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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2화 (242/300)

242화. 복제품

“요거 상단은 저희가 보호하겠습니다.”

본래 카븜에 있던 3팀은 레론에 남아서 알로와 요거 상단을 호위하기로 했다.

덕분에 유지한 파티와 와타나베 파티는 마음 놓고 카븜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즈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하루는 잡아야 합니다.”

“느리군.”

말 4마리가 이끄는 마차에 탑승한 와타나베는 도착 예정 시간을 전해 들으며 혀를 찼다.

아무리 레론의 외곽 지역에서 머물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세력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한시가 급해 보이는 박재경의 전화로 보아, 마즈에 도착할 즈음엔 상황이 모두 끝나있을 확률이 높았다.

“속도 더 올릴게요!”

“이히히힝—!”

민유리가 고삐를 쥐고 흔들자 마차가 앞으로 더 빨리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론을 완전히 빠져나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도착했을 때.

—부르릉!

후우웅!

실프의 마력이 커다란 마차를 완전히 뒤덮으며 마차 전체 밝게 빛났다.

시원하면서도 거친 바람이 마부석에 앉은 유지한과 민유리의 피부를 스쳤다.

유지한은 보다 빨라진 말들의 발놀림을 보며 말했다.

“실프! 속도 더 올려.”

—진짜로? 더 올리면 위험한데?”

경차에서 스포츠카로 갈아탄 것처럼 큰 폭으로 늘어난 속도.

마음만 먹으면 속도를 더 높일 수도 있었지만, 실프는 유지한의 지시에 우려를 드러냈다.

속도를 더 높이는 건 마차와 말의 상태에 무리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말들은 출발하기 전에 카븜의 약초를 먹어서 괜찮아.”

“마차는 나한테 맡겨둬!”

카븜의 특제 약초를 먹여둔 힘 좋은 말.

마법으로 어떻게든 마차의 파손을 막아내겠다는 김시후의 선언까지.

마차의 지붕에서 굴러다니던 실프는 이내 다짐한 듯 말했다.

—간다, 간다! 부스터 온!

실프는 마차를 끄는 4마리의 말 위로 올라섰다.

파아앗!!

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실프의 마력.

고작 그 작은 몸체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마력이 고스란히 말에게 전이되었다.

아주 진한 갈색이었던 말의 피부는 마력의 영향을 받아 초록빛을 발산했다.

“이히힝?!”

“이히히힝!”

[헤이스트], [세계수의 축복] 등 갖은 버프 마법의 영향으로 몸이 가벼워진 말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뒤이어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으로 인해 눈을 가늘게 뜬 민유리가 한 번 더 고삐를 흔들었다.

부와아아아아앙!

땅을 밟는 말발굽 소리가 하나로 겹쳐서 들려올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

유지한은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얼굴의 피부가 뒤로 밀려나는 것을 느꼈다.

“너,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찍찍! 찍찍! 기분이 이상하다!”

낯선 속도감에 칠라와 와타나베의 파티원들은 조금 겁을 집어먹었다.

허나 마차는 그들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놀라울 만큼이나 빠르게 마즈 근처에 도달한 유지한 일행.

시간은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으나.

그들은 카를렘이라는 세계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레론에서 마즈로 넘어온 존재가 되었다.

“수고했다.”

“푸르르르…….”

“쉬익, 쉬익…….”

그들을 멀리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말들은 온몸에서 허연 증기를 뿜어냈다.

자리에 완전히 멈춰섰는데도 불구하고 녀석들의 심장은 주변에 울려 퍼질 만큼의 큰 고동 소리를 냈다.

힘들어서 달리는 걸 거부할 수 있었을 텐데도 탑승자를 위해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발산해준 것이었다.

유지한은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침을 흘리는 말에게 물을 먹였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야겠습니다.”

“그럼 이 말들은…….”

“고생했으니까 풀어주죠.”

유지한은 손수 말이 착용하고 있는 고삐 따위를 풀어주었다.

