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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37화 (237/300)

237화. 혼돈 (2)

카븜의 왕은 혼돈의 머리칼을 잡고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제사의 마지막 제물은 이놈으로 하겠다!”

“우와아아아아!!”

“마지막 제물이다!”

지이이잉—

제사를 구경하던 관객들의 함성으로 경기장 전체가 떨려왔다.

흡사 월드컵 분위기를 떠올리게끔 하는 분위기였다.

“귀 아파요.”

“찍찍? 벌써 끝난 건가?”

—그런가 봐.

“별것도 아니었군! 찍!”

경기장 중앙에서 귀를 후비던 유지한은 일행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그러자 대기실에 있던 카븜의 전사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너희는 대단한 전사들이로군.”

“정말 고맙다.”

“……?”

단단하게 주먹을 쥔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이는 카븜의 전사들.

카븜의 전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유지한은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감사를 전하는 이유를 알아챘다.

‘우리의 다음 순서였구나.’

그들은 유지한 파티의 다음 차례에 경기장에 입장할 예정이던 전사들.

왕의 변덕으로 제사가 일찍 마무리된 덕분에 위험한 전투를 치르지 않고 넘어가게 되었기에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제사에 참여하는 건 카븜에서 아주 명예로운 일이라 알려졌지만.

싸우는 장본인들로서는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투타는 유지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들 일행이 혼돈 따위에게 패배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제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 기대를 뛰어넘는 정도.

“다만 우리의 왕을 너무 도발하지는 마라. 화가 난 왕보다 무서운 인간은 카를렘에 존재하지 않는다.”

“활짝 웃던데.”

“너희의 무례를 웃음으로 받아넘긴다는 건 그만큼 왕이 너그럽다는 것이지! 잔뜩 겉멋만 든 레론과 마즈 놈들과는 다르다.”

입이 닳도록 카븜의 왕을 칭찬하는 투타.

카븜의 전사들이 자신들의 주인에 대해 얼마나 큰 충성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대화였다.

*****

광기의 제사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마무리되고.

경기장으로 모여들었던 구경꾼들은 각자 자기의 본래 위치로 돌아갔다.

달이 떠오르는 제삿날에는 주요 이벤트인 경기 외에도 각자의 집에서 카븜만의 전통 의식을 치르는 등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너희의 능력은 잘 봤다.”

카븜의 왕은 유지한 파티를 다시금 자신의 궁전으로 불러들였다.

첫 만남에서의 대화와는 다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음성과 태도.

자기 뜻에 따라 힘을 증명해준 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사 이후에 사람들이 달라붙지 않았나?”

“여기저기서 달라붙던데요.”

“피곤해.”

“큭큭! 그럴 만도 하지.”

피곤하다는 이미아의 대답에 카븜의 왕은 소리 내어 웃었다.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들이었다.

자신의 내면과 외면의 모습이 거의 일치하는 카븜의 시민들은 그들에게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카븜에서 외부인을 향한 것 치고는 다소 이례적일 정도로 큰 주목도였다.

“갇혀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죠?”

“이미 감옥에서 풀려났다. 궁전에서 아주 극진하게 대접하는 중이지. 원한다면 만나봐도 좋다.”

수감되었던 3팀은 왕이 제사를 끝낸 즉시 감옥에서 풀려났다.

모두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유지한은 짧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오해가 풀렸다면 슬슬…….”

“잠깐만 기다려라.”

본격적으로 카븜에서 요거 상단의 일을 처리하려던 찰나.

카븜의 왕은 유지한의 말을 중간을 끊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해보겠다.”

“……예?”

“최근 밤마다 카븜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혼돈이 있다. 그놈들을 너희가 처치해라.”

왕은 뜬금없이 혼돈을 처치해달라는 부탁을 건넸다.

근래 카븜에 모습을 드러낸 혼돈이었는데, 도망가는 능력과 모습을 숨기는 능력이 탁월한 탓에 쉽게 잡지 못해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깐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당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요?”

