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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7화 (247/300)

247화. 복제품 (6)

“무무!”

작은 두더지같이 생긴 땅의 정령 무무.

황급히 땅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간 유지한은 쓰러진 박재경에게 다가갔다.

가장 먼저 그녀가 제대로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의식이 없는 나머지 인원의 상태를 살폈다.

“다들 살아있어.”

유지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으나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당장 생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윤도하 씨의 인형은 무무의 힘을 끌어다 쓴 거로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진실의 실 5가닥은 모두 무무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윤도하가 보유한 힘의 근원은 본래 정령으로부터 파생된 것.

따라서 윤도하를 통해 만들어진 인형들도 무무에게서 시작된 것이리라.

하지만 당장 문제가 있다면.

이 자리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윤도하 씨는?”

“도하. 여기 없어.”

“어디로 간 거야? 너는 왜 혼자 있는 거고.”

“도하가. 보냈어. 사람들. 지키라고.”

윤도하의 명령에 따라 2팀을 지키기 위해 따로 떨어져나온 무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무무의 어깨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윤도하 씨는 지금 어디 있어?”

계약을 맺은 정령은 계약자의 위치를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약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그의 생존 여부부터 위치까지 대부분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무무는 계약자의 위치를 놓쳐버렸다.

무척 혼란스러워하는 녀석의 행동을 보며 실프가 말했다.

—계약에 문제가 생긴 거야?

“…….”

무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칠라. 괜찮아?”

“사, 살짝 어지럽다. 찍!”

온 힘을 다해 흙을 퍼낸 칠라는 몸을 비틀거렸다.

민유리는 그런 칠라의 몸을 옆에서 지탱해주었다.

“다들, 잠깐만.”

“……?”

그때 기절한 2팀을 조사하던 이미아가 모두를 호출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박재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봐.”

까맣게 물들어버린 박재경의 팔.

이미아가 손으로 붙잡은 부위만 살이 검게 변해있었다.

그걸 본 김시후는 탄식하고, 민유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허, 마력 변색 증후군?”

“어떻게 저분들까지……!”

영웅들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크든 작든 마력을 접한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마력에 익숙한 존재인 셈이었다.

특히 카를렘 원정에 참여한 이들은 체내에 보유한 마력이 영웅의 평균치를 뛰어넘는다.

그런 이들이 마력 변색 증후군이 걸렸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

“몸에 마력이 없어요.”

양동이에 채워져 있던 물을 모두 비워버린 것처럼.

2팀의 속한 영웅들의 몸에는 한 줌의 마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절해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자연 회복 또한 기대할 수 없을 터.

“누군가 의도적으로 병을 퍼트리고 있는 게 분명해요!”

김시후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가정이 확실해졌음을 깨달았다.

불치병으로만 알려진 마력 변색 증후군을 누군가가 전파하는 것이었다.

범인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인형술을 사용하는 마법사 데서.

“인형을 만들기 위한 조건 같아.”

유지한은 데서에게 조종당한 이의 기억으로부터 모종의 작업이 진행되는 걸 지켜봤었다.

그가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 때 사용하는 건 인간의 몸.

인간을 인형처럼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불치병에 걸려야 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어.”

“내가. 도울게.”

드드드드!

바닥에서 솟아오른 평평한 흙 위에 기절한 2팀의 몸이 실렸다.

무무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들을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생각은 내려놓고 당장의 상황에 집중한다.

그렇게 일행이 땅속을 벗어나려던 그때였다.

—지한! 위쪽!

위험을 감지한 실프의 외침.

유지한은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커다란 화염의 구체가 그들이 파헤친 땅을 노리고 떨어져 내라고 있었다.

“찍찍!”

공격 마법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위로 껑충 뛰어오른 칠라가 방패를 치켜들었다.

퍼버버벙!!

공격 마법은 방패에 닿은 순간 강한 폭발음을 내며 터져버렸다.

동시에 마력의 불길이 칠라의 몸을 휩쓸었으나.

화염 내성이 부여된 방어구는 마력의 불길로부터 칠라를 지켜냈다.

“거기에 숨은 놈들은 나와라! 찍!”

반발력에 의해 땅으로 착지한 칠라는 재빨리 자세를 다잡았다.

똘망똘망한 칠라의 눈은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습격범들.

그들은 멀쩡한 칠라를 보고서 표정을 찡그렸다.

“저걸 막았네.”

“넌 반성해라. 저깟 햄스터 하나를 못 뚫어?”

“시끄러!”

마법을 사용한 1명을 제외하고 그들은 장난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이내 땅 위로 올라온 유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쪽도 마찬가지야.”

“대체 카븜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유지한, 당신 이름이 여기까지 들렸다고.”

그들은 야영 도중 카를렘 원정대에서 이탈한 지구의 영웅들.

유지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던 이탈자들에게 무기를 겨눴다.

“왜 우리를 배신했지?”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카를렘에서 음모를 꾸미는 이유.

그것은 유지한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양지철을 통해 그들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건 알고 있지만.

자리를 이탈한 그들이 대놓고 원정대를 방해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싶어? 알려줄까?”

서로를 힐끔 바라본 이탈자들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너희가 지구로 돌아가는 걸 막기 위해서야.”

“그래야 카를렘에 다시 찾아오는 지구인이 없을 테니까.”

지구의 영웅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를렘에서 죽게 되면 이세계 진출에 반감을 갖는 인원이 크게 늘어난다.

이세계에 도착한 범죄자로서는 지구와의 연결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더불어 혹시 모를 추격자들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이탈자들은 원정대의 일을 망치고자 했다.

“끼히히히!”

시뻘건 피로 물든 무기를 꺼내는 이탈자들.