요거 상단이 처음 사들인 이후 2년 넘게 상단을 위해서 헌신했다던 녀석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 자유의 몸이 될 기회를 주고자 했다.

“찍찍! 잘 가라!”

“푸르르르!”

말들은 뜻을 이해한 것인지 마차를 두고 점점 멀어져갔다.

유지한은 녀석들이 떠난 방향과 반대에 있는 마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미 내란이 터졌을지도 몰라.’

지배자들의 분쟁으로 인해 내란의 위기에 처해있던 마즈.

박재경을 포함한 2팀은 그 내란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영웅들을 공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같은 파티에 소속된 박재경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으음?”

그런데 그때였다.

유지한은 순간 멀리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걸 들었는지 귀를 쫑긋거렸다.

“찍찍! 대장!”

칠라는 유지한을 부르며 말했다.

“비명이 들린다! 찍!”

“방향은?”

“저쪽이다!”

타다다닷!

방패를 등에 짊어진 칠라는 네 발로 앞장서서 달렸다.

유지한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녀석의 뒤를 따랐다.

달려가면 달려갈수록 칠라가 들었다던 비명은 더 선명해졌다.

“커어어억……!”

이내 비명의 근원지인 카븜의 도시 근처에 도착했을 때.

유지한은 바닥을 나뒹구는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슝!

민유리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몸 전체가 피로 물든 한 남자를 향해 화살을 쐈다.

그리고 화살이 목표에게 가까워지자 마력의 형태를 로프로 바꿔 상대를 속박하고자 했지만.

팡!

남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던 화살을 닿기도 전에 먼저 터트려버렸다.

하나의 형체를 이룬 마력을 원거리에서 터트려버릴 정도의 실력.

예사롭지 않은 장면을 본 모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

“음?”

“저건?”

유지한과 와타나베, 그리고 김시후는 남자와 거리를 두고 자리에 멈춰섰다.

거리가 조금 좁혀지고 나서야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윤도하? 정말로 윤도하인가?”

피칠갑을 한 저 남자가 윤도하와 똑 닮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

하지만 윤도하는 와타나베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꽂아 넣었다.

[싱크홀]

쩌저적!

작은 흔들림과 함께 땅바닥에 벌어지는 커다란 균열.

윤도하의 손아귀로부터 시작된 그 균열은 곧 유지한이 있는 발밑까지 이어졌다.

위험을 감지한 일행은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쿠구구구구궁!

몇 초 후 유지한 일행이 서 있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생겨난 구멍이었다.

그 구멍 속을 눈으로 살짝 들여다본 김시후는 침음을 흘렸다.

깊은 구멍 아래의 바닥과 벽에는 돌과 모래 따위로 이뤄진 뾰족한 가시들이 빽빽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러는 거지?”

와타나베는 공격을 한 상대가 자신이 기억하는 윤도하임을 확신했다.

지형을 이용하여 함정을 파고 그 함정에 적을 빠뜨려 적을 공격하는 수단.

땅 마법, 대지의 마법에 능숙한 영웅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처럼 무식한 규모로, 그것도 바로 앞에서 사용하는 건 드물었지만 말이다.

“이봐,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냐!”

“…….”

그 어떤 말을 해도 윤도하는 대답이 없었다.

평소 쾌활한 그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

바닥에서 손을 뽑는 윤도하를 보며 유지한은 큐디를 뽑아 들었다.

—저게 윤도하라고?

“윤도하 씨의 마력이 맞아.”

—하지만 무무가 없는데!

실프의 말처럼 무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윤도하라는 영웅이 가진 특유의 마력은 밟고 있는 땅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주시하던 와타나베가 말했다.

“거인이여. 조금 아플 거다.”

와타나베의 몸이 일순간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윤도하의 앞쪽.

[거합(居合)]

일본도의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와타나베가 윤도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리창을 타고 미끄러지는 빗방울처럼 부드러운 움직임.