“놈들의 교활한 성격과 빠른 몸놀림은 카븜의 전사들과 상성이 나빠. 하지만 제사에서 보여준 너희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지.”

“우리가 언제까지 당신의 장단에 맞춰줘야 합니까?”

상대가 아무리 카븜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왕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부하가 아니었다.

카븜의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한들 그들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왕으로서 약속하마.”

“말뿐인 약속은 믿기가 힘들군요.”

“흐음……. 요거 상단에 고용된 너희의 목적이 카븜과 거래하기 위해서였던가.”

“예.”

“이번 일만 처리해주면 내가 그 거래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마.”

“……!”

요거 상단과의 거래를 대놓고 밀어주겠다는 카븜의 왕.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 세력의 지배하는 자가 단일 상단을 지지하겠다는 건.

그리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외부 반출을 철저하게 금지했던 품목들도 요거 상단에게 제공하겠다. 카븜의 축복을 받고 자라난 작물들, 오직 카븜에서만 생산되는 고유의 약초들까지. 외부인들은 구경만 해왔던 물건들을 가져가도 좋아.”

“파격적이군요.”

“내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는 베풀어야지.”

유지한은 민유리를 곁눈질했다.

카븜에는 외부 반출이 철저하게 금지된 약초가 존재한다.

본래 요거 상단 또한 사들이는 게 허가되지 않았던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왕의 허락만 있다면 그 어떤 제약이라도 무시할 수 있을 터.

“또한, 나는 카븜 전역에 내 부하들을 풀어놓았다. 어딘가에서 윤도하라는 인간과 관련된 정보를 발견하거든 너희에게 알려주마.”

요거 상단에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윤도하의 소식까지 전해주겠다는 카븜의 왕.

하나같이 필요한 조력만을 제공하겠다는 말에.

유지한으로서는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

카븜에서 최근 시민들을 습격하는 혼돈은 카븜의 구역을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있었다.

하루는 1구역에 나타났다면 그다음은 2구역으로 옮겨가는 방식이었다.

으스스한 밤에 나타나 어린아이들을 공격해온다는 녀석.

놈을 확보하기 위해 5구역으로 이동한 유지한 파티는 밤하늘에 3개의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어? 달이 그대로네요.”

김시후는 손으로 밤하늘에 뜬 붉은 달을 가리켰다.

카븜에서 제사가 치러진 건 정확히 보름달이 되었던 날이었음에도.

붉은 달은 여전히 완전한 보름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원래 진짜 보름달은 그다음 날에 뜬다고 하잖아.”

“하지만 저 달은 어제의 달과 비교해도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민유리는 김시후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구와 다르게 하늘에 떠 있는 3개의 달.

완전한 보름달로 차오른 건 붉은 달뿐으로, 파란 달과 노란 달은 절반이 넘게 차오른 상태였다.

—진짜야. 저 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실프 또한 붉은 달이 어제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시간이 흘러도 보름달의 형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었다.

‘3개의 달이 차오르는 때가 있다고 했었지.’

하늘보호소의 프란은 3개의 달이 모두 차오르는 날 카를렘 전 지역에 축제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유지한은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아보았다.

“그나저나 저게 정말로 먹힐까요?”

“두고 보자고.”

5구역의 건물 위에서 은신 중인 유지한 파티는 밤거리를 홀로 배회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지켜봤다.

그것은 혼돈을 사냥하기 위해 그들이 준비해둔 미끼였다.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유지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지금 노리는 혼돈 때문에 카븜의 밤거리에는 아이들의 외출이 금지당한 상황이었다.

약자만 노린다는 혼돈이 어른 없이 홀로 움직이는 어린아이를 놓칠 리가 없을 터.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사사삭!

커다랗고도 검은 인영이 폭이 좁은 길가를 빠르게 좌우로 가로질렀다.

가만히 길을 주시하고 있던 민유리가 말했다.

“놈인 것 같아요.”

“찍찍. 나왔군.”

유지한은 노리던 녀석이 미끼를 물었음을 알아보았다.

사삭! 사사사삭!

