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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38화 (238/300)

238화. 혼돈 (3)

“저쪽에 뭔가 있다.”

“네?”

“다들 따라와.”

진실의 실을 포착한 그 즉시 유지한은 실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일행들은 그 행동에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고 뒤를 따랐다.

유지한이 먼저 앞서갈 때는 매번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을 이끄는 리더에 대한 믿음이라고 봐도 좋았다.

“찍찍?”

네 발로 달리는 칠라의 콧수염이 흔들렸다.

“저쪽에서 뭐가 움직인다! 찍!”

“도망가는군.”

유지한이 지켜보는 진실의 실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고 빠르게 흔들렸다.

실의 끝단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좋지 못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가는 것일 테지.

‘어림도 없지.’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 유지한 속도를 높였다.

때마침 5구역의 지리는 낮에 전부 확인해둔 상황.

머릿속에 지도를 그대로 새겨넣은 것처럼 모든 지리를 알고 있는 유지한은.

평평한 길을 벗어나 높이가 낮은 벽을 뛰어넘었다.

“지한 씨!”

“찍찍! 나도 따라가겠다!”

“아니, 너희는 그대로 길을 따라와.”

유지한은 높이가 낮은 집들을 위로 훌쩍 뛰어넘으며 진실의 실을 쫓았다.

추격자들을 모두 떼어놓으려는 것인지 일부러 어지럽게 움직이는 상대.

놈은 도망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닌지 적을 교란하는 것에 능숙했다.

‘대충 알겠군.’

하지만 유지한은 문제지의 답지를 훔쳐보는 것처럼 가뿐하게 녀석을 쫓았다.

언뜻 보면 불규칙해 보이는 움직임 속에 숨겨진 반복적인 패턴.

유지한은 놈의 동선을 예측하여 앞서나갔다.

“헉!”

—우히히히!

그리고 쫓던 상대가 예상대로 앞에 나타났을 때.

유지한은 거적때기를 두른 상대를 생포하고자 팔을 뻗었다.

펄럭!

거적때기를 필사적으로 뿌리치는 상대는 키가 매우 작은 인간이었다.

식겁한 표정을 한 그는 즉시 손으로 쥐고 있던 무언가를 던졌다.

—지한! 조심해!

퉁!

유지한은 날아오는 물체를 즉시 검으로 쳐냈다.

반으로 갈라진 물체의 정체는 손바닥만 한 벌레.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벌레 또한 진실의 실로 상대와 엮여 있었다.

‘저건…….’

마치 혼돈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유지한은 문득 아제시아의 인간들이 몬스터를 조종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젠장!”

파바바박!

곧장 뒤로 달아나려는 상대의 발 앞에 민유리의 마력 화살이 꽂혔다.

일부러 빗겨나가게 한 공격에 놀라 땅에 주저앉는 남자.

유지한은 도망칠 방법이 모두 사라져버린 그에게 말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

“이놈인가?”

혼돈을 퇴치하러 갔다가 혼돈을 조종하는 자를 찾아낸 유지한은 그를 구속하여 왕에게 돌아왔다.

늦은 밤에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왕은 속박된 남자를 흥미로운 얼굴로 바라봤다.

“풀어줘라.”

스르륵.

민유리는 마력의 로프로 묶어둔 남자의 속박을 풀었다.

왕의 앞에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 범죄자.

하지만 그는 바닥으로 떨군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드워프로군.”

소동을 일으킨 범죄자의 정체는 드워프.

정확히는 카븜의 인간과 드워프의 혼혈이었다.

바바리안으로 추정되는 카븜의 뛰어난 신체를 물려받았지만.

그의 키는 드워프의 것을 물려받았는지 작디작았다.

“묻겠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소동은 모두 네가 벌인 게 맞나?”

“…….”

남자가 입을 다물고 있자 왕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나는 너의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내가 한 짓이 맞다.”

“왜 그랬지?”

“……죽어도 싼 놈들이었어.”

“뭐라?”

“그놈들은 모두 날 괴롭혔던 놈들이니까!”

