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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28화 (228/300)

228화. 카를렘 (3)

검을 뽑지 않기로 한 와타나베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남자에게 말했다.

“거기 너.”

“……?”

“하늘을 날아본 적이 있나?”

“뭐라고?”

슈팟!

순간적으로 상대의 시야에서 흐릿해진 와타나베 요스케의 오른팔.

유지한의 눈에는 그가 주먹을 뒤에서 앞으로 뻗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파아아아앙—!

그렇게 직선으로 올곧게 뻗어진 주먹으로 강력한 파동이 발생하더니.

와타나베에게 대답한 남자의 몸이 뒤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커어어억……!”

단지 소량의 마력을 주먹으로 밀어냈을 뿐인 주먹.

그것만으로 사람의 몸을 날려버릴 정도의 공격이 완성되었다.

“느하하하! 좋은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남자의 동료들은 입을 쩍하고 벌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다른 영웅들도 어깨를 빙빙 돌리거나 목의 관절을 소리 나게 꺾었다.

“지루했는데 마침 잘됐네.”

“딱 죽기 직전까지는 패도 되겠지.”

“야! 저건 내가 찜했다?”

퍽! 퍽! 퍽! 퍽!

황량한 황무지의 한가운데.

영웅들이 지루함을 달래는 소리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찍찍! 다들 심심했나 보군.”

칠라는 일방적인 폭력을 구경하며 손으로 턱을 긁어댔다.

*****

“손 똑바로 못 들어?”

“콱!”

“히이익! 죄송합니다!”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산적들은 김시후의 위협을 듣고 양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쌍코피가 터져 나오고, 앞니가 부러진 그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샌드백보다 손맛이 좋네.”

“생각보다 몸이 튼튼해.”

“한 대만 더 때리면 안 되나?”

반면 카를렘 원정대는 제법 손맛을 본 듯 만족한 얼굴이었다.

근육질인 산적들은 맨손으로 때리기에 아주 적합한 이들이었다.

박재경은 갖고 있던 윤도하의 사진들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렇게 생긴 사람 본 적 있어?”

“……없습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잘 생각해보렴.”

“어,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살기 어린 협박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산적들.

몇 번을 물어봐도 같은 반응이 돌아오자 박재경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 님께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하시는 것 같군요.”

윤도하라는 인물의 존재감은 그가 어떤 세계를 가게 되더라도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던 산적들 따위는 혼자서도 해치울 수 있는 수준.

그런 그의 존재가 외부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아직 그가 대외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어딘가에 조용히 계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

유지한의 물음에 박재경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카를렘을 기준으로 봤을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시 하나를 뒤엎고도 남을 분입니다.”

그 호기심 많고 장난기 가득한 윤도하라면.

카를렘에 도착해서도 어떤 일을 벌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와 오래 함께했던 동료로서의 확신이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산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영웅들에게 크게 감사를 표했다.

유지한은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저희는 요거 상단입니다.”

“요거 상단?”

요거라는 상단에서 마차로 물건을 이송 중이었다는 사람들.

그들은 하필이면 메스퍼라는 산적 집단에게 걸려 물건을 도둑맞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카를렘 원정대를 그 상황을 마주한 것이었다.

“혹시 지도 있습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유지한은 황급히 한 남자가 꺼낸 지도를 확인했다.

프란이 대략적으로 그려줬던 지도와 얼추 비슷하게 생긴 카를렘의 지도였다.

“현재 이곳의 위치가 어디죠?”

“지금쯤이면 이 위에 있을 겁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지도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이제부터 제대로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된 유지한은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왜 그래?

“아, 아닙니다!”

—정령 처음 봐?

“처, 처음 봅니다만…….”

남자가 조금 무섭다는 눈길로 실프를 힐끔거렸다.

뒤이어 신기하게 바라보는 건 칠라였다.

“찍찍? 무슨 일이냐?”

“……혹시 인간이 맞으십니까?”

“찍! 나는 인간이……. 으븝?!”

민유리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려는 칠라를 팔로 가로막았다.

칠라의 존재를 통해서 괜히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특수한 종교 때문에 항상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는 친구입니다.”

“마법 같은 것이로군요!”

“비슷하죠.”

“저기, 실례지만 귀인들은 누구십니까?”

“아, 그게 그러니까…….”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갖춘 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계시다니…….”

이유 없이 몰려다니기에는 수상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력한 카를렘 원정대.

유지한은 다른 영웅들을 돌아보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희는 아주 먼 국가에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먼 국가……?”

“바다 건너 산 건너, 아주 멀리 있는 지구라는 곳이죠. 아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아하! 미개척 대륙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가끔 그런 곳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죠.”

출신 지역은 미개척 대륙이라는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산적들에게 빼앗겼던 옷을 다시 착용한 남자가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저는 요거 상단의 알로라고 합니다.”

“유지한입니다.”

“독특한 이름이네요! 저희를 구해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알로는 유지한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목숨을 구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태도였다.

“요거 상단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라쿠아이드로 갑니다.”

한 세계의 이름이자 동시에 한 대륙의 이름을 뜻하는 카를렘.

카를렘에는 대륙을 지배하는 레론, 마즈, 카븜이라는 3개의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라쿠아이드는 그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은 레론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괜찮다면 저희가 라쿠아이드까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그게 정말이십니까?”

알로는 유지한의 제안에 기쁨을 드러냈다.

그렇지 않아도 라쿠아이드로 출발하기 전 쓸만한 용병들을 고용하지 못해서 불안하던 그였다.

덩치 있는 산적들을 마치 아이 다루듯 가볍게 물리친 그들이라면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었다.

