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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9화 (249/300)

249화. 임시 계약

“어차피 그곳에 남은 볼일은 없다.”

데서는 광산 내부에 구축한 공간 왜곡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끔 만든 비밀 통로를 포기했다.

나름 시간과 공을 들였던 것이니만큼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미래에 필요한 준비들은 모두 끝내두었다.

‘쓸만한 혼돈은 이미 밖으로 내보냈지.’

각종 동물들의 신체 부위를 조합하여 제작한 괴물, 혼돈.

그것드을 카븜 근처에 배치한 것도 그가 펼친 계획의 일부였다.

윤도하라는 인물을 찾아낸 뒤에는 혼돈을 활용하려는 계획이 많이 틀어지긴 했지만.

윤도하를 이용하는 지금이 훨씬 더 계획의 성공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이게 힘의 3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군.”

지금까지 만들어낸 인형을 통해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윤도하의 힘은 본체의 최대 30%.

고작 절반에 못 미치는 힘에 불과했으나, 데서는 그것만으로도 지구의 영웅들을 넘어서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박재경을 포함한 2팀을 쓰러뜨린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70%까지 끌어올려주마.”

본체를 지키던 정령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탓에 100%의 힘을 끌어내는 건 무리였다.

허나 그보다 조금 못한 70%라면!

자신이 바라는 레론의 멸망에 한 층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데서는 확신했다.

*****

“무무. 준비됐어?”

“음믐믐!”

두두두두두…….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이는 땅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박재경과 2팀의 영웅들.

그들을 구출해낸 유지한 파티는 와타나베 요스케와 헤어진 구역으로 달려갔다.

‘무사하겠지?’

7명이나 되는 가짜 윤도하가 마법으로 동시에 일으키는 지진은.

땅 전체가 믹서기처럼 갈려버릴 정도로 큰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런 걸 보고도 와타나베를 두고 왔다는 건 유지한에게 불안으로 남아있었다.

“저기에요!”

전투가 벌어졌던 부근으로 가까워질 수록 지형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와타나베와 떨어지기 전보다 훨씬 더 난장판이 되어버린 지면.

평평했던 땅은 뾰족한 가시밭처럼 높게 솟아 있었고.

곳곳에 커다란 크레이터나 칼로 땅을 베어낸 흔적이 보였다.

“오, 왔나.”

“무사하셨군요.”

“당연하지.”

입술에 기다란 풀을 물고 있는 와타나베가 손을 들어 유지한을 반겼다.

작은 상처조차 입지 않고 착용한 기모노에는 구겨진 흔적조차 없을 정도로 멀끔한 모습이었다.

여유가 묻어나는 그와 달리 그나마 그의 파티원들은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이었다.

“이놈들은 살려뒀다.”

와타나베의 발치에는 의식을 잃은 7명의 인간이 누워 있었다.

윤도하의 인형이었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그건 무무가 아닌가?”

“맞습니다.”

“왜 정령만 있는 거지? 윤도하는 어디로 가고?”

“아무래도 계약이 해제된 것 같습니다.”

“……계약이 강제로 해제된 건가?”

와타나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외부인의 개입을 통해 정령과의 계약이 해제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런데 1급 영웅이자 정령사인 윤도하의 계약이 강제로 해제되었다는 건.

어쩌면 지구의 정령사들에게까지 큰 파장이 번질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유지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윤도하 씨가 직접 계약을 파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

“2팀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계약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정령은 이동에서의 제약이 사라진다.

데서에게 붙들려 있는 윤도하가 지구의 영웅들이 카를렘에 도달했다는 걸 눈치챘다면.

데사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직접 무무를 풀어줬다고도 추측할 수 있었다.

무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진짜?”

“진짜로.”

계약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정령이 현실에서 내보일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생긴다.

그러나 숱한 경험과 어지간히 강한 힘을 갖고 있던 무무이니만큼 윤도하의 신뢰를 받았을 터.

‘그 정도 계산은 하는 사람이니까.’

