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졸업
UN 파견단은 외부에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조사 결과에 형식적인 내용을 제외하면 별다른 입장을 개시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지한과 그들 사이에 발생했던 문제들을 덮어버린 것이었다.
되레 유지한을 두고 입이 닳도록 훌륭한 영웅이라고 평가하는 그들의 발표를 보며.
뉴스를 읽던 당사자인 유지한은 피식 웃어버렸다.
“정말 이대로 넘어가실 거예요?”
“예. 어차피 유리한 건 저희 쪽입니다.”
김시후와 민유리는 유지한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두 사람은 파견단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길길이 화를 냈지만.
유지한은 파티원들을 진정시킨 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사건을 덮어두기로 했다.
‘이렇게나 재밌는 걸 얻었으니 말이야.’
유지한의 손에 들린 은색의 목걸이.
김시후와 남호열의 도움을 받으며 자세하게 확인해본 결과, 목걸이에 달린 하얀색 장식은 하이퍼 드래곤의 뼈가 분명했다.
덤으로 고가의 검까지 챙겨왔으니 협상의 결과라고 본다면 큰 이득으로 볼 수 있을 터.
‘검이 내 취향이 아닌 게 아쉽군.’
날이 일자가 아니라 완만하게 구부러진 형태의 검.
유지한이 주로 사용하는 검의 형태와는 조금 달랐다.
이대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많기에 팔아버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드래곤 뼈로 뭐하시려고요?”
“처음에는 장비로 만들어볼까 했었는데……. 호열 씨가 안 될 것 같다네.”
장비로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뼈의 양.
하이퍼 드래곤의 뼈를 통째로 사용해도 아티팩트 제작에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는 결과가 있었기에.
아쉽지만 장비 제작은 빠르게 포기해야만 했다.
“유리 씨 드릴게요.”
“저요?”
유지한은 목걸이에서 하이퍼 드래곤의 뼈를 분리하여 민유리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화살로 사용하는 걸 고려해주세요.”
마력 화살의 화살촉에 뼈를 넣어서 쏴보라는 제안.
1급 몬스터의 사체에서 가져온 물건이니만큼 해당 몬스터의 힘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이었다.
민유리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하이퍼 드래곤의 뼈를 자신의 품속에 챙겼다.
“슬슬 출발하죠.”
사무실을 빠져나온 유지한 파티는 같은 건물 내 다른 층에 존재하는 청영사 강의실로 이동했다.
원정이 끝난 이후 잠시 중단되었던 청년영웅사관학교의 재개와 관련된 공지사항이 그곳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그때 유지한의 강의실로 이동하는 무리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제임스 강?”
“오! 유지한 씨!”
청영사에 참여 중인 레드홀의 유망주, 제임스 강.
그는 유지한을 발견하자마자 매우 반가운 얼굴을 했다.
파티원들과 함께 다가온 그가 유지한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영화 아주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군요…….”
개인 사정으로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 제임스 강은 매우 아쉬운 얼굴이었다.
만약 참여했었다면 레드홀의 소속으로 유지한과 같은 여수에서 싸우게 되었을 터.
“이번 일은 제게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겁니다.”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죠.”
“하하!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가볍게 웃어 재낀 제임스 강은 유지한 파티와 함께 강의실로 입장했다.
강의실의 자리는 이미 기존 청영사 3기의 입교생들로 절반가량이 차 있었다.
“유지한 파티다.”
“에휴, 부럽다…….”
“더 친하게 지낼걸.”
유지한 파티를 바라보는 입교생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표정이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는 자신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던 처지였거늘.
원정이 끝난 이후 인지도가 급상승한 그들은 고작 청영사 입교생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신분의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미나 씨!”
레이디스 길드의 고미나 파티.
유지한은 청영사에서 함께 수업을 받았던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고미나는 가까워지는 유지한을 보며 허둥지둥했다.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언니! 왜 그래요.”
