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선언 (2)
예상치도 못한 이세계 진출 선언.
조두진을 바라보던 모든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야?”
“장관님! 이세계 진출이라는 건……!”
“말 그대로네.”
지난날, 영웅들은 매번 침입자와 이종족들을 맞이하기에 바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들이 지구에 오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세계를 넘나드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통 알아내기 힘든 정보였으나.
이번 원정의 결과로 차원 이동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1급 영웅들은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차원, 이세계로 넘어가 버렸지. 영웅부는 그들을 되찾기 위해 자원자들을 받아서 이세계로 보낼 예정이다.”
“방법은 있는 겁니까? 이세계로 갈 방법이요!”
“그게 없었다면 이런 말을 하겠나?”
“……!”
이세계로 갈 수 있다는 확답에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조두진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의 반응을 살피다가 이내 유지한을 바라봤다.
‘무엇보다 자네에게 감사해.’
차원 이동은 원정 이후 유지한이 전달해준 정보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
원정의 시작은 물론이고 끝맺음에서도 가장 중요한 영웅이었던 남자는.
지금도 여전히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걸 터트릴 줄이야.’
유지한은 조두진을 마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이세계 진출은 조만간 어떻게든 공개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원정은 끝났으나 1급 영웅들이 실종되어 여러모로 한국에 위기가 계속되는 만큼.
좋지 못한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장관님! 히어로타임의 임도감 기자입니다.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어떤 영웅들이 이세계로 가는 겁니까?”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으나 내부의 검토를 거친 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네. 파티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지원해도 좋고 설령 한국인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능력 있는 인재라면 언제든 환영하지.”
3급 이상의 영웅이라면 누구든지 지원해도 좋다는 파격적인 선언.
눈치가 빠른 기자들은 이 소식을 미리 영어나 일본어 따위로 작성하고 있었다.
이 속보를 누구보다 먼저 전세계로 퍼트리려는 것이었다.
“만약 영웅들이 이세계로 간다면 어떤 곳으로 가게 되는 겁니까?”
“구체적인 목적지를 결정하지는 않았어. 다만 지원자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쪼개서 여러 곳으로 보낼 생각이네.”
“이세계는 정말로 안전한 겁니까?”
“어떤 안전을 말하는 건가? 차원 이동의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네만.”
“이세계로 간 영웅들의 안전을 여쭤보는 겁니다.”
“그건 누구도 보장할 수 없어. 각각의 세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조두진은 기자의 물음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영웅부는 지원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세계에서 얻은 성과는 오롯이 개인의 소유로 하겠네. 영웅부는 이세계로 갈 영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그들에게 지분을 요구할 생각이 없어.”
그 어떤 지구인도 가보지 못한 이세계로 데려가 주겠다.
그리고 거기서 영웅부의 몫을 요구할 생각은 거의 없다.
조두진의 이 파격적인 제안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
조두진의 이세계 진출 선언은 아주 간략하게 마무리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 따위가 수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강당의 분위기만 봐도 그랬다.
“진짜 이세계로 가는 거야?”
“소설에서만 보던 일을……!”
“난 무조건 갈 거야.”
만찬을 즐기며 하나같이 이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영웅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기대감을 갖는 것이었다.
“찍, 찍찍찍! 이 볶음밥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칠라! 배가 점점 튀어나오고 있어!
“이게 바로 근육이라는 것이다! 찍!”
—거짓말.
“찍찍! 이 쬐깐한 고기도 생각보다 맛있다!”
—지한! 칠라가 돼지로 변하기 전에 막아야 해!
칠라는 끊임없이 음식을 흡입하고, 실프가 그런 칠라를 놀려대는 가운데.
민유리는 주변의 반응을 살피다가 말했다.
“다들 이세계로 떠날 분위기예요.”
“저희도 그렇죠.”
유지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조차도 주변 영웅들과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현시점에서 차원의 경계를 방문한 지구인은 유지한이 유일했기에 그가 길 안내 역할을 할 필요성도 있었다.
“시후야! 네 어머니의 고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
“으음……. 어떤 세계로 갈지 정할 수 있는 걸까요?”
에르나 하스가 태어났던 세계, 그루디아.
기회가 된다면 그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때 유지한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희가 이번에 갈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네?”
“거기가 어딘데요?”
“카를렘.”
실종된 윤도하가 강제로 날려 보내진 이세계, 카를렘.
윤도하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최우선으로 카를렘에 찾아갈 필요성이 있었다.
“하늘보호소의 프란도 카를렘 출신의 드워프였죠.”
“조만간 찾아가 보려고.”
카를렘에서 10년 이상을 거주했었던 프란 페이저.
유지한은 그를 통해 사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상으로 행사를 마칩니다.”
짝짝짝!
처음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주목받게 된 행사가 모두 끝나고.
강당의 무대를 향해 박수를 보내던 영웅들은 우르르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때 김현태가 유지한의 앞으로 지나쳐갔다.
