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비밀 (2)
“드디어 떴다.”
“뭐가?”
“유지한 파티 인터뷰!”
유지한 파티가 기자 이완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그들의 인터뷰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기까지는 고작 하루조차 걸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보가 먼저 새어나갈 것을 염려하여 기사를 빠르게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원정 끝나고 조용하더라니, 드디어 얼굴을 비추네.”
“내가 기사 링크 보내줄게.”
해당 기사는 공개되자마자 주요 뉴스로 선정되며 조회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조회수를 높이는 데는 특히 학교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10대 학생들이 한몫했다.
딱 영웅에게 관심이 가장 많을 나잇대.
그들은 유지한 파티의 인터뷰를 SNS나 주변 친구들에게 연신 퍼트렸다.
“뭐야! 유지한이 김현태 파티에 있었다는데?”
“진짜로?”
“에이,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이거 봐봐!”
1급 영웅들을 제외하고 매달 가장 주목받는 영웅을 선정할 때 항상 10위권 안에 들어오는 영웅 김현태였다.
그런데 유지한과 그 김현태와 같은 파티에서 활동했었다니!
기사가 담아낸 그의 과거는 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파티에서 혼자만 익명으로 활동을 했대. 여기 증거 자료도 있다.”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왜 그런 거야?”
“밑에 이유가 적혀있는데…….”
특정한 조항만이 공개된 유지한의 계약서 사본.
이완이 누구라도 알기 쉽도록 내용을 정리해둔 덕분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와……. 좀 심했다.”
“영웅들 계약서는 원래 이런 거야?”
“설마! 이건 양아치 수준이잖아!”
계약서가 공개된 결과.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유지한을 동정하고 안타깝게 여겼다.
더불어 케로즈를 향해 커다란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게 진짜 사실이라면 케로즈가 너무 했다.”
“나 김현태 좋아하는데 지금 충격받았어.”
“박중섭 길드장이었지? 그 사람 예전부터 이미지 엄청 좋았잖아.”
“맞아. 기부도 자주 하고 티비에도 여러 번 나왔을걸.”
평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케로즈였으나.
유지한이라는 영웅 덕분에 그 이미지에 흠집이 생겨났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는 인터뷰였다.
하지만 인터뷰의 충격은 고작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마법사 김시후가 하프엘프래!”
“인간이 아니었어?!”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인터뷰에는 김시후가 모자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종족을 고백하는 사진이 실렸다.
인간이 아닌 하프 엘프 마법사가 마침내 제 존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쩐지 너무 귀엽게 생겼더라.”
“당장 팬카페 가입해야지!”
인위적으로 염색을 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잿빛 머리칼과 뾰족귀는 그에게 신비로움을 더해주었고.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라는 특수한 배경은 되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쯧! 아무리 그래도 이종족은 싫은데…….”
“그건 네가 할 말은 아니지.”
“김시후가 치열하게 싸울 때 넌 뭐했어? 집에 박혀만 있었잖아!”
김시후가 원정에서 펼쳤던 활약들을 영화로 먼저 접한 사람들 덕분에.
종족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든 욕을 얻어먹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동영상인가?”
기사에 첨부된 동영상을 재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크게 떴다.
——찍! 지금 날 찍고 있는 건가?
영상 속 칠라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러운 몸짓과 한국어 발음, 그리고 높은 수준의 언어 이해력까지.
어쩌면 앞에서 나왔던 모든 소식들을 묻어버릴 정도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몬스터가 말을 해?!”
“에이, 설마.”
“복화술이겠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위화감 하나 없이 자연스러운 영상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인터뷰 내용 전부 다 거짓말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지.”
“만약 전부 다 사실이라면?”
단 1번의 인터뷰에서 공개된 충격적인 정보가 무려 3건.
큰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앞다투어 유지한 파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
굳게 닫혀있던 청영사 본부의 문이 열리자 유지한 파티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실물로는 처음 봐.”
“하프 엘프가 저 사람 맞지?”
“한번 말 걸어볼까?”
자연스럽게 1층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에게 쏠렸다.
그러나 유지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위의 관심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예인들은 피곤해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요.”
사무실 우편함에 도착한 수많은 편지들.
어찌나 양이 많은지 우편함의 덮개가 편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살짝 벌어져 있었다.
유지한은 그것들을 챙겨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 내부는 한동안 청소를 하지 못한 덕분에 여기저기 먼지가 쌓여있었다.
김시후는 파티가 4급으로 승급한 당시 받았던 기념패를 닦으며 말했다.
“저희 메일함에 일주일 사이에 도착한 메일만 5천 개가 넘어요.”
“찍찍? 5천 개면 많은 거냐?”
“많아도 너무 많아.”
원정이 끝난 이후로 수많은 메일이 꿀잼 길드의 메일함으로 쏟아졌다.
오늘 아침 기준으로 메일의 개수는 5천 개를 넘긴 상황.
“시간 날 때 천천히 살펴봐. 우리 쪽에서 급할 건 없으니까.”
도착한 메일 중 절반 정도는 영화를 시청한 시민들이 격려 차원에서 보낸 것이었고.
