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복제품 (7)
범죄를 저지른 영웅은 그 죄질에 따라 같은 영웅에게 처벌을 당할 수 있다.
특히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면 최대 처형에 처할 수도 있었다.
영웅 개인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상당히 큰 만큼 특정한 국가에 구분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그러한 직업의 특성 때문에 영웅 중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범죄자가 된 영웅들은 드물지만, 반드시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영웅으로서 뛰어난 능력치를 보유한 범죄자들.
머리까지 뛰어난 그들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여러 범죄를 반복하곤 한다.
그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도 어려운 것이, 스펙이 뛰어난 자들을 여러 명 수용할만한 특수 감옥은 구축하기가 매우 힘들다.
감옥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뛰어넘는 수준의 영웅들을 상시 대기시켜야 하는데.
그런 일을 맡아줄 만한 위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인력 낭비도 심하기 때문이었다.
또, 타국의 영웅을 자국으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영웅 우대 정책을 펼쳤던 국가일수록 영웅들에게 처벌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소식이 바로 지구에서 이세계로 진출할 방법이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범죄자를 지구에서 추방해버립시다!
위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누군가는 범죄자를 이세계로 보내버리는 계획을 세웠다.
범죄자들을 어딘가에 가두는 게 아니라 지구에서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평화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그 계획에 동의한 일부 국가는 자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영웅들을 선별하여 한국으로 보냈다.
끌려가는 범죄자들도 그 계획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지루하고 따분한 지구보다 이세계로 가는 게 훨씬 더 재밌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이딴 걸 바라지는 않았어!’
마법을 이용하여 수많은 남자들을 몰래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호주에서 방출된 남자.
지금은 카를렘 원정대의 이탈자 중 한 명인 그는 이마에서 땀방울을 흘렸다.
그와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미제사건의 살인범이라고 주장했던 한 이탈자는 조금 전 유지한의 손에 죽었다.
유지한은 다른 이탈자를 향해 말했다.
“너희가 카를렘에 따라온 건 실수다.”
“뭐라고?”
“여긴 너희 불만을 들어줄 사람이 없거든.”
“……!”
숭고한 목적을 가진 영웅의 범죄를 옹호하며 그들을 감쌌던 정치인들.
MA 따위의 위험한 현장에서 몇 차례 은혜를 입은 것으로 그들을 위한 언쟁과 시위를 벌였던 시민들.
지구에서 영웅 범죄자들을 지켜주던 이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줄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카를렘에서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로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겠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려도 나서줄 사람들 또한 없는 것이었다.
“지구로 돌아가면 범죄자들은 모두 실종됐다고 전해주마.”
“……?”
“그리고는 너희를 보낸 국가에게 쏠쏠한 보상금을 타 먹는 거지!”
“저, 저 건방진 새끼!”
“저 새끼는 반드시 죽인다!”
열이 확 오른 이탈자들이 유지한에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중 방심하고 있던 여성은 뒤에서 다가온 이미아에게 머리를 붙잡혔다.
“어?”
콰아앙!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이미아는 붙잡은 여성의 정수리를 바닥에 냅다 꽂혀버렸다.
바닥에 머리가 박힌 이탈자는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몸을 꼿꼿이 편 상태로 부들부들 떨어댔다.
예상하던 사태에 유지한은 씩 웃었다.
“엘라!”
[미스테리 익스플로전]
콰과광—!
한 마법사 이탈자가 지팡이를 뻗자 유지한의 앞에서 초록색 폭발이 발생했다.
[미스테리 익스플로전]
[미스테리 익스플로전]
[미스테리 익스플로전]
[미스테리 익스플로전]
같은 자리에서 이어지는 4번의 연쇄 폭발.
단 1번의 폭발만으로 여럿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마법 스킬이 유지한의 눈앞에서 터져나왔다.
푸화아악!!
마력의 연기와 먼지, 흙 따위가 이리저리 뒤섞여 시야를 뒤덮었다.
싸우는 상대뿐만 아니라 동료를 포함한 주변 전체에 영향을 주기에 피하고 있던 이탈자의 고유 마법.
‘이걸로 저놈을 죽일 수 있을까?’
하지만 마법을 사용한 당사자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상대의 죽음에 도저히 확신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후웅!
그때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시야를 방해하던 모든 것들이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이탈자들이 황급히 유지한이 있던 자리를 살폈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뒤였다.