유지한은 내가 기억하는 윤도하라면 이런 흐름 정도는 예측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는 자신의 길드원들이 왔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로군.”

와타나베가 짜증 섞인 얼굴로 쓰러진 인간들을 내려다봤다.

그들은 2팀과 마찬가지로 전부 마력 변색 증후군에 걸려있었다.

작은 정보조차 얻어내기가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었다.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응?”

“제가 거의 다 알아냈으니까요.”

“……?”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유지한을 보며 와타나베는 눈을 껌벅였다.

그가 이런 상황에 거짓말을 고하는 부류는 아니었기에.

“그게 정말이냐?”

“예.”

“무슨 방법으로?”

“영업 비밀입니다.”

“……느하, 느하하하! 역시 널 보내길 잘했다!!”

팡! 팡! 팡!

와타나베는 유지한의 등짝을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

투박하게 구성된 공간 왜곡의 면적 대부분은 흙밭이 차지하고 있었다.

넓이는 상당히 넓었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애초에 데서가 은신 겸 인형의 실험실로 사용했던 곳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고층 건물은 단 하나.

데서가 머물던 장소뿐이었다.

“찍찍! 저쪽에 하얀 뼈가 쌓여있다!”

“그 데서란 놈은 안 보여요.”

간단하게 생활 기반이 마련된 건물 안에는 여기저기 각종 동물의 사체와 핏물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데서는 찾아내지 못했다.

인형과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그라면 이미 이 광산 자체를 떠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도하. 저기에 있었어.”

무무는 윤도하가 갇혀있던 감옥을 가리켰다.

땅속을 오가며 윤도하를 찾아다니는 무무를 보며 유지한이 말했다.

“무무. 윤도하 씨는 왜 잡힌 거지?”

“그건 나도 궁금하군. 절대로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닌데.”

이탈자들의 능력으로 윤도하를 제압하는 건 턱도 없는 이야기였다.

와타나베마저 의심이 들만큼, 분명 데서에게 붙잡힌 다른 이유가 존재할 터.

“인질.”

“인질?”

유지한의 질문을 들은 무무가 지면 위로 올라왔다.

“도하와 친해진 드워프. 마법사에게 잡혔어.”

카를렘으로 보내졌을 당시 마즈의 인근에 떨어진 윤도하와 무무.

그들은 하늘에 떠오른 3개의 달을 보며 이곳이 지구와는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거대 길드의 수장쯤 되더라도 다른 차원, 다른 세계는 낯설기 그지없는 것.

당장 지구로 복귀할 방법이 없던 윤도하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마즈로 몰래 숨어 들어갔다.

“먹을 거 없었어. 배고팠어.”

자연에서 자라나는 과일이나 먹을 수 있는 풀이 전혀 자라지 않는 마즈의 환경.

맨몸으로 마즈에 도달한 윤도하는 우선 식량을 찾아다녔다.

그때 마주친 게 나이가 어린 드워프였다.

“빵 나눠줬어. 혼자 먹을 것도. 없으면서.”

광산에서 일하며 일정량의 식량을 배급받는 드워프.

그 드워프는 자기가 갖고 있던 딱딱한 빵을 윤도하에게 나눠주었다.

윤도하로서는 큰 빚을 지게된 셈이었다.

“그때부터 광산에 있었어.”

윤도하는 대화를 나누며 부쩍 친해진 드워프와 함께 광산에서 머물렀다.

자신의 힘으로 보석이나 광석의 채굴을 도와줌과 동시에 카를렘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윤도하의 조력으로 성과를 내면서 어린 드워프가 서서히 주목받던 와중.

갑자기 데서라는 마법사가 등장하여 드워프를 납치해갔다.

“그는 도하와 드워프의 관계를. 이용했어.”

이미 데서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버린 드워프.

데서를 죽이는 건 제법 간단한 일이었으나 인질이 된 드워프를 구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윤도하는 결국 데서의 뜻에 따라 그에게 사로잡혔다.

“윤도하는 정이 깊은 거인이었군.”

