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카를렘 (4)
카를렘 원정대가 메스퍼의 수장인 메스를 사로잡기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서로의 전력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푸, 푸흐…….”
메스는 얼굴이 성한 곳이 하나 없을 만큼 얻어맞았다.
잔뜩 부어오른 볼과 입술은 그가 몇 분간 받아낸 공격의 흔적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통증보다 더 무서운 건 영웅들의 편안한 눈빛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들이…….’
심지어 메스는 그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무기를 뽑지 않고 맨손으로 달려든 놈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놈들은 차원이 달라.’
메스는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와타나베를 포함한 영웅들을 바라봤다.
제대로 대응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영웅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가장 무섭게 바라보는 건 유지한이었다.
‘저놈은 어딜 때려야 가장 아픈지 아는 놈이다!’
인체의 수많은 부위 중에서도 가장 아픈 곳만을 정확히 노려오는 적.
메스가 유지한의 직업을 고문 기술자로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솜씨였다.
은퇴한 용병으로서 생존에 특화된 그의 본능은.
눈앞의 이들과 맞서 싸우는 결정이 매우 어리석었다고 알려주었다.
“형님!”
“지금 구해드리겠습니다!”
“전부 다 닥치고 있어!”
“……?!”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덤벼들려는 부하들에게는 버럭 소리쳤다.
고작 약탈 몇 번에 성공했다고 다들 기고만장해져서는!
이 자리에서 죽기 싫으면 1초라도 빨리 넙죽 엎드리는 게 최선이었다.
“항복입니다.”
양손을 들며 항복을 선언하는 메스.
죽는 것보다는 감옥에 갇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유지한은 싸움을 계속 이어가려던 주변의 영웅들을 진정시켰다.
이내 메스퍼의 산적들이 두꺼운 줄로 구속되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어, 엄청나다…….”
요거 상단의 알로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산적들을 바라보며 입을 쩍하고 벌렸다.
현상금을 위해서 산적의 본거지로 쳐들어가겠다고 말할 때만 하더라도 미친 소리처럼 들렸거늘!
이들에게는 충분히 그것을 이루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이놈들을 부탁합니다.”
“도망치려고 하면요?”
“죽여도 좋습니다.”
“찍찍! 어디 도망쳐봐라, 인간들아!”
민유리와 칠라에게 산적들의 감시를 맡긴 유지한은 알로에게 다가갔다.
“저놈들 정도면 현상금은 어느 정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메스퍼라면 최근 큰 문제아로 떠오른 놈들인 만큼 10만 코인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현상금을 붙인 상단이 꽤 많거든요.”
“10만 코인으로는 뭘 할 수 있죠?”
“원하시는 물건에 따라 다릅니다만, 보통 이런 말 1마리가 3천 코인쯤 합니다.”
카를렘에서는 코인이라는 화폐를 사용한다.
튼튼해보이는 말 1마리의 가격이 대략 3천 코인.
그렇다면 10만 코인은 말 30마리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다.
‘짭짤하네.’
당분간 카를렘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기에.
유지한은 몇 분 만에 벌어들인 수입을 듣고서 만족했다.
*****
“예정대로 라쿠아이드로 가시죠. 거기서 현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끝내 동행을 하게 된 그들이 라쿠아이드에 도착한 건 해가 모두 저물었을 때였다.
3개의 달 아래에서 라쿠아이드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들은.
늦은 밤에 된통 얻어맞은 산적들을 데려온 이들을 보며 크게 놀랐다.
“실례지만 어디의 누구십니까?”
“확실한 신분이 없으면 도시로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정식으로 등록된 용병단도 아니고 아무런 소속도 없는 영웅들.
차림새까지 독특한 그들을 경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알로가 앞으로 나섰다.
“요거 상단에서 이분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걸 보증하겠습니다.”
“흐음…….”
“흠흠! 이건 저희의 작은 성의입니다.”
짤랑!
코인이 든 주머니를 경비병의 손에 직접 올려주는 알로.
경비병은 헛기침을 하며 돈주머니를 품속에 챙겼다.
그것이 뇌물임을 알아본 와타나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군.”
“저희야말로 큰 도움을 받았죠.”
카를렘 원정대가 요거 상단과 함께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시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차림새와 더불어 상단의 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단단하게 무장을 갖췄다는 것도 한몫했다.
“용병들인가?”
“엄마. 저 사람들은 뭐야?”
“이리 와! 함부로 쳐다보면 안 돼.”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을 손바닥을 가리는 부모들.
이방인들이 어떤 성격일지 알 수 없으니 부쩍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덕분인지 관심이 그렇게까지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는 법이었으니까.
“이 녀석! 드디어 잡혔구나!”
“젠장할…….”
사로잡은 산적들을 경비대로 넘긴 뒤에는 11만 코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새 현상금이 조금 더 올랐던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널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이놈아!”
은퇴한 용병인 메스를 알아본 사람 덕분에 그들이 산적임을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빠르게 돈을 챙긴 뒤에는 인원에 맞게 숙소를 잡았다.
벌어들인 코인 덕분에 더럽지 않고 깨끗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다들 오셨습니까?”
“제가 마지막입니다.”
간단하게 짐을 정리한 일행은 요거 상단의 사무실에 모였다.
알로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예의를 갖추어 자신을 소개했다.
“다시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요거 상단의 상단주인 알로입니다.”
요거 상단의 대표, 상단주 알로.
그는 본래 상단주였던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진 뒤 젊은 나이에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이었다.
“저는 여러분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어…….”
잠깐 대답을 망설이던 유지한은 박재경을 힐끔거렸다.
카를렘 원정대가 카를렘에서 사용할 호칭은 그녀와 상의 후 정해둔 게 있긴 했다.