남자는 분에 겨워 소리를 질러댔다.

그 즉시 왕의 곁에서 머물던 마법사가 녀석을 죽이려고 들었지만.

카븜의 왕은 직접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게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

“끌고 가라.”

생포된 남자는 왕의 알현실에서 강제로 끌려나갔다.

김시후는 생포된 직후부터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왕좌로 돌아간 카븜의 왕은 유지한 파티를 향해 말했다.

“수고했다.”

“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죠?”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의 고통을 받게 되겠지.”

레론보다 심할 정도로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리는 카븜.

왕의 눈에 들어온 이상 그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리라.

“자기가 혼돈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던데…….”

유지한은 생포한 남자의 능력에 관해 의문을 드러냈다.

아제시아의 고유 기술과도 같은 몬스터 부리기.

카를렘에도 그것과 비슷한 기술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돈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존재들이었더군요.”

“그렇다.”

다양한 몬스터들이 한데 합쳐진 형태로 나타나는 혼돈들.

녀석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생명체였다.

——나한테 이걸 가르쳐준 건 당신들처럼 미개척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었어.

잡혀간 남자는 혼돈을 만들고 다루는 방법을 미개척 대륙에서 온 사람들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즉,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해온 것이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카를렘에 혼돈을 퍼트린 건가.’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인간이 카를렘에서 혼돈을 퍼트리는 행위.

가능성은 적지만 얼마 전 야영 도중에 달아난 영웅들이 벌인 짓일 수도 있었다.

“최근 몇 달간 너희처럼 다른 차원에서 카를렘으로 넘어온 인간들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여기 마법사가 개발한 탐지 마법이다. 통로가 열리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지.”

“능력자셨군요.”

“그렇다. 나는 대단하다.”

왕의 전속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들이 말하는 ‘통로’라는 것은 차원의 경계.

그렇다면 저 마법사는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혼자서 차원 마법에 접근한 셈이었다.

‘어쩌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재빨리 머리를 굴린 김시후가 말했다.

“선배님!”

“서, 선배님이라니?”

“나중에 가르침을 구하고 싶습니다!”

“내게?”

“위대하신 선배님께서 부족한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크흠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말로 살짝 띄워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기색을 드러내는 카븜의 마법사.

그런 모습을 보며 유지한은 1년 전 이들이 어째서 러시아인들에게 껌뻑 속아 넘어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약속한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요거 상단에 소속된 자들은 앞으로 카븜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다른 상단에게 허락하지 않은 물건들도 제공하겠다.”

“음.”

그동안의 무례를 보상하듯 화끈하게 선언하는 카븜의 왕.

원하는 것들을 얻게 된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타깝지만 윤도하라는 자는 카븜 안에는 없는 모양이더군.”

“그렇습니까…….”

수색에 뛰어난 인원을 풀어서 카븜을 조사했음에도 윤도하는 발견되지 않았다.

왕의 힘으로도 그를 찾지 못했다면 적어도 카븜 안에는 없는 것이 확실해졌다.

‘남은 건 레론과 마즈뿐이다.’

윤도하가 있을 법한 후보지는 요거 상단과 정보 길드를 통해 조사하고 있는 레론과 박재경을 필두로 2팀이 향한 마즈.

레론에는 3팀과 함께 돌아가면 될 테고, 마즈는 박재경이 가져올 소식을 기다리면 되리라.

“아, 혹시나 저희가 사라진 뒤에도 요거 상단과의 약속은 지켜주십시오.”

“흐음, 사라진 다라…….”

의미심장한 유지한의 발언에 카븜의 왕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상대의 의중을 뚫어보는 시선이었다.

“카를렘을 떠날 모양이로군?”

“저희의 세계가 아니니까요. 평생 머물지는 않을 겁니다.”

“……역시 그놈들과는 다르구나.”

카븜의 왕은 탄식했다.

1년 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에게 모든 걸 기대려고 했던 지구인들.

그놈들과 유지한 일행은 순수한 능력부터 카를렘에 방문한 의도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같은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이라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 것이었다.