“그 새끼, 어디로 간…….”
“여기다.”
땅밑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목소리.
팟!
바닥에서 45도로 튀어 오른 큐디가 마법을 시전한 이탈자의 정강이를 깊게 베어냈다.
경악하는 이탈자들 사이로, 누군가가 황급히 기다란 검을 바닥에 찔러넣었다.
하지만 큐디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날 따라와.
쿠구구구구구!
땅밑을 자유롭게 오가는 무무를 따라 이동하는 유지한.
바닥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진동에 이탈자들은 소리쳤다.
“저 쓸모없는 인형 같으니!”
이미아와 대치하던 가짜 윤도하는 양쪽 다리가 부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대지의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존재임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 이탈자들은 답답해했다.
“끄아악!”
땅 밑에서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전사가 한 명 숨어있고.
땅 위에서는 각종 원거리 스킬이 날아들며 괴력을 보유한 영웅이 길을 막아서는 상황.
‘죽는다!’
이탈자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
지형이 완전히 변해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치러진 전투.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건 유지한 일행과 이탈자 단 1명이었다.
그나마도 다리를 심하게 다친 이탈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호흡했다.
“……다른 놈들은?”
“다 죽었지.”
“퉷!”
표정을 일그러뜨린 이탈자가 유지한의 얼굴을 노리고 침을 뱉었다.
끈적이는 침 속에 섞여 있는 물체는 줄곧 혀 밑에 숨겨둔 작은 독침.
—떽!
“크악!”
하지만 실프가 일으킨 바람으로 인해 그 침은 되레 이탈자의 눈에 직격했다.
통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된 독으로 인해 그는 눈을 붙잡고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그런 그의 가슴 앞으로 서늘한 검날이 다가왔다.
“자, 잠깐만!”
“말해.”
“내, 내가 다 말해줄게. 그러니까……!”
“다 말해준다고?”
“그래!”
“필요 없어.”
“엇.”
푹!
심장이 반으로 갈라진 이탈자는 잠시 후 숨을 거뒀다.
얼빠진 얼굴로 죽은 그를 내려다보던 유지한이 말했다.
“마석은?”
“전부 뽑아왔어요.”
“수고했어.”
김시후의 손에 담긴 건 이탈자들의 시체로부터 수거한 그들의 마력이 담긴 마석들.
상대가 적이라면 굳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우히히! 날 너무 의지하는 거 아니야?
실프는 밝은 초록빛을 발광하며 우쭐거렸다.
샘플링을 통해 타인의 기억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프를 거쳐야만 했기에.
“그럼 하지 말까?”
—그건……. 너무해!
짧은 대답만으로 토라져 버리는 실프를 보며 유지한은 피식했다.
파아앗!
한순간에 어두워지는 유지한의 시야.
그의 의식은 마석을 삼킨 실프를 따라 죽은 이탈자들의 기억 속으로 떨어졌다.
가장 먼저 보인 장면은 야영 도중에 이탈자들이 원정대를 떠나는 장면.
—이쪽이 맞겠지?
—의심하지 말고 따라와라.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
이탈자들은 손에 쥔 무언가에 의지하며 밤길을 가로질렀다.
기억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지한은 그들이 가진 물건을 살폈다.
‘스크롤?’
놀랍게도 그것은 마법 스크롤이었다.
아제시아의 마법사들이나 사용했던 마도구.
어째서 그런 물건을 저들이 갖고 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 실프가 말했다.
—지한!
“응?”
—저거 내가 아는 마법 같아!
“뭐라고?”
—[증오의 향기]. 그루디아의 탐지 마법이야.
실프는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특정한 범위 내에서 증오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이 집중된 장소를 찾을 수 있는 마법.
김시후의 어머니이자 실프의 전 계약자인 에르나 하스가 살던 세계.
그루디아에서 취급되는 마법이었다.
—에르나의 왕국에서 치안 관리를 위해 사용하던 마법이기도 해.
“그런 마법을 왜 저 사람들이…….”
[증오의 향기]는 지구에는 공개적으로 전해지지 않은 마법.
그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그 마법을 스크롤에 담아놓은 모양이었다.
—멈춰라! 너희는 누구지?
[증오의 향기]를 사용하여 도착한 장소는 마즈.