뒤늦게 땅에서 솟아오른 흙더미가 그의 몸을 덮치려고 했지만.

와타나베는 이미 윤도하의 등 뒤로 이동한 뒤였다.

피비비빗!

윤도하의 손목과 발목에 가로로 길게 베어낸 듯한 상처가 그어졌다.

찰나의 순간, 와타나베가 검을 4번 휘두르는 것으로 손발의 힘줄을 모두 끊어버린 것이었다.

팔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다 못해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윤도하는 그만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츠캉!

검을 검집으로 회수한 와타나베는 윤도하를 내려다보았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랑 지금 장난하는 건가?”

“…….”

“내가 기억하는 윤도하라는 영웅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야.”

단 한 번의 충돌에서 아주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한 윤도하였다.

이것이 목이나 심장 따위를 노린 공격이었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봐도 좋았다.

“이렇게 화가 나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그렇기에 와타나베는 분노했다.

일본에서 마주했던 그의 기억 속 윤도하와 눈앞의 인물은 너무나도 달랐다.

“넌 대체 누구냐?”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버둥거리는 윤도하.

흡사 물 밖으로 빠져나온 금붕어와도 같은 모습에 와타나베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손발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수준이라면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텐데…….

푹!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유지한은 큐디의 검 끝으로 윤도하의 몸을 살짝 찔렀다.

피를 삼킨 큐디는 윤도하의 약점을 유지한에게 보고했다.

“……?”

그때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래 큐디를 사용하여 인간의 약점을 알아내는 순간에는 심장이나 머리라는 결과가 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 약점은 어째서인지 발바닥에 있었다.

“이건 뭐지?”

쓰러진 윤도하의 낡은 신발을 벗겨내자 발바닥에 그려진 문양이 보였다.

그게 무엇인지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이미아였다.

“레론 왕가의 문양이야.”

“왕가?”

“정보 길드에서 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게 왜 여기에…….”

레론 왕가의 문양이 어째서 윤도하의 발바닥에 있다는 말인가.

문양에서 묘한 마력이 느껴지는 탓에 호기심을 느낀 김시후는 지팡이 끝을 문양에 가져다 댔다.

“어라?”

“왜 그래?”

“형. 이거 카븜에서 만났던 혼돈이랑 느낌이 비슷한데요.”

혼돈과 아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문양.

김시후는 이내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집중하여 발바닥에 그려진 문양을 가리켰다.

찌지직!

발바닥의 피부 조직과 함께 몸에서 떨어져나오는 문양.

그러자 윤도하처럼 보였던 존재의 모습이 그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헛!”

“윤도하 씨가 아니네요?”

상대의 얼굴이 완전히 변한 뒤에야 그들은 알아챌 수 있었다.

놀랍게도 윤도하의 정체는 윤도하가 아니었다는 걸.

단지 윤도하라는 인간과 성별, 키, 몸집이 매우 비슷한 사람일 뿐.

몸에서 느껴지던 마력마저 사라져버린 남자는 진짜 윤도하와 거리가 멀었다.

“당신! 누워만 있지 말고 어서 정체를 밝혀…….”

와타나베의 파티원은 눈을 감고 기절한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어진 현상에 민유리가 곧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남자의 팔이 까맣게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이거 왜 이래?”

“잠시만요!”

민유리가 기절한 남자의 손을 낚아챘다.

그녀의 손과 맞닿은 남자의 손바닥은 불에 탄 것처럼 까맣게 물들어갔다.

반면 마력이 통하지 않는 옷으로 스친 부위는 멀쩡했다.

“마력 변색 증후군이에요.”

“어째서 이 남자에게 그 병이…….”

심각한 얼굴로 토론을 나누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유지한은 홀로 마즈 쪽을 돌아보았다.

“실프.”

—응! 보고 있어.

아주 희미하게나마 그의 눈에 보이는 진실의 실.

서로 얽히고설킨 빛나는 실들이 마즈의 하늘을 어지러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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