“요거 상단과 함께하는 이유는 돈 때문인가?”

“돈도 이유 중에 하나죠.”

“너희가 원한다면 굳이 상단에 기댈 필요가 없을 정도의 돈을 주겠다.”

“……?”

카븜의 왕은 선뜻 돈을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그에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에게 왜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거죠?”

“그저 내 변덕이다.”

카를렘의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3팀을 구속했던 일.

더불어 카븜의 전사들이 직접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던 유지한 파티에게.

카븜의 왕은 그만큼의 보상을 제공하려고 했다.

“혹여 달리 원하는 게 있다면 말만 해라.”

“약초!”

“응?”

“카븜에 존재하는 모든 약초를 제게 주세요.”

민유리는 손을 번쩍 들며 카븜의 약초를 요청했다.

마력 변색 증후군의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전부 챙겨가려는 셈이었다.

“허락한다. 더불어 카븜에서 내려오는 약초의 배합도 알려주마.”

“감사합니다!”

“난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데.”

“내일 궁전의 요리사에게 푸짐한 만찬을 준비하라고 하마.”

“찍찍! 기대하고 있겠다!”

이미아의 식사 요청까지 거뜬하게 받아주는 카븜의 왕.

그때 김시후가 말했다.

“저희가 원한다면 돈을 주시겠다고 했잖아요.”

“물론이다.”

“그 돈, 카븜에 거주하는 이종족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뭐라고?”

대답이 의외였는지 카븜의 왕은 눈을 크게 떴다.

“구역을 가로지르는 동안 이종족들이 머무는 장소를 봤습니다.”

“그런데?”

“다른 장소와 비교하면 너무 부족한 게 많더라고요.”

카븜에 존재하는 이종족들은 대부분 허름한 판자촌이나 다름없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위생이 더러운 것은 당연하고 카븜에서 필수로 여겨지는 하루 4끼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빈곤한 생활.

단지 종족만으로 그런 취급을 받는 건 불공평하다고, 김시후는 생각했다.

“의외로군.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제가 이종족이니까요.”

김시후는 모자를 벗어 머리칼과 귀를 드러냈다.

그에게서 엘프의 증거를 발견한 카븜의 왕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독특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더니……. 엘프의 핏줄이었나.”

“오늘 데려온 혼혈 드워프도 종족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더군요. 만약 사회에 차별이 없었다면 그는 카븜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힘이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차별이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카븜의 절대자인 당신조차 불가능한 일인가요?”

“……지금 나를 도발하는 거냐?”

“단지 질문일뿐입니다.”

“참 난감한 말을 하는군.”

카븜의 왕은 손으로 턱을 괬다.

한 세력의 절대자조차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는 건 확답을 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럴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기도 했다.

이종족은 그가 평소 신경 쓰는 범위 외적인 존재였으니까.

“혹시 너무 어려운 요청이었다면…….”

“아니. 한 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네 바람대로 이종족들에게도 신경을 써보마.”

카븜의 왕은 김시후에게 이종족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이것은 그가 카븜의 주인으로서 처음으로 이종족에게 관심을 보인 순간이자.

카븜에서 살아가는 이종족들의 미래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

“카븜의 실험체와 연락이 끊겼다.”

손바닥을 귓가에 바짝 대고 있던 남자가 손을 내렸다.

천장에 작은 조명 하나만이 달린 지하실.

딱딱한 벽에 등을 기댄 남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왕이 직접 사람을 보낸 모양이더군.”

“대체 어떤 녀석이……!”

“마지막에 들려온 음성에서는 유지한이라는 놈이 있었다.”

카를렘의 작명 방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름.

그 이름에 반응한 건 대화 중인 이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지한?”

“그놈들이 카븜에 있다고?””

“뭐야. 너희가 아는 사람인가?”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다면 말해봐.”

상대를 알고 있는 듯한 낌새에 여기저기서 질문이 날아왔다.

서로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 이들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알다마다.”

“얼마 전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넘어온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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