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5화 (245/300)

245화. 복제품 (4)

프란 페이저의 아버지, 가단 페이저는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마즈에 거주하던 드워프 중에 프란 페이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은 단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시후가 언급한 프란이 자신의 아들을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인간들에게서 사라진 아들의 이름이 들려오다니!

“내, 내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가단은 빠른 걸음으로 김시후에게 다가갔다.

김시후의 앞으로 나선 칠라는 그런 그의 몸을 살짝 밀어냈다.

“찍찍! 뒤로 조금 물러나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간절해 보이는 눈빛과 말투.

김시후는 대답을 기다리는 가단에게서 어쩐지 익숙함을 느꼈다.

인간과 드워프, 서로 종족은 달라도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 것.

아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프란은 우리의 고향에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카를렘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인 지구로 넘어간 프란 페이저.

김시후는 돼지국밥이라는 용병단의 설정대로 자신들이 미개척 대륙에서 넘어왔다고 전했다.

“그 어린놈이 아직 살아있었나…….”

“마침 목소리를 녹음해온 게 있군요.”

“……?”

유지한은 챙겨온 녹음기를 꺼내 보였다.

그 녹음기에는 카를렘에 오기 전 프란이 현지인의 발음으로 녹음한 각종 문장이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주 먼 지역에서 찾아온 인간들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

…….

의심스러운 눈으로 녹음기를 바라보던 가단은 이내 입을 다물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성숙하다기보다는 아직은 앳된 청년의 목소리.

카를렘에 적어도 몇 년 이상 거주했음이 분명한 현지인의 억양이었다.

‘……프란이 맞다.’

가단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프란의 목소리와 녹음기에서 재생되는 목소리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아들의 목소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프란 형이 살아있었다니……!”

과거 프란과 친분이 있었던 그룬도 그의 생존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그가 사라진 뒤 영락없이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생각했거늘.

이윽고 녹음기의 재생이 끝나자 가단은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왜 이런 걸 만든 거지?”

“처음에는 언어 문제가 생길 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운 좋게 해결됐죠.”

“프란의 목소리가 단단하고 힘이 넘치더군.”

끝까지 정확한 발음과 동일한 톤을 유지하는 프란의 목소리.

억지로 녹음을 시켰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즉, 프란이 직접 나서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이리라.

“왜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오지 않았지?”

그렇게 말한 가단은 눈앞의 영웅들을 찌릿 노려봤다.

어째서 내 아들을 홀로 내버려 두고 너희들만 카를렘에 왔느냐는 것이었다.

살짝 원망이 담겨있는 듯한 그의 행동에 유지한이 답했다.

“저희도 물어봤습니다만, 본인이 거부했습니다.”

“…….”

“죽어도 카를렘은 오고 싶지 않다더군요.”

“……그런가.”

가단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아들놈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

오히려 카를렘에 오지 않은 게 아들답다고 볼 수 있었다.

“이봐, 인간들.”

“예.”

“괜찮다면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되나?”

*****

유지한 일행은 가단 페이저를 따라 의자가 길게 늘어선 지역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광산에 머무는 광부들만의 휴식공간이었다.

본래 지금은 작업 시간이지만, 현장에서 작업반장에 가까운 가단이었기에 잠깐이나마 농땡이를 필 수 있었다.

“받아라.”

가단은 주전자로 컵에 마실 것을 따라주었다.

주전자 안에 미리 차를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찻잔을 받은 김시후는 신기한 얼굴로 주전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력이 느껴지네요?”

“보온 기능이 갖춰진 주전자다. 굴러다니는 고물을 주워다가 직접 만들었지.”

“손재주가 아주 좋으시군요.”

“으흠! 뭐, 별거 아니다.”

김시후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물을 주워다가 마도구를 만들어낸 가단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가단은 그 칭찬을 받고서 조금 기뻐 보이는 기색이었다.

“이건 무슨 차지?”

“데뱃이라는 잎을 말린 차다. 이 광산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의 필수품이지.”

“느하하! 일본에서 팔면 아주 잘 팔리겠어!”

와타나베는 데뱃이라는 차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민트의 향처럼 시원하면서도 정신이 무척 맑아지는 느낌을 주는 덕분이었다.

확실히 이런 걸 마시면서 일을 하면 능률이 크게 상승할 것 같았다.

“여기서 프란의 아버지를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마즈에는 크고 작은 광산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 가운데에서 프란의 아버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

윤도하의 탐색이 끝나고 시간이 된다면 찾아볼 생각도 있었지만.

처음 방문한 광산에서 그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야말로 아들의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언젠가 갑자기 마즈에서 증발하듯 사라져버린 프란 페이저였다.

인간들에게 핍박받는 자신의 상황에 늘 불만을 가지고 있던 아들이었기에.

가단은 그가 인간들에게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로써 아들이 생존했다는 게 확인된 것이었다.

“프란은 잘 지내고 있나?”

“비슷한 처지인 이종족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도 마즈와 상황이 비슷한가?”

“여기랑 비교하면 훨씬 덜 하죠.”

카를렘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종족 차별이 존재하는 한국이었다.

하지만 마즈에서 드워프가 받는 처지와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못난 아들놈 같으니라고!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직접 만날 수도 없어도 그의 생존을 확인받은 가단은 크게 안도했다.

“너희는 왜 여기에 온 거지?”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 프란의 목소리로 말했던 윤도하라는 인간을?”

“예.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 광산에 방문했던 인간들도요.”

“…….”

