상처를 입는 걸 전제로 한 잔상이었다.
한쪽 팔을 내주고 나머지 공격들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반면 다른 잔상의 몸짓은 매우 괴랄했다.
‘뭐야, 이 이상한 건?’
바닥을 향해 고개를 약 30도로 꺾은 뒤 머리를 반시계방향으로 살짝 회전시키고.
허리 둥글게 아치형으로 말아 재낀 뒤 호흡을 최대한 뱉어내어 배를 안으로 집어넣는다.
오른손으로는 목덜미를 감싸고 팔꿈치를 가슴에 최대한 가깝게 붙이며 왼손으로는 큐디를 역수로 쥐고.
90도로 굽힌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올린 상태로 넘어지지 않도록 몸을 지탱하는 희한한 자세.
그것이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공격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당장 하자!’
유지한의 선택은 후자였다.
잔상을 따라서 머리를 비틀고, 허리를 둥글게 말고, 호흡을 뱉어냈다.
손으로 목을 감싸고, 팔꿈치를 가슴에 붙이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에 올렸다.
그러자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완성되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쒜애애애액!!
바닥에서 유지한의 몸을 노리고 뾰족한 흙창들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턱을 노렸던 흙창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턱 밑을 지나갔고.
등을 노렸던 창은 그가 착용한 갑옷을 살짝 스치기만 했다.
발바닥을 꿰뚫으려던 흙창, 복부를 노리던 흙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흡!”
기묘한 자세로 총 16개의 창을 피해낸 유지한은.
왼손으로 큐디를 휘둘러 몸을 뒤덮은 마법들을 걷어냈다.
퍼버벅!
뒤이어 실프가 바람으로 흙벽을 터트리자 생겨난 구멍으로 그가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흙벽의 바로 앞에 있던 가짜 윤도하는 유지한에게 한쪽 다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인형의 알맹이는 멀쩡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나마 죽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데서는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대체 어떻게?!”
평범한 인형에게 부족한 마력 제어를 커버하기 위해.
그리고 근거리에서 싸우는 전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데서가 직접 설계한 대인 공격 마법이었다.
인형들이 와타나베에게 패배한 직후, 보다 세밀한 조정을 거쳤기에.
적이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몸 어딘가에 반드시 구멍이 뚫린다고 봐도 좋았다.
“괴물 같은 놈!”
하지만 유지한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아니, 그 빈틈을 강제로 벌리고 벌려서 그 안에 몸을 던졌다.
데서가 생각했던 전사 혹은 기사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행동이었다.
‘마법사는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마법사 김시후는 지팡이를 잡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어떤 의도가 있는 행동처럼 보이는데…….
윤도하의 정령이었던 무무에게 보호받고 있었기에 함부로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본래 윤도하가 보유한 힘의 근원은 정령으로부터 나온 만큼, 대지의 마력을 다루는 실력은 무무가 훨씬 앞섰기 때문이었다.
“둘 다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점점 더 데서의 목을 조여오는 위기감.
데서는 팔에 힘을 주고 손목을 한쪽으로 회전시켰다.
그러자 유지한과 싸우던 가짜 윤도하들의 흰자가 피처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샌드 그라인드]
—발밑 조심!
“……!”
실프의 경고와 함께 생겨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유지한의 발바닥.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그는 발밑에 [윈드 밤]을 터트리며 몸을 띄웠다.
슬쩍 내려다본 구멍 속에는 흙 알갱이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움직이듯 꿈틀대고 있었다.
‘하필이면 저걸…….’
언젠가 윤도하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대신 사용한다며 선보였던 마법.
쓰레기를 땅속에 가두고 모래알처럼 잘게 잘게 쪼개버리는 마법이었다.
고작 쓰레기에 사용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뻔했다.
‘분위기가 변했군.’
눈의 흰자가 붉어지다 못해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내는 인형들.
유지한은 데서가 인형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다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땅을 밟으면 안 돼.’
대지의 마법을 다루는 이에게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그가 밟고 있던 땅에서의 싸움을 피하는 것.
유지한은 실프의 조력으로 몸을 어떻게든 땅에서 떨어뜨리며 허공을 부유했다.
핏!
미처 피하지 못한 모래알이 유지한의 손등을 스치자 핏물이 맺혔다.
조금 전보다 더 세밀해진 마력 제어가 그 원인이었다.
그리고 상처에 어떻게든 달라붙으려는 모래알을 털어내기도 잠시.
13명의 가짜 윤도하가 동시에 손짓하는 것으로 전보다 크고 많은 수의 흙창이 유지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버버버버벅!
흙으로 생성된 창은 큐디에 의해 이리저리 터져나갔다.
흙이 튈 때마다 유지한의 피부 위로 자잘한 상처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유지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비켜주세요.”
김시후의 마법이 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오오—
정령 강화로 강화된 지팡이가 가리키는 높은 하늘 위.
초록색 풀과 나무줄기로 엮인 곡선이 좌우로 그어지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길게 뻗어 나간 곡선은 이내 떨어진 곳에서 다시 만나 하나의 타원을 이뤘다.
그렇게 완성된 출입구로부터 커다란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신병의 약속]
드드드드드드……!
수많은 나무가 엮여 만들어진 형상이 타원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인간의 손가락을 닮아있는 나무 거인의 손가락.
그 크기만큼이나 매우 압도적인 존재감에.
그 아래에 있던 이들은 모든 행동을 멈췄다.
‘살이 떨려온다……!’
높은 마법 이해도를 기반으로 끝끝내 엘프의 혈족 마법을 일부나마 완성해낸 김시후의 작품.
그나마 ‘그것’과 초면이 아니었던 유지한은 조금 긴장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히끅!”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마력!”
“마침내 카를렘의 창조신께서 분노하신 건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처음으로 그것을 목격한 이들은.
모두가 혼란에 빠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