“정신 차려!”
파티원들의 격려를 받으며 유지한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고미나.
그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자 고미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이상 반응에 유지한이 말했다.
“왜 그래요?”
“아니, 그게…….”
“……?”
“지한 씨가 너무 대단해져서 제가 친한 척하기가 좀…….”
유지한 파티의 첫 번째 영화가 나왔을 때도 그 활약에 크게 감탄했었던 고미나였다.
그런데 후속 영화를 공개한 그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경지에 도달해버렸으니.
함께 수업을 받던 때처럼 친한 척하기가 영 어색하고 어려웠다.
흡사 동네 친구가 유명 연예인으로 떠오른 뒤에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찍찍! 그때 그 인간들이군?”
고미나 파티가 자신에게 달라붙었던 때를 기억하는 칠라.
녀석의 목소리를 들은 고미나 파티원들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칠라!”
“으흐흑! 너무 귀엽다!”
“한 번만 안아보자!”
“찍! 귀찮은 것들! 이리 와라!”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팔을 쭉 뻗어 한 사람씩 안아주는 칠라였다.
자신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유지한 파티가 도착하기 전까지 조용하던 강의실은 한동안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형, 형.”
“응?”
“저쪽이요.”
김시후가 강의실 입구를 가리켰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문경진 파티가 들어오고 있었다.
“…….”
“…….”
그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유지한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매번 마주칠 때마다 유지한에게 신경질적이고 적의를 드러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진석우 교관님!”
마지막으로 입장한 사람은 그들의 담당 교관인 진석우.
원정이 끝난 이후 입교생들과 다시 만난 그는 큰 반가움을 드러냈다.
“저는 한동안 서울에서 정말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저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입교생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진석우가 자신의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내일부터 수업이 재개되기 전에 몇 가지 공지사항을 먼저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앞으로 청영사의 교육 내용이 조금 변경될 예정입니다. 몬스터 사냥보다 대인전의 비율이 조금 높아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진석우는 유지한 파티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이드북을 꼼꼼하게 보신 분들은 청영사 조기졸업 제도를 기억하실 겁니다.”
청영사에 입교한 파티가 2급이 되었을 때 가능한 조기졸업.
진석우는 그 제도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직접 지목한 대상 따위는 없었지만.
이것이 누구를 위한 설명인지 모르는 사람 또한 없었다.
*****
파티원들을 떠나보낸 문경진과 민주용은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주용아. 그놈 얼굴 봤어?”
“…….”
“거만한 새끼.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서는!”
유지한을 깎아내리는 문경진의 말에 민주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과 크게 변한 유지한 파티의 위상.
라이징 스타가 되어버린 그들은 강의실에서도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그를 싫어하는 두 사람으로서는 침묵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른 사람은 이제 답장조차 없더라.”
“겁쟁이 같은 녀석들…….”
문경진의 주도로 결성되었던 그룹에는 얼마 전까지 유지한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그런데 유지한 파티가 2번째 영화를 공개한 이후.
사람들이 줄줄이 빠져나간 그 그룹에는 문경진과 민주용밖에 남지 않았다.
‘유리 씨는 여전히 아름다웠지.’
민주용은 강의실에서 마주친 민유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변한 것 하나 없이 나를 웃게 하는 그녀의 말투와 싱그러운 미소.
‘영원한 나의 여신, 나의 행복……!’
유지한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볼 때마다 그는 항상 마음이 쓰려 왔다.
그녀가 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만 있다면 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주용아. 듣고 있어?”
“어어. 듣고 있지.”
머릿속이 민유리로 가득 차버린 민주용은 대충 대답했다.
그때 문경진이 그를 보며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 그 시술을 받을 생각이야.”
“시술?”
“팔다리를 포함한 몸 대부분을 기계로 바꾸는 개조 인간 시술.”
“……제정신이야?”
민주용을 입을 쩍하고 벌렸다.