그곳에서 이탈자들은 마법사이자 인형술사인 데서를 만났다.
이탈자들을 많이 경계하던 데서는 그들이 지구에서 넘어온 것을 전해 듣고 흥미를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후.
‘……!’
유지한은 자신이 카를렘으로 온 이유이자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인물.
윤도하를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잠든 건가?’
윤도하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감옥 안에서 양쪽 팔과 다리가 벽과 연결된 단단한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50명도 수용할 수 있을법한 공간에 홀로 눈을 감은 채 갇혀있는 그였다.
—대체 윤도하를 어떻게 잡은 거지?
조금 전에 죽은 이탈자들은 감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채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방금 저 남자가 ‘잡혔다’고 말한 거냐?
—그건 말도 안 돼.
고작 쇠사슬 따위로 몸을 묶어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윤도하는 마음만 먹으면 이 감옥을 포함한 건물 전체를 부숴버리고 탈출할 수 있는 영웅.
그렇기에 이건 그가 감옥에 갇힌 장면이 아니라, 그가 갇혀준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클클클! 어떤가?
회색 장발을 보유한 작은 키의 남자가 이탈자들의 곁으로 걸어왔다.
—당신들이 말했던 1급 영웅이 맞나?
—그래. 하지만 대체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손으로 머리를 톡 건드리는 남자.
그는 레론의 전 왕실마법사인 데서였다.
—저건 분명히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이다. 저놈을 온전히 복제할 수만 있다면 나 혼자서 카를렘을 정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
—세계 정복이 목적인가?
—정복? 그딴 일엔 흥미 없어. 드워프들을 부추겨 마즈를 무너뜨린 다음엔 카븜을, 마지막엔 레론까지 모두 부숴버릴 거다.
마즈와 카븜에 이어서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레론까지 무너뜨리겠다는 데서.
행복한 상상을 하는 그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꿈도 야무지네.’
유지한은 신나서 혼잣말을 이어가는 데서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을 떠난 뒤에도 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의 마력과 생김새를 머리에 새겨넣었다.
*****
낡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데서는 인형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가 인형을 통해 바라보는 건 와타나베 파티였다.
그리고 일본도를 쥔 와타나베가 인형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흠칫!
와타나베와 눈을 마주친 데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인형 너머에 존재하는 그가 꿰뚫려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법사가 아니고, 고작 검은 든 인간에게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이던가.
“당했나…….”
그가 인형과 공유하던 시야는 곧 끊어져 버렸다.
무려 7개의 인형을 보냈던 지역에서 6개의 신호가 끊긴 상황.
나머지 1개의 인형조차도 시야 공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쪽도 마찬가지고.’
지구인들에게 넘겨주었던 인형 또한 신호가 끊어졌다.
인형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만 나오는 반응이었다.
“실망이로군. 실망이야!”
데서는 쯧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쓸모없는 놈들이었다.”
마즈에서 윤도하라는 인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데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작은 인간의 몸으로 커다란 태산의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물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땅과도 같은 그의 존재감.
정령과 계약을 맺었다고는 해도 그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토록 이기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나? 지구에서 왔는데?
지구라는 곳에서 넘어왔다는 그의 이야기를 접한 뒤.
데서는 지구에 관한 환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열등한 카를렘의 생명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들.
그가 다른 지구인들을 받아들였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역시 저놈은 너무 특별해.”
데서는 감옥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윤도하를 주시했다.
그에게서 뽑아낸 마력을 이용하여 인형을 만들기만 해도 아주 훌륭한 능력치의 인형이 완성된다.
살아있는 인형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체형.
윤도하와 비슷한 체형인 신체만 주어진다면, 그야말로 군대를 양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데서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즈를 시작으로 카븜을 무너뜨려 카를렘이라는 세계에 오직 레론 하나만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레론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때!
‘날 버린 레론을 멸망시킨다!’
마지막으로 레론을 공격하여 카를렘의 모든 세력을 무너뜨린다.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던, 한없이 자유로운 태초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레론 왕가가 내친 왕실마법사 데서가 꿈꾸는 복수였다.
“……그런데 그것들이 너무 거슬리는군.”
유지한과 와타나베.
두 사람의 얼굴이 데서의 눈에 아른거렸다.
여러 지구인 중에서도 그 두 존재가 유독 거슬리는 것은.
분명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