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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225화 (225/300)

225화. 길드 (2)

거래 상대로 처음 만났던 꿀잼과 몽땅의 관계에서 장사임이 꾸준하게 보여줬던 똑 부러지는 태도는 그를 신뢰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에 따라 몽땅의 인수 절차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다.

온전히 길드 소속으로 들어온 남호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회사로서 회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정했다는 것.

장사임은 유지한이 한국에 없는 동안에 다른 길드의 사체 처리 업무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인수 작업은 저 혼자서 처리해볼게요.

그리고 김시후가 몽땅의 인수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유지한은 그동안 연락으로만 대화를 나눴던 사람과 만남을 가졌다.

“대면하는 건 오랜만입니다, 현재 씨.”

“말 그대로 오랜만이지만……. 요새 뉴스에서 지한 씨 얼굴을 자주 보니까 그리 낯설진 않네요.”

“못 보던 안경을 쓰셨네요?”

“최근에 갑자기 시력이 나빠져서요.”

아래로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손가락을 이용해 고정하는 남자.

유지한은 그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는 케로즈 매니지먼트 부서의 총괄팀장 이현재.

유지한이 케로즈에 있던 시절에는 건강 관리 차원에서 파티원들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었다.

—되게 웃기게 생긴 안경이다!

“정령 분의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군요.”

—우히히!

실프는 둥그스름하게 생긴 안경테를 보며 웃음소리를 냈다.

유지한은 이현재의 앞에서 날아다니던 녀석을 손으로 낚아채며 말했다.

“현재 씨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음, 사탕발린 말이라도 썩 나쁘지 않네요.”

이현재는 감사 인사를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케로즈에서 쫓겨났던 유지한에게 해준 게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러나 유지한은 실제로 그에게 커다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더 힘들었겠지.’

경력 문제로 인해 꿀잼 소속 파티의 MA 입장이 제한되어 있던 때.

이현재가 다른 길드의 연줄을 통해서 작성해준 추천서가 아니었다면.

유지한에게는 지금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졌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일이 잘 풀리더라도 지금보다 좋은 상황이 될 수는 없었을 터.

“이건 선물입니다.”

“선물? 저한테요?”

“평소에 만년필 모으는 거 좋아하셨죠?”

유지한은 종이백에 담긴 만년필을 이현재에게 선물했다.

그 만년필을 확인한 이현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은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어 구하기 어려운 희귀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휴, 뭘 들고 오셨나 했더니! 이거 되게 찾기 힘든 건데?”

“요새 제가 꽤 잘 법니다.”

얼마 전 보유한 지분만큼의 이익을 배당받았던 유지한의 계좌잔고는 아주 빵빵했다.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건 아주 가벼운 지출일뿐.

유지한은 만년필을 들고 기뻐하는 이현재를 보며 말했다.

“최근에 케로즈는 어떤가요?”

“좋다고 하기도 뭣하고,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닌 상황이네요.”

“김현태 파티는요?”

“1달 전에 이미아 씨를 대체할 멤버가 확정돼서 이세계로 가기 전까지 서로 합을 맞추고 있어요.”

김현태 파티 또한 이세계로 가는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전에 진행된 OT에 불참석한 건 개인 일정 때문.

그들의 목적지는 카를렘이 아니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김현태와 함께하며 한 차례 고생을 겪은 탓인지.

그들과 방향이 갈렸다는 사실에 어쩐지 안심이 되는 유지한이었다.

“현재 씨는 요즘 어때요?”

“저야 평소 그대로죠.”

“여전히 박중섭 길드장과는 자주 다투시고요?”

“어……. 그렇죠.”

케로즈의 박중섭 길드장과 케로즈의 창립 멤버인 이현재.

유지한은 업무적으로 자주 치고받던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멋쩍게 웃는 이현재를 보며 유지한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 길드의 문은 당분간 현재 씨에게 열려있을 겁니다.”

“그건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흐으음, 의미심장한 발언이군요.”

이현재는 잠시 유지한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땅으로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우리 길드로 이직해도 좋다는 말을 눈치 빠른 이현재가 이해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요컨대 문이 열려있다는 뜻은.

케로즈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 꿀잼에 네 자리를 마련할 테니 언제든 넘어오라는 것.

“그런데 왜 ‘당분간’이죠?”

“항상 열려있을 수 없죠. 꿀잼은 앞으로 거대 길드처럼 몸집이 커질 테니까.”

“자신감은 좋네요. 고민해보겠습니다.”

“제가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는 느긋하게 하셔도 됩니다.”

“…….”

이현재는 여유로운 표정인 유지한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케로즈에서 초라하게 퇴장했던 영웅이 크게 성공해서 돌아와 되레 영입을 제안하다니.

그 점잖고도 과묵하던 남자가 참 많이도 변했다 싶었다.

‘이게 원래 지한 씨의 성격이었을지도.’

그동안 케로즈라는 환경이 유지한의 잠재력을 억눌렀을지도 모르는 일.

지금 그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들어맞는 가정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엄청 끌린다……!’

규모는 작아도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유한 길드 꿀잼.

구성원이 유지한 파티밖에 존재하지 않아 자유분방한 그곳에서 기본적인 규칙과 체계들을 기초부터 세울 수 있다는 건.

박중섭과의 다툼이 잦은 이현재에게 아주 매력적인 조건처럼 보였다.

*****

“프란 오빠! 빨래 좀 걷어줘!”

“지금 가!”

펄럭!

나이가 어린 이종족들이 머무는 하늘보호소.

프란 페이저는 동생 릭시스의 요청에 따라 복도에 널어둔 빨래를 하나씩 걷었다.

복도를 지나가던 하늘보호소의 소장 정은영은 그와 함께 빨래를 걷어주었다.

