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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53화 (253/300)

253화. 전면전 (2)

유지한은 뜬금없이 눈앞에 등장한 그룬을 살폈다.

광산을 안내해줬던 그가 윤도하로 변해버린 것은 아니었다.

윤도하와는 체격이고 뭐고 많은 것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단 한 줌의 마력만큼은 윤도하의 것과 비슷했다.

‘저 아이도 데서에게 조종당하는 건가.’

죽은 생선처럼 흐릿한 눈동자.

침을 질질 흘리는 그룬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퍽!

유지한은 앞서 만난 남성처럼 그룬을 가볍게 쳐서 기절시켰다.

뒤이어 무무의 힘을 이용하여 딱 숨만 쉴 수 있도록 그를 땅속에 가둬버렸다.

이대로 인형이 되어 활개 친다면 누군가가 그를 해칠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으니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지, 지한! 실이 계속 늘어나!

“음믐?!”

각 지역에서 진실의 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정령이 당황하는 사이 유지한은 그것들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실이 겹쳐있다.’

적지 않은 양의 진실의 실의 서로 겹쳐있는 것이 보였다.

기존에 실이 이어지는 곳과 비슷한 위치에 다른 실이 생겨났다는 뜻이리라.

‘원격으로 인형을 생성할 수 있는 건가?’

상대가 보내온 거부할 수 없는 도전장.

유지한은 재빨리 몸을 뒤로 돌려 일행에게 돌아갔다.

*****

파티원들과 합류한 유지한은 직전보다 이동 속도를 높였다.

아직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인형들이 이제 마즈를 공격해오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각 지역으로 기사단이 출동했다. 모두 1시간 내로 네가 짚어준 장소에 도착한다고 해.

차원 전화기를 통해 와타나베와 소통하는 유지한.

마즈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기사들의 파견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진실의 실 1가닥 당 대략 20명의 기사가 배정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곳 기사들만으로 그 거인의 복제품을 막을 수 있겠나?

와타나베는 마즈의 기사들이 윤도하의 인형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심했다.

기사 중에는 제법 뛰어난 이들도 여럿 섞여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아무리 본체에 비교해 약하다고는 해도 무려 윤도하의 마력을 지닌 존재.

평범한 기사들이 막아내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유지한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마주쳤던 인형과 비슷한 힘을 가진 인형이라면 각 기사단장은 가능성이 있겠습니다만. 그들은 대부분 파견을 가지 않고 지배자의 옆에 붙어있죠.”

—그 말은 즉…….

“기사들은 윤도하 씨의 인형을 막지 못할 겁니다. 특히 인형이 2개체 이상 모여있는 곳은 제대로 접근하기조차 어렵겠죠.”

평범한 기사들만으로는 윤도하의 인형을 감당할 수 없다.

유지한은 시작부터 이미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도 기사들을 보낸 건, 시간을 끌기 위해서겠군.

“맞습니다.”

기사들을 파견한 목적은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마즈의 기사들이 어떻게든 윤도하의 인형과 대치하고 있는 사이.

유지한은 데서와 윤도하의 본체가 숨어있는 곳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지한 씨! 준비됐어요.”

민유리는 와타나베와의 통화를 끝낸 유지한을 불렀다.

“어때요?”

“훌륭합니다.”

땅바닥에 고정되어 반듯하게 서 있는 민유리의 활.

활은 그녀가 직접 들고 다닐 때보다 활대가 훨씬 얇고, 크기는 3배는 더 커진 형태로 변해 있었다.

화살이 아니라 거대한 창을 쏘아낼 수 있을 정도.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이죠?”

“네. 그래도 연습은 많이 했잖아요.”

“연습만큼만 하면 됩니다.”

남호열이 제작한 아티팩트 활의 숨겨진 기능.

크기가 너무 커서 어딘가에 고정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화살의 사거리와 파괴력이 무서울 정도로 상승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단독으로 저격수 역할을 맡은 만큼 그녀의 역할은 막중했다.

“부탁한다. 칠라.”

“찍찍! 주인은 내게 맡겨라!”