녹음된 프란의 목소리를 통해 목적을 전해 들었던 가단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그를 보며 유지한이 말했다.

“뭐 알고 계신 거라도?”

“뭐, 뭣? 난 아무것도 몰라!”

“…….”

수상한 말투와 허둥대는 몸짓.

아무리 봐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확실히 작업 반장쯤 되는 직급이라면 광산의 정보도 많이 알고 있겠지.

‘시후야, 보여줘라.’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김시후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사실은 제가 프란이랑 많이 친하거든요.”

“……?”

“프란의 10번째 생일에 광산에서 캐낸 보석을 선물로 주셨었죠?”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가단은 화들짝 놀랐다.

작업 도중 몰래 챙긴 마결정을 잘 다듬어서 프란이 10살이 되던 날에 선물로 줬다는 건.

오직 그와 프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기 때문이었다.

“마즈에 홀로 남은 아버지의 소식을 프란이 많이 궁금해하던데 말이죠.”

“내 소식을?”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뭐, 그래서 저희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프란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저, 전해줬으면 좋겠다! 편지라도 적어도 줄 테니까!”

“아, 그런데 그걸 공짜로 해주기에는 좀 그렇고…….”

개인적인 추억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프란과 김시후.

김시후는 프란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가단을 구슬렸다.

“지금 알고 계신 것만 말해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

“크흠! 저희가 그렇게 많은 거 바라지 않습니다.”

가단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흔들렸다.

김시후의 말에 크게 고민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때.

“……그 인간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

가단은 끝내 아들을 이용한 구슬림에 넘어오고야 말았다.

*****

멸망의 징조가 새겨진 해가 지고, 3개의 달이 떠오른 밤.

가단과의 만남 이후 광산을 떠났던 유지한 파티와 와타나베 파티는 다시 광산으로 돌아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저쪽이다!”

광산을 지키는 감시 인력을 가볍게 따돌린 뒤.

유지한은 어두컴컴한 입구로 주저 없이 몸을 던졌다.

안으로 한참을 들어와서야 마법으로 불을 켠 일행에게 보이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땅굴이었다.

——내 관할의 작업자가 그들이 사라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봤다고 해.

——하지만 이번 일이 우리의 책임이 되면 이 광산에서 일하는 드워프 전체가 위험해진다.

앞서 광산에 방문했던 2팀은 광산 안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그들이 사라지는 걸 목격한 드워프도 있었지만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일을 보고하게 되면 다름 아닌 그 현장에 있던 드워프가 처벌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즈에서 드워프에게 내리는 처벌의 상한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단지 눈앞에서 인간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었다는 게 자신의 죄가 될 수 있는 드워프의 입장.

그런 위험 부담을 안을 수는 없었기에 오늘까지 숨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따라서 가단과는 이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맺었다.

“다들 절 따라오세요.”

유지한은 머릿속으로 그렸던 광산의 지도를 떠올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가단에게 오늘 밤 광산에 남는 드워프는 없다고 확인받았기에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그의 눈앞에 진실의 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5가닥이나 나타난 실을 보며 유지한은 자리에 멈춰섰다.

“왜 그러지?”

“앞쪽에 뭐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와타나베는 앞쪽에서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속도를 줄여 앞으로 더 이동하기 시작한 직후.

20m를 더 이동하고 나서야 작은 기척을 느끼고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거리에서 이 미세한 기척을 눈치챘어?’

일본의 검사로서 자신의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큰 노력을 들였던 와타나베였다.

몸에 쏟아부은 각종 영약의 값만 100억을 훌쩍 넘길 정도.

그런데 유지한이 자신보다 먼 거리에서 상대의 기척을 느꼈다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느하하하! 나도 아직 멀었군!’

역시 세상에는 아직 그가 모르는 게 많았다.

굳이 이세계까지 가지 않아도 바로 옆 나라인 한국에 이런 뛰어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가?

“저건…….”

“드워프다.”

잠시 후 광산 안쪽에서 발견된 건 드워프였다.

이 광산의 작업반장인 가단은 오늘 밤 이곳에 작업자가 없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무려 30명의 드워프들이 한데 모여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부 때려눕힐까?”

“그만둬.”

“너무 수상해.”

이미아는 손의 관절을 우두둑 꺾으며 드워프들을 무섭게 노려봤다.

유지한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그녀를 만류했다.

“움직입니다.”

“우리도 따라갑시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유지한 일행은 거리를 두고 드워프들을 뒤쫓았다.

광산을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더 깊숙하게 이동하는 방향이었다.

“멈췄어요.”

드워프들이 멈춘 위치는 하필이면 공간 왜곡이 감지된 구역.

광산에서 나타난 진실의 실 또한 공간 왜곡의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익숙한 움직임으로 공간 왜곡에 뛰어들자 유지한도 곧장 그들을 따라 진입했다.

“다, 당신들은?!”

“크윽!”

당황한 드워프들을 빠르게 구속한 뒤.

유지한은 공간 왜곡 안의 땅바닥에 새겨진 칼자국들을 바라봤다.

‘틀림없어.’

박재경과 2팀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무수한 전투의 흔적들.

거기서도 붉은 핏자국을 발견한 유지한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연락이 닿았을 당시의 그들은 분명 이곳에 있었으리라.

유지한이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다들 조심해라!”

“……!”

드드드드드!

드드드드드드—!

와타나베의 외침과 함께 땅에서 시작된 커다란 지진이 모두의 발바닥을 타고 몸으로 퍼져나갔다.

공간 왜곡이 아니었다면 광산이 무너질 법한 강도의 지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