작은 소리만을 남긴 채 미끼로 둔 여자아이와 점점 거리를 좁혀가는 녀석.

아이가 커다란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유지한 파티는 혼돈의 행동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혼돈이 아이에게 도달했을 때.

파박!

김시후의 환각으로 몸을 바꿔둔 여자아이.

이미아가 몸을 뒤로 돌며 혼돈의 몸을 낚아챘다.

“걸렸네.”

“찍……?!”

그녀에게 붙잡힌 건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다만 얼굴에는 쥐의 머리가 달려있고 엉덩이로 추측되는 부위에 기다란 꼬리가 달려있을 뿐.

명백한 혼돈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칠라. 네 친구들이다.”

“찍찍!! 비교할 걸 비교해라!”

파아앗!

순식간에 마력의 불빛이 어두운 밤거리를 밝히며 숨어있던 유지한 파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이미아가 붙잡은 개체와 함께 행동하던 혼돈들.

“찍!”

“찍, 찍찍!”

“찍찍! 저놈들 울음소리가 매우 불쾌하다!”

부웅!

어떤 이유에서인지 크게 분노한 칠라가 앞으로 방패를 던졌다.

[쉴드 부메랑]

원형의 방패가 빠르게 회전하며 혼돈을 향해 날았다.

퍽!

방패는 가장 큰 울음소리를 냈던 혼돈의 머리에 직격했다.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녀석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이.

“소리 내는 놈은 먼저 죽인다! 찍!”

칠라는 자기 쪽으로 다시 날아오는 방패를 가볍게 회수했다.

방패에 마력을 실어 상대를 공격하는 스킬.

마력을 깨우친 친칠라의 능력이었다.

크게 당황한 혼돈들은 징그러운 가시돌기가 달린 다리를 바쁘게 움직였다.

서둘러 이곳에서 달아나려는 것이었다.

[샌드 월]

파스스스스!

단단한 흙으로 구성된 카븜의 땅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모래의 벽.

김시후는 혼돈들의 모든 탈출로를 마법으로 봉쇄해버렸다.

“저기 1마리 도망쳤어요!”

“내가 보고 있어.”

퉁!

민유리가 활시위를 놓자 그녀의 마력 화살이 도망가는 혼돈을 향해 날아갔다.

녀석이 속도는 상당히 빨랐으나 화살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푸화아아악!

날아가는 화살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추진력이 더해졌다.

뒤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

민유리가 보유한 아티팩트에 부여된 스킬인 [급가속]이었다.

[형태 변화 - 포크]

푸욱!

혼돈에게 도달하자마자 포크의 형태로 변화한 마력은 혼돈의 몸을 뚫고 땅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녀석은 피를 흘리며 버둥거렸으나 단단하게 고정된 포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아!”

콰지직!

혼돈의 몸을 손으로 찢어버린 이미아는 유지한과 함께 달렸다.

이후에 이어진 것은 단순한 학살이었다.

날렵한 움직임에 비교해 생각보다 몸이 물렁물렁했던 녀석들은 가벼운 공격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왜 상성이 나쁘다고 한 것인지는 알겠군.’

어두운 밤에 습격과 도망을 위주로 행동하는 혼돈들.

순수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카븜의 전사들이 상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만했다.

—지한!

“응?”

그때 실프가 곧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혼돈에게 날아갔다.

—꼬리!

“……!”

실프의 외침을 들은 즉시 유지한은 혼돈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내 혼돈의 꼬리 끝에서 하얗게 빛나는 실 같은 걸 발견한 유지한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해남에서 함께했던 김현태가 환각에 빠져드는 순간마다 그의 머리에서 생겨났던 물체.

‘진실의 실!’

니로치가 진실의 실이라 이름 지은 것.

패시브 스킬로서의 샘플링이 유지한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던 현상이었다.

‘저기에 뭔가 있다.’

강력한 최면과 환각을 빠져나가는 탈출구이든.

특별한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이든 뭐든 간에.

저 신비로운 실의 끝에는 분명 무언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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