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희소식 (3)
여관에서도 가장 큰 방에 함께 머물던 와타나베 파티는 각자 짐을 챙겼다.
“드디어 저희도 멀리 나가는군요.”
“좋으냐?”
“좋습니다!”
다른 일행들이 레론을 빠져나가 바쁘게 활동할 때 요거 상단을 도우며 레론에서만 머물던 그들이었다.
요거 상단에게 지원받으며 레론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이세계에서 바쁘게 활동하게 된 것에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는 파티원도 있었다.
“와타나베 님. 저희도 카를렘에 온 목적이 있잖아요.”
“응? 목적?”
목적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의 와타나베.
그러자 파티원들이 황당해하며 말했다.
“……설마 잊어버리신 겁니까?”
“총리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말인가.”
와타나베는 파티원들의 외침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일본에서 카를렘 원정대에 들어가기 전 한국의 영웅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본의 영웅청, 그리고 일본의 총리와도 면담을 나눴다.
“국익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가져오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총리께서 기대하고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와타나베 님도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말씀하셨고요.”
일본에서 매우 인지도가 높은 영웅 중 하나인 와타나베.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일본에서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 이세계에서 무언가 성과를 가져와달라는 이유로 그는 이세계에 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희도 열심히 움직여서…….”
“느하하하! 제군들!”
“네?”
“자네들이 놓친 게 하나 있다.”
“놓친 거라뇨?”
와타나베는 파티원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세계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성과가 아니겠느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이번에 이세계 진출에 최종적으로 선발된 국가는 총 12개국을 넘기지 않는다. 한국에서 합격 통보를 보내온 시점에 우리는 이미 큰 성과를 거둔 셈이지.”
와타나베의 파티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구인으로서 처음으로 이세계에 발을 들인 인간들이다. 요시키! 너는 이것이 뭘 뜻하는 건지 모르겠느냐?”
“……?”
“이것은 인류의 우주 진출보다도 훨씬 더 역사적인 사건이다!”
“우, 우주 진출!”
와타나베 파티원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을 포함하여 이세계 진출에 성공한 이들은 모두 다 지구에서 태어난 인류의 역사상 처음으로 이세계에 발을 들인 인간들!
카를렘으로 출발하기 전 지구에서도 그들을 향해 아주 많은 관심을 드러냈다.
아마 지금도 계속해서 관심을 보내오고 있을 터.
“세상에 영웅이 등장하기 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던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영웅 대접을 받았지.”
“닐 앙스트롱 말입니까?”
“그래! 우리는 이미 그와 동격이다. 존재 자체로 일본의 자존심을 크게 세워주었으니 뭘 해야 한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와타나베 파티가 이세계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익에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
파티원들은 끝내 그의 말에 수긍해버렸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며 말했다.
“하지만 와타나베 님. 한국의 영웅이 활약하는 걸 보니 조바심이 듭니다.”
“유지한을 말하는 거냐?”
“맞습니다. 유지한 파티는 카븜에서도 활약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거인이다. 거인이라면 그럴 수 있지.”
“와타나베 님 또한 거인이 아닙니까?”
카븜의 왕의 대면하여 직접 대화를 나누고 외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피의 제사에 참여한 인물들.
요거 상단이 교역에서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도 다 유지한 파티 덕분이었다.
레론에서 그걸 지켜만 본 와타나베의 파티원들은 거기서 조바심을 느꼈다.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서두르지 마라. 모두 다 제 역할이 있는 법이니.”
“…….”
“우리가 레론에서 알로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유지한은 카븜으로 갈 수 없었을 거다. 그 혼자서만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는 말이지.”
“이해했습니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에 사과하듯 고개를 숙이는 와타나베의 파티원들.
와타나베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 1층을 내려다봤다.
김시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유지한이 보였다.
“저 거인은 규격 외의 인물이다. 근처에 있으면 결코 우리에게 해가 되지는 않아.”
“와타나베 님은 매번 그를 고평가하시는군요.”
“어떻게 그걸 확신하십니까?”
“한국으로 오기 전 카산드라가 말해줬다.”
“오오……!”
“카산드라 님께서…….”
미래를 예지하는 영웅 카산드라.
우연히 그녀와 인연을 맺어 종종 그녀에게 조언을 듣는 와타나베는.
이세계에 오기 전에도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
——유지한이라는 한국의 영웅이 카를렘에서 큰일을 해낼 거야.
——하지만 그 혼자서는 벅차. 당신이 옆에서 그를 도와줘.
카산드라는 예언가로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녀가 이번처럼 직접 무언가를 요구해오는 건 매우 드문 일.
그리고…….
——도와줄 거지? 그렇지?
——여보야아아~
“크흠!”
연애 경력 6달, 결혼은 4주 차인 와타나베.
카산드라라는 여인과 최근 비밀리에 결혼을 올렸지만.
조용히 결혼했다는 걸 알렸을 뿐 그는 주변에 아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돌아오면 도쿄에서 데이트하자.
그런 아내가 손키스까지 날리며 한 부탁이었으니.
남편으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
“어떻게 됐어요?”
“7번째 시도도 실패했어.”
“저런…….”
“카븜에서 내려오는 비밀 배합법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김시후의 물음에 민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움이 반, 아쉬움이 반 섞인 듯한 얼굴.