“함께해주신다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을 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좋네요. 같이 가시죠.”

“네!”

“다만 그 전에 물어볼 게 있는데…….”

유지한은 무릎 꿇은 산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놈들 목에 현상금도 있습니까?”

*****

메스퍼는 레론의 마즈의 국경 부근에서 활동하는 산적 집단이다.

그 시작은 갈 곳 잃은 한 무리의 부랑자들이 나름대로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던 것에 불과했지만.

은퇴한 40대 용병이 그들에게 합류한 뒤에는 분위기가 변했다.

그는 같은 부랑자들 중에서도 적당히 쓸만한 놈들을 뽑아 독하게 훈련시켰고.

꾸준하게 훈련받은 부랑자들은 그 능력을 살려 약탈 행위에 뛰어들었다.

“이놈들, 왜 안 오는 거지?”

은퇴한 용병이자 메스퍼의 리더인 메스.

그는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돌아오지 않는 부하들을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도시로 간 게 아닐까요?”

“보나 마나 술이나 마시러 갔겠죠.”

“다음에 도시에 방문할 인원은 내가 정해줬을 텐데.”

“그놈들이 그걸 지킬 녀석들 같습니까?”

“푸하하하!”

서로가 서로를 쓰레기라고 여기는 메스퍼.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산적들이 약탈에 성공한 뒤에 축배를 들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메스퍼의 본거지에는 유흥 시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도시에서 먹고 즐기는 것이었다.

“쯧! 이번에 단단히 경고해야겠어.”

메스는 혀를 차며 일주일 전 훔쳐온 레드 와인을 병째로 들고 마셨다.

살짝 시면서도 떫은맛이 나는 액체가 그의 혀와 목을 적셨다.

귀족을 대상으로만 와인을 유통하는 상단의 물건답게 상당히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물품이었다.

‘이걸 구경만 했던 때가 떠오르는군.’

과거 용병이었던 그로서는 귀족들이 마시던 와인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물건이었다.

와인 한 병의 값이 그의 몇 달 치 수입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달 동안 병째로 들고 마셔도 남을 만큼의 와인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약탈한 물건이었다.

“형님! 요새 우리 이름값이 올라가는 거 알고 계십니까?”

“그만큼 잘 털어먹었다는 거겠지.”

“슬슬 자리를 옮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알아보는 중이다.”

특정한 지역에서 꾸준하게 약탈을 하다 보면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약탈 성공률 92%에 달하는 메스퍼는 근래 인근 상단에서 가장 경계하는 산적 중 하나였다.

메스퍼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 그들의 존재 때문에 용병의 몸값이 절로 상승할 정도.

다만 위험성이 지금보다 더 커지기 전에 자리를 옮길 필요성이 있었다.

“여긴 2주 내로 정리할 거니까 다들 준비하도록 해.”

“넷!”

꿀꺽! 꿀꺽!

부하들이 신나게 떠드는 동안 고급 와인으로 목을 축이는 메스.

그렇게 그가 분에 맞지 않은 호사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형님! 저쪽에서 누가 옵니다?”

“도시로 간 녀석들이 온 건가?”

“인원이 조금 많은데…….”

“어어? 그 자식들이 묶여있습니다!”

“……?!”

외부인이 찾기 힘든 장소에 숨겨진 메스퍼의 본거지.

그곳으로 산적들을 사로잡은 카를렘 원정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기 들어!”

타닷!

불안감을 느낀 메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무장시켰다.

매일같이 훈련받은 놈들답게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가까워진 상대에게 그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너희는 누구냐.”

“여기에 돈다발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돈다발?”

메스는 표정을 찌푸렸다.

최근에는 현금을 약탈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딴 건 없어.”

“아니, 있어.”

“뭐?”

유지한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메스의 머리를 가리켰다.

“여기 있잖아. 돈다발.”

“찍찍! 수금 시간이다!”

*****

똑똑.

뾰족한 고깔모자를 쓴 남자가 보석과 금박으로 꾸며진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남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의 장식으로 사용된 것만큼 화려한 내부 공간.

당장 벽에 달려있는 장식만 떼어 팔더라도 어느 10인 가족의 1년 치 생활비가 나올 정도였다.

비싼 장식이 온갖 장소에 걸려있는 이곳은 카를렘의 3대 세력 중 카븜에 위치한 궁전.

“왕.”

“무슨 일이지?”

상의는 탈의한 채 통이 넓은 바지를 착용한 근육질의 남성.

카븜의 왕은 팔짱을 낀 채 문으로 들어온 마법사를 바라봤다.

“통로가 열렸다가 닫혔다.”

“며칠 전의 일을 말하는 건가?”

“아니다. 방금 일어난 일이다.”

“……그렇군.”

카븜의 왕은 마법사의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본래 카를렘에서 태어난 게 아닌 외부의 존재들이 카를렘으로 넘어오는 현상.

몇 달 사이에만 벌써 5번이 넘게 그 현상이 관측되고 있었다.

“왕! 우리는 1년 전의 일을 기억해야 한다.”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외부의 존재들로 인해 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 죽어 나간 순간을 기억했다.

한때는 세계가 무척 넓다는 걸 깨닫게 해준 보답으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호의가 적의로 되돌아온 뒤부터 그들은 모두 척결 대상에 불과했다.

“네가 만든 안약을 눈에 넣으면 그놈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했지.”

“물론이다.”

“가능한 한 빨리 카븜의 모든 정예병에게 안약을 지급해라.”

“알겠다!”

“레론과 마즈와는 내가 따로 대화를 나눠보겠다.”

더는 그들이 카를렘에서 활개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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