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3화 (243/300)

243화. 복제품 (2)

가짜 윤도하로부터 운좋게 살아남은 남자는 감사를 표했다.

아주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흐윽!”

죽어버린 자신의 일행을 보고서 눈물을 글썽이는 남자.

유지한은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가족입니까?”

“……제 친척들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저 말뿐인 인삿말.

허나 남자는 그것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들이었으니까.

턱!

그를 위로하듯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 유지한은.

잠깐이나마 윤도하라고 생각했던 인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오늘 처음 봤어요.”

“저자가 왜 당신들을 공격한 겁니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가짜 윤도하가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의 일행들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땅을 흔들어 지나가는 마차를 뒤집어버리고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나와 한명씩 죽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려친 것이나 다름 없는 사건.

심지어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우리는 레론에서 건너 온 사람들입니다.”

“아…….”

“현재 마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지배자들 간의 내란이 터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즈.

윤도하의 탈을 뒤집어쓴 인물이 등장한 것을 보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란에 관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저기, 내란이라뇨?”

“……?”

하지만 남자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유지한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마즈에서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그러면 혹시 다른 사건이라도 터졌나요?”

“딱히 그런 건 없는데요…….”

“……아무 일도 없는 겁니까?”

입을 다문 유지한은 다시금 마즈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란이 터진 것도 아니고, 달리 큰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저건 뭐야?’

손재주 없는 거미가 짠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있는 진실의 실.

카를렘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접근했던 레론에서도, 혼돈을 마주했던 카븜에서조차 저런 건 본 적이 없었다.

진실의 실이 그의 시야에 보이는 조건은 아직 확실치 않았지만.

환각처럼 특정한 마법에 씌였을 때나 실과 연결된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 없이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라는 뜻.

“이 사람 어쩔 거야?”

이미아는 쓰러진 남자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있었다.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인 그를 길바닥에 내버려두고 간다면 죽을 확률이 높았다.

“데려가야지. 그런데 시후야.”

“네.”

“저 사람 몸에 마력이 남아 있는지 조사해봐.”

샘플링이 존재하는 이상.

마력을 보유한 상대가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존재하지 않았다.

*****

유지한 파티는 기절한 가짜 윤도하를 칠라의 등에 태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살아남은 1명의 생존자와 죽은 그의 일행들은 영웅들이 대신 수습해주었다.

“어디 보자…….”

김시후는 칠라에게 업힌 가짜 윤도하의 몸을 샅샅이 조사하며 몸에 남은 마력이 있는 지 조사했다.

단 한 줌의 마력이라도 뽑아내는 것에 성공한다면 유지한이 그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멀었어?”

“잠시만요…….”

민유리는 복잡한 눈으로 김시후의 작업을 기다렸다.

지금 기절한 남자는 그녀가 카를렘에서 2번째로 마주한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대체 당신은 어떻게 움직인 거야?’

왜 그가 윤도하의 마력을 가지고 있던 것인지.

어떻게 환자인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

낯선 이세계에도 지구와 똑같은 병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는 한편.

동생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의 인간이 잠시나마 멀쩡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오! 됐다!”

“찍찍? 끝났나?”

이마에서 땀방울을 흘릴 정도로 극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던 김시후.

그는 기어코 기절한 남자의 몸에서 마력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김시후와 함께 남자를 조사하던 와타나베 파티의 마법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방금 그거,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마력 변색 증후군이 무엇인가?

소량의 마력만 몸에 닿더라도 몸이 석탄처럼 까맣게 변해버리는 병이다.

그러한 성질 때문에 그 병에 걸린 환자의 몸에는 마력이 존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마력이 몸에 남을 경우 몸 전체가 까맣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시후는 그런 환자의 몸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피부의 모공을 통로를 이용해서 전신에 흩어진 마력을 천천히 추출했어요.”

“그게 말이 쉽지…….”

“드립 커피 내리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드, 드립 커피라니.”

김시후의 작업이 고도의 마력 제어를 요구한다는 걸 알고 있는 마법사는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입으로 술술 말하는 것처럼 마법을 쓸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은 대마법사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다만 윤도하 씨의 마력이 조금 섞였어요. 이 자리에서 마력을 걸러내는 작업까지는 무리에요.”

“일단 줘 봐.”

유지한은 김시후로부터 마석을 건네받았다.

확실히 그 마석에는 윤도하의 마력과 알 수 없는 인물의 마력이 한데 섞여 있었다.

—우히!

마석을 향해 돌진하는 실프.

초록색 구체가 마석을 흡수하자 유지한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내 그의 앞에 펼쳐진 건 작은 영화 상영관.

유지한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필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꼴랑 저거뿐이야?”

—저거뿐이네?

“……이게 네 최선이니?”

—에잇! 진짜 최선을 다했다구!

타인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기억의 영화관.

그러나 이 영화관에는 단 1개의 필름만이 존재했다.

카지미르의 기억으로부터 생성되었던 영화관에서 수많은 필름이 날아다녔던 모습과는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20살은 돼 보이는 인간의 기억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는데!