일부러 닦아내지 않아 굳어버린 핏물을 보며 유지한은 그들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었다.

‘1명인가.’

그들의 뒤에서 대기하는 건 1명의 가짜 윤도하.

틀로 찍어낸 것처럼 똑 닮은 윤도하의 복제품이 이탈자들을 따르고 있었다.

푸확!

그때 무무의 도움을 받아 땅속에 숨어있던 이미아가 흙더미와 함께 위로 튀어나왔다.

상대와 대화를 나눌 것도 없이 곧장 앞으로 달려드는 그녀.

“이미아다!”

“저거 은근 또라이니까 조심해!”

이미아의 무자비한 이미지는 김현태 파티를 통해 잘 알려진 상황.

그녀와 정면에서 부딪히는 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들은 직접 나서기보다 가짜 윤도하를 앞세웠다.

퍽!

얇은 다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괴력이 실린 이미아의 발차기.

땅에서 두툼하게 솟아난 흙의 벽이 그녀의 공격을 쉽게 막아냈다.

하지만 이미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짜 윤도하를 보호하는 흙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버버버버벅!

오밀조밀 좁은 간격으로 뭉쳐진 흙벽에서 연신 흙의 입자가 튀기며 주변을 더럽혔다.

무기 따위는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흉기에 가까운 신체 능력!

흙벽이 재생되는 속도와 그녀의 연격이 서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아의 공격에 시선이 쏠려있던 순간.

팡!

“어이쿠.”

기습적으로 날아든 민유리의 화살을 이탈자 한 명이 도끼로 쳐냈다.

도끼날에 실린 오러 때문에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가루처럼 으스러지는 마력 화살.

손쉽게 막힌 공격에 이탈자는 그녀를 비웃었지만, 민유리 또한 그를 따라 웃고 있었다.

[형태 변화 - 글루]

촥!

화살을 막아낸 도끼날에 소량의 마력이 접착제처럼 달라붙었다.

분명 도끼 전체에 오러가 둘러져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민유리의 마력.

본래 오러가 타인의 마력과 충돌하면 마력이 사라지기 마련이거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음?”

이탈자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관성을 이용하여 마력을 떨어뜨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머리처럼 촥 달라붙은 마력은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팡!

그는 뒤이어 날아온 마력 화살을 다시 도끼로 쳐냈으나.

마력으로 덮이는 부위가 늘어날 뿐이었다.

‘오러의 면적이 줄어든다.’

무기를 통한 오러의 발현이 점점 불안정해지자 이탈자에게 짜증이 몰려왔다.

손으로 마력을 직접 긁어낼 수는 있지만 당장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죽여주마!”

파아아아!

도끼를 든 이탈자가 거친 마력을 흩뿌리며 뛰어왔다.

하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고 다시 활을 겨누는 민유리의 앞으로 칠라가 나섰다.

“건방진 햄스터가!”

“찍찍! 난 친칠라다!”

쿠웅!

커다란 방패와 커다란 도끼의 충돌!

그래 봤자 하찮은 펫에 불과한 놈이 탱커로 나섰을 뿐.

이탈자는 자신이 칠라를 압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찍찍!”

그러나 칠라는 공격을 가뿐히 막아냈다.

압도되긴커녕 마력으로 강화된 방패가 도끼를 반대로 튕겨내기까지 했다.

[나무꾼의 자존심]

도끼의 한 점에 오러를 집중하여 강력한 힘으로 내려찍는 공격 스킬.

정확한 위치, 정확한 타이밍에 휘둘러야 제 위력이 나오는 어려운 스킬임에도.

이탈자는 아주 능숙하게 방패를 가격했다.

까아아앙!

“찍—!”

칠라는 발바닥이 땅에 주르륵 끌리면서 뒤로 밀려났다.

칠라의 모든 털이 선인장의 가시처럼 빳빳하게 세워질 만큼 묵직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도끼에 달라붙은 민유리의 마력이 위력을 낮춰준 덕분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이봐! 나 좀 도와줘!”

탱커를 뚫어내지 못하고 원거리 딜러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이탈자.

점점 부담을 느끼던 그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컥!”

그가 도움을 요청한 이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훨씬 더 여유가 없었다.

유지한은 얕게 베인 손을 부여잡는 이탈자를 보며 말했다.

“조금 전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갔지?”

“……!”

그의 도발에 말려든 이탈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친 손으로 검을 부여잡은 그가 앞으로 치고 나오려는 순간.

“어허!”

[윈드 프리즈]

김시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감옥을 형성하여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범죄자라고는 해도 무려 2급에 해당하는 영웅을 강제로 멈춰 세울 정도의 힘.

물론, 상대가 움직이지 못한 시간은 고작 2초 안팎이었지만.

‘충분해.’

유지한이 그를 쓰러뜨리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푹!

큐디의 검끝이 이탈자의 복부를 뚫고 등으로 빠져나왔다.

상체에 두른 단단한 판금 갑옷을 두부처럼 뚫어버리는 드리미움의 칼날.

이탈자는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내 아티팩트가 뚫렸다고……?”

“내 검이 좀 좋아.”

“꺼허억!”

생존 본능으로 몸을 비틀어대던 그는 핏물을 왈칵 쏟아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살아날 여지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깔끔한 죽음이었다.

그 순간 다른 이탈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어?’

‘쿠릴이 죽었다.’

‘이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었는데?’

고작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영웅들이다.

멀리서 지켜봤을 때 가장 거슬렸던 건 이미아라는 변수뿐.

영화를 통해서 이름이 퍼졌으나 초짜에 불과한 애송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우, 우리가 밀리는 건가?’

‘고작 저깟 애송이들에게?!’

그러나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애송이들에게 순수한 힘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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