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복제품 (5)
“우아악!”
“왜 이러는 거야?!”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
땅에 발을 제대로 딛고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지진.
드워프들은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따, 땅이 갈라진다!”
그들은 뒤이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땅을 내려다보며 식겁했다.
공간 왜곡에 입장한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한편, 유지한 파티는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찍찍! 다들 괜찮나!”
“이제 이런 건 별거 아니네요.”
흔들리는 땅 위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칠라와 김시후.
민유리는 발밑에서 쩍쩍 갈라지는 땅을 피해 폴짝폴짝 뛰며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괴냥이 수염차를 통해 단련된 그들의 균형감각은 이런 흔들림에도 끄떡없는 수준이었다.
“이미아! 괜찮아?”
“끄떡없어.”
김현태 파티에서 괴냥이 수염을 접했던 이미아도 여유가 넘쳤다.
그들과 상황이 비슷한 와타나베 파티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광산 안에 이런 공간이 존재할 줄이야.”
“와타나베 님!”
“왜?”
“저쪽에서 피 냄새가 느껴집니다!”
유독 후각이 뛰어난 와타나베의 파티원은 멀리서 피 냄새를 맡았다.
유지한과 시선을 교환한 와타나베는 앞에 있던 드워프 1명을 강제로 둘러업고 피 냄새가 느껴진 방향으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드워프를 납치한 유지한은 와타나베의 뒤를 따랐다.
‘이건…….’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와 부서진 무기의 파편들.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의 안전을 확인한 유지한이 납치한 드워프를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복장을 보니까 이 광산의 작업자 같은데, 왜 이 밤중에 광산으로 온 거냐?”
“…….”
“대답은?”
“우린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납치된 3명의 드워프들은 하나같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유지한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단이 오늘은 이곳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했었어.”
“가단 님께서?”
“너희가 왜 가단 님을 알고 있지?”
작업반장인 가단의 이름이 들리자 드워프들은 몸을 움찔했다.
이 광산에서 일하는 드워프에게만큼은 가단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유지한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가단의 친구다.”
“가단 님의 친구라고? 인간 주제에?”
“난 이곳 사람이 아니거든. 너희가 증오하는 마즈의 인간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
“프란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나?”
“프란 페이저! 가단 님의 죽은 아들이잖아!”
“프란은 죽지 않았다.”
가단과 두터운 친분이 있는 드워프는 프란 페이저의 존재 또한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프란을 봐 왔다는 한 드워프에게 녹음된 프란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저, 정말로 프란의 목소리다.”
“이제 믿겠나?”
“하지만…….”
드워프들이 자꾸만 대답을 망설이던 순간.
이미아가 주먹으로 땅을 때렸다.
콰아아앙!!
이미아의 주먹을 중심으로 움푹 내려앉는 땅바닥.
조금 전의 지진이 한 번 더 일어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허어억!”
“힉!”
공포가 깃든 눈으로 이미아를 바라보는 드워프들.
오로지 순수한 완력만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이미아였다.
깨진 유리처럼 쩍쩍 갈라진 땅에서 주먹을 뽑아낸 그녀는 손을 가볍게 털었다.
“바닥에 벌레가 앉아 있었어.”
“…….”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이미아는 무표정한 눈으로 드워프들의 얼굴을 훑어봤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드워프는 곧장 바닥으로 눈을 깔았다.
[배려해줄 때 입을 열지 않으면 이 벌레처럼 짓뭉개버리겠다.]
여기서 그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드워프들이 바짝 긴장한 사이 대화의 흐름을 이어받은 유지한은 말했다.
“마력도 없는 너희가 어떻게 공간 왜곡에 들어온 거지?”
일행이 따라온 드워프들에게는 마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계층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이들이 공간 왜곡으로 곧장 들어왔으니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
“그냥 말할까?”
“이곳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을지도…….”
“하지만…….”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드워프들은 이내 유지한을 올려다봤다.
*****
드워프들의 이야기는 약 15분간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2팀과 윤도하는 모두 이곳에 있다.]
사라진 영웅들이 모두 이 공간 왜곡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직접 사로잡힌 그들을 본 목격자도 있었으니까.
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한편, 와타나베는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드워프들이 인간에게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거로군.”
오늘 밤 공간 왜곡으로 입장한 30명의 드워프.