다만 어감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돼지국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돼지국밥이요?”
“예.”
윤도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돼지국밥.
돼지와 국밥이라는 단어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카를렘에서.
그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접한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었다.
“돼지국밥, 돼지국밥, 돼지국밥……. 그거 참 멋진 이름이군요!”
“…….”
“발음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그렇기에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위엄이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크흠흠.”
돼지국밥이라는 호칭을 두고 아주 멋지다고 칭찬하는 알로.
괜스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유지한이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영웅들도 민망했는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돼지국밥은 당분간 카를렘에서 활동하실 거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실종된 사람을 찾고 있어서요.”
“그렇다면 저희와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요거 상단이랑요?”
알로는 영웅들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유지한은 자세한 사정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긴장했는지 길게 호흡을 한 알로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현재 레론과 마즈의 일부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13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이뤄낸 결과물이죠. 하지만 저는 조만간 이 상단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상단으로 키울 계획입니다.”
카를렘의 3대 세력 중 레론을 위주로 활동하는 요거 상단.
자금을 축적하며 차금차금 사업을 키워왔던 요거 상단은 최근 큰 도전을 앞두고 있었다.
바로 레론과 마즈, 카븜을 전부 아우르는 상단으로 진화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많은 중소 상단의 목표이기도 했다.
“밑준비는 이미 끝내두었습니다. 각 지역에서는 저희 상단의 사람들이 물건을 사들이고 있고, 오늘 라쿠아이드에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이었죠. 다만……. 아직 해결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뭐죠?”
“능력 있는 용병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약 1년 전 카를렘에서 갑자기 발생했던 각 세력 간의 다툼.
그때 용병 업계에 있던 능력 있는 용병들은 죄다 특정 세력의 휘하로 들어가는 등 깡그리 고용되어 씨가 말라버렸다.
돈을 주고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었다.
“일정한 기간 동안 고용되어 종사하는 용병의 특성상, 아마 1~2달내로 시장에 인력이 풀려나올 겁니다.”
이전에 발생했던 다툼은 세간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과도하게 고용되었던 용병들이 자유롭게 풀리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상단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최적의 경로로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 위험 감수가 필수적이기에.
요거 상단으로서는 용병들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여러분이 나타나신 겁니다.”
“용병 대신 우리를 고용하시겠다는 거로군.”
“맞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카를렘에서 사람을 찾아내는데는 꽤 자신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상인으로서 두루두루 발이 넓은 편인 알로.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이라면 그는 꽤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썩 괜찮은 제안 같구나.”
와타나베는 알로의 제안에 찬성했다.
카를렘 원정대의 최우선 목표는 윤도하를 찾아내는 것.
그걸 위해서라도 요거 상단처럼 능력 있는 집단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으리라.
“어쩔 거냐?”
“또 저한테 물어보시는 겁니까?”
“네가 아니면 누구겠어.”
또다시 결정권을 쥐게 된 건 유지한이었다.
알로의 시선도 와타나베에서 유지한으로 옮겨갔다.
그에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고용 기간은요?”
“2달로 제안하겠습니다.”
“으음.”
“상단주로서 여러분의 신분을 보장해드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자유롭게 활동하셔도 됩니다.”
상단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활동하되 최대한 자유 활동을 보장한다는 조건.
어차피 몇 달간은 카를렘에서 머물 예정이었기에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분간 잘 부탁합니다.”
*****
요거 상단의 계획에 따라 카를렘 원정대는 인원을 나눴다.
레론에 남을 1팀, 마즈로 향할 2팀, 카븜으로 향하는 3팀까지 총 3개의 그룹이었다.
그중에서 1팀에 들어간 건 유지한 파티와 와타나베 파티뿐.
폐쇄성이 강한 카븜에는 가장 많은 인력이 투입되었다.
사실상 가장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었으나…….
‘하나도 걱정이 안 되네.’
와타나베의 존재 덕분인지 유지한은 별걱정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1달 뒤에 다시 레론에 모이기로 약속한 팀들은 이내 2일에 걸쳐 뿔뿔이 흩어졌다.
각 팀에 차원 전화기가 1개씩 주어졌으니 지구에서 전화 기능이 완성된다면 어떻게든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을 터였다.
“형. 오늘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알로 씨를 따라가야지.”
상단주 알로는 일처리를 위해 라쿠아이드에 남았다.
1팀은 그가 레론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안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유지한은 여관으로 들어오는 이미아를 보며 말했다.
“정보 길드에는 다녀왔어?”
“응. 윤도하 씨 사진 맡기고 왔어.”
카를렘에도 길드와 비슷한 시스템이 존재했다.
지구와 다른 점이라면 대부분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것.
정보 길드는 그중에서도 돈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길드였다.
“요거 상단의 서신을 보여주니까 태도가 공손해지더라.”
정보 길드는 개인이 아닌 집단과의 거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
요거 상단과 함께하게 된 그들로서는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
“찍찍! 여기 음식은 간이 너무 싱겁다!”
“아직도 먹고 있어?”
“밥을 남기면 요리사한테 미안하다! 찍!”
식탁에서 밥을 흡입하던 칠라는 불만을 토했다.
이 여관의 음식이 간이 너무 싱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녀석의 몸집 때문에 입구가 가장 넓은 여관으로 잡은 것이라 요리 솜씨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지한 씨! 지한 씨!”
그때 밖에 있던 민유리가 갑자기 유지한의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와 얼굴이었다.
“왜 그래요?”
“병환으로 쓰러졌다는 알로 씨의 아버지요!”
“예?”
“아무래도 마력 변색 증후군 같아요!”
“……!”
알로의 아버지가 민유리의 동생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에.
유지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