문경진이 몬스터에게 먹힌 다리를 의족으로 대체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신체마저 전부 기계로 바꿔버리겠다니.
“그 녀석한테 지고 싶지 않아. 절대로……!”
유지한과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 어떤 위험이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는 문경진이었다.
*****
각종 공지사항을 전달한 진석우가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유지한 파티가 그의 자리를 찾아왔다.
“역시 오셨군요.”
“기다리신 거 아니었습니까?”
“조금은요?”
진석우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현재 청영사 3기에서 유일하게 조기졸업 요건을 갖춘 유지한 파티.
내부 관계자 회의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여러 번 언급되었으니.
요청만 들어온다면 당장이라도 졸업장을 줄 수 있었다.
“조기졸업. 하실 건가요?”
“하겠습니다.”
유지한은 주저 없이 조기졸업을 요청했다.
이미 파티원들과는 상의가 끝낸 건이었다.
조만간 이세계에 발을 들일 예정이었기에 청영사에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조기졸업을 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바빠질 것 같아서요.”
“지한 씨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수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흔치 않은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
그것은 파티의 등급과는 별개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가르치겠습니다.”
“…….”
“원정 도중에 부족함을 느낀 게 많았죠. 당분간은 그걸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김현태 파티에 소속되어 있었던 유지한이 파티원을 직접 가르친다면.
청영사의 교관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모자르지는 않을 터였다.
‘하긴. 우리가 가르칠 입장이 아닐지도 모르지.’
최근 청영사 교관들 사이에서도 돌고 있는 소문이 있었다.
청영사에 입교생으로 들어온 유지한이 교관들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전 반대로 제가 배우고 싶은데…….
영화를 어지간히 감명 깊게 본 교관 중에는 유지한에게 배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사람 또한 있었다.
선생과 제자의 입장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었다.
“좋습니다. 허가하죠.”
진석우는 결국 그들의 졸업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조기졸업을 치르는 파티에게는 졸업식이 따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전통에 따라 선물을 드리죠.”
“어떤 선물이요?”
“자, 이 중에 골라보세요.”
진석우는 미리 출력해둔 종이를 유지한에게 건넸다.
청영사에서 보유 중인 희귀한 물건들이 잔뜩 나열된 목록이었다.
“인당 1개씩 고를 수 있습니다.”
“이건……. 꽤 파격적이군요. 고가의 물건도 많이 보이는데.”
“후후! 이게 다 나중에 여러분의 이름을 팔아먹는 대가입니다.”
청영사에서 조기졸업을 할 정도라면 상당한 인재들임이 분명하다.
그 인재들이 청영사 출신이라는 걸 이용한다면 향후 청영사의 유명세 또한 크게 더해진다.
마냥 공짜로 주는 선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찍! 나도 받을 수 있나?”
—그럼 나도! 나도 받고 싶다!
“어…….”
자기들도 졸업 선물을 받고 싶다는 칠라와 실프.
진석우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제가 최대한 노력해서 칠라의 몫까지는 가능할 것 같지만……. 정령은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뭐라?! 지금 정령 차별하는 거야?
“찍, 찍찍! 이 몸의 승리다!”
—끼아아악!!
선물을 받지 못한 실프는 진석우 앞에서 몸을 튕겨대며 난동을 부렸다.
“교관님께 민폐 끼치지 마.”
—으갹!
유지한은 뛰어다니던 실프에게 꿀밤을 먹였다.
그리고는 파티원들과 짧게 의논을 거친 뒤.
졸업 선물이 나열된 목록에서 손가락으로 특정한 항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은 이거랑 이거. 가능하죠?”
“……!”
진석우는 유지한이 고른 항목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굳이 그것들을 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 위에 더 비싼 물건들도 많은데.”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거잖아요.”
“……안목이 좋으시네요.”
공급이 적어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품만을 고른 유지한.
진석우는 그의 안목에 감탄하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