쿵쿵!

자신 있는 얼굴로 방패를 두드리는 칠라.

활이 너무 눈에 띄는 형태다 보니 위치가 특정될 수밖에 없는 만큼.

녀석은 탱커로서 민유리 1명만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

턱!

유지한은 민유리의 어깨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몸을 움찔하는 민유리.

그녀를 향해 유지한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못 지켜드립니다.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치세요.”

“거, 걱정 마세요! 제 발 빠른 거 아시잖아요.”

“…….”

유지한은 민유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파티에서 단독 행동에 나서는 건 주로 전사인 유지한의 역할이었다.

민유리와 김시후는 매번 후방에서 보조 겸 강력한 공격을 날리는 딜러.

파티에서 원거리 딜러인 그녀에게 단독 행동을 맡기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에.

평소보다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개별 행동도 미리 훈련을 해놨어야만 했다.’

현장을 지휘하는 파티장으로서 준비가 매우 미흡했다.

전투에서 합을 맞추는 건 그녀와의 첫 만남 때부터 잘 어우러졌다고 하지만…….

“스읍…….”

생각에 깊게 빠진 유지한은 좀처럼 민유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계획의 변경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만!”

“예?”

툭!

민유리가 손으로 유지한의 팔뚝을 때렸다.

“그만 쳐다봐요.”

“아, 미안합니다.”

“사람 부끄럽게…….”

“부끄러워요?”

“아니, 그렇게 바라보면 누구라도 그렇죠!”

민유리는 몸을 홱 돌려 바닥에 고정된 활 쪽으로 걸어갔다.

그에 유지한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찍찍…….”

그런 가운데 칠라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서 쳐다봤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찍! 주인아.”

“어?”

“답답하다. 찍!”

“……?”

“찍찍! 이 몸 같았으면 진작에……!”

콱!

양팔로 방패를 강하게 껴안는 칠라.

민유리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

커다란 굉음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콰과과광—!!

규모가 큰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

상당히 멀리서 들려온 그 소리와 함께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주인아!”

“……!”

황급히 넓은 방패로 민유리의 몸을 감싸는 칠라.

주변 모두가 퍽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는 사이, 유지한은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가 이내 땅속에서 목만 드러낸 무무에게 말했다.

“방향은?”

“음믐믐. 저쪽.”

무무가 바라보는 건 굉음과 진동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원지.

그 방향에서 빛나는 실 몇 가닥이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

첫 굉음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하이톤의 비명이 들려왔다.

마즈의 함락을 목표로 한 데서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제발 거짓말이기를 바랐건만!”

“빌어먹을 인형사 놈!”

거짓말만 같았던 소식이 사실이 되어버리자 유지한 파티와 함께 자리를 피해있던 지배자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와 동시에 인형을 조종하는 데서를 욕하기에 바빴다.

“현재까지 피해는 어떤가?”

“경비대는 시민들을 이끌고 안쪽으로 대피하는 중이고, 기사들이 의문의 적과 대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

“급하게 준비해둔 거라도 먹힌 덕분이겠지.”

마즈의 지배자 중 크루바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 근처 시민들과 드워프들에게 외출 자제 명령을 내리고 방문객을 평소의 5분의 1 이하로 받으라고 명령했던 그였다.

유지한의 뜻에 따라 미리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수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했으리라.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 대피소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마십시오.”

“아, 알겠네!”

지배자들이 유지한의 말을 듣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데서의 공격이 시작된 시점에서 그의 발언에는 큰 힘이 실리고 있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할 건가?”

“그놈을 찾아야죠.”

“형! 출발해요!”

지배자들의 보호를 맡은 건 민유리와 이미아, 그리고 마즈의 기사들.

유지한은 오직 김시후만 데리고 대피소를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기다려봐.”

유지한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기다란 실들을 올려다봤다.

지이이잉—

하늘 위에 얽혀있는 여러 가닥의 진실의 실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인형들의 행동에 따라 실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저기에도 분명 패턴이 있다.’

인형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개체.

그 인형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조종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많은 인형을 동시에 조종한다면 난이도는 더욱 상승한다.