“윤도하 씨의 마력이 섞였기 때문인가.”

—으으, 자존심 상해!

실프조차 의문을 감추지 못하는 결과.

유지한은 결국 하나뿐인 필름을 선택했다.

지지지지직…….

고장난 비디오처럼 자글거리는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는 장면.

유지한이 눈을 비벼도 노이즈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기 있군.’

그때 그의 눈앞에 기절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력 변색 증후군 걸린 지금과는 달리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그의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 나를 어떻게 할 셈이지?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한 무리의 인간들에게 압박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는 빗자루를 들고 발악했으나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순순히 협조한다면 평생 놀고 먹을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했을 텐데.

—죽은 뒤에 돈을 벌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정보가 샌 건가?

—제법 눈치 빠른 녀석이었군.

파바바밧!

격렬하게 저항하는 남자를 강제로 붙드는 사람들.

그때 유지한은 거슬리는 노이즈를 뚫고 눈으로 보고야 말았다.

‘왜 저놈들이 여기 있어?’

카를렘 원정대가 카를렘에 도착한 첫날 밤.

야영 도중에 달아났던 영웅들이 남자의 몸을 붙잡고 있었다.

유지한이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순간.

바닥에 넘어진 그의 머리를 손으로 쥐어짜듯 잡는 사람이 있었다.

—끄아아아악!

남자의 의식은 그 장면에서 끊겼다.

하지만 유지한에게 보여지는 기억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너는 지금부터 이전의 삶을 모두 잊고 위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남자를 기절시킨 인물은 그의 발바닥으로 자그마한 붓을 가져갔다.

붓에 떨어진 뒤의 발바닥에는 레론 왕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결과는?

—쯧! 이것도 실패작이다.

—하아…….

—괜히 아까운 시간만 버렸네.

남자를 실패작이라 평가하며 불만을 내뱉는 사람들.

그를 땅바닥에 걸레짝처럼 버려둔 사람들은 낮게 중얼거렸다.

—적합한 신체를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물건을 얻었는데 쓰질 못한다니!

—역시 혼돈을 이용한 실험을 더 진행하는 편이…….

—어제 사로잡은 놈들을 이용해보는 것도…….

알 수 없는 대화를 엿들으며 유지한의 시야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칠라의 팔에 안겨 있었다.

“……유리 씨.”

“아, 깨셨어요?”

“알로에게 접근했다던 레론의 전 왕실마법사 이름이 뭐라고 했죠?”

“데서요.”

“데서.”

유지한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가짜 윤도하를 만들어낸 인물은 바로 그놈이었다.

*****

휴대폰을 강하게 움켜쥔 양지철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이세계 진출을 위한 영웅을 모집하는데 범죄자들을 보냈다, 이말인가요?”

—…….

“심지어 갱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최악의 범죄자들을, 위장 신분으로 곱게 포장하여 한국에 던져버렸다고?”

—정말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위의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이런 씨발, 지금 나랑 장난해? 당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알아?!”

양지철은 휴대폰에 대고 불같이 화를 냈다.

각국에서 아주 빼어난 영웅들만을 선발하여 이세계로 보냈다고 생각했던 영웅부였다.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 추천했었던 영웅들은 영웅부의 집요한 추적 결과, 과거 범죄를 저질렀던 영웅 출신의 범죄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까드드득!

그 보고를 전해들은 영웅부 장관 조두진은 소리 나게 이빨을 갈았다.

퍼런 힘줄이 솟아오른 주먹과 이마를 보면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비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장관님. 진정하십시오.”

“진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

“나 조두진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감히 영웅부를 속여?”

조두진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비록 휠체어에 앉았으나 그가 내뿜는 기세만은 현역 시절의 그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비서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길버트에게 연락해.”

“헛! 정말이십니까?”

“내 연락이라고 말하면 바로 연결해줄 거야.”

비서는 조두진이 언급하는 길버트라는 이름을 듣고 경악했다.

미국의 1급 영웅이자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될 정도의 거물.

그는 과거 젊은 시절의 조두진과 아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반드시 우릴 속인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조두진은 자신의 모든 인맥을 총 동원해서라도.

영웅부를 속인 놈들에게 벌을 주고자 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유지한의 고모 한서인은 카페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랑!

카페 입구에 달려 있던 종이 울림과 동시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자리에 등장했다.

한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쪽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커피는 미리 주문해뒀어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2인석에 서로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서로간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도 잠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한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형제 분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씁쓸하게 미소 짓는 남자.

그는 유지한의 아버지와 자주 교류했다던 친구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저도 서인 씨와 같은 입장인걸요.”

한서인과 그는 똑같은 날에 형제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종된 형의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거부감이 덜했다.

“이야기에 앞서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어떤 거죠?”

“저는 사실……. 저희 형과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

실종된 형과 이복형제 관계인 남자.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처지인 그를 바라보며 한서인은 눈을 크게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