더불어 그들을 제하고도 약 5천 명이 넘는 드워프들은 모두 마즈에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조만간 마즈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건, 마즈의 지배자들이 아니라 드워프였던 셈이다.
하필이면 수많은 세월 동안 참고 참아온 드워프의 분노가 터져버리기 직전.
카를렘 원정대가 마즈에 도달한 것이었다.
“찍찍. 반란이라니! 아주 무서운 놈들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인간만 할까.”
“찍?”
칠라의 호들갑에 김시후가 씁쓸한 얼굴로 받아쳤다.
마즈에서 인간에게 반항적인 드워프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는 건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만큼 차별이 심했으니 보복도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유지한 일행은 그러한 그들의 사정에 깊게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데서라는 마법사가 우릴 도와주겠다고 했어.
힘이 부족한 드워프들을 뒤에서 도와준 인물은 레론의 전 왕실마법사 데서.
그는 과거 알로에게 아버지의 치료를 제안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의문으로 남는 것이라면 데서라는 인물이 드워프들을 돕는 이유이었지만…….
“쏠게요!”
그것도 곧 알 수 있을 터였다.
파바바바바박!
민유리의 마력 화살이 하늘을 수놓았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한꺼번에 쏘아낸 듯 많은 양의 화살들.
그녀가 들고 있던 활에 마력을 불어넣자 더욱 강화된 마력이 화살로 전해졌다.
[형태 변화 - 메가톤 볼]
슈우우우우!
사용자의 마력을 끝을 모르고 쭉쭉 집어삼키며 크기를 대폭 키워가는 화살.
가느다란 화살들은 본래 갖고 있던 부피를 훌쩍 뛰어넘어 아주 커다란 공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위협적인 마력의 공이 떨어져 내라는 방향은.
공간 왜곡 밖에서부터 보였던 진실의 실이 이어지는 건물이었다.
콰과과과과과광—!!
마력의 공이 건물에 완벽하게 적중했다.
스킬에 얻어맞은 건물은 철거되는 공사장의 건물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크윽! 이건 대체……!”
“다들 무사한가?!”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걷어내며 일어서는 인간들.
바닥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던 유지한은 앞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서걱!
“커억!”
로브를 두른 마법사들이 그의 검격에 당해 쓰려졌다.
데서와 동행한 것으로 추측되는 마법사들이었다.
“잔챙이들은 누워 있거라!”
“으아악!”
“느하하하!”
와타나베와 유지한에 의해 상대측이 하나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궁!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커다란 진동이 느껴지더니, 곧이어 모든 잔해가 하늘로 치솟았다.
평평하던 땅이 갑자기 높게 솟아올라 잔해들을 위로 튕겨낸 것이었다.
“나왔군.”
땅바닥을 자기 몸처럼 조종하여 방해물을 제거한 건 윤도하였다.
와타나베와 유지한이 기억하는 윤도하의 얼굴을 보유한 인물이 총 7명.
머리 위로 진실의 실이 길게 이어지는 가짜 윤도하 7명은 적진으로 뛰어든 영웅들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인형들.’
본체인 윤도하의 능력을 복사하여 만들어낸 살아있는 인형.
윤도하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 인간들을 데려다가 그의 능력을 강제로 덧씌운 복제품이었다.
[어스 퀘이크]
[어스 퀘이크]
[어스 퀘이크]
[어스 퀘이크]
…….
…….
7명의 윤도하가 동시에 펼치는 대지의 마법.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흔들림은 없었다.
파스스스……!
순간적으로 정적이 맴돌던 땅바닥은 이내 어마어마한 가뭄이 일어난 듯 쩌적 갈라졌다.
갈라지고, 다시 갈라지고, 다시 갈라지다 못해 잘게 부서진다.
본래 커다란 땅덩이였던 것이 돌덩이보다 작은 모래알이 되어가고 있었다.
믹서기로 땅을 갈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현상.
천재지변에 가까운 마법이 7번이나 겹쳐버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밑으로 빠지겠어요!”
“찍찍! 친칠라 살려!”
순식간에 모래사장이 되어버린 땅은 파도처럼 출렁였다.
바닥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들의 몸은 출렁이는 모래 밑으로 강제로 끌려가고 있었다.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모래의 속박은 강해지기만 했다.
꽈드드드득!
이미아가 다리에 힘을 주자 그녀의 허벅지 위로 뚜렷한 근육의 결이 드러났다.