카븜의 약초를 이용한 마력 변색 증후군 치료에 실패한 탓이었다.
칠라는 조금 머뭇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찍찍. 주인아…….”
민유리는 칠라의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기대감에 불과했던 것.
단번에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게다가 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환자의 혈색이 좋아지는 것만큼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제 약초는 요거 상단에서 맡아주기로 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고생은 지한 씨가 하셨죠.”
카븜에서 얻어낸 결과들은 유지한이 왕에게 보상을 요구했던 덕분이었다.
민유리는 가장 고생했던 사람에게 저런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마즈로 가는 거죠?”
“예. 2팀을 찾으러 갑니다.”
유지한은 차원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또 다른 차원 전화기를 보유한 박재경과는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양지철에게도 그녀와의 연락을 요청했지만 연결이 계속 실패하는 모양이었다.
“별일이야 없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사위의 2인자인데.”
김시후는 여수에서 함께했던 박재경의 모습을 기억했다.
규격 외의 고유 스킬을 사용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몬스터를 홀로 썰어버렸던 그녀의 활약상!
카를렘에서 몇 차례 전투를 치러본 결과, 지구에서 넘어온 최상위 영웅들이 쉽게 당할만한 상대는 없어 보였다.
“전화기가 고장이라도 난 거겠죠.”
“그래.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거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유지한이 갖고 있던 차원 전화기에서 또다시 노이즈가 들려왔다.
“지철 씨인가?”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품속에서 꺼내는 순간.
눈치 빠른 실프는 자신의 몸에서 초록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히! 박재경이다!
“뭐?”
퍼뜩 놀란 유지한이 전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스피커에서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재경 씨!”
—……이 목소리는? 설마 지한 씨?!
박재경은 매우 놀란 목소리를 냈다.
차원 전화기를 처음 사용하는 탓인지 허둥거리는 모습이었다.
“지금 어딥니까? 왜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됐어요?”
—잠깐……!
콰아아아앙!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커다란 충돌음.
전화기가 수용할 수 있는 음량의 한계치를 넘어버린 것인지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발생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한 유지한은 표정을 굳혔다.
“재경 씨? 재경 씨!”
—……았어요.
“예?”
—마즈에서 길드장 님을 찾았어요!
“……!”
마즈에서 윤도하를 찾아냈다는 박재경의 대답.
그게 사실이라면 카를렘 원정대는 카를렘으로 넘어온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전혀 여유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그를 찾아내길 원했던 박재경이라면 매우 기쁜 상황일 텐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길드장 님이 저희를 공격하고 있어요……!
“뭐라고요?”
—2팀의 대원 중 현재까지 3명이 죽었습니다.
윤도하가 박재경을 공격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
더불어 사망자까지 발생한 모양이었다.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다.’
자세한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린 유지한이 말했다.
“일단 거기서 도망치세요. 저희가 마즈로 가겠습니다.”
—…….
“재경 씨?”
—……트릭 오어 트릿?
뚝.
마지막에 들린 목소리를 끝으로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김시후는 말했다.
“지한이 형! 설마 방금 건…….”
“재경 씨의 고유 스킬이다.”
“역시나.”
박재경은 고유 스킬인 [잭 오 랜턴]을 사용할 경우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오로지 같은 문장만을 반복적으로 내뱉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스킬이 끝난 이후의 후폭풍도 강하기 정말로 필요한 때에 사용하는 능력.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모양이에요.”
예정된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시간.
하지만 유지한은 차원 전화기를 챙기며 말했다.
“알로에게 전해.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찍찍! 준비 완료다!”
*****
바닥에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쓰러진 영웅들.
그들에게 가망이 없음을 인지한 2팀은 눈을 질끈 감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길드장 님!”
“박재경 씨를 보호해라!”
박재경이 고유 스킬을 썼다는 사실은 2팀 전체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박재경을 중심으로 짜인 2팀은 예정대로라면 [잭 오 랜턴]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은 그녀를 중심으로 진형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쿠구구구구궁—!
2팀은 도저히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출 만한 여유가 없었다.
커다란 지진이 땅 전체에 울려 퍼지고.
주변에서 불어오는 흙모래가 시야를 절반이나 가리고 있을뿐더러.
날아오는 마법에 대처하기조차 벅찼기 때문이었다.
“젠장, 전화기는 어딨어?”
박재경이 들고 있던 차원 전화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 소식을 레론에 있는 영웅들에게 전해야 할 텐데,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된 것인지 의문이었다.
“트릭 오어 트릿?”
캉! 캉! 캉! 캉!
머리에 호박을 뒤집어쓴 박재경은 윤도하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마저 들게 하는 묵직한 공격들.
장비조차 제대로 걸치지 않은 윤도하는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낼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
[어스 퀘이크]
멍한 표정의 윤도하는 대지의 마법으로 땅을 크게 뒤흔들었다.
몸에 상처를 입어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기계와도 같았다.
그의 정령인 무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뒤였다.
“왜 저희를 공격하시는 겁니까?!”
“길드장 님!!”
주사위의 길드원들은 윤도하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다만 그들 모두는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째서 길드장 님이 4명이나 있는 거야……!”
현장에 나타난 윤도하는 1명이 아니라 무려 4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이곳에 강한 영웅들이 모여있다고 한들.
최고라 평가받는 남자가 4명씩이나 덤벼오는 상황은 공포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