눈을 잠깐 마주쳤음에도 무시하고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김현태.”
“…….”
부름을 듣고 자리에 멈춰선 김현태가 유지한을 돌아봤다.
기자들과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기에 짐짓 여유로운 척하면서도.
유지한 파티의 영화로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 때문에 그를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너, 이미아의 탈퇴를 막지 않은 거냐?”
“내가 그걸 왜 막아야 하는데?”
“미아가 없어도 괜찮다는 거야?”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영웅으로 대체할 수 있어.”
한국을 떠나 전세계를 뒤져봐도 이미아와 같은 영웅을 구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을 터인데.
김현태는 그녀가 파티에 없어도 전혀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유지한에게는 그의 자신감이 허세처럼 보이기만 했다.
“너야말로 이미아와 동맹을 맺었다면서.”
“그렇게 됐다.”
“파티를 떠난 년놈들이 아주…….”
이미아에 대해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태도.
독설을 퍼부으려던 김현태는 뒤쪽에 자리 잡은 기자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입가에 억지웃음을 띄우며 조용히 말했다.
“어디 똑같은 놈들끼리 잘 해봐라.”
김현태는 그 말만을 남긴 채 파티원들과 함께 입구로 빠져나갔다.
사진이 더 찍히기 전에 자리를 떠나려는 것이었다.
‘이미아도 다를 바 없는 건가.’
그래도 이미아라면 케로즈 전체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크게 인정받는 영웅이었을 텐데.
김현태가 파티를 떠난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유지한에게 보여주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어찌 보면 매번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 유지한은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
행사가 끝난 이후 양지철은 별도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유지한 파티를 안내했다.
“승급 축하드립니다.”
“벌써 된 거예요?”
“네.”
원정에 참여했던 파티를 대상으로 주어지는 특별 보상.
그중에서도 지극히 일부 파티에게만 해당되는 특별 승급.
그 명단에 들어가 있었던 유지한 파티는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승급에 성공했다.
3급 파티가 한순간에 2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전례가 없던 상황이니만큼 내부에서 반발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그 누구도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지한 파티는 첫 탄생 후 1년조차 되지 않은 신규 파티였다.
그런 주제에 미칠듯한 속도로 3급까지 승급했을뿐더러, 이제는 2급이 되어버렸다.
이례적인 승급 속도 때문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조두진의 지시까지 있었기에 방해 없이 승급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거 잠깐 봐도 돼요?”
유지한은 양지철이 조작하던 컴퓨터의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그와 김시후, 민유리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는 명단에는 파티의 등급이 보였다.
[꿀잼 - 유지한 파티]
[2등급]
3이라는 숫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2가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올라간 등급을 보며 유지한은 싱숭생숭한 마음이 되었다.
“지철 씨도 동의하신 거죠?”
“당연하죠.”
지난날 승급에 조금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양지철도 이번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유지한 파티의 2급 승급을 적극적으로 반기는 입장이었다.
그들이 그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원정 보상금은 길드 계좌에 입금되는 즉시 알려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협조를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거죠?”
“조만간 UN에서 저번 테러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UN?”
유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IUPC 사태 발생 이후 한국의 협력 요청을 깡그리 무시했다던 그들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말인가.
한낱 공무원인 양지철로서는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었다.
“여러분이 UN을 맞이하는 대표 중 하나로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요?”
“달리 적격자가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칠라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하는 바람에…….”
해외에서도 유지한 파티의 영화를 접한 사람들이 많았다.
UN에서 한국으로 방문하는 손님들 또한 그들을 모를 리 없을 터.
현시점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진 유지한 파티에게 협조를 구하는 양지철이었다.
파티원들과 잠깐 상의를 한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합니다!”
원정의 보상금을 조만간 약속받은 유지한 파티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조만간 들어온 수입들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게 되리라.
“2급이 되어버렸네요…….”
민유리는 자신이 2급에 올랐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괴냥이를 사냥할 때만 하더라도 언론에 얼굴을 비추던 영웅들은 나와 동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여겼거늘.
이제는 그녀 본인이 그 자리에 올라서고 말았다.
“찍? 주인아! 2급이 좋은 거냐?”
“앞으로는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찍찍! 아주 훌륭하다!!”
맞춤 해설을 전해 들은 칠라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김시후는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기쁜 목소리로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허무하군.’
케로즈의 길드장 박중섭은 김현태 파티를 높은 등급으로 만들겠다며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었는데.
그 당시 등급조차 매겨지지 못했던 유지한은 그것을 단 몇 달 만에 이뤄냈다.
그에 조금 허무함을 느끼는 유지한이었다.
“여기서 헤어지죠. 저는 따로 들릴 곳이 있어서.”
“그분들이요?”
“예.”
파티원들과 헤어진 유지한은 영웅부의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에서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하며 복도를 걷던 도중.
“어머, 지한 오빠!”
“주인공이 오셨군.”
니로치와 카지미르가 그를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