특유의 괴력을 이용하여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몸이 더 깊게 빠지는 것만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귀찮은 마법이로군!”
“실프!”
그때 모래를 피해 위로 튀어 오른 건 와타나베와 유지한이었다.
—걱정 말고 밟아!
유지한이 한쪽 발로 모래를 밟는 순간 그의 발바닥을 감싸는 약 600여 개의 모래알.
실프는 바람을 이용하여 모든 모래알을 전부 바닥으로 밀어냈다.
매초마다 수많은 양의 연산이 요구되는 작업.
유지한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실프는 그것을 거뜬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우히히!
그러고도 웃을 정도로 여유가 남는 바람의 정령의 비호 아래.
유지한은 다리를 옥죄여오는 모래를 무시하며 파티원들을 위로 끌어올렸다.
“잡아!”
“우아악!”
쑤욱!
모래 속에서 김시후의 몸이 위로 끌어올려 졌다.
하마터면 지팡이를 놓칠 뻔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찍찍! 등에 타라!”
김시후는 유지한과 함께 실프의 비호를 받는 칠라의 몸 위로 올라탔다.
뒤이어 유지한이 이미아와 민유리를 모래에서 끄집어냈다.
파밧!
그런 그들을 쉽게 놓치지 않겠다는 듯.
땅에서 꿈틀거리던 모래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꽉 잡아요.”
“우앗!”
[윈드 밤]
왼손으로는 이마아를, 오른손으로 민유리의 허리를 감은 유지한이 위로 높게 점프했다.
가짜 윤도하가 조종하는 모래 또한 그를 쫓아서 올라오고 있었다.
“흐압!”
그때 와타나베가 모든 파티원을 구해낸 걸 확인한 김시후는.
기습적으로 주변 일대에 마력의 비를 흩뿌려 모래 전체를 촉촉하게 적셨다.
[아이스 필드]
물에 흠뻑 젖은 모래는 얼음 마법을 사용하자마자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제서야 땅으로 내려온 유지한은 7명의 가짜 윤도하를 주시했다.
그들의 정수리와 이어지는 진실의 실이 보이고 있었다.
“어서 가라. 여긴 우리가 맡으마.”
“예?”
“너는 뭔가를 보고 있지 않으냐?”
“……!”
와타나베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함께 행동하는 동안 그는 유지한의 능력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힘들 겁니다.”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2팀 또한 저들에게 당해버리지 않았는가.
1급 영웅과 맞먹는 존재들을 두고 가려니 유지한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거인을 닮아봤자 고작 가짜일 뿐이다.”
“……그럼 부탁 드립니다.”
유지한은 결국 파티원들을 데리고 진실의 실이 이어지는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가짜 윤도하들은 그의 뒤를 쫓으려고 했으나.
촤악!
검을 뽑아든 와타나베 파티가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얘들아, 준비해라!”
“네!”
“느하하하!!”
이곳이 지구였다면 절대로 겪어볼 수 없었을 싸움.
일본 최고라는 자리에서 도전자의 입장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와타나베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
쿵!
달려가는 유지한 파티원들의 등 뒤에서 공기를 타고 저릿저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와타나베 파티와 가짜 윤도하들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저쪽이다.’
5명의 윤도하부터 뻗어 나온 진실의 실이 하나로 이어지는 구간.
와타나베의 배려를 받은 유지한은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앗! 무무의 마력이야!
윤도하의 정령인 무무의 마력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유지한은 땅밑으로 이어지는 진실의 실을 보며 소리쳤다.
“저쪽 땅을 파!”
“내게 맡겨라! 찍!”
커다란 방패를 자신 있게 치켜든 칠라가 방패의 모서리를 흙 땅에 꽂아 넣었다.
[쉴드 스핀]
팍! 팍! 팍! 팍! 팍!
“찍찍찍!”
땅에 꽂힌 방패는 칠라와 함께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흙을 퍼냈다.
굴착기처럼 돌아가는 방패의 옆에서 유지한은 모든 방향을 지시했다.
그리고 돌덩이나 단단한 물체가 나올 때마다 김시후의 도움으로 제거를 한 끝에.
“음믐믐?!”
쓰러진 박재경과 2팀의 영웅들.
그리고 홀로 그들을 보호 중인 정령 무무를 찾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