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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40화 (240/300)

240화. 희소식 (2)

‘성공한 건가!’

차원을 가로질러 음성을 주고받는 기술이 드디어 완성된 것일까.

탁자 위에 전화기 2대를 올려놓은 유지한은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아니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여보…….

—여보세요? 지한 씨? 와타나베 님?

그리고 3분쯤 흘렀을 때.

차원 전화기의 스피커를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거 또 안되는 거 같네요.

—역시 투입된 드리미움의 양이 너무 적었던 게…….

—아닙니다. 테스트 과정과 비교하면 양은 충분하고 남아요.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에는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사람들의 대화가 섞여 있었다.

차원 전화기를 개발한 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들려요?”

—어?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나?

“유지한입니다.”

—돼, 됐다?!

—성공했나?

—우와아아아!!

한차례 대화를 주고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마침내 차원을 뛰어넘은 소통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양지철은 그 소란의 중심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한 씨! 거기 다들 무사하신 거죠?!

“글쎄요.”

—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는데, 카를렘에 오자마자 야영 중에 갑자기 자취를 감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당황한 양지철에게 유지한은 사라져버린 영웅들의 명단을 알렸다.

양지철은 영웅들의 이름을 전해 들으며 그들의 소속을 확인했다.

영웅부에서 신분을 검증했던 만큼 그들의 인적사항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쪽에서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양지철은 차원 전화기를 연결해둔 채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주로 해외에 있는 길드가 그 대상이었다.

‘스페인어인가?’

유지한의 차원 전화기를 통해 외국어를 내뱉는 양지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처음에는 얌전하게 대화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감정이 잔뜩 실려있는 음성으로 고성을 내질렀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것이 분명했다.

5분이 흐른 뒤에 양지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담당자들도 모르겠답니다.

“예?”

—카를렘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실력도 뛰어나고 믿을 만한 영웅이라고 하더니…….

양지철을 이를 뿌득 갈았다.

영웅부는 이세계 진출에서의 공평성을 위해 다양한 국적의 영웅들을 모집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검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경력을 부풀리거나 거짓된 정보를 이용하여 영웅부에 접촉한 부류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이세계 진출은 국가 간의 협의도 이뤄진 중대한 계획입니다. 설령 외교 문제로 번지게 되더라도, 이번 건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그 문제는 맡겨두겠습니다. 이쪽은 나름대로 신경 쓸 게 많은지라.”

—현황이 어떤지 알려주세요.

“카를렘에 도착 후 우연찮게 어느 상단의 주인과 인연을 맺게 되어 함께 행동하고 있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요거 상단을 이끄는 알로입니다!”

어색하게 서 있던 알로는 양지철과 인사를 나눴다.

대화의 내용을 모두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고향 사람과 대화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카븜에서의 조사는 끝났고, 나머지 레론과 마즈에서 탐색을 진행 중입니다.

—지한 씨의 말대로라면……. 상상한 것보다 수색 속도가 빠르군요.

“운이 좋았죠. 그보다 다른 차원으로 간 사람들은 어떤가요?”

—아직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차원 전화기를 통해 연락에 성공한 건 오직 카를렘뿐.

다른 세계로 간 이들과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것보다 다들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연락의 성공으로 들뜬 양지철은 호들갑을 떨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가 확인차 카를렘에 간 영웅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는 탓에.

여관에서는 모두가 교실의 학생이 된 것마냥 대답을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

—전화기 안정화 작업이 끝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구와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진 직후.

유지한은 주변의 영웅들에게서 들뜬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세계로 도착한 뒤 다들 내심 갖고 있던 불안감이 지구와의 연락 한 번으로 제법 해소된 것이었다.

“화상통화도 가능하면 좋을 텐데요.”

“음성이라도 작동하니 만족해야죠.”

유지한은 조금 아쉬워하는 민유리를 달래며 따듯한 차를 마셨다.

그때 여관의 문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미아 님 계십니까?”

“……!”

이미아를 찾는 카를렘의 현지인이었다.

유지한은 그가 정보 길드에서 찾아온 사람인 것을 알아보았다.

의뢰인의 이름이 이미아로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찾아냈나?”

“완전히 찾아낸 건 아니고, 단서는 발견했습니다.”

“어떤 단서?”

“여기 전부 적혀있습니다. 추가적인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정보 길드의 직원은 종이를 몇 장 넘겨준 뒤 사라져버렸다.

이미아는 전달받은 종이를 눈으로 샅샅이 훑었다.

“뭐라고 적혀있어?”

“마즈에서 독특한 복장을 한 인간을 발견했다는데. 그 모습이 우리가 전달한 윤도하 씨의 행색과 비슷하대.”

어쩌면 윤도하일지도 모르는 인물이 마즈에서 포착되었다는 정보.

이미아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올백머리에 키는 180cm 정도. 살짝 거만해 보이는 얼굴과 특이한 모양의 신발.”

“이거 나일키 운동화 아니에요?”

“마지막에 신고 있던 것도 같은 브랜드랬지.”

박재경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주사위 길드는 나일키라는 신발 브랜드와 협업하여 아티팩트로 제작된 신발에 해당 브랜드의 로고를 박아넣었다.

그리고 정보 길드에서 전달해준 그림에도 신발에도 흐릿하게나마 작은 장식이 그려져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잘 맞아떨어지는 조건.

“찍찍! 우리도 마즈라는 곳으로 가는 거냐?”

“일단은 2팀을 기다린다.”

2팀이 향한 마즈에는 박재경이 있었다.

근처에 윤도하가 있다면 그녀보다 더 잘 알아볼 수는 없을 터.