데서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그가 사람인 이상, 인형을 더욱 편하게 조종하기 위해서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뒀을 터.

“실프!”

—잠깐만! 지금 찾는 중이야.

하지만 유지한의 곁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함께였다.

땅과 바람 속성을 지닌 두 정령 중에서도 아주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바람의 정령.

한 번에 많은 일을 처리하는 멀티 태스킹에 뛰어나고 무질서함을 즐기는 실프라면.

인간의 미세한 마력 패턴쯤은 구분해낼 수 있으리라고, 유지한은 믿었다.

‘다른 누군가를 이렇게나 믿게 될 줄이야.’

과거 김현태 파티에서는 항상 자신을 믿고 행동했던 유지한이었다.

겉으로 전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샘플링으로 계산되는 확률을 파티원보다 신뢰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자기 자신만큼이나 실프를 믿었다.

유지한에게만큼은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삐빅! 조금 수상한 거 발견!

“안내해줘.”

—우히히!

*****

“위에서 뭐가 떨어집니다!!”

“지, 지배자 님들을 보호해라!”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하늘에서 떨어져 내라는 커다란 돌덩이.

운석과도 비슷한 공격에 마즈의 기사들은 야단을 떨었다.

퍼버벅!

그때 위로 점프한 이미아가 위쪽을 향해 주먹을 연달아 휘두르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라는 돌덩이가 잘게 부서졌다.

바로 밑에서 그 장면을 본 마즈의 기사는 입을 쩍하고 벌렸다.

“무슨 여자 힘이 저렇게……!”

“호들갑 떨지 말고 자리 지켜.”

“네, 넷!”

한편, 그 돌이 날아온 지역에서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끄아아악!”

콰직!

바닥에서 강하게 튀어 오른 흙더미가 기사를 덮쳤다.

충격을 흡수하고 안으로 크게 찌그러지는 은색의 갑옷.

간신히 살아남은 기사는 찌그러진 갑옷 때문에 호흡곤란에 빠져 허우적댔다.

“허어억!”

그리고 가짜 윤도하가 다시 한번 기사를 공격하려는 때.

콰과과광!!

멀리서 날아온 푸른 빛줄기가 그의 발밑에 떨어졌다.

가짜 윤도하는 빛줄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퍼억!

그리고 뒤이어 날아온 또 다른 빛줄기가 가짜 윤도하의 다리에 직격했다.

그 정체는 민유리가 쏘아낸 마력 화살이었다.

“거리가 좀 머네…….”

끼릭! 끼릭!

남호열이 제작한 안경 아티팩트를 착용한 민유리는 안경테에 부착된 작은 톱니바퀴를 굴렸다.

그러자 맨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먼 거리가 그녀에게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물체처럼 비쳤다.

[투명화]

무무가 높이를 아주 높게 올려준 건물 위에서 [투명화]까지 사용하여 모습을 감추고.

평소의 마력 화살과 비교하면 몇 배나 커진 화살을 시위에 겨눴다.

파아아앙—!!

주변에 격렬한 마력의 스파크를 튀기면서 발사되는 화살.

그녀가 1번의 조준과 사격을 시도할 때마다 최소 1명 이상이 목숨을 구원받았다.

연달아 큰 화살을 쏘아내고도 민유리는 여유가 있었다.

“찍찍! 대장과 마법사는 어디지?”

“저쪽에 있어.”

민유리가 안경을 조정하여 뛰어가는 유지한과 김시후를 눈으로 좇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며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두 사람.

상당히 멀리 이동한 탓에 안경을 통해서도 그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정도였다.

“앗.”

그때 갑자기 유지한과 김시후가 자리에 멈춰섰다.

잠깐 우두커니 서 있던 두 사람은 이내 몸을 돌려서 다급하게 뒤로 달렸다.

“……뭐가 잘못됐나?”

이상함을 느낀 민유리는 칠라의 옆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그리고 몇 초 후.

쿠구구구궁……!

외부에는 공개된 적이 없는 지배자들의 대피소 근처에서.

작은 규모의 지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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