나머지는 후원이나 투자 따위를 제안하며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이들의 메일이었다.
신생 길드가 받기에는 하나같이 과분한 제안이었지만, 섣부르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지한 씨! 저희 순위 어떻게 됐어요?”
“국내에서는 1위입니다.”
유지한은 휴대폰으로 영웅 영화 사이트에 접속했다.
유지한 파티의 원정을 담아낸 영화는 총 2편 <아제시아>와 <아제시아 2>.
이번에 1편에 이어서 후속편이 새롭게 공개되었는데.
공개하자마자 또 국내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영화 결제 금액만 53억.’
유지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까지 영화로 기록한 수입은 무려 53억 원.
각종 수수료를 제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관람객들을 최대한 끌어모으고자 영화의 관람료를 천 원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게 설정했는데.
그 의도가 제대로 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영웅부에서 줄 보상금도 이 정도로 크지는 않겠지.’
국가에서 원정 참여 건으로 보상금을 지급하더라도 영화 수익에는 비교할 수 없을 터.
대박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돈이 들어오면 뭐부터 살까?”
“찍찍! 나는 고기가 먹고 싶다!”
“무슨 고기?”
“뭐든 먹을 수 있는 거냐?”
“뭐든 먹게 해주마.”
“찍, 찍찍찍!! 난 대장이 좋다!”
파닥파닥!
무엇이든 먹게 해주겠다는 유지한의 말에 칠라는 기쁨에 겨워 팔을 흔들어댔다.
민유리가 그런 녀석을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였다.
“오호.”
유지한은 영화 인기 순위에서 김현태 파티의 영화를 발견했다.
그쪽에서도 드디어 지방 원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공개한 모양이었다.
‘……이미아가 안 보이네?’
그런데 영화의 포스터에도, 출연진 목록에도 이미아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검색을 해보니 해당 영화에 이미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었다.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김현태 파티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리라.
‘박중섭 길드장에게 미운털이 박혔구나.’
원정에 함께 참여하고 똑같이 고생한 동료일 텐데도.
이미아는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입구 근처에 있던 민유리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유지한 파티 맞으시죠?”
“맞습니다.”
“아까 연락 드렸던 케로즈의 박열태입니다.”
“……!”
그는 케로즈에서 찾아온 직원이었다.
그가 허락도 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유지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 텐데요.”
이완이 작성한 유지한 파티의 인터뷰가 영웅일보를 통해 공개된 뒤.
케로즈에서는 유지한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그가 케로즈 시절의 계약서를 공개한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직접 대면 후 대화를 요청하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했건만.
그들은 기어코 사무실로 사람을 직접 보낸 것이었다.
“대화 나눌 생각 없으니까 가세요.”
“유지한 씨! 지금 제가 떠나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
“저희 케로즈에서는 인터뷰에서 공개한 계약서 건과 유지한 파티의 후속 영화에서 비친 김현태 파티의 모욕적인 편집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 저희의 명예를 위해 각종 의혹에 적극적으로 반박할 것이며 필요 시 법적 소송 또한…….”
미리 준비해온 듯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유지한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대체 누구 앞에서 협박을 하려는 것인지.
“누가 후회를 합니까? 제가요? 아니면 그쪽이요?”
“…….”
“같잖은 협박하지 말고 꺼져.”
“꺼, 꺼지라니! 당신 지금 나한테……!”
화가 난 얼굴로 따지듯이 말하는 남성.
그에 유지한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칠라! 손님 보내드려라!”
“찍찍!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잘 가라!”
“우, 우와아악!!”
“저항하지 마라. 인간!”
칠라는 정장의 남성을 사무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도 나름 힘껏 저항해보지만 거대한 친칠라의 완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문이 굳게 닫힌 뒤 민유리는 사무실 앞을 떠나는 남성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쫓아내도 돼요?”
“다짜고짜 찾아온 저쪽 잘못이죠.”
유지한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번 일로 케로즈에서 거세게 항의를 해온들 상관이 없는 것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번 원정에서 활약한 파티에게는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이미지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파티는 단연코 꿀잼의 유지한 파티였다.
‘케로즈는 섣불리 날 건들 수 없어.’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받는 상황이니만큼.
유지한과 맞서는 세력은 필시 많은 사람에게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서로 완전히 척을 지는 건 아무래도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터.
‘내가 많이 크긴 했다.’
유지한의 영향력이 약했더라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는 케로즈의 박중섭 길드장조차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체급이 커져 버렸다.
*****
“쪼, 쫓겨났습니다.”
“…….”
“죄송합니다.”
박중섭은 꿀잼의 사무실에 다녀온 직원의 보고를 들으며 침묵했다.
설마하니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강제로 내쫓길 줄이야.
잔뜩 긴장한 직원이 사장실의 문을 닫고 나가자 박중섭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모욕.
이것은 모욕이었다.
유지한을 강제로 내보내던 순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
‘내가 그놈 때문에 이따위 감정을 느낄 줄이야!’
쿵!
박중섭은 끝내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꽉 다문 이빨로 인해 그의 턱 근육은 연신 씰룩거렸다.