“우리는 그때까지 요거 상단과 협조하며 레론을 조사하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

유지한은 레론에 모인 일행들과 함께 요거 상단을 호위하는 것과 윤도하를 찾는 일에 집중했다.

직원들을 도와 물건 나르는 걸 돕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거리를 조사하기도 했다.

“저놈들 요새 자주 보이네.”

“담당하는 상단도 엄청 커지고 있다더라.”

“쓰읍, 너무 까부는데? 조만간 한번 기강 좀 다져야겠어.”

“야, 야! 너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

“쟤네는 절대로 건드리면 안 돼.”

카븜에서의 소문이 레론까지 퍼진 탓인지.

최근 다른 상단이나 용병단은 요거 상단을 조금씩 피해 다니는 기색이었다.

섣불리 요거 상단을 건드리면 망한다라는 인식이 굳게 잡힌 것이었다.

“무려 카븜의 왕이 관심을 가진 용병이래!”

카븜의 왕을 직접 알현했을뿐더러.

외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피의 제사에 참여한 집단.

일개 용병에 불과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치고는 너무 영향력이 컸다.

그 덕분에 소문을 듣고 레론의 귀족들이 그들을 찾아오기도 했다.

“나 마지에르가 자네들을 영입하고 싶네.”

“대체 얼마면 나에게 오겠는가?”

“지금 받는 돈의 5배, 아니 10배를 주지.”

“나와 함께 레론에서 영광을 누리자!”

요거 상단이 지급하는 금액 이상을 주겠다며 영웅들을 유혹하는 권력자들.

눈에 띄는 인재들을 낚아채기 위한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앞서 그들을 고용한 요거 상단으로서는 불편할 법도 하지만.

더 큰 힘을 가진 이들은 상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접근해왔다.

“감사한 제안이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 이 거금을 거절하겠다는 건가?”

“예.”

하지만 유지한은 일행을 대표하여 모든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조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는 거절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튀어나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대체 이유가 뭐지?!”

“수행 중인 의뢰가 있으니까요.”

“거 참……. 대단한 충성심이군.”

표면적인 거절의 이유는 돼지국밥 용병단이 요거 상단과의 의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것.

진짜 이유는 그들이 한곳에 오래 얽매일 수 없어서였다.

‘어차피 우리는 떠날 사람들이다.’

영입 제안을 해오는 곳은 대부분 장기 계약을 원했지만 언젠가 떠날 사람들로서는 거기에 따라줄 수 없었다.

게다가 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도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알로와의 협상 이후 카븜에서 따낸 성과를 요거 상단과 균등하게 분배하고 있었기에 돈이 부족할 일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또 술 드십니까?”

“크으으! 술맛 좋다!”

대낮부터 입에 술병을 물고 있는 와타나베.

그와 같은 여관에 머무는 유지한은 요즘 들어 와타나베가 1급 영웅이 아니라 유쾌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쩝, 벌써 떨어졌나.”

“찍찍! 그 맛없는 술을 잘도 마시는군!”

“느하하! 친칠라 따위가 고급진 술맛을 알 리가 없지.”

“찍?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무시하는 거다!”

“찍, 찍찍찍!”

놀림당한 것에 화가 난듯 꼬리와 팔을 흔들어대는 칠라.

녀석을 보며 실실 웃고 있던 와타나베가 말했다.

“그래서……. 2팀은 어떻지?”

“아직입니다.”

마즈에서는 아직도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유지한은 차원 전화기를 통해 영웅부와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박재경과는 연락을 나누지 못했다.

“박재경은 이렇게까지 조용할 사람이 아니야.”

모이기로 약속한 날까지는 아직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들 하지만…….’

2팀과 박재경의 무소식은 결코 희소식이 될 수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유지한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직접 마즈로 가봐야겠습니다.”

“이번에는 나도 따라가마.”

*****

핼쑥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침대에 곤히 누워있는 커다란 방.

알로는 손에 들고 있던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방 전체가 병에서 흘러나온 풀내음으로 가득 찼다.

“이번이 7번째 시도였죠?”

“맞습니다.”

알로가 병에 든 회복약을 숟가락에 덜어 아버지의 입속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민유리는 그의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력 변색 증후군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고자 알로가 카븜에서 수배해온 약초로 만들어낸 회복약.

그 회복약의 배합법을 조금씩 바꿔가며 시도하는 것이 벌써 7번째였다.

“혈색은 확실히 전보다 좋아졌어요.”

“네! 분명 효능은 있었어요.”

카븜의 질 좋은 약초는 기약 없는 잠에 빠진 환자의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볼살이 패일 정도로 살이 많이 빠져버린 것만 제외하면 깨어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

민유리도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약초 더미를 들고 동생의 병원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깨어나시질 못하네요.”

체력을 회복시키는 약초의 효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카븜의 전문 약초사들에게 조언을 구해가며 다양한 배합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환자가 의식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알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을 앞에 두고 매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느끼고 있을 감정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민유리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빈 병을 정리하는 알로가 홀로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그때 그 마법사의 말을 듣는 게 좋았을지도…….”

“마법사라뇨?”

“아……. 예전에 어디선가 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고 제게 찾아왔었던 마법사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요거 상단의 향후 1년 매출을 바친다면 요거 상단주를 잠에서 깨워주겠다던 마법사.

터무니없는 조건이라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해버렸지만.

알로는 이제 와서 그 마법사를 떠올렸다.

“그 마법사가 누구죠?”

“데서. 레론의 전 왕실마법사입니다.”

“꽤 이름이 있는 마법사였나 봐요.”

“15년 전에는 인형술의 대가였다고 하죠. 그가 조종하는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레론의 기사들과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형술이요?”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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