“아마도 자신이 있었겠죠.”

윤도하는 데서에게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순순히 잡혔으리라.

그가 가진 능력과 자신감이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할 법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현 상황은 그의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쓰레기네요!”

“찍찍! 내가 방패로 찍어버리겠다!”

“그만해. 방패 더러워져.”

팍! 팍!

화가 난 듯 방패의 모서리로 땅바닥을 찍어대는 칠라.

민유리가 녀석의 행동을 말리는 사이 이미아는 감옥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녀가 시야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건 바로 그때였다.

끼기기긱!

단단한 쇠창살을 강제로 넓게 벌려 감옥에 들어간 그녀는.

윤도하가 묶여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무언가를 주웠다.

“이건 뭘까.”

“어? 그건…….”

유지한은 이미아로부터 머리카락처럼 한 가닥을 전달받았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굵은 머리카락.

윤도하의 머리카락이었다.

—앗! 그거 줘봐!

탁!

실프는 유지한의 손에 잡힌 머리카락을 뺏었다.

라면을 흡입하듯 머리카락을 후루룩 삼킨 실프가 밝은 빛을 내뿜었다.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우히히!

머리카락으로부터 뻗어나가는 여러 가닥의 진실의 실.

서로 조금씩 겹쳐있는 그것은 유지한이 마즈에 도착하기 전 보았던 것들과 비슷했다.

‘무무와는 연결되지 않는군.’

머리카락은 무무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아마도 윤도하가 계약을 파기한 것이 그 원인이리라.

“음믐믐? 뭐가 보여?”

“보여.”

유지한이 무언가를 발견한 눈치에 무무가 반응했다.

“나도 보고 싶어.”

“이건 따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닌데…….”

샘플링의 파생 능력으로 취급되는 진실의 실.

고유 스킬의 소유주인 유지한과 그의 정령인 실프가 아니라면 누구도 볼 수 없는 물체였다.

간략한 사정을 들려주자 무무가 답했다.

“그러면 나랑. 계약하자.”

“뭐?”

—뭐라?!

“계약하면 나도. 볼 수 있어.”

자신과 계약을 맺자는 무무의 말에 유지한이 적잖게 당황했다.

실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지한은 이미 정령 1개체와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

그리고 윤도하와의 계약이 파기되었다고는 해도 정령사로서 스승에 가까운 사람의 정령과 계약하는 건 무례한 짓이나 다름 없었다.

“도하가 돌아올 때까지만. 계약해.”

“어……. 그런 거라면 괜찮을지도.”

윤도하가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만 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임시로 계약을 맺자는 제안은 썩 나쁘지만은 않은 말처럼 들렸다.

계약자가 존재하면 무무가 현실에서 제 힘을 다 선보일 수 있을테니까.

유지한은 실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실프. 넌 괜찮겠어?”

—끼아아악!! 무리! 절대로 무리!

웬일로 짧은 비명까지 질러대며 거칠게 반발하는 실프.

유지한은 고개를 젓듯 둥근 몸을 좌우로 비트는 녀석을 설득하는 어조로 말했다.

“윤도하 씨가 돌아오면 무무와의 계약은 파기할게.”

—싫어! 싫어어어어!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사정은 다 전해 들었잖아.”

—……끄으응!

허공에 떠있는 실프가 자신의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고민에 빠졌다.

1명의 정령사가 2마리의 정령과 계약하는 건 사실상 전례가 없는 일.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무무도 지금처럼 계약을 맺자고 하지는 않았겠지.

“대답은?”

—윤도하가 돌아오면 계약은 곧바로 파기하는 거야?!

“그래. 약속.”

—약속! 도장 쾅쾅! 어기면 죽음이야!

설득에 넘어간 실프는 끝내 유지한과 무무와의 임시 계약을 허락했다.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유리는 김시후에게 말했다.

“꼭 사이좋은 남매가 싸우는 것 같지 않아?”

“정령에도 성별이 있었나요…….”

김시후가 접했던 정령 연구 사례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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