“프란. 넌 이제 곧 졸업이지?”

“졸업 요건은 모두 채웠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졸업입니다.”

“보호소에서 독립하는 문제는 천천히 고민해봐.”

“네!”

여러 이종족들의 협조와 지원을 받고 있는 하늘보호소.

영웅 학원 졸업반인 프란은 이제 곧 성인이 되기를 앞두고 있었다.

재정이 넉넉한 덕분에 그는 원한다면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몇 년간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

“들어갈 길드는 정했니?”

“시후 형님이 계신 곳으로 가려고요!”

“꿀잼 말이지?”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아보는 길드.

프란은 여전히 소수로 활동 중인 그들에게 갈 예정이었다.

“레드홀에서 온 오퍼는 어떡하고?”

프란은 우연히 영웅 학원에 방문했던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레드홀으로의 영입을 제안받았다.

어지간한 중견 길드도 아니고, 한국 1위로 취급되는 거대 길드의 제안!

겉모습으로 이종족이 확실해 보이는 인물에게 그렇게나 좋은 기회가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제안이 온 건 감사하지만, 이미 거절했어요.”

“어머나.”

프란은 그 제안을 단번에 거절해버렸다.

그가 들어가길 원하는 길드는 이 세상에 오직 1곳.

하프 엘프인 김시후가 설립한 꿀잼이었기 때문이었다.

“꿀잼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받아줄 때까지 문을 두드려야죠.”

“너답구나.”

똑똑.

프란이 정은영과 대화를 나누던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찍찍! 내가 왔다!”

“칠라다!”

방문객은 칠라와 민유리였다.

칠라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등에 태워줘!”

“나도!”

“찍! 꼬리는 건들지 마라!”

칠라의 몸으로 하나둘씩 달라붙는 아이들.

민유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칠라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서도 하늘보호소에 방문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프란!”

“부르셨습니까, 유리 누님!”

척!

민유리의 부름에 프란은 그녀의 앞으로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과장된 행동을 보며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띤 민유리가 말했다.

“어제 내부 회의에서 네 영입에 관해 다뤘어.”

“……!”

프란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회의의 결과는요?”

“너만 원한다면 졸업 후에 우리 길드로 들어오도록 해.”

“저, 정말입니까?!”

프란의 영입은 1명의 반대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처음부터 유지한이 그를 눈독 들였던 만큼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당분간 혼자서 활동해야 할 수도 있어.”

“그건 전혀 상관없습니다!”

유지한과 김시후 일행이 만들어갈 새로운 역사.

거기에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맡게 된다면 여한이 없는 프란이었다.

*****

유지한은 메모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1. 몽땅 인수.

2. 이현재 영입 시도.

3. 프란 페이저 영입.

…….

…….

수첩에 나열된 목록은 카를렘으로 떠나기 전 처리 중인 항목들.

카를렘에 간 동안 길드가 비는 것을 대비하여 보안 요원의 고용 따위도 준비되어있었다.

—인간 사회는 너무 복잡해!

“다 필요한 일이야.”

—흥!

유지한은 실프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볼펜으로 수첩에 글자를 끄적였다.

그러던 도중 그는 고모의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늦은 밤에 어쩐 일이세요?”

—전에 네가 조사해달라고 했던 오빠의 친구 말이다.

한서인의 말에 유지한은 종이 위에서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볼펜을 책상에 내려놓은 그가 휴대폰을 다시 편하게 잡으며 말했다.

“뭐 알아내신 거라도 있나요?”

—그 사람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다.

정령사 모임에서 만났던 문정희가 아버지의 친구라고 언급했던 인물.

유지한은 그와 관련된 답변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사람, 실종된 모양이다.

“예?”

—오빠와 새언니가 죽은 날에 그 친구라는 사람도 자취를 감췄다더구나.

하필이면 그는 사회에서 실종된 상황이었다.

그것도 유지한의 부모님이 MA에서 사망한 당일.

그의 가족들은 진작 경찰에 실종신고를 넣었으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고 알려진다.

그 소식을 접한 유지한은 찜찜한 말투로 말했다.

“같은 날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우연이겠죠?”

—나도 느낌이 이상해서 조사해봤는데,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에 집에 남긴 쪽지가 있다고 해.

“어떤 쪽지요?”

—통화가 끝나면 사진으로 보내주마. 그것보다 저녁밥은 챙겨 먹었겠지?

저녁밥으로 시작되는 고모의 잔소리.

가만히 잔소리를 듣고만 있던 유지한은 곧 그녀와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메시지로 사진이 도착했다.

“이게 그 사람인가.”

—우히! 꽤 잘 생겼네!

“지금 봐도 미남이긴 하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라고 알려진 남자.

사진 속의 미남은 지금의 유지한과 비교해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뒤이어 전송된 사진에는 그가 실종되기 전 남겼다는 쪽지가 보였다.

“뭐라고 적은 거야?”

그 쪽지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이 많이 적혀 있었다.

같은 모양의 문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기다란 문자열.

언뜻 보면 하나의 암호문 같기도 했다.

[고모 : 암호학자에게 해독을 맡겼지만 풀어내지 못했다고 해.]

[고모 : 의미 없는 낙서일지도 모르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라.]

여러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해독을 시도했던 쪽지.

한서인은 그 쪽지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전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럴 수 없었다.

“……잠깐만.”

유지한은 황급히 휴대폰의 사진첩을 열었다.

가장 최근에 저장된 사진 중에는 과거 어머니의 친구였던 정령사 문정희가 보내준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유지한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기 시절의 그가 찍혀있는 사진.

“똑같잖아.”

실종되었다던 아버지의 친구가 남긴 쪽지에는.

어린 유지한의 목에 있는 점과 똑같이 생긴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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